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아들과 함께 터키문명 산책 - 이스탄불 2 (술탄 아흐멧지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이제는 흔적밖에 남지 않은 술탄 아흐멧광

 

 아야 소피아 건너편에는 블루 모스크가 있고 그 옆에는 넓게 펼쳐진 광장이 있다. 이 광장의 터키어 정식 명칭은 술탄 아흐멧광장이지만 히포드로모스(히포드롬)로 더 알려져 있다.

 서기 3세기경에 비잔티움에 세워진 히포드로모스(전차 경주에 사용되던 경기장)는 동로마 제국의 스포츠와 사교 생활의 중심지였다. 서기 324,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이전하면서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히포드롬 경기장을 450m×130m 넓이에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확장되었다. 콘스탄티누스와 그의 후계자들은 제국 곳곳에서 기념물을 가져와서 이곳을 장식하였다. 하지만 제 4차 십자군 전쟁으로 철저히 파괴되어 지금은 자취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지금 남아 있는 것으로는 콘스탄티누스의 명에 따라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으로부터 이곳으로 옮겨온 청동기둥과 서기 390,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가져온 오벨리스크, 뼈대 부분이 남아 있는 콘스탄티누스의 오벨리스크 정도이다.

 히포드롬은 비잔틴 제국 시대에 중요한 정치적인 중심지로 전차 경주를 응원하던 집단들이 정치조직으로 바뀌어 종종 정치와 종교적인 소동이 일어나곤 했다. 십자군전쟁으로 콘스탄티노플이 약탈당한 이후 히포드롬은 사용되지 않고 버려지게 되었다. 1451년 이 도시를 탈환해 수도로 삼은 오스만투르크인들은 전차 경주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이곳에서 말을 타고 창을 던지는 경기를 하였기에 이곳을 '말의 광장'이라는 의미의 터키어 이름인 '앗 메이단'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이스탄불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 광장을 중심으로 이스탄불 역사지구를 관광한다. 이 주변을 둘러보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아야 소피아, 블루 모스크, 톱카프 궁전, 고고학박물관, 지하저수조 등등 그 외 여러 유적을 이루 셀 수 없다. 또 여기에서 시르케지역이나 그랜드 바자르 등도 가깝기 때문에 여유가 있으면 걸어다니면서 구경하기를 권한다.

 

 우리가 머문 숙소와 술탄 아흐멧 광장은 얼마 떨어져 있지 않고, 또 술탄 아흐멧 광장 지역이 이스탄불 역사지구라 수시로 왔다 갔다 하였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아야 소피아는 뒤에 보기로 하고 주변의 여러 곳을 거닐면서 구경을 했다.

 

 

이 광장의 주인 블루 모스크

 

 

술탄 아흐멧광장에서 보는 아야 소피아

 

 

*예레바탄 지하저수조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옆에 위치한 동로마 제국 시절의 저수조로, 로마 시대에 바실리카가 있던 자리라 바실리카 저수지(Basilica Cistern) 또는 터키어로 지하궁전이라는 예레바탄 사라이(Yerebatan Sarayi)’로 불리기도 한다. 콘스탄티누스 시대부터 시작해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인 532년에 에 끝난 대규모 지하 저수조로 길이 141m, 73m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이다. 원래는 예레바탄 사룬치(지하 저수장)’라 불리었으나, 그 규모로 인해 예레바탄 사라이(지하궁전)’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지하궁전이라고 불리는 12열로 정렬되어 있는 336개의 돌기둥은 당시 주변에 있던 수많은 신전 등의 기둥을 동원해서 세웠다고 한다. 기둥들을 잘 살펴보면 동일한 양식이 아닌 매우 다양한 양식의 기둥들이 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기둥들 중 헤라의 신전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지는 눈물의 기둥과 메두사의 머리가 받침으로 사용된 기둥이 매우 유명하다. 여러 모양의 기둥들 중에서도 가장 이색적인 것은 거대한 메두사 얼굴이 초석으로 사용되고 있는 기둥으로, 옆으로 뉘어 있거나 거꾸로 놓여 있는 메두사의 얼굴은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 기둥이 놓인 방식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을 한다. 메두사라는 괴물자체가 마주보면 돌이 되는 저주에 걸려있기에 눈길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얼굴을 뒤집어놓은 거라는 얘기도 있고, 건설하던 기독교도들이 이교도를 멸시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놓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 그냥 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추측으로는 비잔틴 제국에 기독교가 공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메두사를 은근히 수호신처럼 여기고 또 두려워하자 당시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받침으로 사용해 이교도적인 믿음을 상징적으로 끝냈다고도 한다. 이 저수조에서 메두사의 얼굴은 가장 낮고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현재는 가장 사랑받는 기둥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다.

 

현재 기둥 아래를 보면 물고기들이 보이는데 관상용으로 현대에 풀어 놓은 것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저수조에 물고기를 풀어 놓아 물의 수질을 확인했다고 한다. 어두운 열주 사이를 불빛을 따라 걷다 보면 물방울이 떨어진다.

 

신비롭고 인상적인 지하 풍경 덕분에 이곳에서 영화 007시리즈 '나를 사랑한 스파이'와 '인페르노'의 촬영지로 쓰이기도 했고, 간혹 콘서트나 여러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한 가지 단점은 지하에 조명이 밝지 않아 사진을 찍기가 너무 어려웠다.

 

 

지하 저수조 외벽

 

 

 

예레바탄 지하저수조(지하궁전) 외부

 

 

지하 저수조 입구

 

 

지하 저수조로 내려 가는 입구

 

 

 

 

지하에 늘어 선 열주들 - 최소의 조명으로 어둡다.

 

 

 

눈물의 기둥 설명판

 

 다른 기둘들은 아무런 장식이나 문양이 없이 그냥 울퉁불퉁한 표면으로만 되어 있는데 이 기둥에는 독특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사람의 눈과 비슷한 문양으로 물이 기둥을 따라 흐르는 모양이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메두사의 기둥 설명판

 

 

 

메두사 두상

 

 이 저수조는 아직 밑에 쌓인 진흙을 걷어내면서 발굴이 진행중이었다. 내가 간 날에도 일부는 막아 놓고 인부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소욱 체쉬메 골목

 

 소욱 체쉬메 골목은 대개가 잘 돌아보지 않는 곳이다.  톱카프 궁전의 벽을 따라 길게 이어진 골목으로 그냥 걷고 보면서 지나가는 곳이다. 이 골목의 남동쪽 끝이 아야 소피아쪽의 작은 광장으로 통한다. 이곳을 지나면 자그마하지만 아름다운 건물이 눈을 끈다. 바로 술탄 아흐멧 3세의 샘이다. '차가운 샘'이라는 골목 이름이 이 샘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샘은 오스만 제국의 번성기를 열었던 대재상 아브라함이 1728년에 아흐멧 3세를 위해 지은 것으로 굉장히 인상적이다.

 

 

 

 

책 모형과 골목의 벽

 

 

 

 

 

 

황제의 샘

 

 

이 광장에는 조금 덜 알려졌지만 많은 유적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이 술탄의 무덤이다. 이 술탄들의 무덤을 보면서 아주 화려하게 지어진 건물과 현란하게 치장된 아름다운 내부에 감탄한다. 여러 명의 술탄을 함께 모시고 내부에는 각각의 무덤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 아쉽게도 내가 지금 이 건축물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여튼 이 광장에 있으니 꼭 구경해 보시기를 바란다.

 

 

 

술탄들의 묘

 

 

 

내부의 아름다운 치장을 보면 술탄들의 권력과 권위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술탄 아흐멧 3세의 무덤 설명판

 

 

 

술탄 세림 2세의 무덤 설명판

 

 

외부 전경

 

 

 

 

술탄 무스타파 1세의 무덤 설명판

 

 

 

 

광장 주변의 유적

 

 

 *콘스탄티누스 오벨리스크

 

 콘스탄티누스 오벨리스크는 정확한 건축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4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술탄 아흐멧 광장 중앙에 있는 오벨리스크 중 하나이다. 원래 이 탑은 32미터 높이의 대리석에 금박 청동 장식물을 입한 아름다운 기둥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거칠게 깎은 벽돌 모양의 돌을 쌓아 올린 모습이다. 869년에 지진으로 꼭대기가 일부가 무너진 뒤 콘스탄티누스 7세가 보수했다. 당시에는 콘스탄티누스 7세의 조부인 바실 1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황금빛 청동으로 표면을 장식했던 아름다운 기념탑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제 4차 십자군이 청동을 벗겨 약탈해 가면서 옛 모습을 잃고 그것을 붙였던 자리만 보기 흉하게 남아있다. 현재의 것은 1894년 다시 복구한 것이다.

 

 이 광장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 델포이에서 가져와 경마장 광장에 세워두었던 2마리의 청동 말 조각이 있었는데 제4차 십자군들이 이 말들을 베네치아로 가져갔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의 오벨리스크 설명판

 

 

 

 

오벨리스크 전 후면의 모습

 

 

 

오벨리스크 기단

 

 * 세 마리 뱀의 기둥

 

 이 기둥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앞에 있던 것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새로운 수도를 장식하기 위해 330년에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나의 글 그리스 델포이편에서 아폴론 신전을 이야기하면서 이 청동 기둥의 복제품이 아폴론 신전에 남아 있고 진품은 이곳 술탄 아흐멧 광장에 있다고 소개하였다. 바로 그 기둥이다.

 기원전 479년에 있었던 플라테이아 전투에서 31개의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군이 페르시아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페르시아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인 청동방패를 녹여 만들어 기원전 478년에 아폴론 신에게 바친 것으로 아직도 기둥 밑에는 31개 도시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원래는 기둥 꼭대기에 3개의 뱀 머리와 황금 그릇이 있었지만 제 4차 십자군 전쟁에서 황금 그릇이 사라졌고, 1,700년경에 뱀 머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1847년에 일부가 발견되어 지금은 이스탄불고고학박물관에 있다.

 

 

뱀의 기둥 설명판

 

 

일명 뱀의 기둥

 

*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Obelisk of Theodosius, Obelisk of Tutmoses III]

 

 히포드로모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광장 한가운데 있는 '테오도시우스의 오벨리스크'. 기원전 15세기경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스 3세가 룩소르 카르나크신전의 제 7탑문 앞에 세운 오벨리스크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2세가 357년에 알렉산드리아로 오벨리스크를 옮겼으며, 390년에 테오도시우스 1세가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 오벨리스크는 원래60미터였고 총무게도 800톤이었는데 당시에 그대로 옮기기에 너무 무겁고 위험해서 당시 사람들이 이를 셋으로 잘라 그 가운데 윗부분만 이집트에서 가져와서 세웠다. 오벨리스크를 받치고 있는 기단 네 면에는 이것을 세울 당시의 조각품들이 있다.

 아스완(Aswan)에서 생산되는 붉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오벨리스크의 높이는 본래 하단부를 포함해 30m 정도였으나 현재는 25.6m이다. 오벨리스크의 4면에는 각각 투트모스 3세가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점령한 것을 기리는 내용이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다. 흰 대리석으로 된 하단부는 테오도시우스 1세 때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히포드로모스의 전차 경주와 황제 가족들의 모습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설명판

 

 

 

 

 

오벨리스크의 네 면의 모습

 

 

오벨리스크 기단의 모습

 

 

 * 술탄 아흐멧 자미(Sultan Ahmed Mosque : 일명 블루 모스크)

 

 터키를 대표하는 이스탄불 술탄 아흐멧광장에 서 주인같이 위용을 자랑하며 있는 사원으로, 사원의 내부에 3만 개의 파란색과 녹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이 모스크는 17세기 초에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술탄 아흐멧 1세가 1609년에 짓기 시작하여 1616년에 완공했다. 아야 소피아를 능가하는 건물을 짓겠다는 의도로 아야 소피아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하는데.... 의문이다. 술탄 아흐멧 모스크는 건설 당시에 "alti(여섯)""altin(황금)"을 혼동한 번역상의 오류로 황금 미나레(Minare : 첨탑) 하나를 세우는 대신 6개의 미나레가 세워졌다고 한다. 다행히 술탄은 미나레를 너무나 마음에 들어 했고, 덕분에 6개의 미나레와 그리고 건축가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늘날 술탄 아흐멧은 터키에서 유일하게 6개의 미나레를 자랑하는 모스크이다. 이스탄불의 아시아 쪽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풍경은 배로 이스탄불로 들어올 때 멀리서도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모스크의 웅장한 실루엣을 보는 것이다. 황혼 무렵 보스포루스 해협의 크루즈를 타면 이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뚝 서 있는 미나레 6개는 술탄의 권력을 상징하며, 이슬람교도가 지키는 15회의 기도를 뜻하기도 한다. 사원 앞의 정원에는 언제나 화사한 꽃이 피어 있어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정신없는 이스탄불 한복판에서 평화로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술탄 아흐멧 모스크에 들어가 한낮의 뜨거운 햇빛을 피하면서 잠시 경건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자. 모스크 밖에는 뾰족하고 날렵한 미나레가 위용을 자랑하며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 모스크는 외부 정원과 내부 정원, 본당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외부 정원에는 술탄 아흐멧 1세의 무덤이 있고, 내부 정원에는 기도를 드리기 전에 손발을 씻는 분수대가 있다.

 

 모스크의 정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분수를 바라보고 있다. 커다란 안뜰을 지나가면 모스크 내부로 이어지는데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과 관람객들의 출입구는 다르다. 관람객의 출입구로 실내로 들어갈 때는 신발은 벗어야 하며, 복장도 통제를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낮게 매달린 샹들리에가 섬세하고 정교한 푸른 타일에 빛을 반사시키고 있다. 고요한 실내에서 차분하게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 경탄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며, 누구라도 한번은 자신을 잊어버리고 경건한 마음을 가진다. 기도 시간이 지나면 관람객에게 장소를 자유로이 비워준다.

 

 

블루 모스크의 미나레

 

 

 

 

블루 모스크의 전경

 

 

술탄 아흐멧 모스크(블루 모스크) 설명판

 

 

블루 모스크 전체 사진

 

 

 

 

 

 

 

블루 모스크 외부 모습

 

 

 

 

 

 

 

 

 

 

 

블루 모스크 내부의 화려한 모습

 

 

 

블루 모스크에서 보는 아야 소피아

 

 * 터키이슬람예술박물관(Türk ve İslam Eserleri Müzesi)

 

 터키이슬람예술박물관은 술탄 아흐멧 광장 북서쪽에 있는데 광장에서 길만 하나 건너면 된다. 터키 이슬람 문화와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예술품과 유물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1983년에 개관했다. 박물관 건물은 1524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수상이었던 이브라힘 파스하(İbrahim Pasha)의 궁전이었다. 그가 사망한 뒤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1983년 박물관으로 개조한 뒤 일반에 공개했다.

 이 박물관에는 종교 미술품과 정교한 수공예품 등 총 4만점 이상의 터키 이슬람 문화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 이곳에 소장되어 있는 카펫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카펫으로 불린다. 가장 큰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고, 꽃들을 모티브로 한 것에서 동양적인 테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카펫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었는데 섬세하고 화려한 문양과 정교함이 묻어 있으며, 크기에서도 세계적인 것으로 꼽힌다.

 또 금박으로 장식된 코란과 가위 등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필사본 책자와 석공예품 등도 함께 전시돼 있다.

 

 

터키이슬람예술박물관 입구

 

 

터키이슬람예술박물관 전경

 

 

 

금박의 코란

 

 

 

 

화려한 공예품

 

 

 

 

 

엄청난 크기의 카펫들

 

*그랜드 바자르

 

 이스탄불에 위치한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는 터키의 전통 특산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터키 이름으로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의 카팔르 차르쉬(Kapar Carsi)라는 시장은 아치형 돔 지붕으로 덮인 대형 실내 시장으로, 일반적으로 그랜드 바자르로 알려져 있다.

 

 1455~1461년 술탄 메메드 2(Mehmed II)의 명에 의해서 원래는 마굿간이었던 자리에 건축되었으며 16세기 술탄 술레이만 1(Suleiman I) 통치 시기의 대대적인 확장을 비롯하여 1896년 지진과 1954년 화재 이후에 대규모의 복원을 통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하나의 작은 도시라고도 할 수 있는 카팔르 차르쉬는 30,700의 면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실내 시장으로, 현재 60여 개의 미로 같은 통로에 5,000여 개의 상점이 있으며 2개의 주요 통로 끝에 있는 입구 4개를 포함하여 모두 20여 개의 입구가 있다. 시장에는 각종 보석류, 피혁류, 카펫, 향신료, 형형색색의 도자기와 기념품을 포함한 각종 공예품과 특산품 등등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 곳은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을 연결하는 지리적 특성으로 비잔틴시대부터 동서양의 교역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오늘날에는 하루에 3-4십만 명의 관광객이 터키를 관광한 기념품을 사는 곳이다. 관광객이 물건을 살 때는 상당히 흥정을 잘 해야 한다. 반값에 구입해도 바가지일 경우가 많다. 자신이 생각한 가격이 정가라고 믿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시장의 외부와 한 출입구

 

 

 

Grand Bazaar라고 적혀있고 1461년이라는 표시가 있는 아름다운 문

 

 

 

 

 

 

 

 

 

 

 

시장 내부의 여러 모습

 

 우리가 머문 숙소가 이 시장과 가까워 그랜드 바자르를 몇 번이고 갔다. 그리고 간단한 선물을 사기도 하였다. 아들은 이 시장에서 구두와 가죽 신발을 구입했다. 가격과 기능에 만족하면서 짐만 되지 않으면 더 사고 싶은 물건이 많다고 아쉬움이 가득하며 말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제품의 품질이 뛰어나다. 특히 가죽제품은 우리가 말하는 가성비로 볼 때 우리 물건보다 나은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장미 오일을 구입했다. 물론 적당한 흥정을 하였는데, 내가 부른 가격에 별다른 의의를 달지 않고 선뜻 응하는 것을 보고는 더 깍아도 되지 않았나 생각하였으나, 내가 희망한 가격이라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