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하는 러시아여행(9) - 이르쿠츠크 가는 기차 -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9. 이르쿠츠크로 가는 기차여행 - 고려인 3세 아주머니 -
먼 타국에서 고국의 동포를 만났다고 고려인 3세 아주머니는 자주 우리 좌석에 놀러왔다. 우리도 전혀 말이 통하지 않은 이 기차 안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고 또 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 한민족의 수난의 역사를 보는 듯해 숙연해지기도 한다.
고려인 아주머니 : 막무가내로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아 옆모습만 찍어 두었다.
그 아주머니와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 한 것을 요지만 대화형식으로 재구성해 보기로 한다.
“아주머니는 러시아에서 태어났어요?”
“예. 그래요.”
“그러면 누가 러시아에 왔어요?”
“할아버지가 러시아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언제요?”
“자세히는 몰라요. 할아버지가 아버지 8살 때 돌아가셨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들었어요. 아버지는 1905년생인데 아버지도 러시아에서 태어났다고 했어요. 할아버지의 이름도 몰라요.”
아니 이 말대로라면 이 아주머니의 할아버지는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 구한말에 러시아로 이주를 했다는 것이다.
“아주머니 한국식 성씨는 무엇이에요?”
“러시아에서는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요. 그래서 남편이 이 씨라서 나도 이 씨예요.”
“그럼 원래 성씨는요?”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경주 최 씨라고 했어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경주에서 왔다고 했어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도 잘 몰라요.”
“그러면 아주머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어요?”
“아니요, 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어요.”
“아니 왜요?”
“아버지가 스탈린 시대에 강제로 우즈베키스탄에 이주를 당했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태어나서 자라다가 다시 블라디보스토크에 시집을 와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았어요.”
“자식은 몇이나 있어요?”
“아들이 셋 있는데 모두 노보시리비스크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아들집에 다니러 가는 길이요.”
“아들이 모두 나이가 제법 되겠는데요?”
“33살, 31살, 29살인데 막내는 한국에도 다녀오고 경주에도 가 보았어요. 셋이 모두 사업을 하고 있어요.”
“모두 같이요?”
“예. 모두 노보시리비스크에서 장사(건어물)를 하고 있어요.”
이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아주머니는 자신의 형제가 오빠가 4명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죽고 자신만 살아 있다고 한다. 이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면서 가슴이 멍해짐을 느꼈다. 나라를 잃어버린 지난 세월의 아픔이 이 아주머니의 가족사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왜 이 아주머니의 할아버지는 조국을 떠나 머나먼 이국땅에 이주했으며, 짐작하기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는데 알 수가 없다. 아들이 8살 때 생을 마감했다면 비명횡사를 했거나 아니면 병으로 죽었는지 아니면 이름도 모르는 독립투사였는지 모든 것이 알 수가 없다. 아무런 기록도 흔적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저 짐작해 볼뿐이다.
이 아주머니의 가족사를 보면 할아버지는 한국(그 당시 조선)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에 이주하여 살다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다시 스탈린의 강제 이주로 중앙아시아(우즈베키스탄)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태어난 아주머니는 다시 블라디보스토크에 시집을 와서 살다가 아이들은 노보시리비스크에 살고 있다. 우리 민족의 러시아 유민사. 100년의 세월 동안 겪었을 우리민족의 비극의 역사가 그대로 나타난다고 생각된다. 우수리스크의 고려인 문화관에서 본 기록물들의 실제로 이 아주머니의 가족사에 그대로 볼 수 있다.
우수리스크의 고려인 문화촌에서 그들의 역정을 씨앗 → 불꽃 → 들꽃 → 평화 로 전시해 놓았는데 이 아주머니의 가족사가 바로 그대로다.
아들이 역사를 좋아 해서 역사에 제법 지식이 있었다. 아주머니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들도 지나간 우리의 비참했던 역사를 나에게 다시 이야기해 주면서 보충 설명을 해 주었다.
아주머니는 자신은 한국말을 그대로 하나 아들들은 할 줄을 모른다고 한다. 3세까지는 모국어를 잊어버리지 않고 있으나 4세가 되면서 주변 사회의 생활에 어울리다 보면 자기가 사는 곳의 말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고려인들은 부지런하고 검소해서 대부분이 잘 살고 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인들은 넓은 땅에서 조금은 나태해서 잘 살지 못한다고 흉을 보았다. 그리고 각종 가전제품은 우리나라의 삼성이나 LG의 제품을 사용한다고 한다. 가격이 비싸지 않느냐고 물으니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해서 들어오기 때문에 가격이 싸다고 한다.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아주머니의 앞좌석에 앉은 러시아인(몽골계) 아이가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보자고 한다. 영어로 된 여행안내 책인데 읽을 수 있는지 하고 의아해 하니 아주머니의 말이 러시아 초등학교에서 작년부터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러시아도 이제 본격적인 개방사회로 나아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꽉 닫힌 폐쇄사회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세계화의 대열에 뒤지지 않겠다는 변화로 생각이 된다.
아주머니와 좌석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자신의 시누이가 집에서 만든 빵이라 하면서 나에게 빵을 두 개 주었다. 나도 답례로 한국에서 가지고 간 초코파이를 여러 개 주니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조금 지나니 그 몽골계 꼬마 아가씨가 와서 무엇을 적어 달라고 한다. 한국어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적어 달라고 하여 적어 주니 인사를 하고 간다.
아주머니가 준 빵 : 인정이 스며있어 더 맛있다.
15:50에 치타 역에 도착했다. 제법 오래 쉬는 역이기에 내려서 보니 이 역이 1905년 에 건립되었다는 기념물이 있어 사진을 찍고 있으니 기차에서 만난 꼬마가 있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여 사진을 찌고 쉬다가 기차에 올라 다시 긴 기차여행을 계속한다.
치타역의 모습
1905년에 역이 세워졌다는 기념물과 몽골계 꼬마 아가씨
열차안의 시간표
기차는 끝없이 펼쳐지는 벌판과 구릉을 지나고 있다. 자작나무의 하얀 자태는 아직 내 시야에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가끔 산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보이는 강과 호수, 습지들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서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약 3,000KM를 달려 왔다. 모스크바까지는 아직도 약 6,000KM가 남아 있다.
달리는 기차 옆으로 펼쳐지는 시베리아의 풍경
시베리아를 흐르는 이름도 모르는 강
모스크바까지 거리를 나타내는 이정표 : 각 역에 다 있다.
21:30가 되었는데 아직도 해가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위도가 우리나라보다 높기에 여름에는 해가 오래 떠 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에서는 저녁 늦게까지 활동을 하고 아침에는 늦게 일상을 시작하고 있다. 열차는 지금 khilok역을 지나고 있다. 22:30에 해가 지고 있다. 장관이다. 땅이 좁은 우리나라에서는 일몰을 대개가 바다나 강에서 볼 수는 있지만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지는 광경을 보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평원을 자랑하는 러시아다. 해는 땅에서 솟아올라 땅으로 진다. 이 장관을 사진으로 남기려 하고 카메라를 들이 내밀었으나 열 차안이라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차창으로 보는 러시아 촌락
이르쿠츠크 가는 기차표와 중간역(힐록) 표지판
차창으로 보는 시베리아의 일몰
오늘도 열차는 계속 달리며 나는 열차에서의 세 번째 밤을 맞이한다.
잠을 자다가 시끌시끌하여 일어나니 앞좌석의 러시아여인이 내린다고 인사를 한다. 울란우데다. 열차가 멈추어 상당히 오래 있다. 한 밤중이지만 열차에서 내려 잠시 바깥으로 나간다. 상당히 큰 역이 어둠에 잠겨 있다. 다시 열차에 올라 잠을 청한다.
밤늦게 정차한 중간역의 매점
울란우데역 - 깊은 밤에도 열차에서 내려 쉬는 사람들 : 아무런 꺼리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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