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가지산 석남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가지산 석남사는 조용하다.

 

 석남사는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곳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이다.

 

 석남사(石南寺)는 가지산(迦智山) 남쪽에 있다하여 석남사(石南寺)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200여년 전 신라 헌덕왕 16년(824년) 도의국사의 창건이래 여러 차례 중건 중수를 거듭하다가 1957년 비구니(比丘尼) 인홍스님께서 주지로 부임하신 이래 각 당우를 일신하여 현재에 이르렀으며, 건물 동수가 모두 30여동이며, 대한 불교조계종 산하 80여개의 선원 중 문경 봉암사와 더불어 종립특별선원(宗立特別禪院)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남 알프스의 가지산 자락에 깊이 자리잡은 절로 절 자체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통로로 더 많이 이용되고 있다.

 

 조그마한 절로 아담하게 가꾸어져 산문에서 절로 올라가면서 조용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석남사 전경

 

 

석남사 입구 표지석

 

 

석남사 일주문

 

 

 

 

 

 

일주문에서 올라가는 나무사잇길의 호젓한 모습

 

 

석남사 전경

 

 

  

 

석남사 외부의 모습

 

 

 

아름다운 형상미

 

 

 

대웅전 앞 삼층석가 사리탑

 

 

 

문화재인 수조

 

 

 

대웅전과 종루가 햇살에 빛나고 있다

 

 

 

햇빛을 가득 머금은 석남사 삼층석탑

 

 

 

 

석남사 승탑

 

 

 

 

승탑에서 보는 가지산

 

 

 

승탑에서 보는 석남사

 

 

일주문 뒤의 모습

 

 석남사는 위용을 자랑하는 큰 사찰이 아니다.

 

부산 근교에서 가벼운 나들이 하기에 알맞은 절로 예부터 대학생들이 봄에 모임을 하곤 하던 곳이다.

 또 가지산을 올라 영남 알프스를 산행하는 기점으로도 알려져 있다.

 

 나는 이 석남사에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지금부터 40년도 더 옛날인 대학 1학년 시절 청도 운문사로 갔다.

운문사 뒷산을 오르다 길을 잃고 헤매다 내려 온 곳이 이 석남사이다.

 그 때 늦은 오후에 석남사로 내려와 계곡물로 밥을 지어 먹던 생각이 항상 내 머리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그 옛날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세월이 그만큼 많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한다.

 

 물리적인 시간만 흐른 것이 아니라 나의 인생의 시간도 너무 많이 흘렀다.

20대의 청춘은 어디 가고 어느새........

 

 인생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본다.

비구니들의 수양처 - 청도 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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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즈녁하고 조용히 자신을 응시하는 청도 운문사

 

 청도 운문산 기슭에 자리하는 운문사는 여성 스님들이 수도하는 비구니 사찰이다.  

비구니들이 수행의 삶을 이어가는 운문사는 어느 사찰보다 조용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차분한 사찰이다. 운문사는 소나무로 시작된다.

 운문사의 솔향기 가득한 길은 찾는 사람의 눈높이를 맞추듯 아담한 소나무들이 가지런히 이어진다. 1㎞남짓한 솔바람길의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면 나즈막한 담장의 높이로 가려진 사찰이 나타난다.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고찰로 삼국의 옛이야기를 전한다. 고려시대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장소로도 알려져 있는 곳으로 신라의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한 장소로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이다.

 경내의 모습은 여느 사찰에서 느끼는 웅장함이나 경건한 위엄을 느끼게 하지 않고 펼쳐지는 절 안의 모습은 잔잔한 평온함으로 찾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랜 수령을 자랑하는 처진소나무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으로 소나무의 여왕인 듯 너른 가지를 땅으로 향하며 부처님의 자비를 온 세상의 중생에게 내리듯이 경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원래는 하늘로 주삣주삣 자라야 하는 소나무이지만 제대로 자라지 못한 소나무인 처진소나무지만 이곳의 나무는 아래로 가지를 뻗은 모습이 풍성하고 부드러운 어머니의 품 같다.

 매년 봄이면 열두 말의 막걸리를 부어 기름진 양분을 공급하는 등 귀하게 모셔지는 소나무다.

 

 경내의 만세루는 아무리 쳐다보아도 지루하지 않고 또 다시 쳐다 보게하는 아름다운 건축미가 빛난다. 잔잔하면서도 무언지 모르게 우리의 눈을 떨어지지 않게 한다.

 넓지 않은 경내에는 불가의 진리를 새겨 놓은 법륜상과 석탑 그리고 여러 유물들이 우리 눈을 끈다.

 

 번잡하지 않고 차분한 경내의 모습은 호화롭게 구며진 관광지의 절보다 더 차분히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다.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곳으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 나를 돌아 보기 좋은 곳이다.

 

 경내를 벗어나 뒷산의 길을 오르면 호젓하게 길을 걸으며 주변 경치를 구경하면서 조용히 묵상해 보는 것도 더 없는 즐거움이다.

 

 따뜻한 봄날 파릇한 초록이 우리 눈을 향기롭게 빛나게 하는 계절에 다시 한번 이 곳에서 나를 묵상해 보아야 하는 곳이다.

 

 조용한 절간의 모습을 보시고 자신의 내면을 응시해 보시기를 바란다.

 

 

운문사의 자랑 - 처진 소나무

 

 

산 운문사 입구

 

 

 

운문사 올라가는 길 : 소나무 길

 

 

진 연리지 모양의 고목

 

 

 

 

운문사 올라가는 길과 옆의 계곡

 

 

 

 

솔바람길

 

 

 

 

운문사 안내도와 담장 밖에서 보는 운문사 전경

 

 

날아갈 듯이 날개를 펼친 호거산 운문사 정문 : 추녀의 조형미와 건축미가 날아 오르는 새의 날개를 연산하게 한다,

 

 

입구에서 보는 경내의 전경

 

 

 

 

 

입구를 들어가서 오른편을 보면 운문사가 자랑하는 처진소나무를 볼 수 있다, 처진 소나무는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매우 희귀하다.  나무의 나이는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답고, 전형적인 처진 소나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며,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만세루 : 건축미가 나의 눈을 황홀하게 하여 여러 면에서 사진을 찍었다. 만세루의 여러 모습을 여러 각도로 보여 드리니 감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세루를 여러 방향에서 본 모습

 

 

 

만세루 내부에 있는 범종과 벽화

 

 

 

 

보물 317호 석조여래좌상을 모신 작압전

 

 

 

동서 삼층석탑

 

 

 

운문사 내부 전경

 

 

 

경내의 우물(감로천)과 부처님의 진리를 깨우쳐 주는 법륜상

 

 

 

응진국사 부도비

 

 

멀리서 보는 만세루

 

 

운문사 뒷산의 여러 산책로 안내도

 

 

 

 

 

 

 

 

 

 

 

 

 

운문사 뒷편의 산으로 올라가는 길 주변 풍경

 

 

 

 

운문사 담벽 바깥에서 보는 운문사 전경

 

 

 운문사는 일반적인 사찰과는 달리 담벽으로 둘러 쌓여 있다.

우리나라의 절 구조로는 조금 특이한 구조다.

비구니들이 거주하는 곳이라 그런 구조를 했는지는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절은 너무나 고즈녁하고 은은한 정취를 풍기는 사찰이다.

조용한 가운데 자신을 명상하고 자신의 내면을 응시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사찰을 올라가는 길을 조용히 걷노라면 여러 가지 상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게 된다.

흐르는 물소리와 흘러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 지나간 세월이 느껴진다.

 

 조용히 자신을 반추해 보고 싶은 사람은 운문사 입구부터 솔바람 길을 걸으며 자신을 돌이켜 보고, 운문사 뒷편 산위를 향해 가면서 자신의 앞날을 비추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 내면을 되돌아 보기 위해서 운문사 길을 걸어 보기로 하자.

허균과 허난설헌 생가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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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운의 문인이었던 허균과 난설헌을 가슴에 새기자.

 

 강릉 경포호 부근에 ‘허균·허난설헌 생가터’가 있고 그 맞은편에는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허난설헌은 1563년 초당 허엽의 삼남 삼녀 중 셋째 딸로 이름은 허초희(許楚姬)이다. 난초(蘭)의 청순함과 눈(雪)의 깨끗한 이미지를 따서 ‘난설헌’이라 호를 지은 것이다. 허난설헌은 주옥같은 시 213수를 남겼다. 그리고 1589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이승을 떠났다.

 남동생 허균이 집안에 흩어져 있던 허난설헌의 시를 모으고, 자신이 암기하고 있던 것을 모아서 ‘난설헌집’ 초고를 만들고, 1608년에 ‘난설헌집’을 간행하였다.

 

 허균(許筠, 1569~1618)은 당대 명가의 후예로, 자유분방한 삶과 파격적인 학문을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굴곡있는 삶을 살았던 정치인이자, 자기 꿈의 실현을 바라던 호민을 그리워하던 사상가였다. 허균은 분명 시대의 이단아였다. 그의 사상이 잘 나타난 글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로 알려져 있는 <홍길동전>이 있다. 그 외에도 그의 여러 글에서 그의 생각과 삶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허균과 난설헌은 분명 시대를 부합하는 삶을 살지는 못했다. 그들의 생애에는 많은 어려움과 질곡이 있었지만 먼 뒷날인 오늘날에는 그들의 삶은 더 조명을 받고 있다.

 

 시대를 앞서가며 세상을 자신의 뜻에 맞추어 살아가려 했던 그들의 사상을 머리에 새기며 그들의 생가와 남긴 자취를 엿보자.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전경

 

 

 

허난설헌 유적지를 가리키는 이정표(경포대 주변에 있다)

 

 

허난설헌유적지의 안내도

 

 

허난설헌 생가의 입구

 

 

 

허난설헌 생가의 전면

 

 

 

난설헌 생가에 있는 매화나무

 

 

 

난설헌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건물과 난설헌 영정

 

 

난설헌 생가의 조망

 

 

 

허씨 집안 5 문장가의 시비 : 허씨 5문장가 (, , , 허난설헌, 허균)

 

 

허난설헌 조상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입구

 

 

 

허균과 난설헌의 작품들 : 내부에 여러 글이 있으나 소탈하다. 

 

 

 

기념관의 전경

 

* 여기서부터는 허난설헌의 높은 기품을 기려 강릉의 다도회에서 기념관앞에 열어 놓은 찻집을 소개한다.

 장사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잔의 차를 음미하면서 허난설헌의 높은 기품을 생각해 보기 위해 열어 놓은 곳이다.차를 얼마를 마시더라도 단돈 천원(1,000원)만 내면 된다. 천원에 차뿐만 아니라 약간의 유과와 떡도 준다. 기념관을 둘러 본 후에 기념관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리며 여유롭게 차를 즐기자.

 

 

 

 

찻집의 전경

 

 

맑고 향기로운 녹차와 유과

 

 

 

 

찻집 내부의 모습

 

 

 

 

 

 

찻집의 여러 모습

 

 

 

 

기념관 정문

 

 

 

 

기념공원 표지석과 그 앞에서 보는 기념관 전경

 

 

 강릉에는 많은 우리 조상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신사임당과 율곡을 강조하다 보니 다른 분들은 덜 알려져 있다.

그 중 허균과 허난설헌은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쳐 보지 못한 비운의 천재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난설헌은 너무 일직 일생을 마쳤기에 그의 일생이 제대로 알려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글재주는 오늘에도 남아 우리에게 전하여 진다.

 

 또 허균은 그녀의 동생으로 광해와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로 세상을 올바르게 경영하고자 했으나 시대의 저항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접어야 했던 인물이다.그으ㅢ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당시의 조선사회가 어떻게 변했고, 우리 사회도 어떻게 변했을까? 역사에 가정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강릉에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은 꼭 허균과 난설헌을 생각해 보며 그들의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 보시기 바란다.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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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뜻하는 대로 달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경포대

 

 경포는 강릉 땅에 있는 석호의 호수이다.

 이 호수를 조망하는 언덕 위에 경포대로 이름지어 관동제일루로 불리는 정자가 있어 옛부터 시인 묵객들이 그 아름다움을 즐기며 많은 글들응 남겼다.

그 중에서도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강릉대도호 풍속이 좋을시고, 절효정문(節孝旌門)이 골골이 버티고 있으니, 비옥가봉(比屋可封)이 이제도 있다”라고 노래하였고,택리지』에는 "경포대는 작은 산기슭 하나가 동쪽을 향해 우뚝한데, 대(臺)는 그 산 위에 있다. 앞에는 호수가 있는데 주위가 20리나 되고, 물 깊이는 사람의 배꼽에 닿을 정도여서 작은 배만 다닐 수 있다. 동편에 강문교(江門橋)가 있고, 다리 너머에는 흰 모랫둑이 겹겹으로 막혀 있다. 한편 호수는 바다와 통하고, 모랫둑 너머에는 푸른 바다가 하늘에 잇닿는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은 호수 주위를 관광지로 꾸며서 많은 관광객이 거닐고 있다.

 

 거울처럼 맑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경포호에는 옛부터 시인묵객들이 달맞이를 하며 호수에 비치는 달을 즐기며 한잔의 술에 취하여 자연을 즐겼다고 한다.

 

 경포대에는 옛부터 달이 네 개가 뜬다는 말이 있다. 하늘에 뜨는 달이 하나요, 바다에 하나, 호수에 하나 그리고 술잔에도 똑같은 달이 뜬다는 말이다. 요즘은 여기에 하나가 덧붙여진다고 말한다. 하늘, 바다, 호수, 술잔 그리고 상대방의 눈동자에 또 하나의 달이 뜬다는 말이 있다. 또 여기에 보태어 당신을 바라보는 나의 눈에도 뜨고 나의 가슴에도 당신의 가슴에도 뜬다고 하며 각자 자기가 바라는 대로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달을 보고 즐길 수 있다.

 

 경포 호수의 경관은 경포대에서 바라보는 원경도 멋지지만 경포를 한바퀴 발걸음도 가볍게 돌아보면서 즐기는 것이 좋다. 시원한 호수의 바람을 쏘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면서 즐기자.

 

 경포대의 아름다운 모습과 경포대에서 바라보는 호수와 경포 호수 주변의 모습을 감상해 보시기를......

 

 

경포대 전경

 

 

 

 

 

경포대의 설명과 표지석

 

 

 

 

경포대에서 보는 경포 호수

 

 

 

경포대 현판과 제일강산이라는 현판

 

 

숙종의 어제시

 

 

 

 

경포대 주변의 고목과 내부의 모습

 

 

 

경포대 주변 도로

 

 

 

 

 

 

 

 

 

 

경포대와 경포의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한 선인들의 글귀를 새겨 놓은 시비들

 

 

 

경포 일주도로

 

 

 

 

사공의 노래(홍난파 곡, 함효영 시) 가사비

 

 

 

노래비의 전경과 아내의 모습

 

 

경포대 주위를 도는 길이름 : 해파랑길

 

 

경포대 주변의 시비 및 조각 및 홍길동 캐릭터 배치도

 

 

 

 

경포 호수 주변에 펼쳐져 있는 조각품들

 

 

 

경포 주변 길과 경포호수

 

 

 

구절초

 

 

 

 

조각품들

 

 

 

 

 

가시연꽃 발원지 표지와 연못

 

 

 

 

여러 시비와 조각

 

 

 

 

저 멀리 보이는 경포대와 경포 호수 전경

 

 

 

 

 

 

 

경포 호수를 일주 하는 중에 물고기떼가  물결을 일으키며 유영하고 있었다.

 

 

 

 

호수 주변의 노래비와 조각 - 이외에도 많은 조각들이 있었으나 이만큼만.....

 

 

 

 경포호수 주벼변에는 많은 조형물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하여 준다.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자연을 가꾸는 사람들의 노력도 보이는 곳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경포 호수를 한바퀴 걸어보라.

시원하게 부는 바람은 우리의 머리를 가슴을 눈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청량하게 해 준다.

 이 길을 걸으면서 우리 선조들이 즐기던 자연을 묵상할 수도 있고 내가 보는 자연을 즐기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도 있다. 기암괴석이 뛰어난 산이 아니라도 흐르는 물소리에 우리를 씻어 보내는 계곡이 아니라도 조용하게 바람이 불면 바람에 따라 물결이 울렁이는 호수에서도 우리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경포 호수에서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2013 부산 광복로 크리스마스 트리 축제 - 빛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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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광복로가 빛으로 태어났다.

 

 부산의 원도심인 남포동, 광복동(일명 광복로)가 새로운 빛의 축제로 거듭났다.

매년 12월이 되면 부산의 도심은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빛이 우리를 동화의 세계로 데리고 간다.

 

 어릴 때 크리스마스가 되면 트리의 불빛을 보며 꿈을 꾸었던 우리 가슴에 새로운 희망이, 새로운 즐거움이  물밀듯이 밀려 온다.

 처음 이 축제가 시작되었을 때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던 광복로가 이제는 지나간 세월을 추억하는 노인 부부들이 서로 손을 잡고 오붓하게 거리를 거닐고 있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의 모습도 보이고,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젊은이들도보인다. 물론 청춘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청춘 남녀들이 가장 많은 것은 너무 당연하다.

 

 해가 지고 긴 광복로의 거리에 등이 밝혀지면 모두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를 걷는다. 모두들 이 때만은 모든 삶의 시련도 어려움도 잠시 잊고 빛의 향연에 기꺼이 참여한다.

 

 거리의 악사들도, 거리의 화가들도 많이 나와 자신의 재능을 뽐내기도 하고 가벼운 돈벌이도 한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서로 서로 사진을 찍으며 즐겁게 웃는다.

 

 광복로의 아름다운 트리를 보시고 광복로를 한번 나가보시기를 바란다. 여러 고장에서 등축제나 빛의 축제, 트리 축제를 하고 있으나 대도시의 중심지에서 이렇게 장대하게 거행하는 곳은 드물다. 특히 주말에는 자동차의 통행을 전면 통제하여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거리를 내어주기 때문에 도로를 꽉 매운 인파들 사이의 걷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다소 번잡함이 반갑지 않은 사람들은 평일에 가시면 조금은 호젓하게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온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광복로 축제에서 트리를 구경하고는 남포동 피프 존에서 파는 부산의 명물 '씨앗 호떡'도 하나 사서 먹어 보는 것도 소박한 재미일 것이다.

 

 사족은 그만 두고 광복로 트리 축제를 보시기를......

 

 별다른 설명은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광복로(구 미화당백화점앞) 트리

 

 

 

 

광복로 거리의 모습

 

 

거리에는 많은 조각이 있다. 구경의 재미가 솔솔하다.

 

 

 

구미화당 백화점 앞의 트리

 

 

 

 

거리의 인파

 

 

 

거리의 여러 모습

 

 

 

 

 

 

 

 

 

 

 

 

 

 

 

 

 

 

 

 

 

 

다양한 트리

 

 

 

형형색색 빛을 비추는 트리 아래 거리의 화가들

 

 

 

 

 

 

 

 

 

 

 

 

 

광복동 남포동을 밝히는 여러 모슴의 트리들

 

 

 

 

 

남포동 거리에 이어 있는 부산의 부평동 족발 거리

 

 

 

아련한 추억의 부산 명물 : 18번 완당

 

 

 

 

 

 

새로운 부산 명물 "씨앗 호떡" 거리

 

 

 부산의 도심이 연말을 맞아반짝거리고 있다.

아름다운 불빛 아래의 선남선녀들이 해맑게 웃으며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재잘거리며 친구의 손을 잡고 장난치며 걷고 있는 소녀들의 모습. 서로서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담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 중년을 넘어선 초로의 부부가 곱게 손을 잡고 담소를 나누며 걷고 있는 광경 ....

 

 이 모두 우리의 삶을 기쁘게 한다.

 

 모두들 광복로 트리아래서 올해의 어려움을 모두 잊고 다가오는 새로운 2014년을 새롭게 맞이해 보자. 

비운의 신동 - 매월당 김시습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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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 때의 어린 아이 김시습을 아시는가요?

 

 김시습은 역사의 이야기로는 신동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가진 재능과 능력이 얼마나 뛰어 났는지를 여기에서 말하려고 하지 않겠다. 세종은 어린 김시습의 재능을 알아차리고 뒷날을 기다리며 학문을 수양하라고 하였으나, 시대가 매월당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는 세조가 왕위를 빼앗자 초야에 은거하여 광인과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김시습의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우리는 매월당(梅月堂)이라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 작은 키에 뚱뚱한 편이었고 성격이 괴팍하고 날카로워 세상 사람들로부터 광인처럼 여겨지기도 하였으나 배운 바를 실천으로 옮긴 지성인이었다.  율곡 이이는 백세의 스승이라고 칭찬하기도 하였다.

 

 그의 여러 가지 행적은 말하지 말자.

 단지 그가 우리 문학에서 최초의 소설인 '금오신화'를 썻다는 사실만 기억하자.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우한 신동 매월당의 자취를 찾아 보자.

그의 흔적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뜻밖에 강릉에서 매월당 기념관을 보고 감회에 젖어 그의 흔적을 엿보았다.

 

 

매월당 김시습 기념관 전경

 

 

 

매월당기념관 표지석과 표지판

 

 

 

몽사노 매월당 기념비

 

 

매월당기념관 전경 : 너무  한적하고 초라하다.

 

 

매월당 유필 시비

 

 

매월당기념관 동판과 초상

 

 

 

 

매월당기념관의 전시 유물

 

 

 강릉을 가시는 분들은 꼭 매월당 기념관을 한번 가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자녀와 함께 가시는 분들은 교육의 장으로도 좋은 곳이니 꼭 둘러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매월당 기념관은 강릉이 자랑하는 '선교장'에서 한 100여 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선교장은 둘러 보면서 매월당 기념관은 보지 않습니다.

 강릉이 자랑하는 신사임당과 율곡의 오죽헌은 대대적인 보수와 정비를 통해 잘 알려져 있으나 매월당의 기념관은 전혀 소개가 되어 있지 않아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나도 선교장에 둘렀다가 우연히 매월당 기념관 표지를 보고 찾아 갔습니다. 선교장을 구경하는 많은 사람들 중 아무도 이 기념관은 찾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매월당이 높은 벼슬을 하였더라면 아마 이렇지 않았을 것을 하고 생각하니 참 무상한 마음 무어라 하지요????

 

 강릉을 가시는 분들은 곡 매월당 기념관을 구경하시고 그의 생애를 다시 생각해 보시기를 빕니다.

 

강릉 선교장 -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모습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선교장은 옛 풍취가 살아 있는 곳이다.

 

 강릉 땅은 영동의 핵심으로 많은 선비와 문사들이 태어나고 이름을 떨친 고장이다.

 

 선교장은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오랫 동안 보존된 집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여러 곳에 옛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단일 건물로 후손들이 거주하는 곳으로는 대표적인 곳이다.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에 위치하며,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강릉 지방의 명문인 이내번(李乃蕃)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하여 대대로 후손들이 거처하는 집으로 중요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내번(李乃蕃)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하여 대대로 후손들이 거처하는 집인데, 열화당(悅話堂)·안채·동별당(東別堂)·활래정(活來亭) 등 모두 4채가 있다. 가장 오래된 안채 주옥(住屋)은 당초에 주거를 정한 때의 건물이라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넓은 터에 여러 채의 건물이 반듯하게 자리잡고 잘 보존된 곳으로 우리 선조들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물론 이 땅의 주인인 일반 백성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지배계층인 양반 사대부들이 자신의 위용을 자랑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 다소 아쉬운 맛을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선교장의 모습은 우리에게 아늑한 정감을 주어 누구나 한번쯤은 돌아 볼만 하다. 입장료를 받지 않으면 더 좋을 것이다.

 

 

선교장 왼쪽 언덕에서 보는 전경

 

 

선교장 표지판

 

 

 

선교장 입구에서 바라보는 모습

 

 

 

 

 

활래정과 연못

 

* 여기서부터는 활래당 근처에서 선교장을 한바퀴 도는 산책로를 따라 가면서 보는 선교장의 여러 모습과 주변을 보여 드린다. 꼭 선교장을 가시는 분들은 선교장 주변 산책로를 돌아 보시기를 권한다. 그저 건물만 보는 것은 평면적이다. 주위 산책로를 호젓하게 걸으면서 입체적으로 선교장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리라. 

 

 

산책로 입구

 

 

 

 

 

 

 

산책로에서 보는 선교장의 여러 모습

 

 

 

산책로에서 만나는 송림

 

 

 

 

산책로 끝자락에서 보는 선교장의 전경

 

 

 

구기자 열매

 

 

 

자미제의 지붕

 

* 여기서부터는 선교장의 내부로 들어가 건물 하나하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즐겼다. 여러 채의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고 다양한 구조로 되어 있어 건축에 별다른 지식이 없는 나에게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자미제의 전경

 

 

 

선교장 내부로 들어 가는 문 : 선교유거란 현판이 멋들어진 글씨로 뽐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건물(사랑채) : 열화당

 

 

 

중사랑

 

 

 

 

녹야원 건물과 그 앞에 서 있는 멋들어진 나무

 

 

 

 

 

 

동별당

 

 

 

 

 

 

 

 

 

안채의 부엌과 장독대 전경

 

 

 

외별당

 

 

 

 

선교장의 전경

 

 

 선교장은 효령대군의 자손인 이내번의 후손들이 대대로 가꾸어 온 집이다.

 

 아주 오래된 고택은 아니지만 옛집의 정취가 잘 드러나는 곳이다.

양반 사대부가의 조용하면서 화려하지 않고 장중한 멋을 풍기는 곳이다.

 

 강원도는 일반적으로 산악지대라 인식하지만 강릉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은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많은 문인들이 태어나고 자라며 학문을 딱은 곳이다.

 

 동해 바다를 구경하러 가시는 분들은 바다도  좋지만 강릉 땅을 들러 우리 선인들의 자취를 느끼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강릉 오죽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강릉 땅에는 검은 대나무가 가득 자라는 오죽헌이 있다.

 

 오죽의 학명은 Phyllostachys nigra MUNRO.이다. 중국 원산의 왕대속의 일종이나 전래경로와 연대는 미상이다. 줄기의 색이 검기 때문에 오죽이라 불린다.

높이 2∼10m에 달하고 나무껍질이 검은색이며, 잎은 장피침형으로 가지 끝에 5개씩 나며, 길이 6∼10㎝, 너비 10∼15㎜이다. 꽃은 6∼7월에 피고 과실은 영과(潁果: 벼의 열매와 같이 열매의 껍질이 건조하고 씨에 붙어있는 열매)로 가을에 결실한다. 기타 일반적 특색은 대나무와 같다.

이 식물은 품위가 우아하여 관상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이이(李珥)가 태어난 강릉의 ‘오죽헌(烏竹軒)’도 오죽으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오죽이 많이 심어져 있는데 독특한 아름다운 인상을 준다.

이 나무는 토양의 비옥도, 수분을 많이 요구하나 내한성이 다소 있으므로 우리나라 중부 일부에서도 월동이 가능하다. 오죽은 방풍림 뿐 아니라 정원이나 공원에도 알맞은 수종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죽 [烏竹]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율곡 이이선생이 탄생한 곳으로 더 유명한 '오죽헌'이라는 지명도 오죽이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실 식물로는 아주중요하다든지 천연기념물이라든지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대나무의 한 종류이다.

 오죽헌은 율곡 이이선생도 유명하지만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으로 더 유명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어머니의 사표요. 여성의 뛰어남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추앙받으며, 지극한 효심이 가득한 여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 감추어진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 결코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아 조금 안스러운 생각도 든다.

 강릉이 아닌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율곡과 신사임당의 얼이 서린 오죽헌의 모습을 보자

 

 

옛 오죽헌

 

 

오죽헌 가는 표지 : 강릉에는 많은 유적지가 가까이 있어 허난설헌 생가 표지도 보인다. 

 

 

입구 - 현대식으로 꾸며 놓았다. 

 

  

 

 

 

 

 

 

옛 오죽헌 건물로 들어가기전에 꾸며 놓은 정원  

 

 

 

 

오죽과 소나무로 둘러진 오죽헌 둘레길

 

 

오죽헌 안내도 

 

 

 

자경문 : 자기 스스로를 경계한다는 뜻 

 

 

 

오죽헌 전경 

 

 

 

 

보물 제165호 표지석과 오죽헌

 

 

단아한 모습의 옛 오죽헌 

 

 

 

 

 

배롱나무 : 수령이 600년이 넘었다는 설명이 있다. 꽃이 핀 것을 못보아 아쉽다.

 

 

 

 

강릉 오죽헌 율곡매와 설명 표지판 

 

 

 

 

오죽헌 현판과 신사임당 초상화

 

 

 

 

율곡송의 모습과 설명

 

 

 

오죽

 

 

 

오죽헌과 율곡의 초상

 

 

 

오죽헌의 처마의 아름다움

 

 

 

 

 

 

 

 

 

 

오죽헌 내의 옛 건물들의 구조와 모습

 

 

 

 

 

어제각의 유래

 

 

 

앞뜰과 박물관 전경

 

 

오죽헌 전경

 

 

강릉이 자랑하는 바우길 표지

 

 강릉은 여러 인물들이 태어나고 그 인물들을 자랑하는 고장이다. 그 중모자가 함게 추앙을 받으며 후세에 이름을 길이 전하는 율곡과 신사임당이 있어 강릉의 자랑스러움이 더 한다고 생각된다.

 오죽헌은 오죽이 자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오죽헌에서 오죽보다 배롱나무와 율곡매, 그리고 율곡송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내가 갔던 계절이 배롱나무와 매화가 피는 계절이 아니라 아쉽게도 그 꽃들을 볼 수 없었으나 언젠가 때를 맞추어 꽃을 구경하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선비의 지조를 잘 나타내는 매화와 굳은 절개를 뜻하는 소나무를 보며 율곡의 선비정신과 신사임당의 모습을 머리속에 생각했다.

 

신사임당이 남긴 시 가운데 하나인 '어머니 그리워'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천 리 먼 고향 산은 만 겹 봉우리로 막혔으니
돌아가고픈 마음 오래도록 꿈속에 있네
한송정에 외로이 둥근 달 뜨고
경포대 앞 한 줄기 바람이로다
모래톱엔 언제나 백로가 모였다 흩어지고
파도 위로 고깃배들 오락가락 떠다닌다
언제나 강릉 땅을 다시 밟아서
색동옷 입고 어머니 곁에서 바느질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