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2(05.28, 벨로라도 - 아헤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긷기 길 : 벨로라도 - 토산토스(4.8km) - 비얌비스티야(1.9km) - 에스피노사 데 까미노(1.6km) -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3.6km) - 산 후안 데 오르테가(12km) - 아헤스(3.6km)

 

 오늘은 아헤스까지 약 28km의 길로 길지도 짧지도 않은 거리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시간을 맞추어 정해진 순서대로 기계와 같이 일어나고 움직여서 길을 떠나는 시간은 아침 6시 30분이다. 너무 일찍 떠나는 느낌도 있지만 알베르게에 머물던 순례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벌써 떠나고 몇이 남아 있지 않다. 순례자를 위한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을 벨로라도를 떠나는 오늘의 여정은 거리는 길지 않지만 해발 고도를 400m 가까이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어려운 길이 아니기에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길을 걸으면 된다.

 

 아쉬운 미련을 마음속에 가지고 벨로라도를 나와 토산토스를 거쳐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까지의 길은 아주 완만한 구릉이 계속되는 평야지대로 지난 여정과 같이 고속도로와 나란히 도로의 오른쪽을 따라 이동한다.

 길을 걸어가면서 보는 그림자가 앞으로 길게 뻗어 이 길이 서쪽으로 쭉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나는 서쪽으로 계속해서 길을 가는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모습이다.

 

 

 

알베르게 벽의 순례자 그림

 

길바닥의 표식(순례자를 격려하는 글인 듯하지만 의미를 모르겠다.)

 

벨로라도 거리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지나 - 부르고스 지방 안내 설명

 

벨로라도를 건너는 티룬 강의 다리

 

건물 벽에 그려진 뷰엔 까미노(Buen camino) 그림

 

키다리 아저씨의 그림자

 

 약 한 시간을 넘게 길을 따라 가서 오른쪽에 들어가면 나타나는 토산토스는 오카 산의 굽이치는 풍경 안에 자리 잡은 조그만 마을이다. 토산토스의 입구에서 정면에 보이는 거대한 돌산에는 몇 개의 동굴이 뚫려 있으며 가운데에 소박하고 단순한 모양의 라 뻬냐 성모의 바위 위 성당이 있다는데 올라가지 못했다. 토산토스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인데도 문을 연 카페가 있어 들어가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쉬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언제부터인가 아침에 길을 가면서 커피를 한잔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마을 뒤로 이어지는 까미노 길을 따라 아름다운 밀밭 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새 밀밭 사이로 비얌비스티야 성당이 보이지만 그냥 지나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로 향한다. 토산토스에서 비얌비스티야까지는 1.9km의 짧은 거리고 거기서 또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까지는 1.6km의 짧은 거리다. 짧은 거리에 여러 마을이 계속해서 나오는 구간이다. 길을 가면서 보는 벌판과 하늘은 너무나 고요하고 맑아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계속해서 보는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감탄을 하는 것은 우리가 너무 이런 풍경에 목말라 했던 것이 아닐까? 이런 풍경을 보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이 길을 걷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티없이 맑게 파란 하늘

 

카페 선전 

 

비얌비스티야 입구

 

 밀밭 사이로 이어지는 까미노 길을 약 1km 걸으면 나오는 공원을 오른쪽으로 끼고 고속도로를 건너 가다보면 왼쪽에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 마을이 보인다. 전원풍의 아름다운 목조건물들이 특색을 이루는 마을로 평화로운 모습이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 마을을 통과하여 비야프랑코 몬테스 델 오카로 가는 길은 평탄한 들판을 지나는 길이다. 스페인을 걸으며 엄청 보던 밀밭이 펼쳐지는 들판이다. 밀밭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멀리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가 보인다. 내리막을 내려오면 산 펠리세스 수도원의 유적을 만나며 오카 강을 건너 마을에 도착한다.

 

리오질라 부르갈레사(오카계곡과 티란계곡 사이) 설명

 

계속 이어지는 밀밭길

 

쭉 뻗은 아스팔트길

 

비야프랑카 거리 표시

 

눈을 맑게 하는 탁 트인 벌판과 푸른 하늘

 

비야프랑카 몬데스 데 오카 안내도

 

 마을 입구의 안내도를 보며 마을로 들어선다.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는 맑고 푸른 개울이 있고, 마을의 근교에는 오래된 떡갈나무 서식지이면서 너도밤나무와 자작나무 숲이 있다. 이 숲에는 노루와 늑대가 살고 있다고 한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와 부르고스의 중간에 위치한 이 마을에는 여러 전설과 많은 전통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오카산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오카 산은 오랫동안 순례자들을 노린 도둑들이 들끓던 곳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서 한 순례자가 도둑에게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슬픔에 잠긴 순례자의 부모가 간절하게 야고보에게 기도를 올리자 죽었던 순례자가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비야프랑카 몬데스 데 오카 거리

 

 거리를 걸어가면서 보는 산티아고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tiago)18세기 후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으로, 필리핀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조개껍데기로 장식한 세례반이 있다.

 

비야프랑카 몬데스 데 오카의 유적 설명판

 

성당 옆에 비야프랑카 몬데스 데 오카의 유적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이 안내판에는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산 펠리세스 데 오카 수도원 (Monasterio de San Felices de Oca), 산티아고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tiago), 오카의 성모 소성당 (Ermita de la Virgen de la Oca) 등이 설명되어 있고, 아헤스까지 길도 안내되어 있다.

 

 산티아고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tiago)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의 카페에서 주스를 마시고 쉬다가 길을 떠나 산티아고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tiago)의 옆길로 올라가니 아주 옛날 건물의 느낌이 나는 알베르게가 있다. 이런 곳에서 숙박을 했으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하고 지나쳤는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여기서 숙박을 하게 되었다. 그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겠다.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를 출발하기 전에는 충분한 휴식과 물을 충분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떡갈나무와 소나무 숲으로 우거진 오카 산의 정상을 오르는 길과 산 후안 데 오르테가로 가는 내리막길의 12km나 되는 길에는 휴식을 취할만한 곳이 없다.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에서 나오는 길은 산티아고 성당을 왼쪽으로 끼고 오래된 병원의 모퉁이를 돌아 오카 산을 향한 험한 비탈길로 이어진다. 길은 떡갈나무와 소나무로 우거진 숲을 지나게 되며 까미노는 철책을 가로질러 내리막을 내려가면 조그마한 시내가 나오고 오늘의 길에서 가장 어렵다는 오르막 비탈길을 만나게 되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산을 좀 올라 본 사람에게는 심하게 어려운 길이 아니다. 떡갈나무 숲을 통해 산의 정상을 오르면 거대한 고원지대를 만나게 되고, 길은 어렵지 않은 내리막 산책길로 변한다. 이제 산 후안 데 오르테가 마을이 이제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부르고스 지방 안내도(오카 산맥도 설명)

 

끝이 보이지 않는 숲길

 

공동묘지 표시

 

 오카 산의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추모비 같은 것이 보였다. 비 표면을 보니 1936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기억은 바로 프랑코 정권에서의 스페인 내전이다. 국제정세의 복잡한 이해관계에 의한 내전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로 잘 알려져 있는 전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한 비극적인 전쟁이었는데 역시나 그 학살당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추모비였다.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의 추모비

 

길가의 간이 푸드 트럭

 

산 후안 데 오르테가의 표시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서 부르고스까지 안내도

 

 산 후안 데 오르테가는 12세기부터 교황을 비롯하여 평범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까미노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 도시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외딴 마을은 순례자들은 편히 쉴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변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는 오래된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로 로마네스크와 고딕, 바로크 양식 등의 우아한 건물이 있으며, 지금도 눈으로 경험 할 수 있는 빛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

 

 빛의 기적이란 춘분(321)과 추분(921)이 되면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성당의 주두에 일어나는 단순한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신기한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오후가 되면서 약 10분 정도 햇빛이 성당 주두의 부조를 비춘다. 처음으로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이라고 성모에게 나타난 대천사의 부조부터 시작하여 예수의 탄생, 예수를 경배한 동방박사, 목동들에게 예수가 태어났다고 알려주는 장면을 차례로 비춘다.

 첫 번째 부조에서는 성모는 천사가 아니라 주두를 비추는 빛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빛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자연현상이자 잊을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이 현상을 빛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무슨 표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마을에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수도원 (Monasterio de San Juan de Ortega)12세기에 만들어졌다. 건물 내부에는 복잡하게 장식된 주두가 눈에 띄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인정되는 고딕 양식의 천개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조각된 산 후안 데 오르떼가 성인의 석관이 있다. 이 석관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산 후안 오르테가 성인은 임신과 다산을 도와준다고 사람들이 믿어져 왔기에, 이사벨 여왕도 이 성인의 무덤을 찾아와 경배하며 자신이 무사히 아기를 낳기를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고 여왕은 성인의 유해를 볼 수 있도록 돌로 된 석관을 열라고 지시했다. 성인의 무덤을 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성직자와 수도사들은 망설였지만, 여왕의 고집으로 석관을 열자 하얀색의 벌떼가 쏟아져 나왔고, 여왕은 부패하지 않은 산 후안 데 오르테가의 시신을 볼 수 있었다. 놀라운 현상에 두려움에 떨던 여왕이 사람들을 시켜 석관을 닫자 벌들은 다시 석관의 작은 구멍으로 날아 들어갔다. 그래서 여왕과 사람들은 이 벌들이 성인이 구원해주기를 기다리는 태어나지 못한 영혼들이라고 여겼다.

 

고딕 양식의 발다친에 대한 설명

 

중앙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후진 설명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의 조각 설명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의 조각

 

산 후안 데 오르테가의 무덤(석관)

 

수도원 표석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수도원 (Monasterio de San Juan de Ortega)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서 쉬면서 같이 걷는 일행과 가볍게 맥주를 한잔 마셨다. 제법 먼 길을 걸어 목이 마르기도 하고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아헤스는 멀지 않기 때문이다.

 아헤스로 가기 위해서 마을을 빠져나오면 곧 철길이 나오고 길이 세 개가 있으나 바로 이어지므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 곧 커다란 두 개의 떡갈나무와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가 있는 언덕이 나오는데 앞쪽으로는 앞으로 끊임없이 걸어야 하는 황무지가 보이고 잠시 후에 나바라의 왕이었던 가르시아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아헤스가 순례자를 맞아준다.

 

아헤스 가는 길 안내도

 

멀리 보이는 아헤스 마을

 

 오래된 마을 아헤스는 중세 시대 기독교 왕국의 패권을 뒤흔든 중요한 장소였고, 또한 전원 속의 마을이라는 매력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까미노를 순례하는 순례자라면 이 그림 같은 풍경의 마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아헤스 안내도

 

아헤스의 풍경

 

 아헤스에 도착하여 숙소인 알베르게를 찾아가니 문제가 발생했다. 알베르게가 이중으로 예약을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입실을 못하고 있었다. 우리 팀의 인솔자는 예약한 영수증까지 제시하였지만 주인은 어느 쪽의 예약을 인정할 수가 없는 입장인 듯했다. 오랜 시간의 실랑이 끝에 알베르게의 주인이 다른 곳에 숙소를 마련해 놓았다며 차를 동원하여 약 10명 정도를 이동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차를 동원하여 이곳 아헤스로 데려다 준다고 하였다. 아헤스에는 알베르게가 충분하지 않아 차를 동원하여 약 20km나 떨어져 있는 비야프랑카 몬데스 데 오카까지 이동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여행 중에 일어나는 한 해프닝으로 생각하고 이동하였다. 그런데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이동하여 간 곳은 낮에  비야프랑카 몬데스 데 오카를 지나면서 보았던 San Anton Abad라는 호텔과 알베르게를 겸해서 운영하는 아주 멋있는 고성과 같은 알베르게였다. 아마 아헤스의 주인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성의를 다 한 것 같았다. 이 알베르게는 시설이나 음식 등 여러 면에서 최고의 알베르게로 인정할 만 하였다.

 

 San Anton Abad 알베르게 들어가는 입구

 

알베르게 안의 여러 장식품(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십자군과 연과????)

 

알베르게의 뜰 풍경

 

 이 알베르게에서 제법 늦은 저녁을 먹었다. 식당에 가니 역시 순례자 메뉴를 팔고 있었고 가격은 거의 같았다. 식당의 등급이나 알베르게의 수준 등을 보면 좀더 비싸게 받을 수도 있었는데 아마 이 음식의 가격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이곳으로 같이 온 일행들과 담소를 나누고 침실로 향해 가니 저번에 에스테야에서 만났던 프랑스(?)인 일행이 모여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그냥 반갑게 인사를 하니 그들도 모두 반가워한다. 까미노 길을 걸으며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오랜만에 좋은 시설을 갖춘 알베르게에서 배불리 먹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