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터키문명 산책 - 이스탄불 6 (톱카프 궁전)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오스만 제국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 톱카프
제법 많은 날을 이스탄불에 머물렀는데도 이스탄불의 아시아지역은 전혀 발걸음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이스탄불은 넓고, 보아야 할 것이 많다. 이스탄불에서의 마지막을 톱카프궁전으로 정했다. 이 궁전만 보면 역사지구를 비롯해서 탁심지구 등 웬만한것은 그래도 돌아본 것이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고르지 못하고, 비대칭적이고 중심축이 없으며, 기념비적이지 않은 균형." 이 말은 톱카프에 대한 초기 유럽인 방문객의 묘사이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한 메흐메트 2세가 현재의 이스탄불 대학교가 있는 자리에 궁전을 짓고 옛 궁전이라는 뜻으로 ‘에스키 사라이(Eski Sarayı)’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그 뒤 몇 년이 지난 후, 보스포루스 해협과 마르마라 해, 골드 혼이 합류하는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새로 지은 궁전이 바로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보여 주는 톱카프 궁전이다. 톱카프 궁전이 자리한 지역에는 동로마 제국이 세운 건축물이 있었으나, 톱카프 궁전이 들어서면서 모두 사라졌다 한다. 톱카프 궁전은 새로운 궁전이라는 뜻으로 처음에는 ‘예니 사라이(Yeni Sarayı)’라고 불렸으나, 궁전 입구 양쪽에 대포가 배치되면서 이름을 톱카프 궁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톱’은 대포라는 뜻이고 ‘카프’는 문이라는 뜻이다. 이 궁전은 1856년 돌마마흐체궁전으로 옮기기 전까지 400년 동안 끊임없이 증축과 개축이 진행되고 네 번의 대화재를 거치면서 현재의 규모는 원래의 규모에 비해 많이 축소되었다. 총 면적은 70만 평이나 되는 톱카프 궁전의 본래 규모는 오늘날의 시르케지 철도역과 귤하네 공원을 포함하면서 마르마라 해 방향의 아래쪽까지 분포했다고 한다. 터키공화국이 수립되고 1924년에 박물관으로 바뀌어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 중이다. 주변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평지에 위치하는 톱카프 궁전은 단순한 왕족의 거처가 아니라 술탄과 중신들이 회의를 열어 국가 정치를 의논하던 장소였다. 궁전 내부는 정원 4개와 부속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400여 년 동안 계속된 증·개축으로 오스만 건축 양식의 변화 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볼 수 있다.
톱카프 궁전은 비룬(외정)과 엔데룬(내정) 그리고 하렘 세 곳으로 나뉘어 있다.
톱카프 궁전은 세 개의 문과 그에 딸린 네 개의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다. 제 1 정원이 가장 넓고 내부로 들어갈수록 점차 규모가 작아진다. 제 1 정원은 궁전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살던 공간이고, 제 2 정원은 왕실의 부엌과 마굿간 등이 있었으며, 제 3 정원은 술탄의 가족이나 고위 인사들이 들어갈 수 있었던 제국의 기관이 있었으며, 제 4 정원은 술탄과 왕자들이 거처하던 개인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이 톱카프궁전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호화로운 건물과 볼거리가 많다.
톱카프의 모형도
톱카프에 들어가는 외부의 모습
첫 번째 문은 황제의 문 또는 술탄의 문이라 부른다. 문의 바깥쪽에 새겨진 글은 메흐메트 2세가 이 궁전의 건축을 1478년에 완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황제의 문을 들어서면 제 1 정원이 있다. 제 1 정원에는 여러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하기아 이레네 성당과 화폐 제작소만 남아 있다. 정원 왼쪽에 보이는 이레네 성당은 아야 소피아성당이 건설되기 전 세워졌으나 ‘니카의 난’으로 소실되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재건되었다
이레네 성당은 6세기경 건립된 전형적인 비잔틴 건축물이다. 오스만 제국이 모스크로 사용하지 않았고, 전리품과 무기 저장소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건축물의 원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다가 1846년에 오스만 제국 최초의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황제의 문
잔디가 깔려 있는 제 1정원
제1 정원을 지나면 경의의 문이 있다. 술탄 이외에는 모두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한 뒤에 들어간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여기서부터는 일반 백성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경의의 문 양쪽에는 감옥으로 사용했던 석탑이 세워져 있고, 이 문의 오른쪽 벽에는 사형 집행자의 손과 칼을 씻었다는 우물이 있었다. 그리고 문 옆에는 참수된 사람의 머리를 놓아둔 두 개의 대리석이 있었다고 한다. 경의의 문 뒤의 제 2 정원은 대신들이 국사를 논의하던 디완 건물과 거대한 황실 주방인 부엌 궁전이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에 굴뚝이 늘어선 건물이 요리사 수백 명이 음식을 준비하던 주방으로 하루에 두 번 궁중음식이 준비되었고, 해가 긴 여름철에는 해지고 두 시간 후쯤 군주와 하렘의 황실 가족들에게 음식이 제공되었다고 한다. 현재 도자기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는데, 중국산 자기 1만 2,000점과 일본산 자기 8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중국산 자기는 원 이후 시대의 것으로 청자기와 백자기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한국의 것은 보이지 않는다.
경의의 문
톱카프 모형도
옛날의 주방
옛 주방의 천정
제 2 정원
세 번째 지복의 문(행복의 문)은 군주와 군주의 측근만이 통과할 수 있는 문으로, 이 문 뒤에 있는 제 3 정원에서는 군주의 즉위식이 성대하게 열렸던 곳이다. 지복의 문 바로 뒤쪽에는 외국 사절을 접견하는 알현실이 있다. 고관이나 외국 사신들도 이 알현실 이상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제 3 정원에 위치한 ‘보물관’은 톱카프 궁전 관람의 하이라이트다. 술탄이 사용하던 왕좌, 갑옷과 투구, 무기 등 호화로운 보석으로 장식된 물건들이 가득하다. 그 중에 황금과 에메랄드,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톱카프의 단검’이 유명하다. 이곳에는 이슬람의 마호메드가 쓰던 외투와 칼, 턱수염과 치아 등이 있어 이슬람의 성지순례 장소이다. 또한 모세의 지팡이, 다윗의 칼, 세례 요한의 손뼈 등이 보관되어 기독교에도 성스러운 곳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은 엄격하게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그저 눈으로만 보고 나와야 한다.
지복의 문
제 3 정원의 알현실과 도서관
제 3 정원의 풍경
이 제 3 정원에서 제 4 정원으로 가는 길에 건물의 내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이스탄불에서 유명한 톱카프의 유일한 카페 겸 레스토랑 로칸다 콘얄르(Konyali)가 있다. 이스탄불의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데, 철저하게 돈의 논리가 적용되는 곳이다. 카페를 세 구역으로 구분하여 바깥쪽은 간단히 빙과류나 차 등을 마시는 사람들이 앉아 있고 중간은 간단히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좌석이며, 테라스쪽으로 경치를 가장 즐길 수 있는 곳은 정식 식사를 하는 곳이다. 저번 봄에 왔을 때는 간단한 식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아들 녀석이 먹는 것에 의미를 많이 두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점심이라 정식 코스를 먹기로 하고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만만하지 않은 가격이지만 밖으로 보는 풍경은 값을 치를 만하였고, 서비스도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만족했다.
두 번째 위치의 풍경
레스토랑에서 보는 보스포루스 해협
레스토랑 메뉴판
점심 식사
술탄과 그가 선택한 특정 인물들만 제한적으로 출입할 수 있었던 제 4 정원은 가장 작지만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정원 곳곳에는 정자가 있어 골든 혼, 보스포루스 해협, 마르마라 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이다. 제 4 정원에는 오스만 조정 근위대의 지휘관과 관리를 양성하기 위한 궁전 학교가 있었다. ‘엔데룬’이라 불리는 궁정 학교는 톱카프 궁전 안에 설립된 관리 양성 교육 기관이었다. 궁전학교를 졸업하면 무사이면서 학자와 신사의 면모를 겸비하게 되었고, 건전한 무슬림인 동시에 나라에 충성하는 헌신적인 신하가 되었다.
제 4 정원에서 보는 마르마라해와 고대 성벽
아름다운 제 4 정원의 바그다드 정자
바그다드 정자의 화려한 내부
화려함의 끝을 보여주는 제 4 정원의 다른 정자들
이프타리예 정자 - 금각만의 전망을 볼 수 있다.
제 4 정원에서 보는 갈라타 타워
제 4 정원 여러 정자의 외부와 내부 - 이렇게 화려하게 꾸며놓은 곳도 드물 것이다.
제 4 정원 모스크의 입구인 듯????
*하렘
중문을 지나 제 2 정원에 자리한 하렘(Harem)은 남성의 출입이 금지된 여성들만의 공간이었다. '금지된'이란 뜻의 하림에서 비롯된 하렘은 술탄과 거세한 환관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 미로처럼 복잡한 내부 통로로 이어진 하렘에는 약 400개 방이 있었다고 한다. 하렘의 모든 창에는 철창이 달려 있는데, 이는 외부의 침입과 여성 노예의 탈출을 막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톱카프 궁전의 서쪽에 자리한 하렘은 하나의 독립된 궁전으로 한평생 술탄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여인들의 희로애락이 숨어 있는 장소이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이곳은 술탄을 제외한 어떤 남자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하렘의 주인은 술탄의 어머니인데, 하렘의 수장인 모후는 궁궐의 실제 관리자로서 하렘 여성들과 술탄의 관계를 통제하고, 메카와 메디나에 보낼 종교기금도 관리했다고 한다. 술탄의 여인들이 살고 있는 하렘을 관리하는 일은 환관이 담당했다. 초기에는 코카서스 출신의 백인 환관들이 하렘을 수비했으나 16세기 말에 이르러 나일강 상류 출신의 흑인 환관들이 하렘을 지켰다. 흑인 환관들은 이스탄불로 실려 오는 도중에 거세되었다고 한다. 모후 아래에 왕자를 생산한 왕비들이 있었고 다시 그 아래에 후궁들과 젊은 여성들이 있었으며 여성 노예도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현대화되면서 하렘은 1909년에 그 기능을 잃어버리고 지금은 톱카프의 중요한 관광 명소로 남아 있다.
현재 일부만 공개되고 있는데 푸른 타일 장식과 스테인드글라스 벽화들이 매우 섬세하고 화려하며 아름답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이고, 창에는 창살이 달려 있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하렘의 아름다움에는 관광객들이 탄성을 내면서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하렘 표지
하렘 입구
각양 각색의 타일로 호화롭게 장식된 하렘의 내부
하렘 외부의 모습
톱카프 출구에 있는 오래된 나무
톱카프를 구경하면서 느낀 것은 오스만 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강대하고 엄청난 제국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술탄이 거주하던 곳이라지만 건물의 규모뿐만이 아니라 그 내부의 치장을 보면 그저 감탄만 할뿐이다. 타일을 하나하나씩 구워서 내부를 장식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인력과 경비가 사용되었는지 짐작도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왕궁을 비교해 보면 그저 말이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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