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영금정과 그 주변 - 동명항의 아름다운 해맞이 전망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맑고 깨끗한 동해바다의 소리를 들어보자.

 

 속초 동명항에 가면 해맞이 정자가 있다. 이름하여 '영금정'이라 한다. 거문고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파도를 조율하는 소리

 동명항의 끝자락 영금정을 보러온 사람들은 대개 바다를 마주하는 암반 위 구름다리 끝에 세워진 정자를 찾는다. 실제로 작은 정자 위로 영금정이란 현판까지 있다. 속초의 절경으로 알려진 영금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정자를 향해가는 다리 아래 영금정의 자취가 남아 있다. 바다를 바라보는 커다란 바위산이 그곳이며 산꼭대기 정자를 닮은 바위를 영금정이라 불렀다. 바위산은 날카로운 암벽 사이로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신비한 거문고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한다.
 신선이 선녀를 부르는 듯한 자연의 소리는 일제 강점기 속초항 방파제를 짓는 골재 채취를 위해 폭파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정자는 옛 소리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정자일 뿐이다. 신비한 바위의 흔적들은 오른편 동해를 향하여 길게 뻗은 방파제를 채운다. 신기한 소리는 사라졌지만 파도는 여전하고 동해의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았다. 방파제 사이사이 옛 영금정의 조각들이 추억을 기억하며 아름다움을 불러오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금정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1.15, 마로니에북스)

 

 영금정이라 불리는 정자는 동해 바다를 조망하도록 바다위를 가로 질러 다리를 놓고 정자를 지은 정자다. 이 정자 위에서 맑고 푸른 동해물이 파도를 치면 부르짖는 소리를 듣는 것이 여행객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과거의 영금정은 비록 없어졌다 하여도 지금 남아있는 정자에서 동해의 파도소리는 또 다른 거문고 소리이리라.

 

 영금정 정자 주변 오목한 바위로 둘러 싸여 파도가 치면 바닷물이 그 바위를 타고 넘어와 조그마한 천연 풀장을 만드는 모습이  우리 눈을 즐겁게도 하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등대박물관에 올라 먼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일망무제로 펼쳐진 바다에 가슴을 열고 바다공기를 호흡하는 것도 상쾌함의 극치이다. 또 멀리 설악의 울산바위와 중청봉 대청봉이 함께 우리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등대박물관을 내려와 이름도 아름다운 '낭만가도'를 따라 걸어보시라. 동해 바다의 청량한 공기를 숨쉬면서 우리 몸을 정화시키고, 생선을 말리는 비릿한 내음도 맡으며 영랑호까지 걷는 길도 한가로움을 즐기는 재미이다. 그 길을 걸으며 길가에 늘어선 생선들과 바다를 보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이다.

 

영금정과 그 주변의 풍경을 사진으로라도 즐기시길 바란다.

 

 

 

바다를 가로질러 다리를 놓고 바다위에 지은 영금정

 

 

 

바다위의 영금정과 동산위의 영금정

 

 

동산위의 영금정

 

 

 

 

멀리서 보는 영금정

 

 

 

 

 

 

 

 

영금정 주위에 있는 자연암벽으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바다 - 어린 아이들이 놀기에 그만이다.

 

 

 

조명을 밝힌 영금정의 모습

 

 

 

해가 막 떨어지기 전의 동명항의 모습 : 영금정은 동명항 바로 옆에 있다.

 

 

 

 

 

동명항에서 보는 해지는 설악의 광경 - 대청과 중청을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게 보인다.

 

 

 

 

다음날 아침 밝게 빛나는 햇빛 아래서 같은 장소를 찍었다 : 어제 저녁과 다른 모습

 

 

 

아침의 영금정 정자는 더욱 빛났다. 영금정 정자 설명

 

 

 

 

 

 

 

 

 

영금정에서 아침 햇살이 바다를 반짝이는 광경을 보며 티 하나없이 맑고 푸른 물이 내 가슴을 맑게 해 주었다.

 

 

 

설악 : 푸른 하늘 아래에서 위엄을 뽐내는 대청과 중청이 힌구름 아래에서 선연하게 보이고 있다.

 

 

영금정 전경

 

 

 

등대박물관과 안내도

 

 

 

 

등대박물관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

 

 

 

등대박물관에서 보는 설악과 울산바위

 

 

낭만가도 설명 : 동해안 최북단 고성에서 삼척까지의 동해안 길. 언젠가는 반드시 한번 걸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영금정 설명 표지석

 

 

영금정을 상징하는 거문고 조형

 

 

 

낭만가도를 걸으면서 만나는 생선 말리는 풍경

 

 

 

 

 

 

 

영랑호까지 낭만가도를 걸으면서 만나는 아름다운 동해바다.

 

 

 속초 동명항에는 아름다운 곳이 참으로 많다. 동명항의 항구에서는 생성회를 파는 여러 상점들과 여러 종류의 건어물과 먹을 거리를 파는 곳도 많아 우리 발길을 멈추게 한다. 또 항구를 벗어나 주변을 돌아 보면 동해의 까끗한 물이 우리 가슴을 씻어 주고 우리 마음을 맑게 해 준다. 탁 트인 동해 바다를 보면서 가슴에 쌓인 엉어리들을 풀어 버리고 새로운 생활로 돌아가는 힘을 주기도 하는 곳이다.

 

 영금정의 거문고 소리는 지금 들리지 않지만 동해 바다의 파도소리는 거문고 소리에 못지 않게 우리 귀를 즐겁게 한다. 그리고 맑은 바다는 우리 눈을 씻어 주기도 한다. 일상을 떠나 가벼운 배낭을 메고 동해 바닷길을 걸어 보자. 한걸음 한걸음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에 이웃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보자. 거기에는 우리의 삶이 있고 우리의 생활이 있다.

 

 잠시라도 도시의 복잡함을 벗어나 시원한 바다 바람을 쏘이며 여유를 즐겨보자.

문경새재 - 장원급제의 꿈을 품고 걷던 고갯길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문경새재에는 꿈이 있엇다.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14년(1414년) 개통된 관도 벼슬길로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유명하며 조선시대 옛길을 대표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초점(草岾)’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으로 기록된 길로 조선시대 영남도로에서 충청도(한강유역권)와 경상도(낙동강유역권)를 가르는 백두대간을 넘는 주도로의 역할을 했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관도로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 등 3개의 관문과 원(院)터 등 주요 관방시설과 정자와 주막 터, 성황당과 각종 비석 등이 옛길을 따라 잘 남아 있고, 경상도 선비들의 과거길로서 수많은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 등 역사적, 민속적 가치가 큰 옛길이다.
 또한 문경새재가 위치한 주흘산, 조령산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생 경관과 옛길 주변의 계곡과 폭포, 수림터널 등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경관 가치가 뛰어나며, 문경시의 ‘옛길 걷기 체험“, ”과거길 재현“ 등 옛길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 행사가 매년 개최되고 있어 현대인들이 조선시대 옛길 문화 및 선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훌륭한 옛길 자원이다. (문화재청, 문화재 검색에서 빌려 옴)

 

 문경새재는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여러 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치러 가는 선비들이 죽령이나 이화령 등을 넘지 않고 새재를 넘은 이유는 "문경'이라는 지명 때문이었다고 혹자들은 말한다. '문경'이라는 뜻은 경사스런 소식을 듣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급제를 해야 하는 선비들은 오늘날과 같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고갯길을 택하여 넘을 수 밖에 없엇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 보고 싶은 여행지를 선정한 통계에 의하면 1위로 '문경새재'가 꼽히고 있다. 잘 다듬어진 길과 수려한 풍광, 역사적 설화나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이 남긴 수 많은 글들..... 아마 우리 자녀들의 교육장으로 더할 나위없이 좋은 곳일 것이다. 자녀들을 데리고 가서 스토리 텔링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으로 손색이 없다.

 

 이 새재는 허물어질 위기가 있었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한마디로 지켜졌다고 한다. 그 일화는 다음과 같다.

 대통령의 한 마디가 새재를 지켰다

 70년대 근대화의 물결 속에 국토의 중심을 연결하는 새재 길은 충주로 이어지는 국도의 중심지로 예정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문경 초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였던 박정희 대통령은 우연히 국도 건설 계획을 확인하고 옛 추억의 새재 길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도로 건설을 지시하였다고 전한다. 긴급하게 건설계획은 재검토되었고 이화령을 관통하는 우회도로가 충주와 문경을 잇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경새재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1.15, 마로니에북스)

 

많은 사족을 그만 두고 새재의 모습을 감상해 보자.

 

 

문경새재 주흘관(영남제1관)

 

 

문경새재 도립공원 안내도

 

 

 

한국의 아름다운 길 표지와 선비의 상

 

 

탐방 안내도

 

 

 

 

옛길박물관

 

 

 

새재표지석과 문경새재과거길 표지

 

 

 

 

 

 

문경새재 제1관문(영남제일관, 주흘관)의 여러모습 

 

 

 

문경새재길은 걷는 길이다. 백토를 깔아 놓아 맨발로 걷기에 좋도록 만들어 놓았다. 꼭 맨발로 걸으시기를...

 

 

 

조산설명과 조산(곳곳에 설명이 잘되어 있어 이해가 쉽다.)

 

 

 

지름바위틀

 

 

 

 

새재길을 걷는 주변의 경치

 

 

 

 

 

조령원터의 모습 

 

 

영남대로 옛과거길(곳곳에 옜과거길이 있다. 옛길을 걷는 것도 재미있다)

 

 

 

 

 

과거길 선비들이 하루밤을 쉬어갔던 주막과 그들의 숙박기로 볼 수 있는 글

 

 

 

경상감사 도임 행차를 나타내는 표지

 

 

 

 

 

 

새재 용추정의 맑은 물과 '이정구'의 글

 

 

 

 

 

 

 

 

 

 

 

교귀정의 여러 모습과 '이행의 교귀원'

 

 

 

 

 

뜻밖에 보인 '기도굴' 

 

 

옛 과거길

 

 

 

 

 

물레방아와 수로

 

 

조곡폭포

 

 

 

 

 

제2관문 '조곡관'의 여러 모습

 

 

조곡관에서 보는 주흘산 모습

 

 

 

 

 

 

 

 

문경새재 과거길 - 한시가 있는 옛길

위의 왼쪽에서부터 서포 김만중(새재), 다산 정약용(겨울날 서울 가는 길에 새재를 넘으며), 회재 이언적(새재에서 아우에게), 양곡 소세양(새재), 석천 임억령(새재에서 이별하며 주다), 학봉 김성일(문경을 지나는 길에), 동강 신익전(새재에서 시 두편), ???(새재로 가는 길)

  

 

문경새재 아리랑비

 

 

 

맑고 시원하게 흐르는 물

 

 

 

 

 

낙동강 발원지(문경 초점) : 낙동강 발원지는 세 곳이 있다 한다.

 

 

 

 

 

소원성취탑과 책바위

 

 

 

 

 

 

 

 

 

 

영남제3관(조령관과 주변의 모습)

 

 

 

 

 

 

조령관까지 걸어 가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목이 컬컬할 즈음에 보이는 집. 막걸리와 버섯전이라 하는 지짐이 입맛을 돋운다. 상당히 맛이 있다.

 

 

 

 

 

 

과거에 급제하고 기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금의환향길)

 

 

제1관문에서 보는 주흘산의 모습

 

 

 문경새재는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다녀온 길이다.

요즈음은 예날과 달리 문경시에서 많은 투자를 하여 잘 꾸며 놓은 관광지이다. 특히 자연만을 구경하는 관광상품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으로 이야기를 꾸며 놓았으며 각종 투자를 통해 영화나 TV의 역사드라마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공기와 맑고 곱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문경새재 제1관문부터 제3관문까지 조용히 걸어 보는 것도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는 기쁨일 것이다. 새재길을 걷고 나서 들이키는 한잔의 막걸리는 또 우리 몸의 보야과 같이 생각된다.

 

 시간이 되면 새재길을 걸어 보자.

 

 꼭 맨발로 걸어 보자. 

칠성전망대 - 최전선 북한 땅이 한손에 잡히는 곳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금성천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아들놈이 7사단 칠성부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기에 부대에서 부모들을 초청하여 칠성전망대를 구경시켜 주는 행사가 있어 그야말로 뜻밖의 기회로 칠성전망대를 구경하였다.

 

 칠성전망대! 그 이름도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곳이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으며 분단의 벽을 가장 잘 실감할 수 있는 곳이 DMZ(Demilitarized Zone)에 있는 전망대이다. 

 

 DMZ는 군사 시설이나 인원을 배치해 놓지 않은 지대이다.

한반도 DMZ대한민국과 북한 사이 군사 분계선 주위의 비무장 지대이다.

한국의 휴전협정에 의해서 휴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의 지대가 비무장지대로 결정된 바 있고 이같은 비무장지대에 관한 협정의 이행을 감시하기 위해서 국제감시단이 파견되는것이상례이다. 한국에서는 6.25전쟁 때 UN군과 북한공산군이 휴전을 전제로 한 군사분계선과 이 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 2km씩 너비 4km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할 것을 합의하고 동년 11월 27일 확정, 발표하였으나 30일 이내로 휴전이 성립되지 않아 무효화하고 말았다. 그 후 1953년 7월 27일에 ‘한국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 7월 27일 체결됨으로써 군사분계선이 확정되고 이에 따라 현재의 비무장지대가 설정되었다. 동년 8월의 ‘민간인의 비무장지대 출입에 관한 협의’에 근거하여 비무장지대에 한국주민 거주의 ‘자유의 마을’과 북한주민 거주의 ‘평화의 마을’이 생겼다. (위키 백과에서)

 

 칠성전망대는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에 있는 최전방 고지이다. 육군 보병 7사단(일명 칠성부대)이 주둔한 작계지역으로 38선 훨씬 북쪽에 있으며 한국전쟁 때 7사단이 425고지 전투에서 마지막으로 승리하여 현재의 휴전선을 이렇게 북으로 끌어 올린 역사적인 고지에 자리잡고 있다.

 

 전망대 바로 눈앞(설명하는 병사의 말로는 5미터)에 철책선이 둘러 쳐 있고 우리 병사들이 고생하며 경계를 서고 있는 곳이다. 망원경을 통해 보면 북한군 병사들의 모습까지도 한눈에 보이는 최전선이다. 아니 망원경이 아니라 맨눈으로도 북쪽 땅이 훤히 보이며 북쪽의 철책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분단의 땅!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우리 용사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갔던 곳이다. 그런데 아직도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분단된 땅을 보는 감회는 착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칠성전망대는 고성의 통일전망대와 또 다르다. 고성의 통일전망대는 안보관광용으로 조성되어 관광지가 되어 있지만 이 칠성전망대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현장을 직접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최전방 고지이다 보니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 없는 점이었다. 곳곳에 우리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고 건물이 보이기 때문에 동쪽으로나 서쪽, 남쪽은 카메라를 들이댈 수가 없었고, 오직 포토 존이 설정된 곳만 찍을 수 있고 북쪽의 모습만을 한정적으로 찍을 수 있었다. 많지 않은 사진이지만 화천에서 칠성전망대 GOP까지 가는 도중에 버스에서 보는 아름다운 가을 경치와 칠성전망대의 광경을 보여드린다.

 

 버스 차창을 통해 찍은 사진이라 좀 선명하지가 않다.

 

 

칠성전망대 표지석 

 

 

화천읍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달리니 칠성전망대 표지가 나타났다.

 

 

 

 

 

 

 

 

 

 

가을이 완연하게 들은 전방의 산들

 

 

 

칠성전망대 포토 존에서 찍은 북쪽의 모습 - 북쪽 산은 우리나라 5,60년대의 민둥산이었다.

 

 

전망대 갤러리의 조형물

 

 

칠성전망대 갤러리에 있는 7사단의 자랑스런 멱사

 

 

 

전망대 갤러리에 전시된 우리나라 기관총과 북괴군 소총

 

 

갤러리 안에 여러 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가장 가슴에 와 닿은 비목비의 사진이다.

우리의 젊은 용사들이 이름도 없이 스러진 현장의 비목이다. 역사의 아픔을 다시 생각한다. 어느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어느 누군가의 남편이었을 지도 모르는 이름 모를 용사의 녹슬은 철모는 우리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하였다.

 

 

 

DMZ 디자인 - 멀리 보이는 땅이 북한 땅이다.

 

 

전망대 갤러리 입구의 조형물

 

 

칠성전망대 입구의 표지석

 

         

 

 

1953년 7월 휴전을 앞두고 마지막 치른 425고지전적비(기록에 의하면 1953년 7월 20일부터 휴전이 이루어진 7월 27일까지 전투) -  이 전투로 우리가 휴전선을 이렇게 북쪽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 한다.  만약 이 전투에서 패배하였더라면 휴전선은 약 20KM 남쪽까지 내려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425고지 전투 상황도

 

 

무적상승 칠성부대의 한국전쟁 대의 주요 전투 기록

 

 

DMZ 조형물앞에서 아내와 함께

 

  

 

 

 

북한 땅 - 왼족 아래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금성천이다.(포토 존에서 찍은 풍경이다)

 

 

 칠성전망대는 민간인이 가기에는 아직 쉽지 않다.

 

 화천군과 7사단이 협조를 하여 승인을 받아 민간인도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다고 했으나 너무 번거롭다. 좀더 쉽게 이 현장을 많은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는 없을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우리 병사들이 총을 들고 고생하고 있는 곳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는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칠성전망대를 구경하고 내려오는 버스안에서 우리를 안내했던 부사관이 아마 백암산에 관광용 전망대를 곧 만들 것이라고 화천군이 말했다고 한다. 백암산 전망대가 만들어지면 다시 한번 오리라 생각했다.

 

 화천에서 춘천으로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도중에 춘천 가까이에서 '여기는 38선입니다' 라는 표지석을 보았다. 그 표지석을 보고 다시 칠성부대의 공로를 생각했다. 휴전선을 몇 십KM나 북쪽으로 끌어올려 지키고 있는 육군 7사단 칠성부대 여러분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조금만 더 사진 찍는 장소를 확대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

 

 

 

 

 

설악에서 보는 동해 일출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설악에서 보는 해돋이의 장관은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설악에 오르려고 속초 근처에 있는 콘도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저 멀리 바다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너무나 장관이었다.

여러 곳에서 일출을 구경하기도 햇으나 대부분이 야외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보는 일출이었다.

 그런데 이번 일출은 전혀 예상하지도 않았는데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보는 해돋이였다.

 

 더구나 따뜻한 방안에서 보는 일출이라 더 기분이 좋았다.

 

 해돋이의 장관은 어디에서나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하루의 시작을 바다위에서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한다는 것은 우리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되리라.

 

 뜻하지 않고 보는 일출이 너무 좋아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었다. 너무 멀리서 보는 것이고 또 카메라의 동영상이라 선명하지는 않을 수 있으나 솟아 오르는 아침해의 광경을 보면서 활기찬 삶을 즐기기를 바라며 동해의 일출을 동영상과 계속 찍은 사진으로 보여 드린다.

 

 

 

 

 

 

 

동영상 장면임 - 이틀에 걸쳐 찍은 동영상임(저 멀리 보아는 건물은 속초 시내임)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였다.

 

 

 

 

 

아래에 보이는 건물이 '현대 수 리조트'이다.

 

 

 

 

 

 

 

 

 

 

 

 

 

해돋이를 연속하여 사진으로 찍은 모습(멀리 보이는 건물은 속초 시내임)

 

 

 이틀에 걸쳐 해돋이의 장관을 계속 카메라에 담았다.

계속해서 일출의 장관을 보는 것도 큰 행운이었다.

그때의 장관을 무어라 말할 수 있으랴? 그냥 실내에서 "어, 해 뜬다!"하면서 보았을 뿐이다.

 

송강이 관동별곡에서 해돋이의 장관을 묘사한 글이하든지 '의유당'의 관북유람일기에서의 해돋이의 장관을 실감하는 광경이었다.

 

 

* 참고로 이 사진과 동영상은 속초의 노학동에 있는 '현대 수 리조트'의 객실에서 찍은 것임을 밝혀 둔다.

속초, 아바이마을 갯배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아바이마을은 우리나라 비극의 역사의 현장이다

 

 "이 마을의 행정상 명칭은 청호동(靑湖洞)이고, 아바이마을은 속칭이다. 한국전쟁의1·4후퇴 당시 국군을 따라 남하한 함경도 일대의 피난민들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없게 되자, 휴전선에서 가까운 바닷가 허허벌판에 집을 짓고 집단을 형성하였다. 이후 함경도 출신 가운데서도 특히 늙은 사람들이 많아, 함경도 사투리인 '아바이'를 따서 아바이마을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어업에 종사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 관광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하면서 낚싯배 영업이나 횟집 등 관광산업에 의존하는 주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원래는 배를 타고 건너야만 했으나, 지금은 속초시 조양동(朝陽洞)과 연결되는 도로가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그러나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도로보다는 예전의 교통 수단인 '갯배'를 이용해 중앙동(中央洞) 갯배나루(오구도선장)에서 아바이마을까지 배를 타고 건넌다. 갯배는 30여 명이 탈 수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거룻배로, 한 쪽에서 다른 한 쪽까지 연결된 쇠줄에 고리를 걸고 잡아당겨 건넌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이 마을에서 갯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갯배는 사람이 손으로 끌고 가는 배이다.

 관광객이 1분 정도 이 배를 끌면 건너간다. 관광을 가서 재미 삼아 끌면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추억이 된다.

 갯배를 타고 건너면 함경도식의 음식점이 늘어 서 있다.

 제각기 자기 집이 방송에 소개된 집이라 간판을 내세우고 있으나 어느 집이나 비슷한 음식에 맛도 비슷하다. 특별한 집이 없으니 그저 함경도식 음식을 맛보는 재미를 즐기면 된다.

 

소박하지만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아바이마을과 갯배를 구경하시기를......

 

 

아바이마을의 현판

 

 

 

갯배의 운행 모습

 

 

 

아바이마을 주변의 도로의 다리 - 청호대교와 금강대교

 

 

 

아바이마을 입구에서 바다를 건너는 갯배

 

 

가을동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갯배를 끌고 있는 나의 모습

 

 

 

갯배를 타고 건넌 아바이마을의 입구

 

 

 

아바이마을의 음식점들 : 가을동화의 유명한 '은서네집'도 보인다.

 

 

아바이마을의 변천사를 보여주고 있는 사진들 

 

  

 

아바이마을의 아바이 동상과 주변의 풍경

 

 

 

갯배 타는 곳 현판 - 가을동화와 1박2일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드라마 가을동화의 장면을 조형물로 만들어 사람들을 유혹한다.

 

 

갯배를 끌고 있는 아내

 

 속초 청초호 주변은 여러 가지 관광지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호수(청초호)와 바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게 만들어 놓은 갯배. 또 바다를 건너게 만든 새로운 도로와 다리의 멋있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아련하게 다가오는 사랑의 드라마 '가을동화'의 멋있는 모습, 또 제각기 자신의 맛을 자랑하는수많은 음식점들. 더 넓게 펼쳐진 동해 바다의 푸른 물결 등은 우리를 잠시 추억의 시간을 건너 뛰어 함께 빠져들게 한다. 역사의 아픔이 서려서 만들어진 마을이 이제는 관광지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역사의 추억에서 벗어나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한번쯤은 가보아도 좋은 곳이다. 

설악 단풍 - 단풍에 빠져 걸은 설악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가을이 되면 우리는 설악을 그리워 한다.

 

 10월 11일 드디어 설악에 올랐다.

 

 설악을 그리면서 막상 설악에 들어 단풍을 즐기기는 너무 어려운 현실이다.

단풍이 활짝 물든 산을 보려면 때를 잘 맞추어야 하는데 휴일만을 택하기에는 설악의 단풍은 너무 짧다.

 

 매년 설악의 단풍바다에 빠져보고자 했으나 시간을 맞추지 못해 때 이른 단풍이나 때 지난 단풍밖에 구경을 못하였는데 올해는 곡 설악의 단풍을 즐기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적당한 날을 택하여 설악에 올랐다.

 방송이나 각종 언론에서 말하는 절정시기보다 일주일 앞서 설악에 올랐다. 단풍이 화사하게 곷이 되어 피어 있었다.

 눈의 호사가 이보다 더 할 수 없어 온 몸으로 단풍을 즐기며 설악을 종단하였다.

 

 사실 처음에는 설악동에서 양폭 정도 올라 갔다가 다시 내려오려고 생각하여 숙소를 떠났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에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한계령에서 설악을 종단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말에 솔깃하여 한계령으로 올라갓다. 처음 시작할 때는 고난이 시작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고, 조금 힘든 여정이리라 생각하였으나 단풍을 즐긴다는 생각에 설악에 오르기 시작했다.

 

 한계령에서 아침 9시 반경에 출발하여 끝청을 거쳐 중청대피소에 도달한 시간이 오후 1시였다. 대단히 빠른 속도로 산길을 걸으면서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겼다. 조금은 무리한 속도였다.

 

 중청대피소에서 대청을 거쳐 소청으로 내려 오면서 희운각과 양폭을 거쳐 천불동의 아름다운 절경에 취하면서도 비선대까지 오후 5시전에는 도착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좀 무리하여 발길을 재촉했다.

 

 오후 5시가 지나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비선대까지는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도착해야 했다.

예상된 시간에 겨우 맞추어 비선대에 도착하여 설악동으로 내려 왔다.

 

 모두가 너무 무리한 산행이었다고 말한다. 사실은 무리한 산행이었다. 더구나 이날 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어 기온이 뚝 떨어져 차가웠고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든 곳도 있었다.

 하지만 이 무리함 때문에 아름다운 설악을 즐기고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마음은 매우 기쁘다.

 

 자 지금부터 아름다운 설악의 단풍을 보여 드리겠으니 설악에 미처 가지 못하신 분들도 사진으로나마 올해의 단풍이 들은 설악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한계령부터 차례대로 보여 드리겠다.

 

 

천불동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노랗게 물든 단풍

 

 

 

한계령 휴게소에서 아래로 본 설악의 모습

 

 

한계령 휴게소에서 출발 : 단풍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출발하여 500m까지에 펼쳐져 있는 단풍 : 곱고 아름답게 들었다.

 

 

 

 

 

 

 

 

 

 

 

 

 

아내와 함께

 

 

 

 

 

 

 

 

서북능선을 타기전에 귀때기청봉 이정표까지 펼쳐진 설악의 모습 : 왼족으로는 암벽의 능선이 오른쪽으로는 아름다운 단풍이 눈을 즐겁게 했다.

 

 

 

 

 

 

 

 

 

 

 

 

 

 

 

 

 

 

 

귀때기청봉에서 끝청까지에 펼쳐져 있는 설악의 능선과 단풍. 그저 감탄을 발하며 걷고 또 눈으로 보고 감탄하고 걸었을 뿐이다.

 

 

 

 

중청대피소에서 보는 대청봉

 

 

 

 

 

 

 

 

 

끝청에서 중청대피소를 거쳐 대청까지의 풍경 : 이날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 대청에서는 제대로 사진을 찍지도 못했다. 중청대피소에서 보는 여러 방향의 경치

 

 

 

 

중청대피소에서 멀리 울산바위족과 동해바다를 보며...

 

 

 

 

 

 

 

 

 

 

 

 

 

 

 

 

 

 

 

 

중청대피소에서 소청을 거쳐 희운각 대피소에 이르기까지 펼쳐져 있는 단풍 : 곱게 산을 물들이며 피어 있는 단풍은 어느 꽃보다 더 아름다웠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천불동 계곡의 단풍을 즐기면서 양폭을 거쳐 오련폭포에 이르기가지 좌우에 펼쳐진 단풍은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길가에 핀 단풍보다 암벽에 펼쳐져 있는 단풍은 너무 아름다웠다. 우리가 길가에서 보는 단풍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다.

 

 

 설악!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글로 나타낼 수가 있으랴?

 그저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았을 뿐이다.

 설악의 단풍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있으랴?

 길가에 핀 단풍도 아름답고 산위에 피어 있는 단풍도 아름답지만 높은 산 암벽위에 곳곳에서 고운 자태를 드러내는 단풍은 그저 눈으로 보고 느낄 뿐 구차한 말로 드러내지는 않는 것이 좋겠다.

 

 산행에 무리는 절대 금해야 한다. 이번 산행이 상당한 무리였다.

 조금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면서 단풍을 즐긴다는 욕심에이 지나친 면이 있었다.

 나와 아내가 산행 중에 어떤 산악회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주머니가 헬리콥터에 구조되어 가기도 했고, 어움이 자욱이 갈린 시간에도 다 하산하지 못하여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산에서 만용을 부리면 안된다는 것을 또 다시 깨닫게 하는 모습이었다.

 

 하여튼 즐거움이 가득한 산행이었다.

울산 태화강 대공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태화강 대공원에서시원한 강바람을 즐겨보자.

 

 울산을 공업 도시로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울산은 지금 도시 가꾸기로 많은 공원을 조성하여 시민들의 휴식처로 꾸미고 있다.

 

 그중 울산의 태화강에 자리잡은 대공원은 푸른 강물을 옆에 두고 넓게 펼쳐진 공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처로 알려져 있다. 비록 인공이 많이 가미된 공원이지만 시원한 강바람을 쏘이며 여유롭게 휴식을 하기에는 알맞은 곳이다.

 

넓은 공간에 계절에 따라 여러 가지의 꽃 축제도 열리는 곳으로 봄에는 장미 축제가 유명하고 9월에는 꽃무릇이 자태를 드러낸다.

 

 울산은 광역시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 세수를 시민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면서 공원 조성사업을 벌여 나가고 있다.

 

 나는 이 공원에 꽃무릇을 보러 갔다.

 

 꽃무릇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는 풍성하지 못해 약간 실망하였으나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여유로이 거닐면서 마음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소득이었다.

 

울산 태화강 대공원의 모습을 보시기를 ......

 

 

태화강 대공원의 '꽃무릇'

 

 

태화루의 모습

 

 

 

도도히 흐르는 태화강

 

 

 

태화강 주변의 모습

 

 

태화강 대공원을 가로지르는 십리대밭교의 모습

 

 

 

 

 

처용팽나무의 아름다운 모습

 

 

 

십리대밭교에서 보는 물억새

 

 

태화강대공원 안내도

 

 

 

대공원안에 있는 돌다리

 

 

 

가을꽃 코스모스

 

 

 

노랗게 핀 부용

 

 

 

 

뻐꾸기나무(뻐꾸기와 같이 다른 둥지에서 자라는 나무라는 뜻)

 

 

오산 만회정 

 

 

 

 

 

 

만회정에서 보는 대공원

 

 

 

아직 피어 있는 배롱나무

 

 

 

 

 

 

 

 

 

 

 

 

 

 

가을이 왔음을 알려 주는 꽃무릇(일명 상사화) : 붉게 핀 모습이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름이 가지고 있는 전설 때문이리라.

 

 

 

 

 

 

 

 

 

 

 

 

태화강 대공원이 자랑하는 십리대밭길 : 인공적으로 조성된 대밭길이지만 정말 잘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길을 걸으면 마음이 상쾌해지고 대숲 사이로 불어 오는 바람이 청량하기 말할 바가 없다.

 

 

 

 

 

십리대밭교의 여러 모습

 

 

 

 

 

 

 

대공원의 여러 모습

 

 

 

  

 

 

 

 

여울다리에서 햇빛에 반짝이는 강의 지류를 보니 이름 모를 새(아마 왜가리인듯 : 멀어서 잘 ?????)가 한마리 외로이 서 있다. 

 

 

 태화강 대공원은 인공으로 만든 시민의 휴식처이다.

시내 한가운데 강이 흐르는 도시는 많지 않다. 이런 면에서 울산은 복받은 도시이다. 이 강에 시민들을 위한 대공원을 조성했다는 것이 더 갸륵하다.

 

 마음이 불편할 때 이 공원을 찾아 십리대밭 길을 걸어 보든지 흐르는 강물에 시름을 씻어 보내는 것도 우리가 살아 가는 과정에서 즐기는 풍류라고 할 것이다.

 가만히 흐르는 강물만을 바라 보아도 마음이 편안해 진다.

 

 부산에서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부전역에서 기차를 타고 태화강역에서 내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부전에서 해운대를 거쳐 기장을 넘어가는 철로는 아름다운 동해안을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아마 이 기차길도 편의에 의해 곧 사라지고 내륙으로 기차가 다닐 것이라 하니 사라지기 전에 한번쯤 구경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태화강역에 내리면 역앞에 관광안내소가 있다. 

 들어가면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지도도 얻고 시내버스를 타고 대공원에 가서 즐기다가 다시 기차를 타면 된다.

 

 기차는 상당히 자주 다닌다.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바람을 쏘이기에 정말 좋은 곳이다. 

 

변강쇠와 옹녀의 무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우리나라 소설 중 가장 성인 소설인 변강쇠전의 흔적을 찾아 간다.

 

 변강쇠전은 성적인 표현이 현대소설보다 더 노골적으로 묘사되어 성인이 아니면 읽기가 상당히 힘든 소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대소설이 도덕성을 기준으로 쓰여진 것에 비해 훨씬 인간적인 면모를 나타내는 소설이다.

 이야기 줄거리를 필요한 사람이 찾아서 읽어 보면 될 것이고, 그저 변강쇠가 오늘에도 남자의 정력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고, 옹녀는 여자의 성적 욕구를 나타내는 상징으로만 알려져 있다는 사실로 이 소설의 대략적인 줄기를 짐작할 것이다.(이야기는 이만 : 궁금하면 읽어 보시라)

 

 이 소설에 나오는 지리산의 자락이 어딘가? 하는 문제는 내가 밝힐 것이 아니다. 그저 지리산 자락에는 이 소설이 자기 지방의 이야기라고 하는 곳이 상당히 있다. 그 중에 함양군 또한 자기 고장이 이 소설의 무대라고 한다. 그래서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촌락을 꾸며 놓았을뿐 아니라, 변강쇠와 옹녀의 무덤이라고까지 하면서 표지판을 만들고 무덤을 찾아 놓았다.

 

 하지만 이왕 꾸미려면 좀 스토리를 만들고 사람들이 찾아 오도록 하였으면 좋을 것을 그저 만들기만 해 놓아 아쉽기가 가이 없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조그마한 이야기만 있어도 거창하게 꾸며서 관광상품으로 팔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점이 매우 모자란다고 하겠다.

 

 이 훌륭한 이야기를 그저 내 버리는 것 같아 지방의 공무원들의 각성이 요구된다.

 

 

변강쇠와 옹녀의 무덤이라고 일컫는 곳 : 초라하기가????

 

 

 

 

 

변강쇠와 옹녀의 사랑이야기라는 장승들의 모습

 

 

변강쇠와 옹녀의 무덤을 찾아가는 입구

 

 

입구의 주막 : 좀 가꾸어 놓았으면 지나는 길손이 머물 수 있을텐데?????

 

 

무덤 입구를 가리키는 표지판

 

 

 

주막이 있는 자리의 석등

 

 

옹녀샘

 

 

 

 

 

 

초라한 변강쇠와 옹녀의 무덤 : 좀 꾸며 놓았으면 싶다.

 

 

이 곳이 변강쇠와 옹녀의 무덤임을 증명한다는 신문 기사

 

 

변강쇠와 옹녀를 본뜬 석조물 : 한쪽은 남자의 모습이고 한쪽은 여자의 형상이다.

 

 

 

 

 

주변에 상당히 많은 석조물이 있으나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다.

 

 

 '변강쇠와 옹녀'는 우리 전래 설화 중 가장 은근히 알려져 있는 설화이다. 남녀의 성적인 이야기는 우리가 감추면서도 은근히 즐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이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소설로 꾸며낸 것이 "변강쇠전"이다.

 이 이야기는 "구부총설화"라는 설화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현재의 관점에서도 너무 심하다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이야기는 그만 두고 이 훌륭한 관광 상품 소재를 제대로 개발하여 지나는 길손이 한 번쯤 들러 보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무덤은 함양읍에서 지리산 제1문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