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터키문명 산책 - 이스탄불 1 (갈라타지역 주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여러 겹겹의 도시, 이스탄불
이스탄불은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흑해와 지중해 사이에 있는 보스포루스 반도에서 전략적 위치에 있다. 이 도시는 북쪽으로는 자연 항구인 골든 혼(Golden Horn), 동쪽으로는 보스포루스 해협, 남쪽으로는 마르마라(Marmara) 해에 둘러싸인 반도에 있다.
이스탄불은 인구 약 1400만으로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해상 교통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교통의 요지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는 이스탄불은 기원전 660년 그리스시대에는 비잔티움이라고 불렀으며,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가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삼으면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렀다. 395년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되면서 콘스탄티노플은 비잔틴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서로마제국은 쇠퇴하여 결국 멸망하였고, 비잔틴제국이 번성일로를 걷게 되자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동방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1453년 술탄 메메드 2세가 이곳을 점령하면서 오스만제국의 중심적인 도시가 되었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3대륙을 아우르는 대제국인 오스만제국의 수도로서의 이스탄불은 상업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도시이기도 하여 전통적인 비잔틴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조화된 새로운 복합문화가 창출되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번영을 누려오던 이스탄불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제국이 무너지자 전승국들에 의해 점령당한다. 1920년 8월 10일 전승국은 오스만 정부에게 세브르 조약을 강요하고, 이스탄불을 포함한 해협지대를 국제 관리위원회의 관리를 받도록 하였다. 이 조약에 반대한 무스타파 케말 파샤가 앙카라에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여 소아시아에 침입한 영국군을 격파하였다. 이 승리로 신생 앙카라 정권과 전승국 간에 로잔 조약이 체결되었고, 이스탄불은 다시 터키인들의 수중으로 돌아왔다. 1924년 10월 29일 터키공화국이 선포되고 앙카라가 수도로 결정되었다. 이로써 이스탄불은 수도로서의 위치를 잃고 터키공화국의 한 도시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1923년까지 1,600년 동안 수도였던 이스탄불에는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오스만 제국시대에 이르는 다수의 유적들이 분포해 있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해협, 골든혼(Golden Horn), 마르마라해(海)에 의하여 베욜루, 이스탄불(파티프), 위스퀴다르의 3지구로 나뉘고, 골든혼의 갈라타교와 아타튀르크교로 연결되어 있다. 골든혼의 남쪽인 이스탄불은 옛날의 이스탄불이 자리 잡았던 전통 있는 지구로, 지금도 비잔틴시대의 성벽이 서쪽 경계를 둘러싸고 있다. 아흐메드 사원(블루모스크), 하기아 소피아(현재 박물관), 토프카 궁전(현재 박물관), 고고학박물관, 터키-이슬람 미술관, 고대 오리엔트미술관, 그리고 이스탄불대학 등이 있으며 이 도시의 전성기를 생각나게 하는 대시장(그랜드 바자르)도 있다. 대개의 관광객들이 머무는 곳이다.
이스탄불은 오래된 역사의 도시고 넓기 때문에 여러 지역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상당한 날을 이스탄불에 머물렀지만 제대로 본 것 같지가 않다. 저번 봄에 이스탄불에 머무면서 구경한 것까지 포함해서 소개를 한다.
먼저 소피아성당은 뒤에 보기로 하고 시르케지역 중심의 시내를 구경하면서 해협을 지나 갈라타 지역으로 간다.
갈라타 타워
갈라타 타워 위에서 필자
점심을 먹은 케밥 집 - 자기 집이 유명한 집이라고 선전을 많이 하고 있다.
수선 중인 시르케지역
처음 오리엔트 특급이 다니기 시작하던 시절의 시르케지 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파리를 출발해 여러 도시를 거쳐 이스탄불로 오는 오리엔트 특급(Orient Express) 열차가 1883년 10월부터 이 역에서 운행되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의 마지막 기차역인 시르케지 역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의 유명세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그전부터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883년부터 프랑스 파리와 터키 이스탄불 구간을 운행했던 오리엔트 특급 열차는 여러모로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파리에서 출발하여 로잔, 베네치아, 베오그라드, 소피아를 거쳐 이스탄불에 도착하는 이 열차는 사람들에게 유럽을 기차를 타고 횡단한다는 놀라움과 기쁨으로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러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된 유럽 사람들은 이 기차 안에서 서로 겹쳐지고 섞여서 여행을 했다. 비행기의 발달로 1977년 5월에 운행이 축소되어 부다페스트까지만 운행되다가 2007년부터 다시 비엔나까지 확장되어 운행한다. 지금 소피아로 가는 국제선은 다른 역에서 출발하지만 이 역에서 표를 팔고 버스로 이동을 한다. 역 안에는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주제로 한 레스토랑과 대합실이 남아 있다. 지금은 초라한 역사로 보이지만 오리엔트특급열차가 운행되던 때에는 유럽의 부호들이 모두 이 역사에서 열차를 기다렸다.
저 멀리 보이는 갈라타 타워
어디에나 보이는 거리의 악사
갈라타 다리
갈라타 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
갈라타 다리(터키어: Galata Köprüsü)는 도개교(跳開橋)로서, 총 길이는 490m이고, 폭은 42m로, 이스탄불의 카라쾨이(Karaköy)와 에미뇌뉘(Eminönü)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양방향으로 각각 3차선 차도와 도보가 있으며, 중앙에 트램(Tram) 노선이 지나간다. 19세기 후반부터 갈라타 다리는 터키 문학, 영화, 시, 소설 등에서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금각만에 세워진 다리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6세기경 유스티니아누스 1세 당시의 기록에서 볼 수 있다. 1453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당시 오스만 투르크 군대는 배를 서로 연결해서 임시 부교를 만들었다. 1502년에 세기의 천재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다리 설계를 하였으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취소되었다. 현재의 갈라타 다리는 다섯 번째 다리로, 터키의 건설회사인 STFA가 네 번째 다리가 있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지었다. 1994년 12월에 완공됐다.
현재는 갈라타 다리에서 낚시를 즐기는 터키인들로 유명하고, 이 모습을 지켜보고 이스탄불의 경치를 감상하고자 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다리 아래층에는 생선요리 식당과 술집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관광객을 끌고 있다.
이 갈라타다리에서 겪은 에페소드 하나를 소개하면, 저번 봄에 왔을 때, 다리에는 구두를 딱는 사람들이 많다. 걸어 가는 도중에 그 중 한 사람이 솔을 흘리고 지나가서 주워주니 고맙다고 구두에 솔질을 해 주면서 딱아 준다. 처음에는 감사의 표시인 줄 알았는데 조금있다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돈을 요구한다. 아이들이 병이 들었다, 아내가 아프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돈을 주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완전히 장사를 위해 일부러 도구를 흘리는 것이다. 뒤에 숙소로 돌아와서 보니 이스탄불에서 조심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행 중에 이런 조그마한 에피소드도 있는 것이 재미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생 오렌지 주스
주문을 하면 즉석에서 주스를 짜 준다. 너무나 달콤하고 시원한 맛에 반해서 아들은 이 주스를 수시로 사 먹었다. 값도 비싸지 않고, 여행에 지친 몸의 피로를 달래 줄 수 있는 좋은 음료다. 탄산 음료만 마시면서 여행을 하기보다 시원한 생과일 주스로 입안을 향긋하게 하고 피로를 씻기를 바란다.
에미 뇌뉘에서 보는 보르포루스 해협의 여러 모습
에미뇌뉘는 보스포르스해협을 운행하는페리들이 출벌하는 중심지이다. 이곳은 항상 크루즈승객을 끌어 모우는 호객꾼의 모습과 음악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고등어케밥과 홍합으로 만든 밥이 유명하며 노점상들이 북적이는 곳이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면 갈라타 타워쪽으로 올라가는 언덕에 조그마한 지하철인 튀넬이 있가. 튀넬 (Tünel)은 런던 지하철(1863년) 다음으로 오래된 지하철로, 이스탄불의 지하에 지어진 강삭철도로 길이가 600m도 안되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지하철이다. 1875년 1월 17일에 개통된 튀넬은 금각만의 북쪽 해안에 위치하며, 카라쾨이(Karaköy)와 베이욜루(Beyoğlu)의 구역을 연결하는 2개의 역이 있다. 19세기 후반에 페라(현 베이욜루)와 갈라타(현 카라쾨이)의 지역은 큰 언덕으로 분리되고 경사가 심하여 이 두 지구를 오가는 것이 어려웠다. 1867년 프랑스 기술자인 유진 앙리 가방드가 이 두 지역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언덕을 오르내리는 강삭철도를 생각해냈다. 건설은 1871년 7월 30일에 시작되어 1875년 1월 17일에 개통하였다.
아래 역은 카라쾨이이고 위쪽 역은 베이욜루다. 위쪽 역은 아래역보다 61.55m 높다. 이 노선은 원래 두 개의 평행선으로 지어졌으나, 현재는 두 개의 열차가 중간에 나란히 통과하는 복선 구간을 제외하고는 단선으로 운행한다. 현재는 수 많은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관광열차다.
튀넬 기차
튀넬의 역사를 전시해 놓았다. 튀넬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갈라타 타워에 도착한다. 갈라타 타워는 이 지역의 랜드마크로 가장 높은 곳에서 위치하고 있으며 타워의 전망대에서는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해협인 보스포루스 해협과 골든혼 그리고 이스탄불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특히 해질 무렵의 이스탄불의 풍경은 환상이라고 한다. 원래 있었던 타워는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파괴되었고, 1348년에 제노아 자치령에 의해 타워 오브 크라이스트 (그리스도의 탑)라는 이름으로 재건축되었다. 전쟁포로를 가두는 감옥으로도 사용되었고, 화재감시탑으로도 사용되는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1960년대에 목재로 된 내부를 콘크리트로 바꾸고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타워의 높이는 62.59m이며 꼭대기의 장식물까지 포함하면 66.90m이다. 이것이 건축될 당시에는 그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이 타워는 비잔틴 인들에게는 ‘메가로스 피르고스’(Megalos Pyrgos: 큰탑이란 의미)로 불리었고, 1638년에 ‘헤자르펜 아흐멧 첼레비’라는 사람이 자신이 만든 날개를 달고 이 타워의 꼭대기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 아시아 쪽인 우스크다르 언덕까지 날아가는 비행을 성공하였다고 해서 일반인들에게는 그의 이름을 딴 ‘헤자르펜 타워’라고 불리기도 했다. 우리나라 경주와 실크로드 우호협력 기념비 분수와 설명판 갈라타 타워의 내부 갈라타 타워 전망대에서 한 비퀴 돌면서 보는 이스탄불의 사방 풍경 터키식 커피 * 므스르 차르쉬(이집션 바자르) 1663년 메흐멧 4세의 어머니인 하티제가 지은 시장으로, 그 당시에 향신료의 대부분을 이집트에서 수입했기 때문에 므스르(이집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한다.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상품을 팔고 있지만 이스탄불의 향신료 거래의 중심지이다. 예니 자미에 딸린 복합건물로 음식물부터 온갖 종류의 물품이 있어 기념품을 사기에는 적합한 곳이다. 물품이 아주 다양하며, 값도 그렇게 비싸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물건을 흥정을 아주 잘 해야 한다. 그들이 부른 값에서 반이상을 깍아도 아마 될 것이다. 나도 여기서 가죽 신발을 한 컬레 사서 여행 중에 요긴하게 신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구두 대용으로 잘 신고 다닌다. 므스르 차르쉬 입구 현판 - 1664년이란 표시가 보인다. 여러 곳의 구경을 마치고 다시 시르케지 역 부근에 있는 과자점을 들렀다. 죽기전에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는 터키식 딜라이트를 먹기 위해서다. 과자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집이라는 곳을 들어갔다. 여기서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오면서 한국의 여러사람들에게 줄 기념품으로 과자들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가게 상호와 연혁을 표시 가게 내부와 손님들 창가에 앉아 바다를 보면서 과자를 먹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자리가 나올 수 있다. 그런 기대는 아예 하지 마시고 자리가 있는대로 앉아서 그냥 맛있는 케익과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것이 상책이다. 가게 외부 전경 이스탄불은 너무나 큰 도시이고 오랜 역사의 도시이기에 몇 일간의 여정으로는 주마간산식의 구경밖에 못한다. 그래서 구역을 나누어 보고 싶은 곳을 집중하여 볼 수 밖에 없다. 오늘은 주로 에미뇌뉘와 시르케지 주변, 그리고 갈라타 타워를 중심으로 하루를 즐겼다. 내일은 또 어디를 집중하여 갈 것인지를 아들과 상의를 해야 한다. 여태까지 아들을 따라 다녔지만 이스탄불은 내가 봄에 약 열흘을 머물렀던 곳이라서 대강은 알기에 아들도 내 의견을 물어 다니기로 한다.
'鶴이 날아 갔던 곳들 > 발따라 길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과 함께 터키문명 산책 - 이스탄불 3 (탁심지구와 보스포루스해협) (1) | 2018.05.21 |
---|---|
아들과 함께 터키문명 산책 - 이스탄불 2 (술탄 아흐멧지구) (0) | 2018.05.18 |
아들과 함께 터키문명 산책 - 셸축(셸주크) (0) | 2018.05.12 |
아들과 함께 터키문명 산책 - 에페소스 (0) | 2018.05.09 |
아들과 함께 터키문명 산책 - 파묵칼레 2 (히에라폴리스) (0) | 2018.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