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터키문명 산책 - 아프로디시아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바친 도시 아프로디시아스(Aphrodisias)
이즈미르에서 약 5시간 가량 기차를 타고 데니즐리에 도착하여 돌무쉬를 타고 파묵칼레로 향했다. 밤늦게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려고 나가니 모두들 문을 닫고 있다. 겨우 조그마한 음식점을 찾아 물으니 영업을 한다고 하여 끼니를 때웠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맥주를 사려고 하니 쉽지가 않다. 터키는 다른 이슬람국가에 비해 주류에는 좀 여유로운 편이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아무 곳에서나 주류를 팔지는 않는다. 그래서 몇 군데 슈퍼를 돌아 겨우 맥주를 몇 캔 구입하여 숙소에 돌아와 아들과 한잔하면서 피로를 풀었다. 몇 일간은 짐을 풀어 놓고 있을 수 있는 것이 여간 마음이 편안환 것이 아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한국의 젊은이가 한명 들어온다. 물어보니 오늘 아침에 도착했고 다른 한국의 젊은이 몇 명이 오후에 온다고 한다.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오늘은 먼저 아포르디시아스와 라오디키아 유적을 돌아 보기로 하고 일정을 시작한다.
아포르디시아스는 파묵칼레에서 100km 정도 멀리 떨어져 있어 교통편이 여간 어렵지 않다. 대중교통이 있지만 아들과 나는 시간을 아끼기로 약속했고, 저번에 말한대로 대절비가 그렇게 비싸지 않다. 왕복 200리라(약 60,000원)에 계약하고 개인영업용 차를 타고 갔다. 물론 우리가 관광을 하는 시간을 기다려 준다는 조건이다. 약 100km를 가는 도중에 전방 10m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여 겁이 났으니 기사는 능숙하게 차를 몰고 갔다. 약 2시간이나 걸려 아포르디시아스 유적에 도착하여 오후 2시에 데리러 오라고 하고 유적 관광을 시작했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상징적 문 - 테트로필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바친 도시 아프로디시아스(Aphrodisias)
아프로디시아스는 현재명 게이레(Geyre)인 터키 남서부에 임한 고대도시유적으로 20세기 초 여러 번 발굴이 시도되었으나 전쟁으로 인하여 무산되었다가 1961년부터 뉴욕 대학 에림(Kenan T.Erim)에 의하여 발굴이 진행되었으며, 지금도 발굴중이다. 도시 유적 중심에 있는 아프로디테 신전은 하드리아누스제 시대의 것인데 6세기에 비잔틴 성당으로 전용됨으로 인해 많이 개조되었다. 아프로디테 사원은 기원전 3세기에 건축되었고, 그리고 1세기 뒤에 도시가 건설되었다.
유적 북단에는 약 3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스타디움이 잘 보존되어 있다. 유적지내에는 오데온, 하드리아누스의 욕장, 엄청난 규모의 극장, 티베리우스 황제의 포르티코, 바실리카, 사교관 등등 여러 건물이 있다. 특히 이 지역은 질 좋은 대리석이 많이 생산되어 로마시대의 조각의 원형이 대부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프로디시아스 파라고 불리웠던 조각가들은 북아프리카(레프티스 마그나에서 서단까지), 이탈리아 등에서 활약하였다고 한다.
혹자들은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보다 더 웅대하고 예술적으로 뛰어난 유적이라고 말하는데, 아직은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한번 구경을 하게 되면 그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특히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 모두 이곳 박물관에 있다. 빼놓지 않고 관람하기를 권한다.
아프로디시아스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도시였다. 왜냐하면 로마를 건설한 트로이의 아이네이아스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었고, 로마황제들은 그의 자손임을 칭했으므로 아프로디테는 그들의 어머니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도 이곳에서는 여신숭배가 계속되었고, 이 때문에 비잔틴시대 이후에 기독교에 의해 아름다운 조각들과 건물이 파괴되고 쇠퇴했다. 그러다가 지진과 셀주크 제국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고 사라진 도시다.
이 유적은 발굴된 것도 비교적 최근이고, 유네스코에 등재는 2017년에 되었다. 아직은 사람의 손때가 비교적 적은 유적이다.
고대 아프로디시아스 도시 표지판
당당하게 터키의 보물이라 붙여 놓았다.
입구에 있는 석관
아프로디시아스로 들어가는 입구는 고대 그리스 당시 만들어진 석관들로 뒤덮여 있다. 석관 사방에는 메두사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석관을 부수거나 안의 물건을 훔쳐가지 말라는 경고다. 메두사는 저주의 화신으로 정면으로 보는 즉시 돌로 변하게 만든다고 한다.
아프로디시아스 모형도
사자상과 아마 황제의 부조인 듯.
건물 방향 표시
아프로디시아스의 유물
테트라필론 설명판
테트라필론의 여러 모습
이 건물은 아프로디테 신전 동쪽에 있는 기념문으로 아프로디시아드의 상징이 될만한 건축물이다. 폐허가 된 신전에 비해 거의 완전하게 복원된 모습으로, 테트라필론이란 4방향으로 문이 모두 있다는 뜻으로 4개의 원 기둥이 세워져 있다. 지금의 테트라필론은 당시 세웠던 원본을 발굴하여 원래의 자리에 거의 완전히 복원하였다. 이 건축물을 보는 순간 멍해졌다.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하면서 고대 건축물을 많이도 보았고, 감탄도 하였는데 이 건물의 아름다움을 어느 곳에서도 비교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참 거대하면서 웅장하고, 아름다운 조각과 조형미를 무어라 말하기가 어렵다. 그저 눈으로 보고 감탄만 할 뿐이다.
케난 에림(Kenan T.Erim) 교수의 무덤
테트라필론 근처의 하얀 대리석 무덤은 케난 에림(Kenan T.Erim) 교수의 무덤이다.
아프로디시아드를 발굴한 공로로 터키 정부가 이 유적지 안에 무덤을 만들 수 있게 허락하여 이곳에 그의 무덤이 있다. 그는 1959년 우연히 이곳에서 신전의 기둥 하나를 발견하고 일생을 숙명처럼 아프로디시아드의 발굴에 쏟았다. 아프로디시아드와 영원히 함께 살고 싶었던 그의 소망이 이루어져 그는 1990년 이후에 영원히 이곳에 살고 있다.
아프로디테 신전
도시의 수호신인 아프로디테를 위한 신전으로 이 도시에서 가장 성스럽게 여긴 건물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내판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 만한 유적지다. 12세기의 지진으로 폐허가 된 곳에 지금은 높은 기둥이 14개 늘어서 있지만,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떠올릴 만한 그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4세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아프로디테 신전은 철저히 파괴된다. 아프로디테스 신전은 5세기 말에는 교회로 전용되고 관련 유적이나 유물은 전부 말살된다. 기독교가 우상숭배라는 차원에서 그리스 신화 속의 유적들도 파괴한 일이다. 신전의 서쪽에는 나르텍스(고대 기독교 교회에서 본당 입구에 짓는 넓은 홀), 동족에는 기독교 성화가 그려진 아프시스(교회당 동쪽 끝에 튀어나온 반원형 부분)가 지어졌고, 신전 정원에는 무덤이 만들어지면서 중요한 유적이 파괴되었다. 현재 이슬람국가의 고대 유적 파괴 문제가 세계적 뉴스로 취급되고 있지만, 4세기 당시 벌어진 기독교도가 종교라는 이름으로 파괴한 유적은 21세기를 조족지혈로 여길 정도로 엄청났다.
아프로디테 신전 설명판
아프로디테 신전의 여러 모습
북쪽 성역 설명판
스타디온 가는 길
스타디온(경기장) 설명판
엄청난 크기의 경기장이다. 약 30,000명을 수용했다고 하는 로마식 경기장으로 현재 터키에 남아 있는 경기장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한다. 길이가 약 270m, 폭이 약 60m인 타원형 경기장으로 현대의 경기장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 경기장은 관중석 어디에서나 경기장이 잘 보이게 설계되어 있다. 그 당시에 이 조그마한 도시에 이런 거대한 경기장이 왜 필요했는가? 아마도 각 지방에서 참가한 선수들이 아프로디테에게 바치는 경기를 열었을 것이다.
주교관(Bishop palace) 설명판
하드리아누스 욕장 설명판
설명판
하드리아누스 욕장 구조 설명
하드리아누스의 욕장는 2세기경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이 곳을 다녀간 기념으로 건설한 욕장이다. 남자와 여자를 분리하여 탈의실과 냉탕과 온탕을 갖추었고, 대리석으로 만든 풀장도 있다. 당시의 인구로 볼 때 거대하고 화려한 욕장이다.
남쪽 아고라 설명판
이 남쪽 아고라는 '티베리우스황제에게 바친다.'라는 비문이 있어 '티베리우스의 주랑'이라고도 불린다. 넓은 공간의 가운데에 있는 저수지는 길이가 약 260m, 폭이 약 25m에 깊이가 1.2m로 하드리아누스 욕장을 위한 물 저수지로 사용되었으며, 홍수를 통제하기 위해 물을 저장하는 곳으로도 사용되었다 한다. 아직 완전히 발굴되지 않아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고 짐작만 할 뿐이다.
남쪽 아고라(티베리우스의 주랑)
티베리우스의 주랑에서 극장으로 가는 길
극장 상부의 모습
극장 설명판
극장의 모습
기원전 1세기경에 시작하여 기원전 27년에 완공하였다는 극장은 약 8000명 수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최전성기의 인구는 2만 명 정도라고 전한다. 원형극장에서는 오락이 아니라 신에 대한 의식과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할 가치와 상식을 공연하였다고 한다. 오이디푸스신화와 같은 교훈극이 당시의 연극이다. 그리스 비극은 시대를 넘어서 인간 모두에게 전해질 교훈이자 상식에 해당된다. 이 극장은 케난교수가 발굴을 결심햇을 때는 마을이 위에 있었다 한다. 1966년 이 마을을 이주시키고 본격적인 발굴을 하였는데, 마을이 있은 덕분에 원형이 거의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고, 많은 조각과 비문들을 발견하였다. 비문의 내용에 의하면 많은 유물이 있어야 하나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화 하는 과정에서 아마 거의가 없어져 버린 것 같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원형극장은 다른 지역과 달리 특별석이 많다. 특별석이란 등받이를 갖춘 의자형 좌석으로 관람하기 편한 앞줄과 한가운데 들어서 있다.
멀리서 보는 아고라 전경
세바스테이온 설명판
세바스테이온의 웅장한 모습
아프로디시아스 입구에서 왼쪽으로 100m 정도 들어가면 보이는 약 10m 높이의 거대한 기념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각종 신의 모습과 더불어 로마 황제 네로의 조각품도 볼 수 있다. 3층 구조로 1층은 기둥, 2층과 3층이 조각형 입체 벽화로. 전체 길이는 80m 정도다. 세바스테이온(Sebasteion)이라 불리는 건축물로 로마 황제를 신으로 모신 기념 사원, 즉 신전이다.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곳이었는데 1970년 발굴에서 80여 점의 입체 조각벽화가 발견되어 아프로디시아스 박물관에 80여 점 전부를 전시하고 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최고 수준의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대리석 조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흥미롭게 황제의 조각이 그리스 신들과 동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 로마는 황제를 인간이기보다는 신으로 받드는 사회였다. 그래서 곳곳에서 황제의 신전을 만들려고 하였고, 황제신전을 만들려면 로마로부터의 특별한 허락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식민지와 도시는 개별적 차원의 황제신전을 갖고 있지만, 아프로디시아스는 로마 황제 모두를 기리는 종합신전을 갖고 있다. 그만큼 아프로디시아스는 특별한 곳이었다.
아프로디시아스 박물관 입구
승리의 여신 니케상
옥타비아누스의 노예로 이 아프로디시아스를 건립하는데 큰 공헌을 한
율리우스 조이로스를 기념하는 기념관에 대한 설명과 기념관의 부조들
네로와 아그리피나
아우구스투스와 빅토리아
안키세스와 아프로디테
아이네이아스
여러 조각상들
이 박물관의 백미로 꼽히는 세바스테이온(Sebasteion)에서 1970년 발굴된 80여 점의 입체 조각벽화로 아프로디시아스 내 박물관은 80여 점 전부를 전시하고 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최고 수준의 그리스 신화 관련 대리석 조각이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라 사진을 찍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아프로디시아스의 주인공 아프로디테 여신상
박물관에 전시된 아프로디테 입상은 우리의 소중한 보물이다. 오랜 세월을 지나 세상에 나온 아프로디테는 완전한 모양이 아닌 몸체만 남아 있다. 머리와 팔은 어디에 있는가? 5세기경 기독교도가 파괴한 뒤 아무렇게나 버린 것이다. 그래도 살아 남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운 미의 여신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하다. 옷을 입은 자세로 서 있다. 의상 앞면 한가운데는 땅의 여신 게(Ge)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os), 태양의 신 헬리오스(Helios)와 달의 여신 세레네(Selene)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또 염소 머리에다 물고기 몸을 한 상상의 동물에 올라선 반라의 여인 조각도 의상의 다리 부분에 새겨져 있다.
이 아프로디테스 입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관능적 차원의 미의 상징과 거리가 멀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포용하는 어머니로서의 이미지가 한층 강하다. 아프로디테가 가진 원래의 미와는 다른 이미지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여러 가지의 가설이 있겠지만 나는 로마의 어머니인 아프로디테를 온 우주의 어머니로 형상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드리아누스 욕장에서 나온 2세기경의 여신상
박물관 외부의 조각상
아프로디시아스박물관의 규모는 다른 유명한 박물관에 비해 아주 작다. 하지만 여기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은 어느 곳보다 알차다. 하드리아누스의 욕장, 티베리우스의 주랑, 극장, 그리고 세바스테이온(Sebasteion)의 입체조각벽화 등 이곳에서 발굴된 조각상과 부조물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비록 이 조그만 도시 아프로디시아스에서 발굴된 유물만을 모아 놓았지만 질적인 면에서 다른 박물관을 압도하고 있다. 로마시대의 최고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 이런 것을 알았더라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 것인데 그러지 못해 아쉬운 마음만을 가득한 채 아프로디시아스를 떠나야 한다.
케난 에림(Kenan T.Erim) 교수 기념관 입구 동판
역사를 바꾸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권력으로, 어떤 사람은 부로 자신이 이름을 역사에 새긴다. 그러나 그런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일생을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바치는 위대한 사람들을 본다. 이번 여행에서 만났던 트로이의 슐리이만이나. 크노소스의 에반스, 그리고 이 아프로디시아스의 케난 에림 같은 사람들에 의해 우리는 우리 인간의 역사를 잊어 버리지 않고 간직하게 된 것이다.
아프로디시아스를 구경한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나는 사실 이같은 도시가 있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비로소 이 아름다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바치는 도시가 있음을 알고 즐기게 되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그리스문명을 보고 싶으면 터키로 가라는 말이 과연 사실이다는 것을 또 다시 깨닫게 해 주는 유적이다.
이 같은 구경을 한번씩 할 때마다 나는 내 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 내 혼자서는 언제 이렇게 방대한 여행을 계획하고 진행할 수 있겠는가?
마음 가득히 감동을 담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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