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아들과 함께하는 러시아여행(5) -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서쪽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5. 블라디보스토크 - 시내의 서쪽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오고 있다. 오늘은 블라디보스토크를 구경하고 하바롭스크로 떠나는 날인데 비가 오니 새로운 감상에 젖는다. 아직 집을 떠난 지가 나흘밖에 되지 않으니 나그네로서의 객수를 느끼기는 빠르지만 여행에서 비를 만나니 무언가 착잡한 마음이다. 아침거리를 사러 슈퍼에 가는데 폭우가 쏟아졌다. 우리나라 여름의 소나기 같았다. 비를 맞으며 길을 가는데 거리에 물이 넘쳐흘렀다. 그럴 정도로는 비가 오지 않는데 하면서 길가를 보니 배수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물이 계단을 그대로 흘러 내려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 같았고 하수시설이 전혀 되지 않은 것 같이 물이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잠시 내리는 비에도 이런데 비가 많이 오면 어떻게 하려고 배수시설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 이곳에는 비가 그렇게 자주 오지는 않는 듯하다.

 

 

 

비가 쏟아지는 블라디보스토크 거리

 

 먼저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가서 미리 한국에서 예매해온 하바롭스크로 가는 열차표를 발권했다. 밤늦게 열차를 타야하기에 미리 발권을 하니 비로소 시베리아 횡단이 시작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러시아 기차역에는 거의 영어가 통용되지 않는다. 영어를 알아듣는 역무원도 거의 없다. 우리가 러시아어를 말할 줄을 모르기에 예매권을 내어주고 겨우 표를 받았다. 아직은 외국인에게 너무 불편하다.

 

 

러시아 기차표 : 대단히 복잡하다. 그래도 아주 내용이 자세하다.

 

 역에서 나와 오늘은 시내 서쪽 편을 돌아보기로 했다. 먼저 아르바트 거리로 갔다. 사실 이 거리의 이름은 아르바트 거리가 아니라, Admirala Focina 거리이다.

그럼에도 아르바트라고 부르는 이유는 모스크바에 있는 유명한 번화가 거리가 아르바트 거리인데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이와 같은 거리를 만들게 되었는데, 여기에 우리나라의 KT가 투자해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거리에는 부산의 남포동 광복동 거리와 비슷하여 거리의 예술가들도 보이고 화장품 코너, 패션 옷집, 찻집, 거리의 분수 등등을 인공적으로 꾸며 놓아 젊은이들이나 가족들이 한가로이 거닐게 만든 거리이다. 이 거리에 지나가면 블라디보스토크의 축구장과 아무르만의 유원지 등이 이어져 새로운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비가 그친 거리를 거닐며 축구장 쪽으로 가니 블라디보스토크와 자매결연한 세계의 도시들의 기념탑들이 쭉 늘어 서 있었다. 그 탑들을 구경해 보니 나의 고향인 부산도 보였다. 아마도 같은 항구 도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하였다. 이 기념 조형물을 뒤로 하고 식당이 즐비한 곳으로 가니 아침에 내린 비로 식당들이 모두 침수가 되어 있었다. 이곳의 식당들은 대개가 반 지하로 만들어져 비가 오니 배수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아 완전히 물에 잠겨 펌프로 물을 빼내고 있었다. 이곳에 인터넷에 소개된 유명한 식당이 있다 하여 왔는데 그 식당도 물에 잠겨 영업을 하지 않고 물을 빼내고 있었다. 나중에 저녁에 다시 와 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아르바트거리

 

 

 

 

자매결연한 도시들을 기념한 조형물

 

 

 

비로 인해 건물에 가득찬 물을 빼내는 모습

 

 발길을 돌려 아무르만 유원지 쪽으로 가니 토요일 오후라 가족들의 나들이 모습이 많이 눈에 뜨이었다. 우리나 이들이나 인생을 사는 것은 매 한가지라고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동안 직장에 나가 일하고 주말이면 가족들과 오붓이 나들이를 하는 모습은 세상 어디에나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주변을 구경하면서 한가로이 걷다가 블라디보스토크 요새박물관으로 갔다.(입장료 200루블) 제정러시아 때부터 1970년대까지 군사요새지였는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바꾸어 놓은 곳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항구를 지키기 위해서 제정러시아 때 만들어진 요새였다. 이런 요새까지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구경거리로 만들어 놓은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요새박물관에는 제정러시아부터 1970년대까지의 여러 무기와 군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각종 전시물들이 있었다. 그저 한번 보는 것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 박물관이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이 요새박물관에서 일망무제로 바라보는 아무르만의 풍경은 이외로 좋았다.

 

 

 

유원지의 분수와 거리

 

 

 

 

 

요새박물관 입구와 외부 모습

 

 

 

 

 

 

 

요새박물관 내부 전시물(제정러시아부터 2차세계대전까지의 각종 자료를 전시) 

 

 요새박물관에서 내려오면 바로 아무르만과 유원지다. 날이 맑게 개였고 기온이 상당히 높아 유원지에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아무르만을 한 바퀴 도는 보트들이 계속하여 손님을 태우고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곤 하였다. 한 20분 정도 걸리는 고무보트인데 요금이 일인당 400루블이다. 한가로이 아무르만의 해변에서 풍광을 즐기면서 아들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들을 하였다. 항상 어린 아들로만 생각했는데 이제 군에서 제대하고 자기 나름대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러시아여행을 하자고 한 이유가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참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이제는 어린 아이가 아니다. 자기 인생을 설계하고 아버지에게 의견을 묻고 하는데 이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를 이제 내가 따라 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간단히 말해 주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그래도 아버지라고 이야기를 살갑게 해 주는 아들이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해변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가지고 간 음식물로 점심을 간단히 때우고 유원지를 거쳐 아르바트 거리를 소요하면서 주말의 오후 풍경을 완상하며 보냈다. 비가 그친 주말이라 많은 젊은이들과 가족들이 나와 거리가 제법 북적거렸다. 유원지 옆에 있는 축구장에서는 프로팀은 아닌 것 같은데 축구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제법 많은 관중이 응원하는 소리도 바깥으로 들리고 틈을 통해 보니 많은 관중들이 시합을 보면서 즐기고 있었다. 이제 이곳도 서구사회와 같이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이나 응원 수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이 눈에 제법 보였다. 자본의 물결이 공산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는 듯했다.

 

 

 

 

 

 

아무르만을 시원하게 누비는 보트들

 

 

유원지를 거니는 러시아 사람들

 

 

 

 

공설운동장(축구장)과 유니폼과 응원용 수건를 파는 여인

 

 

 

갑자기 부산 버스가 나타났다.(중고 버스를 수출한 것으로 새로 칠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여유 있어 이곳에 도착하던 날부터 보려고 생각했던 미술관을 찾아 가기로 했다. 14세기에서 20세기 초 유럽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고, 따로 러시아 작품들을 한곳에 모아서 전시하고 있었다. 학생을 50% 할인하여 입장료를 받아 아들은 ISIC(국제학생증)을 제시하여 할인을 받았다. 러시아를 여행하는 학생들은 반드시 ISIC를 국내에서 발급받아 가기를 바란다.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러시아 각 도시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대부분 반값도 받지 않는다. 자국의 학생들에게 적용하는 할인을 정확하게 해 준다. 심지어 교통요금도 할인을 해 주는 곳이 있었다. 한국에서 발급비가 14,000원인데 그 몇 배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 이 ISIC다. 외환은행에 가면 발급을 해 준다. 미술관 입장료는 200루블이었다.

 

 

 

 

미술관 건물과 관람표

 

 저녁이 되어 식사를 하고 하바롭스크로 떠나기 위해 오전에 들러 보았던 식당을 찾아가 보았다. 아침 일찍 온 비로 모두가 침수되어 있었는데 어느 새 물을 다 빼내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이런 일이 종종 있는 것 같았다. 아침에 아들과 함께 둘러보았던 식당 앞에 가니 많은 우리나라 젊은 학생들이 있었다. 갑자기 무슨 학생들이 이렇게 많이 이 식당 앞에 있는지 궁금하여 이야기를 해 보니, 모 대학교의 학생들로 방학을 맞아 실습을 하면서 일본, 중국을 거쳐서 그리고 러시아에 왔다 하였다. 아마 실습 중에 각자가 식사를 해결하라고 한 듯 저녁을 먹으러 왔다고 하였다. 어떤 실습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월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을 맞아 실습을 외국에서 하는 정도로 우리나라가 발전하였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했다. 우리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방학이라야 농촌의 하계봉사활동이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하여 학비를 마련한다고 노심초사하던 시대인데 지금은 외국에 실습을 하니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하였다. 아니 나도 러시아를 여행할 정도이니 참 많이 변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식당에서 이 집의 유명한 음식이라고 여행안내 책에 소개된 음식을 시키니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다른 음식을 시켜서 먹었다. 아들은 불만이 대단했다. 우리가 동양인이라 불친절하다고..... 우리 주위에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많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시키고 있었다. 일부는 그냥 식사를 하지 않고 나가고 일부가 남아 음식을 시키는데 그 학생들도 러시아 말을 못하는 것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중 한 학생이 여기는 손님이 왔는데 물도 안준다고 계속 불평을 큰 소리로 하였는데 러시아 종업원들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에 다행이었다. 러시아는 식당이나 찻집 어디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물을 그냥 주는 곳이 없다. 물도 반드시 돈을 지불하고 시켜서 먹어야 한다. 외국에 실습을 나왔으면 기본적인 생활 습관이나 그들의 풍습 정도는 미리 교육을 시켜서 나왔으면 했다.

 

 

 

 

 

 

식당 내부와 입구 간판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오늘 밤 늦게 본격적인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첫 기착지인 하바롭스크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한다. 우리는 여행계획을 짤 때 도시간의 이동인 시베리아횡단열차는 반드시 밤기차를 타기로 했다. 시간의 절약도 있고 기차에서 잠을 자게 되면 숙박비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기차는 모두 모스크바 표준시를 사용한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스크바와 자기가 있는 도시의 시차를 확인하여야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 우리는 블라디보스토크 현지시간으로 21:00 기차를 예약했으나 기차가 연착하여 21:35분경에 출발하였다. 앞에서 이야기 한 대로 기차는 여러 가지의 객실이 있다. 우리는 6인실을 예약했기에 우리 좌석을 찾아 짐을 풀었다. 별로 불편하지 않는 공간이다. 잠을 자면서 가는 기차이므로 침구는 좌석위에 마련되어 있어 자유로이 꺼내어 사용하면 되었다. 그런데 승무원(차장)이 와서 무어라 하는데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답답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니 침구 덮개를 구입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무지해서 미처 예약을 할 때 덮개를 구입하지 않았던 것이다. 침구 덮개를 빌려 주는 제도는 상당히 위생적인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하게 세탁된 덮개 봉투에는 배게 덮개, 침구 덮개 2장, 수건 1장이 들어 있었다. 요금은 116루블이었다. 그런데 이 덮개를 하루에 사용하는 것인지 끝까지 사용하는 것인지를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기차를 타고 있는 동안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차를 내릴 때는 반드시 승무원에게 반납을 해야 한다. 상당히 합리적인 제도라고 생각했다. 하여튼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6인실은 모두가 개방되어 있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냥 한 차량에서 함께 지낸다. 한 차량에는 약 70명이 함께 타고 있다. 열차는 거의 만원이다. 모두들 자신의 짐을 정리하고 익숙하게 침구를 깔고 잠을 청하고 있다. 나와 아들도 그들이 하는 모양을 보고 따라서 침구를 깔고 잠을 청했다. 기차 안에서 숙박을 한다는 것은 아득한 과거(1960년대)에 우리나라에 있던 일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기차에서 잠을 자면서 가는 열차는 없다. 기차는 어둠 속을 끝없이 달리고 있다. 어둠이 짙어가는 바깥을 내다보니 비로소 먼 여행을 한다는 실감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