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아들과 함께 터키문명 산책 - 셸축(셸주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초기 기독교의 성지 셸축

 

 에페소스가 있는 셸축은 셸주크라고도 한다. 셸축은 터키 서부 이즈미르(Izmir) 주에 있는 도시로 에페소스 유적이 있어 유명하다. 이즈미르 시에서 남쪽으로 73거리에 있으며, 인구는 약 40,000명이 채 안되는 조그만 도시다. 고대 지명은 아이오스 테올로고스(Ayios Theologos)이며, 현재 지명은 12세기 무렵 이 지역에 정착한 셀주크투르크족에서 유래하여 1914년에 붙여졌다. 도시 전체에는 그리스, 기독교, 이슬람 문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평화로운 도시다. 시내에 성 요한교회와 비잔틴 수도교, 이사 베이(Isa Bey) 모스크가 있으며, 고고학박물관과 아르테미스 신전이 우리 눈길을 끈다. 시 외곽에는 성모 마리아의 집과 에페소스유적이 있다. 에페소수가 너무 유명해서 셸축에서 에페소스만 생각하지만, 사실 이 도시에는 그리스도교와 매우 많이 연관이 있는 도시다.

 

 

박물관에 있는 아르테미스 여신상

 

 *성모 마리아의 집 

 

 셸축 숙소에서 성모 마리아의 집까지 가려고 하니 교통편이 마땅하지 않다. 그래서 택시를 또 부르기로 했다. 여행의 경험상 택시비가 비싸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역시나 성모 마리아의 집을 왕복하고, 우리가 구경하는 시간까지 약 2시간 반이나 걸렸는데 50리라(우리돈 15,000원 정도)이다.

 

 택시로 편안하게 간 곳이 성모 마리아의 집(또는 동정녀 마리아의 집)이다.

 

성모 마리아의 집(터키어: Meryemana 또는 Meryem Ana Evi)은 터키 셀주크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에페소스 인근의 코레소스 산에 자리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공동 순례지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선종하여 승천할 때까지 사도 성 요한과 함께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성모 마리아의 집터에 당도하면 집터의 중간지점에 작은 마리아의 동상이 자비롭게 서 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곳을 지나면 돌로 쌓아 지어진 성모 마리아의 집이 나타난다. 전 세계의 많은 카톨릭 신자들이 참배하여 기도를 드리는 곳이다. 이곳을 찾은 사람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촛불을 밝히며 기도를 올리거나 소원을 빈다. 계단 아래엔 만병을 치료한다는 성수를 수도시설로 만들어 놓아 사람들이 성수를 마시거나 병에 담아가기도 한다. 성수 터 옆에는 개인의 간절한 소원을 적은 천 조각과 종이 조각들이 촘촘히 벽에 걸려 있다.

 

 이 곳에서 18811018일 프랑스의 아베 줄리앙 꾸예 신부가 작은 석조건물과 고대 에페소 유물을 발견했다. 신부는 그 건물이 클레멘스 브레타노의 저서에 기재된 독일 수녀 안나 가타리나 에메리히(1774-1824)가 환시를 통해 본 성모 마리아가 예수가 사망한 뒤 남은 생을 보냈던 집의 형태와 놀랍게도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으나 발견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였다. 10년 후, 프랑스의 마리 드 망다 그랑시 수녀에 의해 폴린 신부와 융 신부 등 두 명의 라자로회 선교사들이 1891729일 꾸예 신부의 안내서를 보고 그 건물을 재발견하였다. 이들은 폐허가 되어 지붕도 없는 이 돌집이 오랫동안 이곳 주민들이 거룩한 장소로 여기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곳 주민들은 초대 교회 시절 에페소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의 후손들이었다. 그들은 이곳을 터키어로 동정녀의 문간(Panaya Kapulu)’이라고 불렀다. 마리 드 망다 그랑시 수녀는 이곳 마리아의 집에 조그마한 가톨릭 성당을 하나 세웠다. 동정 마리아의 집 발견은 12세기부터 이야기된 동정 마리아의 에페소 선종 전승의 신빙성을 한층 높여주었다. 1961년 교황 요한 23세는 이곳을 성모 마리아의 집으로 공식 선포한다. 이후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와 1979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직접 방문하면서 성지로 자라매김을 하였다.

 

 

성모 마리아의 집 입구 표시판

 

 

입구에 보이는 구유

 

 

 

유네스코 유적 표시와 이정표

 

 

이곳을 소개하는 설명판이 여러 국어로 쓰여 있는데 그 중에 한국어 설명판도 있다.

 

 

성모상

 

 

 

 

 

 

 

성모 마리아의 집 외부와 내부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바깥에서 내부를 찍은 사진인데, 이 사진을 찍고 아들 녀석에게 심한 질책을 들었다. 내부를 찍지 못하게 하면 안 찍어야 된다고......

 

 

성모상

 

 

 

이곳에서 나오는 성수 - 수도 시설을 해 놓았다.

 

 

 

성수 옆의 벽에 매달아 놓은 소원 쪽지

 

 

 

 

 

 

 

 

 

주변의 여러 모습

 

 

 

성모상

 

 이곳 구경을 마치고 입구쪽으로 가면 조그마한 기념품가게가 있다. 물론 기념품은 카톨릭의 용품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곳은 카톨릭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모 마리아의 승천지이다. 그러므로 많은 카톨릭신자들은 조그마한 병에 담긴 성수나 십자가, 묵주 등을 기념으로 구입한다.

 

 

점심 먹은 레스토랑의 간판

 

 

 

 

시내 풍경

 

 

 점심을 먹고 길을 걸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며 도착한 곳이 성 요한교회[St. John's Cathedral]이다.

 

 *성 요한교회

 

 성 요한교회는 예수의 12제자 중 사도 요한을 기념하는 교회다. 요한은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한 뒤 셸축으로 들어와 노년을 보냈다.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요한의 무덤에 세운 교회를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6세기경에 사도 요한을 추념하기 위해 교회를 증축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순례자들의 꼭 들러야 하는 가장 중요한 교회로 여겼다. 교회는 길이 110m, 폭 140m에 6개의 돔을 가진 거대한 십자가 형태의 건물이다. 7세기에는 교회 주변에 성을 쌓아 교회로 들어가려면 성벽 문부터 지나야 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곳에서 많이 순교했기에 박해의 문이라고 부른다. 14세기에는 자미로 사용되다가 몽고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다. 오늘날에는 교회 터와 건물 유적이 남아 있으며 많은 유적들이 복원되어 있다. 본당의 동쪽 끝에는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으며, 대리석 석판위에는 이곳은 나의 영원한 쉴 자리, 여기서 살게 될 것이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카톨릭의 중요한 성지순례 장소로 내가 이곳을 갔을 때에도 한국의 순례단이 버스 3대로 와 있었다.

 

 

멀리 보이는 성 요한 교회

 

 

성 요한 교회 표지판

 

 

성 요한 교회로 들어가는 입구

 

 

 

 

요한의 생애 설명판

 

 

 

 

성 요한의 무덤 표시판

 

 

 

 

성 요한의 무덤

 

 

십자가 모양의 건물 구조 조감도

 

 

 

 

 

 

 

성 요한 교회 설명판

 

 

성 요한 교회 전경

 

 

성 요한 교회 외부 성벽

 

 

요한 교회에서 보는 이사 베이 자미

 

 이 자미는 1375년에 다마스쿠스 출신의 건축가 디마쉬클리 알리가 설계한 것으로, 독특한 담백함이 있다.

 

 

 

Isa Bey Hamam 유적지 설명판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가는 길에 있는 DR. SABRI YAYLA를 기념하는 거리 

 

 

 

 

 거리를 제법 걸어 가니 이름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유적은 거의 폐허와 다름 없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나온다.

 

 *아르테미스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아르테미시온)은 드물게는 디아나 신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의 신전으로 BC 8세기경에 120년에 걸쳐서 세워졌는데, 장대하고 화려하여 고대세계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힌다. 신전은 2중 주주식의 이오니아양식으로 바닥면이 세로 55m 가로115m에, 높이 19m의 기둥 수 127개의 거대한 규모이며, 원주 수십 기의 기단부에는 인물의 부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자취도 없다. 현재는 신전의 토대와 조각 파편만이 기둥 하나와 외로이 남아있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목록을 작성한 시돈의 안티파트로스는 당대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전차(戰車)를 위한 길이 나 있는 바빌론의 높이 치솟은 성벽을 보았고, 알페우스가 세운 제우스 신상(神像), 공중정원, 태양의 거상과 수많은 노동력으로 지은 높은 피라미드와 거대한 마우솔로스의 묘를 봤었다. 그러나 내가 구름 위에 치솟은 아르테미스의 집을 보았을 때, 그들 다른 불가사의들은 그 빛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보라, 올림푸스를 빼면, 어떤 장대한 것에도 태양이 비추지 아니하였구나'"

 

 아르테미스 여신 신앙은 1세기 무렵까지 강하게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약성서 사도행전 1921절에서 41절에는 바오로가 에페소스에서 겪은 아르테미스 신전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사도 바울이 신의 이름으로 우상 숭배를 금하자 에페소스인들이 격렬하게 저항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파괴된 뒤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대영박물관이 후원하고 존 터틀 우드가 이끄는 탐사대가 6년의 탐색 끝에 1869년에 발굴하였다. 그 때 발견된 유물의 대부분이 지금 대영박물관에 있다 한다. 지금 우리는 달랑 서 있는 기둥 하나만 본다. 거의 폐허와 같이 보이는 이 신전에서 과거의 영화롭던 시절의 신전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무상한 역사의 흐름에서 우리의 상상을 얼마나 끌어 올려야 이 신전을 회상할 수 있을까?

 

 

아르테미스 신전 표시판

 

 

신전 설명판

 

 

유네스코 표지판

 

 

옛 신전의 조감도

 

 

아르테미스 신전 전경

 

 

 

아르테미스를 마지막 지키고 있는 기둥 하나

 

  

 

 

 

 

아르테미스 신전의 여러 모습

 

 잡초 사이로 아르테미스 신전의 유적이 돌무더기로 뒹굴고 있다. 이 신전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면서 버려졌다. 그 뒤에 신전의 돌들을 이용하여 성 요한 교회와 하기아 소피아 성당들을 짓는데 사용하였기에 복구는 영원히 불가능한 상태다. 그저 과거의 영광의 흔적만을 엿보고 우리는 발길을 돌린다.

 

 

 * 에페소스고고학박물관 

 

 에페소스고고학박물관은 터키 서부 이즈미르 주 셸축(Seljuk)에 있는 박물관이다. 에페소스 박물관은 에페소스 유적지, 아르테미스 신전 및 주위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대부분 영국이나 다른 유럽국가로 반출되자, 터키 정부는 이후 에페소스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의 해외 반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독자적인 전시시설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이 계획에 따라 1983년에 박물관을 세웠다.

 이 박물관 가장 큰 특징은 유물을 연대기별로 전시하지 않고, 대신 주제별로 전시를 하거나 유물이 발굴된 장소를 기준으로 전시하고 있는 점이다. 출토 장소별로 전시하며, 정확한 복원도를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관람객이 이해하기 쉽다. 전체 소장유물은 약 25000여 점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시되는 것은 1,000여 점에 불과하여 조금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드는 박물관이다. 가장 중요한 유물은 아르테미스 여신상인데, 하나는 아르테미스 신전, 다른 하나는 에페소스의 플리타네이온에서 출토된 것이다.

 

 로마시대에 에페소스는 소아시아와 로마를 잇는 중심 도시로 번영을 누렸고 이 때 유적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아르테미스 에페시아 상은 에페소스 유적 중 하나로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1세가 그리스도교를 공식화하면서 그리스의 다신교를 박해하고 신전을 모두 닫게 했는데, 당시 종교 주관자들이 이 성상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몰래 숨겨왔다고 한다.

 

 

 

 

에페소스고고학박물관을 가리키는 이정표와 박물관

 

 

박물관 뜰에 있는 부조물

 

 

입구에 있는 입상

 

 

얼굴과 손 발이 다 잘린 아프로디테상

 

 

제우스의 두상

 

 

프리아포스 상

 

 프리아포스는 디오니소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들판, 정원, 과수원의 신이다. 과장되어 있는 남근이 특징으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남근 위에는 농작물이 한 가득 놓여져 있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여러 전시물들

 

 

 

 

박물관 전시물에 대한 설명

 

 

 

 

 

 

 

 

 

여러 조각상과 부조들

 

 

 

 

두 개의 아르테미스 여신상

 

 가슴 부분에 달려 있는 20여 개의 알 모양은 여신의 유방, 소의 고환, 꿀벌의 알 등 다양하게 해석된다. 이런 알 모양이나 여신상에 새겨진 여러 조각은 모두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상징물들이다.

 

 

 에페소스고고학박물관을 끝으로 셸축과 에페소스의 산책을 마친다. 내가 전혀 꿈꾸지 못하고 있던 에페소스를 보게 된 것은 이번 여행에서 얻은 또 하나의 기쁨이며 즐거움이었다. 지나온 많은 유적지와 유물들에 비해서 에페소스는 전혀 규모나 아름다움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곳이다. 아니 내눈을 더 즐겁게 하고 내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지금으로부터 2 - 3천년전에 이런 장엄하고 거대한 신전과 건물을 지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내 생각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인간의 위대함은 지금이나 미래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있었던 그날부터이다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제 이 여행도 막바지를 향해 간다. 이제 셸축을 떠나 이스탄불로 간다. 터키 여행의 백미인 이스탄불을 볼 것이다. 사실은 지난 봄에 이스탄불에서 약 열흘을 머물러 많은 것을 보고 즐겼지만 아들과 함께 또 이스탄불을 찾게 되니 새로운 느낌으로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