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6(05.22, 푸엔테 라 레이나 - 에스테야)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오늘의 길 : 푸엔테 라 레이나 - 마네루 - 시라우키 - 로르카 - 비야투에르타 - 에스테야
오늘은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에스테야까지 약 22km의 길이다.
오늘 역시 일찍 일어나 간단하게 과일과 빵으로 아침을 먹고 알베르게를 나와 길을 떠난다. 아직은 해도 뜨지 않아서 조금은 어두운 마을길을 걸어 ‘여왕의 다리(Puente la reina)’를 건너서 고속도로를 지나 좁은 비포장도로를 통해서 계곡의 끝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계곡을 통해 마네루 입구의 십자가상까지 오르는 가파른 비탈길은 오래된 수도원과 성당건물 사이에서 시작된다. 마네루는 향기로운 로즈 와인의 생산지로 유명한데 스페인에서 로즈 와인을 찾았으나 나타나지를 않아 마시지를 못했다. 마네루의 언덕 위에는 외롭게 서있는 산따 바르바라 성당이 있다. 마네루에 다음 마을인 시라우키까지는 약 40분이 소요된다. 시라우키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포도밭을 지나다 보면 이 고장이 스페인 북부의 포도주의 고장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우리가 머문 알베르게
이른 아침의 푸엔테 라 레이나 거리 풍경
아침의 푸엔테 라 레이나 다리
이 구간의 안내도
공동묘지
에스테야(16.1km), 시라우키(2.1km)를 가리키는 이정표
이정표가 나오고 여기에서 길을 따라 걸으면 멀리 바스크어로 ‘살모사의 둥지’ 라고 불리는 시라우키가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이름은 로마 시대와 중세에 붙여진 이름으로, 이 마을의 전략적인 위치 때문에 지나가기가 어려운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내가 이 마을의 사진을 찍어 한국의 여러 곳에 보내니 모두들 그림 같다고 탄복을 하였다.
평탄한 언덕길을 따라 올라서면 오래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세의 마을 시라우키에 다다른다. 마차가 다니기 위해서 폭이 최소 5미터가 넘었던 길에 배수로를 가지고 있는 바닥은 커다란 돌을 토대로 기초공사를 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중세의 길을 가진 시라우키를 지나면 지나온 현대에 만들어진 다리와 팜플로나와 로그로뇨를 이어주는 고속도로를 만나게 된다. 불과 몇 십 미터 사이에서 중세와 현대의 도로를 동시에 걷게 되는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그림같은 시라우키(Cirauqui)마을
넓게 펼쳐지는 포도밭
시라우키 마을
도로 옆의 교각이 고속도로의 교각이다.
시라우키 마을의 바에 둘러서 주스와 오물렛 비슷한 약간의 음식을 먹고 다시 길을 걷는다. 약 한 시간이 넘게 걸으면 로르까에 도착한다. 과거 로르까의 주민들은 돈벌이를 위해 소금기가 많은 강물을 독이 있는 강물이라고 순례자들을 속여 포도주를 팔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맛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는 인심이 좋은 친절한 마을이다.
로르카의 산 살바도르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 Salvador)은 롬바르디아 양식의 로마네스크 성당으로 원통형으로 건축된 아주 독특한 형식을 보여준다. 창문 위는 아치, 제단 위는 원형 궁륭으로 덮여 있으며 정문과 탑은 20세기에 지어진 현대 건축물이다.
로르카 산 살바도르 교구 성당(원통형 건물)
교구성당 옆의 성당
마을을 지나가는 도중의 카페에 우리말로 '맛집' '아이스 커피'라고 쓴 입간판으로 한국인 손님을 유혹하고 있는 카페를 만났다. 아이스 커피는 한국인이 아니면 잘 마시지 않는 메뉴다. 까미노 길을 가면 많지는 않으나 제법 보이는 우리말 표기이다. 이 표시는 보고 이 길을 걷는 사람 중에 한국인이 엄청 많다는 통계를 본 일이 있는데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동양인의 90%는 한국인인 것 같았다.
우리말로 선전 문구를 만든 카페 -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를 보여 주는 모습이다.
공사로 인해 도로가 차단되었다는 표시
약 한 시간을 걸으면 중세의 로마인들의 주거지이기도 하였고, 성직자들의 거주지이기도 했던 비야 투에르타에 도착한다. 비야 투에르타 마을에 들어가니 여기서 로스 아르고스까지를 안내하고 있는 까미노 안내판이 나온다. 하지만 나의 오늘 여정은 에스테야까지다.
과거 산띠아고 데 꼼포스텔라를 향하는 까미노는 비야투에르타에서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는 사라푸스 수도원으로, 그리고 다시 이라체 수도원으로 에스테야를 지나지 않고 곧장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1090년에 산초 라미레스가 넘쳐나는 도보순례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에스테야를 세우면서부터 까미노 길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비야투에르타에는 예전의 까미노 길에 그대로 남아 있다.
까미노 안내도(비야 투에르타 - 로스 아르고스)
까미노 표시
길을 가다가 왼쪽을 보니 큰 성당이 보이는데 성 베르문도의 마을 성당이다. 성당 전면에 휘장이 걸려 있었는데 휘장의 내용은 베르몬도의 밀레니엄(1020 - 2020) 기념휘장이었다. 내일 지나갈 이라체 수도원의 수도원장이었던 성 베레문도의 고향은 확실하지 않다. 예전부터 비야투에르타와 인접한 아레야노(Arellano) 사람들은 성 베레문도의 고향이 자기 마을이라는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성인의 유해는 5년마다 번갈아 가며 두 마을에서 보관하지만 매월 3월 8일에는 모두 성 베레문도의 날을 기원한다고 한다..
성 베르문도 마을 성당
성 베르문도 데 이라체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안내도
에스테야 주변 안내도
산 미겔 성당(맞는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산 미겔 수도원
비야 투에르타 마을을 지나 한 시간 정도를 아스팔트길을 걸어가면서 많은 성당을 보고 지나간다.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라 성당이 너무 많다. 천년도 넘는 시간에 걸쳐 수많은 성당들이 세워져 지금은 거의 폐허가 된 성당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현대적인 성당도 많이 또 세워지고 있다.
이름을 모르는 성당
강을 건너 에스테야로 들어가 오늘의 종점인 알베르게를 찾아서 도시의 대로 가를 걸어 갔다. 따가운 햇살 아래 길을 제법 걸어가니 예스런 성당이 보인다. 그리고 그 성당에 이어져서 알베르게가 있고, 거기가 오늘의 숙소였다. 숙소에 도착하니 너무 일찍 와서 아직 짐도 도착하지 않았고 숙소도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고 기다리니 숙소의 문이 열리고 들어가게 하였다.
‘좋은 빵과 훌륭한 포도주, 모든 종류의 행복함이 있는 도시’로 알려져 있는 스페인어로는 에스테야(Estella), 바스크어로는 리사라(Lizarra)라고 하는 이 마을은 스페인 나바라 중서부에 있는 산티아고 순례 길에 있는 도시다. 팜플로나 및 아라곤 왕국의 산초 라미레스 왕이 1090년 고대 리사라 지역에 마을을 건설했다. 왕은 프란크스(상인, 귀족이나 교회에 복속되지 않는 자유인)가 이곳에 정착하도록 권장했다. 유럽 전역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여행하는 순례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을 돌볼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에스테야에는 바스크인, 유대인, 프랑스인 등 여러 인종이 모여 살았다. 왕의 주도한 개발로 인해 도시는 항상 부유했는데, 당시 번성한 상업과 수공업 때문에 에스테야는 까미노 길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북부의 톨레도로 불릴 만큼 기념비적인 유적들이 다수 있고, 해발고도 421m로 산에 둘러싸여 있어서 바람이 적고 날씨가 비교적 온화하다.
에스테야는 바스크어로 별이라는 뜻으로 도시의 문장에도 별이 하나 그려져 있다. 이 별은 사도 야고보가 잠들어 있는 콤포스텔라로 우리를 인도한다. 지금은 도시의 크기가 줄었지만 에스테야는 과거 나바라의 왕은 왕위를 받을 때 에스테야의 성당에서 선서를 했으며 에스테야의 로마네스크 양식 궁전에서 살았다고 한다.
숙소 옆의 Rocamador 성당의 모습
숙소 안의 그림
성당과 숙소 앞의 모습
숙소의 알베르게의 종사자에게 옆에 있는 성당의 이름을 물어 종이에 적어 달라고 하여 이 성당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데 이름이 Recamador였고, 이 알베르게의 이름은 성당의 이름과 같은 Capuchinos Recamador였다.
알베르게 조금 위에 있는 슈퍼
너무 일찍 도착하여 비로소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다. 그래서 같이 길을 걷는 동료와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서 식당을 찾아 나섰다. 숙소를 나가 시내를 조금 올라가니 식당이 보여 들어가니 무어라 하면서 막았다. 종업원들은 영어가 통하지 않고 우리는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 조금 있으니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아마 자리가 없어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영어 메뉴판을 청하니 메뉴판이 없어 종사자가 영어로 글을 써서 가지고 와서 설명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겨우 이해를 한 것이 전채와 본 메인 요리, 후식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알고 각 코스마다 하나씩 시켰다 첫 코스는 샐러드와 닭 수프, 파스타, 본 메뉴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후식은 아이스크림 푸딩 요구르트 등이 있었는데, 닭 고기 수프와 돼지고기 아이스크림을 시키니 음료는 무엇을 할는지를 물었다. 우리는 이해를 못하고 콜라를 시켰는데 나중에 보니 와인이나 물을 고르는 것이었다.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주문을 하고 기다리니 수프를 한 접시 가득 가져다주고 빵도 주었다. 수프가 맛있으면서 엄청난 양이라 빵과 함께 먹으니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그 뒤에 나오는 돼지고기와 후식도 배불리 먹고 가격을 물으니 콜라까지 포함하여 17유로(약 2만원)이었다. 가격에 비하여 너무 좋은 음식이었다.
이 때는 몰랐으나 한 이틀 뒤에 이 음식을 알게 되었다. 스페인이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서 각 마을마다 오늘의 메뉴라고 해서 순례자들을 위한 음식을 파는 것이다. 가격은 약 15유로 안팎으로 마을마다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코스는 3가지로 동일했고 음료는 와인과 물중에서 택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가성비에 비교하면 너무 값이 싼 음식으로 양과 질 면에서 충분히 만족할 만했다. 마을마다 메뉴는 조금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음식 코스니 이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음식이었다.
점심을 배불리 먹고 숙소로 돌아오니 일행들이 거의 도착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갔다 온 식당 앞에 아주 큰 슈퍼마켓이 있다고 알려주니 대부분이 그 슈퍼에 갔다. 우리 무리도 슈퍼에 가서 나중에 먹을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사서 돌아왔다. 조금 쉬고 있다가 오늘 여행사에서 우리 일행을 위해서 저녁 회식을 베풀어 준다고 하여 식당에 가니 슈퍼에서 사온 여러 가지 재료를 같이 간 일행 중에 여성분들이 한국식으로 요리하여 풍부하게 마련해 놓았다. 시끌벅적하게 떠들면서 맛있게 저녁을 먹고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저녁을 먹고 잠시 있다가 우리 일행 4명은 알베르게의 뒷마당의 탁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하며 즐기고 있었는데 뜰에서 요가와 비슷한 자세를 취하며 운동을 하는 사람이 보였다. 우리 일행 중에 다소 장난기가 많은 쾌활한 사람이 그에게 이야기를 걸면서 자세를 따라 해 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과도 인사를 하였다. 잠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안으로 들어가 식당에 가니 조금 전에 뜰에서 요가를 하던 사람이 일행 6명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뒤에 또 이야기 하겠지만 이 6명과는 같은 길을 걷기 때문에 자주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걷고 또 배불리 먹고 하였으므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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