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하는 러시아여행(7) - 하바롭스크에서의 둘째 날 -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7. 러시아 극동의 중심 도시 - 하바롭스크에서의 둘째 날 -
다음날 짐을 숙소에 맡겨 놓고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거주지등록’이었다. 러시아는 입국하고 나서 7일 이내에 거주지등록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되어있으며, 또 한 도시에서 7일 이상을 머무를 때도 거주지등록을 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외교통상부사이트에서도 거주지등록을 꼭 하라고 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아는 것조차 너무 어렵다. 그리고 거주지등록제가 우리가 이해하기가 좀 어렵게 되어 있다. 물론 큰 호텔에서는 서비스로 해 주기도 하는데 우리가 묵고 있는 호스텔에서는 자기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 이르크추크로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기차에서 사흘 이상을 잘 것이니 이곳에서 거주지등록을 하고 가야 한다. 아들과 상의 끝에 우리가 스스로 한번 해 보기로 하였다. 여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즐기거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그들의 문화를 보고 배우는 것, 새로운 음식 등을 먹고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제도나 생활을 스스로 체득해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먼저 숙소를 나와 트랩을 타고 역으로 가서 이르크추크행 기차표를 발권했다. 트랩을 타고 가는데 요금을 어떻게 내어야 하는지가 궁금했는데 트랩을 타고 조금 있으니 요금을 받는 아주머니가 차표를 끊어 주었다.(요금은 18루블) 우리나라 1960년대 70년대의 모습이었다.
하바롭스크의 트랩과 트랩 차표
우체국에서 거주지등록을 해 준다고 하여 택시를 타고 우체국에 갔는데 택시비가 장난이 아니었다. 보니 정규 택시회사의 택시가 아니라 개인이 영업을 하는 택시 같았다. 어느 나라나 이런 병폐가 있는 듯하며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근무자나 안내원들이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필요한 서류가 무엇인지도 고지해 놓지 않았고, 외국인을 상대하면서 자기들 말로만 무어라고 말하는데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들이 러시아어를 조급 공부하여 폰에다 글을 써서 보여주니 또 무어라 한다. 한 마디도 모르겠다. 러시아가 과거의 폐쇄적 사회에서 개방사회로 바뀌면서 대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점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광대한 땅과 무한정으로 묻혀 있는 지하자원 그리고 과학과 기술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러시아가 진정으로 아직 강대국으로 인식되지 않는 이유가 실제적 생활에서 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음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들만이 사회를 이루고 자기들의 울타리 속에서만 살고 있을 때는 별 문제가 아닐 것이다. 과거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외국인이라고 별로 여행을 오지도 않고 자신들도 외국과 별 관계를 맺지 않고 지냈기에 그들 스스로만 소통이 되면 사회는 그냥 유지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촌이라는 어휘조차도 이제 낡은 단어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통신 등을 통해 전 세계는 거의 동시에 모든 일이 진행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아직 20세기의 허물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여튼 목마른 놈이 우물판다고 거주지등록을 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우체국에서 등록을 못하고 나오려니 우체국직원이 주소를 하나 적어주면서 그곳에 가보라고 한다. 아마 지역의 관청인 것 같았다. 또 다시 한참을 거리를 헤매다 싶이 걸어 관청을 찾아가니 또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낭패도 이런 낭패는 없다. 젊은 공무원인데도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 쩔쩔매고 있는데 주위에 있던 낯선 장년의 사나이가 전화를 받아 보라고 한다. 무슨 전화인지 모르고 아들이 받으니 뜻밖에 한국어가 전화에 들려왔다. 북한 말씨였다. 장년의 사내는 중국인이었는데 아마 이곳의 유지쯤 되어 보였다. 자기가 주변에 있다가 답답하여 자신이 아는 북한인에게 전화를 걸어 주는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전화를 통한 한국어 중국어 러시아어의 통역을 통해 이곳이 우리가 거주지등록을 하는 관활 관청이 아니라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는 주소를 하나 알려 주며 그곳에서 한다고 하였다. 너무 고마웠다. 먼 이국에서 말도 전혀 통하지 않아 고생을 하는데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베푸는 친절에 너무 고마웠고,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도 그래도 동포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는 북한인의 친절도 고마웠다. 새 주소지를 받아들고 그곳을 찾아 가니 많은 사람들이 거주지등록을 하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되어 근무자들은 없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개가 보니 여기에 일하러 온 노동자들이었다. 아마 여행자는 우리뿐인 것 같았다. 여기에서도 고려인을 만나 잠간 이야기를 하다가 아들과 나는 하바롭스크에서의 거주지등록은 포기하고 이르크추크에 가기로 했다. 설마 열차에서 거주지등록증을 보자고 하지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미리 이야기하면 한 달 동안 한 번도 거주지등록증을 보지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만난 다른 사람들도 아무도 거주지등록증을 검색 받았다는 여행자가 없었고 거주지 등록을 대개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외교통상부에서는 반드시 하라고 한다. 뒤에 알게 되었지만 영사관에서도 해 준다고 하였다. 미리 외교통상부 사이트에 고지해 놓았으면 영사관을 찾아가서 거주지등록을 할 수가 있었을 텐데 헛고생만 하였다. 하여튼 거주지등록에 대해서는 실제 체험을 통해 대강은 알게 된 것도 큰 소득이었다.
거주지등록을 하지 못하고 하바롭스크 시청광장과 그 주변을 구경하고 중앙공원(디나모공원)을 구경하고 다니는데 비가 계속해서 왔다. 디나모공원은 도시 가운데 인공호수를 만들고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만든 공원인데 월요일이고 비가 오니 공원에 사람은 전혀 없어 우리만 한적하게 거닐면서 여유를 즐겼다. 디나모공원을 벗어나 월북 작가인 조명희가 살던 집이 있다는 곳을 찾아 갔으나 아파트를 짓는다고 그 집터는 허물어져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조명희를 잘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러시아인에게야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바롭스크 시청광장 : 땅이 넓은 나라이다 보니 광장이 매우 크다.
디나모 공원 전경
연필과 펜 모형물(독일의 파커 모형이다)
디나모공원을 한가로이 걷다 보면 만나는 여러 조형물(나무로 만들어졌음)
디나모 공원 입구
조명희가 살던 곳(나무가 있는 곳에 펜스를 쳐 놓은 안에 있었다)
다시 시내를 관통하여 아무르강 가로 갔다. 어제 보지 못했던 강 위쪽으로 가니 전망대가 있고, 동시베리아 초대 총독이었던 무라비예프총독의 동상이 있다. 러시아를 여행하는 도중에 곳곳에 세워져 있는 동상을 많이 보았는데 아마도 공산주의의 잔재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또 다르게는 그들은 자신들의 선조에 대해 무한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전망대 주변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아무르강을 구경하고 어제 가보았던 주변의 지역박물관을 지나가는데 어제는 눈에 띄지 않았던 거북상이 박물관 앞뜰에 보였다. 우수리스크에서 보았던 거북상과 같은 거북상이다. 한 쌍인 거북상이 하나는 우수리스크 하나는 여기 하바롭스크에 있다. 거북상을 보고 사진능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러시아 사람이 무어라고 말을 하며 손짓을 하여 보니 건물 한 귀퉁이에 원숭이상이 있었다. 어느 시대의 유물인지는 모르겠으나 박물관 마당 한 구석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한번 쳐다보게 하였다.
깜사몰광장의 혁명 기념탑
무라비예프총독의 동상
아무르강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아무르강(비가 오고 있어 뿌옇게 흐려 있다)
우수리스크 공원에서 본 거북상의 하나.
숙소로 돌아가서 장거리 기차를 타야 하기에 샤워를 하고 짐을 찾아 하바롭스크역으로 트랩을 타고 갔다. 이르크추크로 가는 기차가 23:00에 출발하기에 하바롭스크역 앞에 있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놀고 있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같은 숙소에 있었던 중국의 대학생들을 다시 만났다. 이들은 하바롭스크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간다고 하였는데 비가 제법 많이 와서 배가 출항을 멈추어 기차로 돌아가기 위해서 역으로 왔다 하였다. 먼 타국에서 타국의 사람이지만 그래도 같은 숙소에서 며칠을 같이 지냈다는 인연으로 반가웠다.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하니 마카오대학을 다니는 학생이었다. 카페 옆에 있는 큰 슈퍼에서 3박 4일 동안 지낼 여러 가지 음식과 일상 생활용품을 구입했다. 본격적으로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의 생활을 준비하려니 열차에서의 경험이 없어 다른 것은 제쳐두고 열차에서 먹을 끼니를 계산하여 음식을 준비했다. 러시아라면(우리나라 도시락), 빵, 과일, 계란, 치즈, 햄, 음료수, 그리고 물을 준비하였다. 물은 큰 통으로 한 통을 사서 작은 통에 넣어서 먹도록 준비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 자신이 먹을 것과 일용품은 스스로 알아서 잘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출발할 때 메고 간 배낭도 상당한 무게와 부피였는데 또 4일간의 짐을 더하니 아들과 나는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다녀야 했다. 이 여행기의 끝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러시아여행에 과거의 생각으로 많은 짐을 가지고 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현지에서 대부분을 구할 수 있다. 이르크추크행 기차는 40분이나 연착하여 거의 자정이 되어 도착했다. 원래는 하바롭스크에서 한 시간을 정차한다 하였는데 도착을 늦게 하여 좀 빨리 출발하였다. 이제 본격적인 열차에서의 여행이다.
하바롭스크역에 늘어 놓은 배낭과 짐. 그리고 열차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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