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3(05.29, 아헤스 - 부르고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오늘의 걷기 길 : 아헤스 - 아타푸에르카(2.5km) - 카르데 뉴엘라 리오피코(6.2km) - 오르바네하 리오피코(2km) - 비야 프리아(3.6km) - 부르고스(7.9km)
오늘은 아헤스에서 출발하여 부르고스까지 가는 약 22km의 비교적 짧은 길이다. 일찍 San Anton Abad 알베르게서 일어나 옆에 있는 거실 같은 곳을 가니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경치가 장관이다. 이곳은 호텔을 겸하고 있기에 쉬는 공간도 아주 넓게 자리 잡고 소파도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휴게실을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고 여유롭게 꾸며 놓았다.
San Anton Abad 알베르게 창밖으로 보는 일출의 모습
San Anton Abad 알베르게에서 아헤스의 알베르게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아헤스에 도착하니 다른 날에 비해서는 상당히 늦은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의 길은 그렇게 어려운 길이 아니기에 길을 떠났다. 길을 떠나면서 옆을 보니 텐트가 보인다. 어제 우리가 아헤스에 도착했을 때 개를 데리고 다니는 술에 취한 나그네가 있었는데 그가 개와 함께 텐트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아마 순례자인 것 같았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행동도 모두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아헤스의 거리
아헤스에서 아타푸에르카에 이르는 길은 산 후안 데 오르테가의 노력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사이에 펼쳐지는 평원은 중세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의 군대와 그의 형제 페르난도 데 카스티야의 군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이 전투에서 가르시아 왕이 사망하고 나바라의 군대는 패배하여 결국 이베리아 반도에서 나바라 왕국의 왕위 다툼이 끝났다.
전설에 따르면 살아남은 왕의 부하들이 죽은 왕의 내장을 아헤스 성당의 입구 반석 밑에 묻었다고 한다.
아타푸에르카로 가는 길 표시
아타푸에르카로 가는 길의 평원
아타푸에르카로 가는 길에 갑자기 돌들이 원형으로 늘어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고대 원시인의 형상이 그려진 아타푸에르카의 간판이 보인다. 이제 순례자는 유럽 대륙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인류의 고향 아타푸에르카(Atapuerca)에 도착한다. 마을 입구에는 마을에서 약 3km 정도 떨어져있는 최초의 인류인 ‘안테세소르’의 유적으로 가는 샛길이 있다. 이 유적의 발견은 유사이전 인류의 동굴생활과 매장관습 등 고고학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궁금점이 생기고 호기심도 있었지만 내가 가야 하는 길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가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자료로만 소개한다.
부르고스주에 있는 자치시인 아타푸에르카(Atapuerca)는 전혀 20세기 최고의 고고학적 유적이 발견된 곳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작고 볼품없는 마을이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증거로 볼 때 언덕의 복잡한 동굴들은 약 100만 년 전부터 다양한 현생 인류의 주거지로 사용되었음이 확실하다. 약 80만 년 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인류의 유골 잔해가 발견된 그란돌리나와 시마 데 로스후에소스 유적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서유럽으로 이주한 초기 현생 인류의 신체적 특성과 풍습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1977년에 이 새로운 종족을 '호모 안테세소르(Homo Antecessor)'라는 신종 인류로 명명하였는데 이는 라틴어로 '탐험가'라는 뜻이다. 호모 안테세소르는 네안데르탈인과 더불어 현생인류의 마지막 공동 조상으로 추정된다. 근처에 있는 시마 데 로스후에소스는 '뼈 구덩이'라는 뜻인데 수천 명에 달하는 유골이 발견되어 세계에서 연구 대상이 가장 풍부한 고고학적 유적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아타푸에르카 고고 유적(Archaeological Site of Atapuerca)은 스페인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2000년에 등재되었다.
아타푸에르카 고고 유적(Archaeological Site of Atapuerca) 표시
아타푸에르카(Atapuerca) 마을 주변의 여러 가지설명판
유적지를 안내하는 표지를 지나 약간의 언덕을 따라 올라가니 아타푸에르카(Atapuerca) 마을이 나온다. 마을의 카페에서 시간이 제법 지난 아침이지만 커피와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아타푸에르카 마을 출구에서 왼쪽으로 나있는 오르막길은 숲길로 이어지는데 철조망과 평행하게 까미노가 이어져 있다. 철조망 안에는 여러 종류의 목장이 보인다. 아마 목장과 까미노 길을 구별하기 위해서 철조망을 둘러친 것 같다. 떡갈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완만한 언덕을 올라 정상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활한 평원이 내려다보인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부르고스 대성당의 높다란 탑을 바라보며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높다란 십자가상을 지나면 비얄발에 도착한다. 조그만 마을 비얄발과 다음 마을인 카르데뉴엘라 리오 피코는 거의 붙어있다. 2km 정도 떨어져있지 않은 조그마한 마을 카르데뉴엘라 리오 피코와 오르바네하 리오피코를 지나간다.
카르데뉴엘라 리오피코(Cardeñuela Riopico)는 부르고스 지방의 피코강 계곡에 있는 소규모 마을로 아타푸에르카 산의 남쪽에 위치하는 해발고도가 933m에 이르는 산간마을로 카르데뉴엘라 리오피코 마을과 비얄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살던 곳으로 석기와 동굴 벽화가 발견됐다. 오르바네하 리오피코(Orbaneja Riopico)는 부르고스주에 있는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이 지나는 피코 강변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이다.
철조망 안에 보이는 목장
언덕 정상부의 십자가
비얄발 표지
카르델뉴엘라 리오피코 안내도
길가의 푸드 트럭
카르델뉴엘라 리오피코 마을
카르델뉴엘라 리오피코 마을 안내도
지나는 길에 보는 고목
오르바네하 리오 피코의 출구에서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따라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향하면 고속도로와 평행하게 지나는 비야프리아를 지나는 까미노 길을 만나게 된다.
비야프리야를 지나는 까미노는 약 10km에 걸쳐 공장지대의 어수선함과 고속도로가 주는 소음이 기다리고 있다. 원래의 루트보다는 약 1km가 짧지만 까미노가 주는 기쁨을 누리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대도시 부르고스의 입구에 도착한 순례자는 대성당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반대편까지 신시가지의 중심부를 통과하여야 하며 거리는 약 4km가 넘는다.
부르고스(스페인어: Burgos)는 스페인 중북부의 도시로 카스티야 레온 지방 부르고스 주의 주도로 산티아고 순례길 루트 중에 있는 주요 도시 중 하나이다. 고대부터 켈트족의 취락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9세기 말 아스투리아스 왕국에 의해 요새 도시가 건설되었다. 해발 850m 정도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1035년부터 1560년까지 ‘카스티야 왕국의 머리'라고 불렸던(Cabeza de Castilla) 중심지 중 하나인 유서 깊은 도시로 중세시대에 지은 교회와 성당, 수도원 등 역사 유적이 즐비하다. 11세기경 무어인을 상대로 활약한 전설적 영웅 시드 캄페아도르(엘시드)의 출생·활약지로서 스페인 사람들이 자랑으로 삼고 있다.
스페인 내전 당시 국민파의 수도였으며,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스페인 군사 정부의 임시 수도였다. 엘 시드의 탄생지로 유명하고, 부르고스 대성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그 외에 인류 진화 박물관이 있다. 부르고스를 대표하는 산타 마리아 대성당과 같은 아름다운 성당 건축물과 오래된 거리는 순례자들에게 중세의 장엄함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현지 특산물로 모르씨야(morcilla)라 하는 순대는 생긴 거나 맛이 한국 순대와 거의 똑같아서 한국의 여행자들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다. 순댓국도 있으니 메뉴나 식당 점원에게 morcilla con caldo(모르씨야 꼰 깔도, 국물을 넣은 순대)라 물으면 된다.
부르고스 시내로 들어가면 신시가지가 나온다. 알베르게가 집중되어 있는 곳은 구시가지인 대성당 주변이다. 도시가 아주 크지만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거리에 붙어있는 까미노 표시만 잘 보고 가면 시내를 벗어나 대성당 앞으로 인도한다. 도시의 아름다운 모습을 즐기며 신시가지를 걸어가면 여러 동상들을 본다. 부르고스와 연관이 있는 인물들이다.
순례자상
'인간의 진화' 박물관 표시
부르고스 시내
로드리드 리아스 백작(엘 시드) 상
도나 히메냐 - 엘 시드의 아내상
신시가지 시내를 지나 대성당 가까이에 가니 공원이 있다. 공원에 앉아 휴식을 좀 하고 대성당으로 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대성당에 가면 구경을 하느라 쉬지를 못할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대성당의 탑
대성당 주변의 공원
카를로스 3세 상
부르고스의 구 시가지에는 흥미로운 유적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대성당을 중심으로 수많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고 그 광장마다 부르고스의 많은 유명한 건축물들이 있다. 그 중에서 대성당 조금 위의 산 후안 단지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산 후안 문, 15세기 건축물인 산 후안 수도원, 부르고스의 수호성인이 산 레스메스의 무덤이 있는 산 레스메스 성당 그리고 15세기에 만들어진 산 후안 병원이 모여 있는 구역이다. 순례자 사이에서 많이 알려져 있는 산 후안 단지의 문은 오래된 성벽을 따라서 줄지어 있다. 그 외에도 16세기에 까를로스 5세를 기려 만들어진 산타 마리아 아치, 돌과 벽돌이 조화를 이룬 건축물로 무데하르 양식의 영향이 두드러진 산 에스테반 문, 부르고스를 떠날 때 만나게 되는 두 개의 탑인 산 마르틴의 문 등등이 있다.
수많은 광장 중에서 .이제 대성당이 있는 산타 마리아 광장으로 들어선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대성당을 구경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외양만 볼 것이 아니라 꼭 내부도 둘러보아야 한다. 성당을 처음 본 느낌은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외양만 보아도 너무 화려한 모양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사실 이 주변만 둘러보려고 해도 하루 이상을 부르고스에 머물러야 하는데 이 길을 걷는 나그네는 그럴 여유가 없다. 그래서 대성당을 중심으로 구경을 한다.
부르고스 대성당(Burgos Cathedral)이라고 흔히 말하는 산타 마리아 대성당 (Catedral de Santa Maria)은 스페인에서 성당 건물 하나가 1984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역사성, 예술성이 높은 건물이다. 레온 대성당과 카스티야를 대표하는 고딕 대성당으로서 경쟁하는 사이로 프랑스의 고딕 양식이 스페인에 융합된 훌륭한 예를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이 성당은 이름에서 보듯이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기 위하여 건축된 것으로, 1221년 마우리시오(Mauricio) 주교가 주도하여 공사를 시작하였다. 1293년 가장 중요한 첫 단계 공사가 완성된 후 중단되었다가 15세기 중반에 재개되어 1567년에 완공되었다. 뛰어난 건축 구조와 성화(聖畵), 성가대석, 제단 장식벽,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예술 작품과 독특한 소장품 등 고딕 예술의 역사가 집약된 건축물로서 이후의 건축 및 조형 예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성당의 건축물에 대한 설명과 내부의 여러 성화나 예술품, 구조 등을 설명하기에는 우리가 가진 지식이 너무 적다. 그래서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으니 백과사전을 참조하는 것이 좋다.
이 성당은 11세기 레콩키스타(Reconquista;이슬람교도에게 점령당한 이베리아 반도 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기독교도의 국토회복운동)의 부르고스 출신의 영웅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Rodrigo Díaz de Vivar)의 묘지로 유명하다. '엘시드(El Cid])'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그의 유해는 1919년 아내인 도냐 히메나(Doña Jimena)의 유해와 함께 성당 중앙, 플라테레스크(Plateresque) 양식의 금속 세공으로 장식한 돔 아래에 안치되었다.
대성당 외부의 여러 아름다운 모습
대성당 외부를 이곳저곳 다니면서 구경을 하고 내부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구입하려니 순례자는 50%를 할인을 해 준다. 배낭에 매여 있는 조가비를 보고는 인정을 한다. 함께 간 일행은 바깥에서 나를 기다리고 혼자서 내부에 들어가니 장엄함과 황홀함에 눈을 둘 데가 없다. 대성당 내부만 돌아보려고 해도 한나절은 걸릴 것 같은 느낌이라 후일을 기약하고 대략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대성당의 내부
이 길을 걸은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이 레온이나 산티아고의 성당보다 이 부르고스의 성당이 더 아름답고 하는 이유를 조금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을 압도하는 여러 예술품을 보니 이것을 보지 못했다면 너무나 아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을 나와 광장을 지나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길에 산타 마리아 아치를 통과한다. 산타 마리아 아치(Arco de Santa Maria)는 황제 까를로스 5세를 기리며 16세기에 건설되었다. 성벽을 통해 부르고스로 들어가는 여러 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입구로, 현재는 부르고스 주의 수도인 이 도시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으로 1943년 스페인 문화 자산으로 지정되었다.
산타 마리아 아치(Arco de Santa Maria)
부르고스를 흐르는 강
대성당을 구경하고 알베르게를 찾아가 일행들과 오늘 저녁은 부르고스에 있는 한식당에 가기로 약속하고 잠시 쉬다가 식당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추어 식당으로 가니 한국 사람들이 많이 줄을 서고 있다. 소풍2라는 이름을 가진 한식당은 한국인이 운영하면서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이나 소주, 그리고 여러 한국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앞에서 말한 우리 일행 4명은 한 테이블에 앉아 비빔밥을 시키고 오랜만에 한국의 정취를 느껴 보려고 소주를 청하여 마셨다. 스페인에서는 주류 가운데는 와인이 가장 싸고 그리고 맥주도 싸기에 여태까지 주로 이 술을 마셨는데 오늘은 이곳에서는 아주 비싼 한국의 소주를 마신다.
소풍2 한식당
슈퍼 마켓 풍경
광장에 있는 병사 상
저녁을 먹고 다시 대성당으로 가서. 대성당 뒤에 있는 부르고스를 일망무제로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갔다. 전망대에서 보는 부르고스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대성당에 집착하여 대성당 주변을 보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것과 같았다. 전망대에서 보는 부르고스는 나무가 아니라 숲이었다. 넓게 펼쳐진 시내에는 여러 유적지의 건물들이 보이고 해가 지기 직전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다리 밖에서 보는 대성당
산 에스테반 성당
전망대에서 보는 해질 무렵의 부르고스
전망대에서 부르고스의 경치를 즐기다가 카페에 앉아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해가 지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니 부르고스 대성당에 조명이 비치어 또 다른 경치를 자아낸다. 대성당의 밤경치가 좋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였는데 의도하지 않게 대성당에 조명이 비치는 광경을 보게 되는 행운을 즐겼다.
조명을 밝힌 부르고스 대성당의 야경
밤의 부르고스 거리
전망대에서 내려와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이번 까미노 길에서 가장 늦은 시간이었다. 보통 저녁 9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 오늘은 벌써 밤 11시가 되었다. 모두들 시간이 늦어 빨리 잠자리에 들고 내일을 기약한다.
'鶴이 날아 갔던 곳들 > 발따라 길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5(05.31,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 카스트로헤리스) (7) | 2024.07.24 |
---|---|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4(05.30, 부르고스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 (5) | 2024.07.23 |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2(05.28, 벨로라도 - 아헤스) (0) | 2024.07.21 |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1(05.27,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 벨로라도) (0) | 2024.07.19 |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0(05.26, 나헤라 -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 (1) | 2024.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