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 까미노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까미노를 가기 전에

 

 내가 까미노에 관심을 가지고 내 여행의 버킷 리스트에 올린 지는 벌써 오래 되었다. 그러다가 실제로 실행을 하려고 떠날 준비를 하면서 여러 가지 사항을 알아가고 있을 때 느닷없이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여 강제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가 끝나고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차일피일하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2024년에는 꼭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2023년부터 마음의 준비와 여러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까미노란 과연 무엇이고, 사람들은 왜 그 길을 걷고, 무엇을 얻는 것일까? 까미노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잠시 고찰해 보고 나의 까미노 여정을 이어가기로 한다.

 

 인간은 누구나 길을 떠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가벼운 짐을 꾸린 뒤 세상사를 모두 잊고 훌쩍 떠나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길을 걸으며 자신을 돌이켜 보는 상상을 누구든지 한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최근에는 국내에도 걷는 길이 많이 개척되고, 좋은 코스도 많아 사람들은 국내의 길을 많이 걷는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길인 까미노라는 세 글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름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용기다. 프랑스의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을 넘고 나바라와 라 리오하 지방, 메세타, 칸타브리아 산맥을 돌아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약 800km, 약 40일간의 길이다. 그런데 까미노는 무엇이고 어떻게 가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연하게는 알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저 막연하게 남이 산티아고 까미노를 걷는다고 하니 나도 까미노 길을 걸어야지.’하는 동경을 가지고 떠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산티아고'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지칭하는 곳으로 산티아고(Santiago)는 야고보를 칭하는 스페인식 이름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별빛 들판의 성 야고보'라는 뜻으로 Compostela라는 단어는 라틴어 Campus Stellae의 변형으로, 이 이름은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 별빛이 비추는 들판을 따라 걸어 야고보의 시신을 발견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스페인에서는 야고보가 이베리아 반도에 와서 선교하였고, 그의 시신이 스페인으로 다시 옮겨져 매장되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예수의 12제자 중에서 야고보가 가장 존경을 받고 있다.그래서 지금도 그가 묻혔다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종교적인 성지로 칭송받고 있다.

 

까미노의 여러 루트를 보여 주는 지도

 

 까미노는 원래 종교적인 의미로 순례자의 길이다.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에는 여러 코스가 있고 지금도 많은 코스가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심지어 유럽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떠나는 그 길을 하나의 코스로 인식한다고도 한다. 그 수많은 코스 가운데 순례자의 약 70%가 선택하는 길은 프랑스 길이라고 한다. 보통 많은 순례자들이 프랑스 루트 즉, 까미노 프란세스(Camino Frances)를 걷는다. 그리고 까미노 프란세스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프랑스의 국경마을 생장 피에드포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걷는 것을 까미노 프란세스를 완주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순례자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산티아고 데 꼼포스텔라에서 무시아(Muxía)와 피스떼라(Fisterra)까지 연장해서 대서양의 노을을 바라보면 앞으로 인생의 까미노를 다시 계획하기도 한다. 또 일주일 정도밖에 시간이 없다면 그 길을 레온에서 시작해 사리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115km 구간을 걷는 방법도 있으며 그 과정을 걸어도 인증을 해 준다고도 한다. 그래서 사리아부터는 순례자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기도 한다.

 

크렌디시알에 표시된 까미노 프란세스 노선도

 

두번째 크렌디시알에 표시된 노선도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목적지로 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9세기경에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고, 성 야고보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삼으면서 야고보의 길을 따라 걸으려는 순례자들이 생겨났었다. 그러다가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는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성스러운 도시로 선포했는데 교황의 칙령에 따라 성스러운 해(산티아고의 축일인 725일이 일요일이 되는 해)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순례자는 그간 지은 죄를 모두 속죄 받고, 다른 해에 도착한 순례자는 지은 죄의 절반을 속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산티아고 순례 길은 그리스도교 순례 세계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까미노 프란세스는 국가와 교회의 지지가 줄어들면서 그 중요성을 상실하고 사람들에게 잊혀 갔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산티아고 가는 길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걷기를 동경하는 길로 널리 알려져 옛날의 까미노가 속속 복구되었다.

 

 까미노를 떠나기 전에 간단히 알고는 있어야 하는 사항들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

 

 첫째는 노란 화살표와 가리비 껍질 표시이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걸으면서 수없이 마주하게 되는 노란 화살표와 가리비 껍질은 순례자에게 갈 길을 가르쳐 주는 고마운 존재로 이 표시만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조금도 없다. 길이 약간 애매한 곳은 순례자들이 직접 돌을 모아 화살표를 만들어 두기도 하여, 모두 한마음으로 같은 길을 걷는 심리적 버팀목이 되기도 하다. 또 수많은 표지석이 있으니 길을 잃은 염려는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길을 가리키는 각종 표시와 표석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만들어 놓은 돌무더기의 안내

 

도시의 길 바닥 표시 - 도시에는 조가비의 표시도 있다.

 

 둘째는 순례자 여권인 크렌디시알이다. 크렌디시알은 프랑스 길의 시작점인 생장 피에드포르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여권과 신청서를 제출하고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발급을 받는다. 이 때 가리비 껍질도 함께 받는다. 크렌디시알을 가지고 있으면 순례자 숙소(알베르게)에 머무를 수 있고, 자신이 걷는 길에서 지나치는 레스토랑, 성당 등의 장소에서 세요라고 일컫는 스탬프를 받고, 숙소에서도 스탬프를 받아 본인이 그 길을 걸은 순례자임을 증명하는데, 이렇게 스탬프를 받은 순례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해 순례 완주 증서를 받을 수 있다. 이 크렌디시알은 스탬프를 찍다 보면 더 찍을 공간이 없는 경우도 생기는데 중간에 있는 성당에서 구입할 수 있다.

 또 자신이 순례자임을 나타내는 표시로 배낭에 가리비 껍질을 달고 여정을 시작한다.

 

왼쪽이 생장에서 처음 받은 크렌디시알, 오른쪽은 성당에서 두번째 구입한 크렌디시알

 

나의 크렌디시알에 찍힌 도장의 일부(전체는 약 130개 정도를 찍었다.)

 

생장에서 받은 가리비 - 배낭에 매고 끝까지 함께 했다.

 

 셋째로는 걷기에 알맞은 시기는 언제일까? 40일간의 여유가 있어야 하기에 각자의 사정에 맞추어야 하지만, 순례자가 끊이지 않는 까미노에서 걷기에 좋은 시기는 4~6월과 9~11월이라고 할 것이다. 겨울과 이른 봄은 춥고 눈이 많이 내려 걷기 쉽지 않고, 6월이 넘어가면 스페인의 뜨거운 햇빛으로 걷기에 적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이 시기를 택하여 걷기에 분잡함을 피하려면 다른 시기를 택해도 좋다.

 

 넷째로는 숙소다. 일반적인 순례자의 숙소는 알베르게(Albergue). 마을마다 있는 알베르게라 불리는 순례자 전용 숙소에서 잠자리를 해결해 주고 또 많은 알베르게는 취사를 해결할 수도 있어 유럽의 비싼 물가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대부분의 알베르게가 유스호스텔 같은 개방된 구조로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이 함께 머문다. 공립 알베르게는 도착순으로 침상을 배정하기에 빨리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배낭을 입구에 놓고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사립 알베르게는 조금 비싸지만 그런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 침상이 비어만 있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숙소는 대체적으로 충분한 편이다.

 

 길이 끝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면 완주증명서가 선물로 주어진다. 모두들 이 증서를 받으면 감격한다. '내가 그 먼 길을 정말 완주했는가?'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러면서 고이고이 그 증서를 간직한다. 하지만 그 길의 완주가 끝났을 때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800km를 걸어가 산티아고 대성당의 광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끌어안고 함께 기뻐하는 자신을 돌이켜 보아라. 광장의 천 년 된 돌기둥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당신을 찾을 수도 있다. 지나온 삶에 대해 기쁨과 감사에 가득 찬 그 순간을 느끼면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를 지탱하는 힘이 당신 안에 있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을 것이다.  물론 얼마니 오래 간직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완주증명서

 

 까미노 데 산티아고가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그 길을 걷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이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허물없이 친구 이상이 된다. 다리를 절고 있는 사람에게는 파스를 붙여주고, 아픈 사람에게는 약을 나눠주고,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을 건네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준다. 냄새나는 발바닥의 물집을 따주며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도울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세상에서 마음이 가장 따뜻한 사람들을 길을 걸으면서 여기저기에서 만난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지나가며 부엔 까미노하고 인사를 하며 지나가면서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고 답한다. 당신도 금방 친절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그 기쁨과 베푸는 행복을 체험한다. 그러면서 길을 걸으며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닫히었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현실의 아픈 기억들은 정화되고 추억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기억들이 쌓여간다.

 

 이것이 까미노가 우리에게 주는 힘이다.

 

서해랑길 68코스(송현1리버스정류장 - 파도2리마을회관 - 어은돌해수욕장 - 모항항 - 만리포해변노래비)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68코스는 큰 도로에 있는 송현1리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하여 파도2리마을회관과 어은돌해수욕장을 지나서 그 이름도 유명한 만리포해변의 노래비에서 끝이 나는 22.3km의 길이다.

 

아주 큰 도로에 있는 68코스 안내판

 

 68코스 시작점인 큰 도로가의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면서 발의 상태를 살펴보니 신발이 너무 꽉 조여서 물집이 생기고 많이 아프다. 잠시 신발을 벗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가기로 작정했다. 처음에는 발이 많이 아파서 가는 곳까지만 가려고 생각하고 중간의 마을에 버스정류장이 있으면 여정을 멈추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내가 몇 년을 걷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결과만 말하면 미련하게 발이 아픈 것을 참아가면서 결국은 이 코스를 다 걸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가서 해안을 따라 걸으면 서해 땅끝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그런데 어디가 땅끝인지를 알 수가 없다.

 

 

 신발이 조여 발이 아프지만 참으면서 길을 걸으며 여러 마을을 지나니 파도리라는 지명이 나온다.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에 있는 파도리해수욕장(波濤里海水浴場)은 만리포해수욕장 아래 소원면 남쪽 끝 파도리초등학교 옆에 있다. 백사장 옆으로 울퉁불퉁한 검은 갯바위가 늘어서 있고, 해변은 특이하게 파도에 씻긴 작은 돌 해옥으로 덮여 있다. 이 해옥은 채취는 금지되어 있으며 기념품으로 마을의 해옥전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해수욕장은 1980년대에 개장되었지만 지리적인 요인 때문에 외부인의 발길이 뜸하다가 반대편에 있던 바닷가가 간척사업으로 육지로 변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서해안의 다른 해수욕장들과는 달리 바닷물이 맑고 깨끗하며 바다 생물이 많이 살고 있어 가족 피서지와 자연학습장으로 좋다.

 

 

 

 이 해변에는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있으며 편의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다. 특히 버거집이 있어 들어가서 점심으로 버거를 하나 청하여 맛있게 먹고 쉬었다. 내가 여행 중에 버거를 먹은 일이 있었던가를 생각하니 처음인 것 같았다. 여기에서 여정을 멈추고 돌아갈까? 하고 버스정류장을 물으니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가 자기도 모른다고 해서 다시 길을 떠났다.

 

버거집

 

파도리해변

 

파도리해수욕장의 모습

 

 파도리해수욕장을 지나 태안 해안길 3코스 파도길을 따라 조금 가면 자그마하지만 정감이 가는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이름도 생소한 어은돌해수욕장이다.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에 있는 어은돌해수욕장은 다른 서해안의 해수욕장에 비하면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지만 낚시를 즐길 수 있으며, 어은돌해변은 좁은 모래사장으로 영화 드라마에 나오는 전통적인 해변을 연상시킨다. 해변 형태는 자갈 모래로 되어 있다. 해안의 끝으로 보이는 석양이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전하지만 내가 지나는 시간은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이다.

 

어은돌해수욕장 풍경

 

 어은돌해수욕장을 지나 높지 않은 산길을 따라 걸으니 뜻밖에도 길 이름이 해변길이다. 해변은 저 멀리에나 가끔 보이는 산길인데 해변길이라니 조금 의아했다. 물론 뒤에 해변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 길을 따라 가면 모항저수지가 나오고 저수지를 돌아서 산길을 걸어가면 행금이 쉼터가 나오고 계속 길을 가면 해안이 나오면서 모항항이 나온다. 모항항(茅項港)은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에 있는 어항이다. 모항항은 어업근거지로서의 역할은 물론 피난항으로써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는 항구로 1992년 기본시설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면서 개발에 착수했다. 모항항에는 모항항 수산물직판장이 있는데,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여러 종류의 활어, 자연산 해산물, 젓갈류, 건어물과 수입산 수산물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할 만큼 풍성한 수산물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해변길 표지

 

모항저수지

 

행금이 쉼터

 

모항항의 풍경

 

 이제 만리포해변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거리다. 발이 아픈 것을 잘 참아가며 미련하게 길을 계속해서 걸으니 어느 새 거의 다 온 것이다. 모항항을 벗어나 조금 걸으니 멀리에 만리포의 해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만리포는 워낙 유명한 해수욕장이라 일찍부터 개발이 잘 되어서 큰 건물들이 보이기도 한다.

 

멀리 보이는 만리포해수욕장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에서 의항리 구간에 있는 만리포해수욕장(萬里浦海水浴場) 북서방향으로 발달된 사빈이다. 대천해수욕장, 변산해수욕장과 더불어 서해안의 3대해수욕장으로 손꼽히며, 북쪽으로 이어져 있는 천리포해수욕장과 함께 태안해안국립공원의 명소를 이루는 만리포해수욕장은 바닷물이 비교적 맑고 모래질이 고우며 경사가 완만하여 수심이 얕은 데다 해변에 담수(淡水)가 솟아난다.

 백사장 뒤쪽으로 송림(松林)이 우거져 있어 주로 하계수련장으로 이용된다. 해수욕장까지의 교통도 편리하며 호텔·여관 등 숙박시설도 갖추어져 있어서 매년 많은 피서객이 찾는다.

 

 2007127일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약 10해상에서 원유 12,547kl가 해상에 유출되는 내 최대 해양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하였다. 만리포해수욕장은 최대 피해지역으로, 유출된 원유가 바다를 검게 뒤덮었다. 당국의 다양한 방제와 전국에서 모여든 100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오랜 시간에 거쳐 기름을 제거하여  아름답고 깨끗한 해변으로 거듭났다.

 

만리포 노래비

 

 

 

 아픈 발을 가지고도 이 코스를 무난히 다 걸으니 역시 내가 걷기는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발도 어는 새 진정이 되어 참을 만하였다. 

만리포에 도착하여 '여정을 계속하느냐? 여기서 멈추느냐?'를 고민하다가 만리포 시외 버스정류장의 시간표를 보니 서산가는 막차가 있었다. 그래서 여러 생각 끝에 이번 여정을 멈추기로 하였다. 내가 걷기를 하면서 여정을 멈추는 일은 전혀 없었는데 이번에는 신발이 맞지 않아 이 곳에서 멈추어야만 했다. 그리고 기상예보가 다음날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도 있고, 또 내가 곧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예정이라 몸에 무리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만리포에서 조금 쉬다가 서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서산으로 가서 서산에서 대전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 긴 귀향길을 시작했다.

 

 결론만 말하면 서산에서 대전으로 가는 막차의 표가 매진되어 하는 수없이 서산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 날 일어나니 비가 엄청 쏟아지고 있었다. 멈추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내려왔다.

 

서해랑길 67코스(도항1리다목적회관 - 도항경로당 - 안흥염전 - 법산어촌계 - 송현1리버스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67코스는 도항1리다목적회관에서 출발하여 연포해수욕장을 지나 도항경로당, 안흥염전, 법산어촌계를 지나서 송현1리버스정류장에 이르는 17.7km의 평범한 길이다.

 

67코스 안내판

 

 67코스 안내판에서 바다 쪽으로 가면 바로 연포해수욕장이다. 연포해수욕장 주변에서 숙박을 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문을 연 식장에서 배부르게 아침을 먹고 오늘의 여정을 시작한다.

 연포해수욕장의 아침은 인적이 드물다. 그냥 일찍 해안을 산책하는 두어 명만 보인다. 내가 항상 일찍 춟발을 하기 때문에 출발을 하는 시간에 사람들을 보는 일이 드물다. 인적이 사람이 드문 바다를 보면서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길을 걷는 것이 나의 걷는 방법이다.

 

아침의 연포해수욕장

 

 해수욕장을 벗어나 나지막한 산길로 들어선다. 높지도 않은 임도를 걸어가면서 옆으로는 바다가 보이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면서 작은 산을 넘어가니 다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걸으니 마을 주민이 말을걸어와서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쉬었다. 1961년생이라는 그 주민은 이 길을 걷는 사람을 간혹 본다고 하여 내가 그 주변 전신주에 묶여 있는 리본을 가리키며 그 리본이 서해랑길 표시하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라 알려 주었다. 그 사람은 반갑게 쉬었다 가라고 청하였으나 내가 갈 길이 멀기에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내 길을 걸었다. 

 

 

 

 마을 주민과 헤어져 조금 걸으니 '화해당' 간판이 나온다. 너무 반가운 간판이다. 내가 오래전에 우연히 이 화해당에서 점심을 먹고 그 맛에 반하여 사람들에게 칭찬을 참 많이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먹어본 간장게장 중에서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뒤에도 우연히 서울 여의도에 이 집의 분점이 보여 두어 번 이용한 일도 있다. 나의 블로그에 이 집에 관하여 약 20년 전에 쓴 아래의 글을 참조해 보시기를 바란다.

https://lhg5412.tistory.com/226 화해당 - 서해 꽃게장이 맛있는 곳

 

화해당 간판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으면 이 집에서 간장게장을 먹고 가려고 했으나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장소도 코스와는 조금 벗어나 있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내 길응 갔다.

 

 

 

 바다길을 따라가니 안흥염전이 보인다. 언젠가 신문기사에서 우리나라의 천일염전이 사라져 가서 문화재로 지정하려고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염전 중 하나가 이 안흥염전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 현대사회의 발달로 인하여 사라져 버리는 것들이 너무 많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안흥염전의 모습

 

이정표

 

 안흥염전을 지나 바닷가를 따라 걸으니 이상하게 발이 많이 아프다. 예전에 숱하게 길을 걸었지만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하고 생각하니 신발이 문제인 것 같았다. 이번 여정에서 예정에 신던 신발 밑창을 수선하여 새로 신었는데 볼이 좁고 조금 발에 꽉 끼인 느낌으로 출발했는데 이게 문제가 된 것이다. 상당히 발이 아파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계속 길을 가니 이름도 아름다운 '노을지는 갰마을'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내가 지나는 시간이 노을이 지는 시간이 아니어서 그 광경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만 하면서 지나갔다.

 

시골에 잘지어진 집

 

 

 

 법산어촌계를 지나 농촌 길을 조금 가니 큰 도로로 올라가게 한다. 그 길을 따라 조금 가니 67코스의 종착점인 송현1리버스정류장이 나온다. 마을에 있는 정류장이 아니라 큰 도로의 버스정류장에서 끝이 난다. 왜 이런 황량한 곳에 종점을 택했는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조금 쉬다가 다음 코스로 발을 옮긴다.

 

서해랑길 66코스(몽산포해변 - 몽산포항 - 평화염전 - 용산2리다목적회관 - 도항1리다목적회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66코스는 몽산포해변에서 시작하여 몽산포항을 거쳐 농촌 길로 방향을 바꾸어 제법 걸어가면 평화염전이 나타난다. 염전을 뒤로 두고 계속 길을 가서 용산2리다목적회관을 지나고, 계속 길을 걸어 연포해수욕장이 있는 도항리다목적회관에서 끝나는 22.2km의 길이다.

 

66코스 안내판과 그 옆의 몽산포해수욕장 설명

 

몽산포해변에서 해루질하는 풍경

 

 몽산포해변에서 몽산포항으로 가는 길은 바다를 따라 가다가 해안에는 길이 없어 바다를 벗어나 약간의 오솔길을 걸어간다. 가는 도중에 봄이 되었음을 알리는 여러 꽃들이 피어 있다. 길가에 노란 수선화를 보며 길을 가면서 바다를 보고 지나간다. 잠시 바다가 보이지 않는 길로 들어서니 하얀 조팝나무의 꽃이 보인다. 너무나 하연 꽃이기에 마음이 순수하게 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길가의 수선화

 

아름다운 바다 풍경

 

 몽산포항으로 가지 않고 안쪽으로 난 마을길을 지나간다. 태안군 남면 몽산리 몽산포해수욕장 북쪽에 들어선 어항인 몽산포항은 안흥외항에 비해 규모가 매우 작은 어항이다. 그러나 항구 바로 앞에 안목도라는 섬이 떠 있어 낙양 풍경이 상당하며, 몽산포항 등대 뒤편으로 보이는 여러 섬들도 몽산포항 낙조 촬영의 훌륭한 배경이 되어 아름다룬 광경을 더해 준다.

 

길가의 조팝나무

 

대파가 잘 자란 모습

 

목련

 

물이 빠진 바다

 

물이 빠진 바다에서 해루질하는 사람들

 

 길을 따라가는 도중에 혼자서 이 길을 내려오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쉬었다. 혼자 걸어오기에 서해랑길을 혼자서 걷고 있는가 하고 물으니 한 달에 두 번 서해랑길을 걷는 단체탐방객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다리가 불편하여 전부를 걷지 않고 다른 사람들보다 버스를 많이 타고 와서 앞서 걷는다고 하였다. 나이가 많은 것같아 연세를 물으니 1945년생이라고 하였다. 80이나 되는 노인이 이 길을 걷고 있으니 나는 저 나이에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조심해서 걸으시라는 인사를 하고 내 길을 걸어갔다.

 

염전의 모습

 

물이 빠진 서해안의 뻘

 

물이 빠진 갯벌의 기하학적 무늬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니 앞에서 만난 사람의 일행들이 길을 내려오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아마도 그들도 여러 무리가 모인 듯 자신들의 소집단을 이루어 이동하고 있었다. 한참을 가다가 길가에 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내가 지나가려니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잠시 쉬면서 당근과 오이를 얻어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들 일행 중에 한 여인이 내가 카메라를 목에 걸고 걷고 있는 것을 보고 사진을 찍어 블로그를 운영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니 불로그 제목을 물었다. 그래서 나의 블로그 '학의 오딧세이'를 말하니 그 여인이 깜짝 놀라며 자기가 애독자라고 하였다. 나도 천만 뜻밖에도 이 길에서 내 블로그 애독자를 만나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어떤 블로그인지를 물어 설명을 해 주니, 그 여인은 여행의 다른 유투브는 보지 않고 오직 내 블로그만 참조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상세하게 설명을 하여 놓았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너무나 고마왔는데도 제대로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여행 잘하라는 인사를 하고 내 길을 다시 시작했다. 돌아와서 생각하니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었다. 혹시 그분이 이글을 보시면 댓글에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내가 쓴 여행기를 부쳐 드리고 싶은 마음을 여기에서 전한다.

 

길가에 흐드러진 동백

 

연포를 가리키는 이정표

 

길가에 핀 튤립

 

 

 

 별 특징이 없는 길을 걸어 66코스의 종점인 도항1리다목적회관에 도착했다. 여기에 도착하니 아직은 이른 시간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무리해서 걷지 않고 이곳에서 숙박을 하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연포해변으로 나가서 숙소를 찾으니 여름철이 아니라 많은 집이 숙박객을 받지 않는다. 여러 집을 거쳐 바닷가 가까운 집에 숙소를 정하고 해변으로 간다.

 

연포아가씨 노래비

 

영화촬영 기념비

 

연포해수욕장의 모습

 

 태안군 근흥면(近興面) 도황리(道璜里)에 있는 연포해수욕장(戀浦海水浴場)1972년부터 고급 휴양지로 개발된 해수욕장이다. 연포해수욕장은 마치 활처럼 휜 백사장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앞바다에 그림처럼 떠 있는 섬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으며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송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답다. 태안의 여러 해수욕장과 더불어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 안흥성지(安興城址)가 있다.

 

 아직은 여름이 되지 않아 해변에는 그냥 산책하는 사람들이 조금 보이는데 주변의 카페나 식당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해변을 조금 거닐다가 저녁을 먹고 오늘의 하루를 마친다.

서해랑길 65코스(태안관광안내소 - 당암리다목적회관 - 청포대해수욕장 - 달산포해수욕장 - 몽산포해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65코스는 서산 b방조제 중간에 있는 태안관광안내소에서 시작하여 방조제가 끝나는 곳에서 도로를 따라 걷다가 농촌 마을길을 걸어 당암리다목적회관에 도착한다. 여기서 조금 해변으로 나가 아름다운 해변길을 걸어 청포대해수욕장, 달산포해수욕장을 지나 몽산포해변에 이르는 15.9km의 비교적 짧은 길이다.

 

65코스 안내판

 

 작년에 64코스까지 걷고 겨울이 깊어지면서 휴식기에 들어갔다. 기온이 많이 떨어지고 언제 눈이 올지도 모르고, 눈이 오면 서해안은 걷기가 조금 어려워 날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올해 초봄은 조금 날이 풀리니 또 비가 자주 오기도 하고 다른 일도 있고 하여 오래 걷기를 멈추었다가 다시 길을 걷기로 하고 집을 떠나니 65코스 시작점까지 오는데 거의 하루를 다 보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부산에서 창리포구까지는 너무나 멀고 불편한 길이었다. 서산에서 창리포구를 가는 버스를 타고 기사님께 내릴 곳을 말하고 부탁하니 방조제 입구로 가는 길에 내려주어 편리했다. 방조제를 조금 걸어 65코스 시작점인 태안관광안내소에 들어가 물을 청하여 마시고 본격적인 걷기를 오랜만에 시작한다.

 

태안관광안내소 전경

 

쭈꾸미가 건져올린 태안보물선 모형

 

 서산B방조제를 걸어가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이 부남호다.

 

 부남호(扶南湖)는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과 태안군 태안읍 남면에 걸쳐 있는 담수호로, 현대건설이 19805월에 착공하였으며 198210월에 태안군 남면 당암리와 서산시 부석면 창리를 잇는 서산B지구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면서 담수호로 형성되었다. 그 뒤 여러 담수화 과정을 거쳐 1986년에는 일부 지역에서 시험 영농이 실시되었다. 그 뒤 19958월에 서산B지구 간척사업이 완료되면서 부남호도 준공되었다.

 그 뒤 1997년 정부로부터 현대건설이 시설 관리자로 지정되어 관리하여 왔으며, 2004년 농어촌진흥공사와 현대건설 사이에 농업 기반 시설 인계인수 협약을 체결한 후 2007년 말 인계인수를 완료하여 2008년부터는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고 있다.

 

 방조제 길이는 1,228m, 매립 면적은 5,783이며 태안천, 상옥천, 홍인천이 합류하여 담수호 상류부로 유입되고 있다. 부남호는 철새의 주요 이동 경로인 해안선에 위치해 있고,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동 위도상의 내륙 지방보다 월평균 기온이 높다고 한다. 부남호는 1,021로 지역이 광대하고 민가와 격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물고기와 조류가 좋아하는 조개류, 그리고 간척 사업 지구 내의 벼, 억새 등이 풍부하여 철새 도래지로 적당하여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오고 있는 곳이다.

 

부남호의 모습

 

 방조제를 지나 아무 특색이 없는 도로와 농촌 마을길을 따라 걸으니 봄이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길가와 언덕위에는 벚꽃.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 목련 등등의 봄꽃들이 피어 현란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내가 길을 걸으면서 봄에는 항상 꽃구경을 하는 즐거움을 가지는 것도 길 걷기에서 얻는 큰 기쁨인데 올해도 여전히 그 기쁨을 즐긴다.

 

길가의 봄꽃

 

당항리다목적회관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일구어 놓은 농토

 

 길을 가다가 간혹 뱀이 보이기도 하고 로드 킬 당한 뱀도 보인다. 봄이 되어 뱀도 이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당했다. 뱀이나 다른 생명체나 사람이나 생명은 모두 소중한 것인데 뜻하지 않은 뱀의 사체를 보니 기분이 조금 언짢다.

 

로드 킬 당한 뱀의 사체

 

이정표

 

집앞의 장승

 

 

 

 언덕길을 조금 가니 바다가 오랜만에 보인다. 이정표를 보니 조금 더 가면 청포대라는 표시가 있다. 오늘은 늦게 걷기를 시작하였고, 또 집에서 떠날 때 이번 여정을 계획하면서 숙박하기에 편한 곳을 찾아서 하루를 멈추기로 여정을 계획하였기에 청포대에서 쉬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독살 설명

 

 청포대에서 오늘 하루를 멈추기로 하고 주변을 보니 제법 큰 펜션들이 조성되어 있고, 편의점들도 여러 곳이 보이며 평일인데도 오가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

 

 태안군 남면에 있는 청포대해수욕장(靑浦臺海水浴場)은 주변에 잘 알려진 유명해수욕장이 많아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숨은 보석과 같은 곳으로 넓고 긴 백사장을 가지고 있으며 태안해안 국립공원에 있다. 청포대해수욕장은 청포대라는 이름처럼 울창한 송림과 넓은 백사장이 시원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해변의 경사도가 완만하고 수온이 높아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기에 안전하고 좋은 곳이며, 백사장과 이어진 곳곳의 송림은 야영장으로 적격으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다..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거아도와 울미도, 삼도, 자치도 등의 섬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다.

 

 그런데 이곳에는 나같이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간단히 숙박을 헐 수 있는 모텔이라고는 없고 모두가 가족들이 함께 머무는 펜션뿐이라 조금은 난감했다. 하지만 여정을 계획할 때 이곳에 머물기로 하였고 날도 저물어 숙소를 구하려고 돌아보니 이름도 친근한 아재펜션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모두들 외국어나 바다 등을 소재로 이름을 지었는데 '아재'라는 친근한 우리말이 마음에 들어 숙박하기로 사장님을 찾으니 복스러운 얼굴을 가진 아재타입의 나이가 지긋한 분이었다. 혼자서 숙박하기에 기본 요금보다 싼 값에 숙박하기로 하고 방으로 들어가니 한 가족이 머물 수 있는 1층의 객실을 준다. 아직은 여름철도 아니고 평일이라 그렇게 손님이 많지 않아 객실이 여유가 있었다.

 

 

아재펜션 전경

 

 나이 지긋한 사장님의 말씨가 경상도 말씨라 고향을 물어보니 나와 같은 부산이라고 하여 친근감이 들어 여러 이야기를 하였다. 사장님이 말하기를 오늘부터 펜션 앞에 캠핑장도 오픈한다고 하며 자랑했다. 상당히 위치도 좋고 시설도 좋아 가족들이 단체로 이용하기에 편리한 듯이 보여 돌아보기를 부탁하니 안내를 해 주었다. 

 

 캠핑장을 안내해 주었는데 상당히 특이하고 편리한 구조였다. 내가 우리나라 곳곳을 걸어 다니며 수많은 숙박지를 경험했는데 캠핑장에 공용화장실이 아닌 개별 화장실과 샤워장을 마련해 놇은 것은 처음 보았다. 사장님 말이 요즈음 가족 단위의 캠핑객들이 공동 샤워장을 꺼리는 것 같아 따로 건물을 캠핑장 옆에 지어 개별 샤워장과 화장실을 마련했다고 한다. 굉장히 참신한 생각이었다. 특히 요즈음의 젊은이들에게는 공감이 가는 부분일 것이다.

 

캠핑장의 모습

 

캠핑장에서 보는 펜션

 

캠핑장의 위치에 밎춘 개별 샤워와 화장실

 

공용개수대

 

 캠핑장을 돌아보니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여름에 가족들을 데리고 올 생각으로 펜션 내부를 보여 달라고 하니 음료수를 한잔 대접하겠다며 카페로 들어가는데 무인 카페였다. 이 역시 사장님이 운영한다고 하였는데 아주 정결하고 다양한 음료가 준비되어 있어 편리했다.

 

캠핑장 앞의 무인 카페

 

펜션 앞의 바다 풍경

 

바닷가에서 보는 펜션 전경

 

 사장님이 펜션을 구경시켜 주면서 설명을 하였는데 굉장히 참신한 구조라고 생각이 들었다.

 전체가 3층으로 내가 머문 1층은 한 가족이 머물 수 있는 곳으로 테라스에서 바베큐를 할 수 있도록 시설을 해 놓았고, 복층 구조로 침실은 위에 있었다. 거실을 지나 테라스에서 바다를 구경하며 숯불을 피울 수 있는 구조로 크고 너른 탁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2층으로 안내를 해서 올라가니 2층은 두 가족이 함께 머물수 있게 넓은 구조였는데 역시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바다를 보며 즐길 수 있도록 테라스에 바베큐 시설구조를 마련해 놓았다. 3층은 또 두 개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역시 각 객실마다 바베큐를 즐길 수 있도록 시설을 마련해 놓았다.

 사장님 말이 요즈음은 가족들이 분잡하게 다른 가족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하기에 이런 독립된 구조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상당히 앞선 생각을 가진 사징님이었다.

 

1층의 모습

 

2층의 모습

 

 펜션을 구경하고 나니 어느 새 해넘이의 시간이 되어 바닷가로 나갔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백사장에서 해넘이를 보려고 있다. 어디에서든지 보는 해넘이는 장관이다. 자연의 경이로움이랄까? 바다로 떨어지는 해는 바다와 하늘과 땅을 모두 붉게 물들이며 내일을 기약하며 사라진다. 하지만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일 아침에는 또 떠오른다. 끊임없는 반복의 이치이다.

 

해넘이의 모습

 

 하루를 머물고 다음 날 아침 다시 길을 떠났다. 계속해서 바다 옆으로 난 숲길을 걸어가면 달산포해수욕장에 도착한다. 태안군 남면에 자리 잡고 있는 달산포해수욕장은 백사장은 규사로 이루어져서 에ㅖ전에는 한국유리에서 유리를 만들기 위해 많이 채취해 갔던 곳이다., 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바닷물 속 경사가 완만하여 물이 나가면 조개 등 어패류를 채취할 수 있어 해루질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달산포 가는 길

 

해루질을 하는 사람들

 

태안 해변길 표시

 

 달산포해수욕장과 몽산포해변은 이어져 있다. 백사장 가에 난 길을 따라 걸으면 몽산포해변이 나오고 그 중간쯤에서 65코스는 끝이 난다,

 

 태안군 남면(南面) 신장리 해안에 있는 몽산포해수욕장(夢山浦海水浴場)은 서산 남서쪽 18km, 태안 남쪽 9km, 남면반도 서안에 펼쳐져 있다. 깨끗한 백사장에 끝없이 펼쳐진 솔밭이 아름답고 물새 등 조류의 낙원을 이루며, 주변에는 천연기념물 모감주나무의 군락이 있어 많은 피서객이 모여든다. 해변의 경치가 아름다워 태안8경으로 선정되었으며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속한다. 몽산포에 대한 여러 소개는 다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http://www.mongsanpo.or.kr

 

www.mongsanpo.or.kr

 

 이곳에서 잠시 쉬고 다음 코스로 발길을 시작한다.

나의 여행기 - 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발길 따라가는 발칸 여행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이번 페이지에는 내가 블로그에 쓴 글들을 정리하여 발간한 책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벌써 책으로 나온지도 제법 지났는데, 내가 책을 소개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가 책으로 발간한 것도 나의 삶의 흔적이라는 생각에  이렇게 소개를 한다.

 

 책의 내용은 나의 블로그와 거의 비슷하지만 책으로 발간하기 위하여 블로그의 사진도 정리하고 글도 많이 다듬었다. 그래서 기본적임 내용은 대동소이하지만 약간은 다름이 있다.

 

 그러으로 내용은 직접 제시하지 않고 서문과 차례만 제시하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1.  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표지

 

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뒷 표지

- 서문 -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여행은 우리를 알지 못하는 세계로 이끌어 주고 꿈을 꾸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전문적인 여행가는 아니고 직장을 다녀야했기에 항상 어딘가로 떠나는 꿈을 꾸면서도 만족할 만큼 떠나지를 못해 항상 불만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나는 대로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도 제법 다니면서 내 나름의 여행을 즐기며, 언젠가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면 긴 여행을 할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었다.

 

 나의 여행은 항상 걷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 이유는 자연이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내가 걸은 만큼 보고 느낀다는 내 나름의 여행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롭게 배낭을 메고 떠나면 더 많이 보고 많이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여행지에서 유적지나 박물관, 미술관 등을 찾아다니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여행을 한다. 젊을 때부터 역사학과 고고학을 좋아했고 그 방면의 책도 많이 읽어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다.

 

 여행은 인생을 가장 풍요롭게 해 주는 좋은 방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요즈음은 TV를 보면 온 세계를 다 볼 수 있는데 왜 시간과 돈을 소비하며 고생스럽게 여행을 하는가? 하고 묻는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이나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모습, 고대의 유적들에 내 발걸음이 닿아 느끼는 감동은 화면으로는 실감하기가 어렵다.

내가 제법 많은 여행을 한 것 가운데 오랜 기간의 여행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한 달이 넘게 러시아를 여행한 것과 한 달 이상의 일본 배낭여행, 발칸의 여러 나라를 무작정 다닌 50여 일의 여행, 중국 운남성 한 달 여행 등등 제법 있다.

 

 이번 여행은 그리스문명의 자취를 보고 싶은 오랜 꿈을 이루어 보려고 떠난 여행이다. 이제는 나이도 많이 되었기에 혼자서 떠나는 것이 조금 망설여졌으나 다행히도 나와 취미가 비슷한 아들이 함께 여행하기를 원하여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이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도 내 아들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미리 말하면 나는 역사학이나 고고학, 예술을 단지 좋아할 뿐이지 전공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글은 전문적인 글이 아니고 단순한 여행기로 평범하게 내가 간 곳을 소개하려는 의도이다. 또한 사진도 전공하지 않았고 간편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 사진의 예술성도 없다. 그리고 이 글에서 나오는 역사적 사실은 네이버 지식백과를 많이 참조했음을 밝혀 둔다.

그리고 주로 그리스 문명을 찾아갔지만 시대의 변화에 의해 그리스 문명의 터전 위에 여러 다른 문명의 흔적도 보고 덧붙였음을 미리 고백한다. 특히 유럽의 초기 기독교의 모습이 많이 보이는 것은 유럽 문명의 특성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부족한 글과 사진이지만 나의 여행의 흔적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긴 시간의 여행보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서 여행의 추억을 음미하는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여행을 마치고 바로 개인 블로그를 통해 사진을 올리고 글을 썼지만 크게 만족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전 세계를 공황에 빠뜨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가지를 못하게 되어 다시 블로그의 글을 정리하면서 부족하지만 책을 내게 되었다.

 

 이 책을 내면서 언젠가는 다시 여행을 떠나 미처 보지 못한 많은 문명의 유적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차례 -

여행을 시작하기 전

 

그리스 편

아테네와 그 주변

신들의 고장 아테네 1 - 고대 그리스의 심장

신들의 고장 아테네 2 - 박물관과 유적지

신들의 고장 아테네 3 - 국립고고학박물관

신성한 땅 델피(델포이) - 세상의 중심 델포이

잊힌 도시 테베(테바이) - 오디이푸스 비극의 무대

 

펠레폰네소스반도

올림피아 -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

나프플리오와 티린스

미케네와 아르고스 - 신화에서 역사로

고린토스 - 시시포스의 신화가 전하는 곳

 

크레타 섬

크레타 이라클리온 주변

고대 유럽의 가장 오래된 도시 크노소스

 

 

터키편

카파도키아

카파도키아 1 - 무작정 걷기

카파도키아 2 - 열기구 타기(발룬투어)

카파도키아 3 - 그린투어

카파도키아 4 - 괴레메야외박물관

 

차낙칼레(트로이) - 신들의 전쟁에서 인간의 역사로

 

베르가마(페르가몬) - 신전과 학문의 중심 베르가마

 

이즈미르(스미르나) - 거대한 아고라의 도시

 

파묵칼레

아프로디시아스 - 아프로디테에게 바친 도시

파묵칼레 1 - 라오디키아와 석회층

파묵칼레 2 - 성스러운 도시 히에라폴리스

 

셸축

셸축(셸주크) - 초기 기독교의 성지 셸축

에페소스 - 장대하고 화려한 살아 있는 도시 에페소스

 

2. 발길 따라가는 발칸 여행

발길 따라가는 발칸 여행 표지

 

발길 따라가는 발칸 여행 뒷 표지

 

- 들어가면서 -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우리는 여행을 왜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산다.

이 의문에 대해 내 나름대로 생각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무의미한 세계에서 의미 있는 세계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 자체가 의미를 찾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여행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인간은 처음 존재하면서부터 여행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하여, 생존의 단계를 벗어나서는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여행하였고, 이를 토대로 문명을 발달시키고 역사를 만들어 갔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은 인간을 자연계에서 가장 뛰어난 생물로 만들었으며 현재는 모든 자연계를 지배하는 존재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유명한 심리학자이며 철학자인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로 정의했다. 우리는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순간에 발전한다. 그래서 새로운 나를 찾고자 할 때 우리는 애벌레가 껍질을 벗듯 새로운 세계를 찾아 여행을 시작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항상 인간관계에서 본연의 나가 아니라 '누구여야만 한다. 하지만 본연의 나를 찾아 떠나는 호모 비아토르의 삶은 우리에게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해 감동하며, 희망이 가득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호모 비아토르'의 삶은 제도에 구속된 무의미한 삶을 버리고 새로운 자유로운 삶을 찾아 나서는 행동으로 완성된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여행은 나를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러므로 여행할 때는 최대한 그 지방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지방의 재래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먹을거리를 장만하고,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식당을 이용하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여 그들과 함께 이동하면서 그들의 삶의 모습을 느끼고 즐기는 것이 좋다. 덧붙여 숙소도 최대한 검소하게 이용한다면 여행을 마치고 보는 계산서의 금액은 생각보다는 훨씬 적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계산서에 적힌 금액보다 더 큰 삶의 활기를 얻었다는 점을 깨닫고는 여행을 마치는 순간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여행의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이번 여행은 옛 동로마 제국이었던 튀르키예를 비롯한 발칸의 여러 나라를 약 50일간을 예정으로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비잔틴 제국이라고도 하는 동로마 제국은 로마의 이념과 제도를 이어받고, 종교적으로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았고, 문화적으로는 그리스의 전통을 많이 따랐다. 또 동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의 종주국으로서 제국의 역사적 초기에 그리스도교 포교를 통하여 그 문화적 기초를 형성하였다.

동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노폴리스(지금의 이스탄불)를 중심으로 중세 중기(4차 십자군 전쟁)까지 유럽 기독교 문명의 가장 강력한 강대국으로 동유럽 세계에 그리스-로마 문명을 전파하였다. 1,000여 년에 걸쳐 존속한 동로마 제국은 그 지정학적 위치상 로마 제국의 고전적 전통 및 중세 그리스도교 유럽과 소아시아의 이슬람교 문화의 교차 지점으로서의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끊임없는 이슬람의 공세에서 그리스도교 문명을 지켜냈던 동로마 제국의 문화적 유산은 오늘날 그리스를 비롯한 발칸의 여러 국가와 튀르키예에 그리스도교 문화, 정교회 문화, 이슬람 문화로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여행은 이스탄불에서 시작하여 많은 나라를 거쳐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와서 여행을 끝내는 일정이었다.  50일을 예정하고 바쁘지 않게 기차와 버스를 이용하여 국경을 넘어가고, 각 지방의 이동도 기차와 버스를 주로 이용하였다. 숙소는 유스호스텔을 기본으로 하고 피치 못할 경우에는 호텔에서 묵는 것으로 하였다. 식사는 유스호스텔에서는 시장에서 먹거리를 구하여 조리해 먹는 방법을 택하였고, 호텔에 숙박하는 경우는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을 택하였다.

 

 여행지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곳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곳도 많다. 패키지여행을 따라가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많은 문화적 유산을 보았고, 아름다운 경치를 즐겼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과 지리적 설명, 문화유적에 대한 설명은 네이버 지식백과를 많이 참조하였음을 미리 밝힌다.

 

 이제 코로나를 벗어나 또 여행을 즐기는 시기가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잠시 멈추었던 여행의 묘미를 다시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 특히 발칸을 여행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차 례 -

들어가며

 

튀르키예(Turkey)

이스탄불 1 - 갈라타지역 주변

이스탄불 2 - 술탄 아흐멧지구

이스탄불 3 - 탁심지구와 보스포루스해협

이스탄불 4 - 아야 소피아박물관

이스탄불 5 - 고고학박물관과 주변

이스탄불 6 - 톱카프 궁전

 

불가리아(Bulgaria)

소피아 1 - 지혜(소피아)의 상징

소피아 2 - 아름다운 건물이 즐비한 도시

벨리코 투르노보 - 불가리아 가장 오래된 마을

소피아 3 - 국립미술관

릴라수도원 - 구원의 수도처

 

세르비아(Serbia)

베오그라드 - 현대와 과거가 어울린 낭만의 도시

우지체(Uzice)1 -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도시

우지체(Uzice)2 - 사람들이 여유롭게 사는 도시

우지체(Uzice)3 - 자연을 즐기는 모크라 고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사라예보 - 역사의 현장

모스타르 - 다리의 도시

포치텔 - 한가하게 여유로운 마을

메주고리예 - 성모 마리아 발현지

 

크로아티아(Croatia)

두브로브니크 - 황홀한 성벽의 도시

스플리트(Spilt) - 황제가 휴양처로 정한 도시

플리트비체국립공원 - 신이 만든 자연의 경이

자그레브 - 자꾸만 생각나는 도시

 

헝가리(Hungary)

부다페스트1 - 다뉴브의 진주

에스테르곰 - 헝가리 가톨릭의 중심

부다페스트2 - 아름다운 건축물

부다페스트3 - 세체니 온천지구

부다페스트4 - 부다페스트에서의 부활절

세게드, 세르비아 수보티차 - 대학의 도시

페치(PECS) - 새로운 만남의 장소

 

루마니아(Romania)

티미쇼아라 - 광장의 도시

시기쇼아라 - 중세 요새 도시

브란성(드라큘라성) - 드라큘라로 더 유명한 성

브라쇼브 - 중세가 살아 있는 도시

부쿠레슈티 - 발칸의 파리

 

마치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가 블로그에 쓴 글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발간할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서해랑길 64코스(궁리출장소 - 간월호철새탐조대 - 간월도선착장 - 천수만쉼터 - 태안관광안내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64코스는 궁리출장소를 출발하여 간월호철새탐조대와 간월도선착장을 지나서 천수만 쉼터를 지나고 창리포구에서 방조제를 따라 가면 중간에 태안관광안내소가 있고 여기서 끝이 나는 13.2km의 비교적 짧은길이다.

 

64코스 인내판

 

 64코스를 시작하여 조금 가면 궁리항이 나오고 해안을 따라 계속 기면 간척사업으로 유명한 서산간척지가 나온다. 간척지의 방조제를 따라 가면 방조제 위에서 홍성이 끝나고 서산이 시작됨을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

 

궁리항 엠블렘

 

천수만 해안길

 

방조제

 

서산시의 시작 표시

 

 방조제를 걸어가니 중간에 서산의 관광안내판과 서산 간척사업에서 아주 기발한 공법으로 간척사업을 완성시킨 유명한 정주영공법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다.

 

 서산A지구방조제는 홍성군 서부면 남당항로와 서산군 부석면을 연결하는 길이 6,458m인 방조제로 홍성 쪽에서는 간월도를 보며 달리게 된다. 19798월 물막이 공사를 시작해 198210월에 B지구, 19843월에 A지구 물막이 공사를 최종 마무리했다. 간척으로 대단위 농경지가 조성된 뒤에는 먹이가 풍부해 천수만 일대가 철새도래지로 자리를 잡았다.

 서산AB지구 간척사업은 1970년대 중동에 나가 있던 ()현대건설이 대규모의 장비를 철수하게 되자 정부는  이 장비로 대단위 간척사업으로 농지를 늘려 식량 자급량을 확보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되어 1980523일 착공하였다.

 방조제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최종 물막이 공사에 접어들어 남은 구간이 260m가 되었을 때는 유속이 초속 8.2m에 달해 10톤이 넘는 바위도 쓸려 나가는 난공사였다. 트럭으로 아무리 많은 흙을 쏟아부어도 물에 휩쓸려 나가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난감해 했다. 이때 고안된 공법이 세계 토목 사상 유래가 없는 VLCC 유조선 공법으로 방조제 사이를 유조선으로 가로막고 유조선 탱크에 바닷물을 넣어 바닥에 가라앉힌 다음, 조수의 유입을 차단하여 방조제를 잇는 공법이다. 정주영(鄭周永) 회장이 고안한 공법으로 정주영 공법이라고도 한다.

1984310일 서산A지구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를 완료하였고 1995814일 착공 153개월 만에 준공하였다.

 

정주영 공법 안내판

 

천수만 해안은 너무 길어 여러 시와 군에 접하므로 어디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여기서 소개한다. 

 

 천수만은 서해 중에서 충남 육지부와 안면도 사이에 위치한 만입 지형이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철새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가 자리하고 있다. 간척사업으로 천수만 일대에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과거 갯벌이던 곳에 인공 담수호인 간월호, 부남호와 대단위 농경지가 형성되었다. 이 일대는 시베리아나 만주 등지에서 동남아시아를 오가는 철새의 주요 이동 경로로 간척사업으로 인해 벼를 재배하는 대단위 농경지가 들어서면서 추수 후에 남겨지는 곡식들이 겨울 철새들의 좋은 먹이가 되어 철새도래지로 적합한 조건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그 중 가창오리는 전 세계 개체수의 90% 이상이 모인다고 한다. 많은 종류의 새들이 떼 지어 날아오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천수만 해안길은 겨울 철새와 겨울바다, 갯벌, 겨울별미 등을 만날 수 있는 해안도로로 겨울에 더욱 여행 맛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청명한 겨울 서해바람을 느끼며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여러 철새들의 화려한 군무를 관찰할 수 있다. 여기에 멋스러운 서해 낙조까지 만끽할 수 있다.

 

간월호 철새도래지 표지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있는 인공호수인 간월호(看月湖)는 수면면적 28.76, 서산·홍성 일대의 천수만 일부를 막는 간월부남지구 간척사업으로 인해 조성되었다. 서산 A지구 방조제에 의해 천수만과 분리되어 오른쪽이 담수호인 간월호, 왼쪽이 바다인 천수만이다. 1984년 물막이 공사가 끝난 뒤 호수의 염분이 빠져나가 담수호로 바뀐 뒤부터 담수어종이 크게 늘었고, 매년 11월에서 3월이면 120여 종의 수십만 마리 철새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0여 종의 조류가 찾아오는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다.

 

방조제를 지나 간월도 가는 표시

 

 간월도로 가는 이정표를 보고 간월암을 가리키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서산 어리굴젓의 대명사인 간월도가 보인다. 피안도(彼岸島)라고도 불렸던 간월도(看月島)는 서산시 부석면에 속한 면적 0.88의 작은 섬으로 아름다운 어촌 100에 선정된 어촌마을로 간월암이 있는 유명 여행지다. 이름에 에''()가 들어가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원래는 섬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말 천수만 간척 사업으로 인해 간월도 인근에 간척지가 생겨 뭍과 연결되어 지금은 육지다. 간월도에는 썰물엔 걸어 들어갈 수 있고 밀물엔 쪽배를 타고 건너는 무학대사와 원효대사가 수행을 했던 천년의 역사를 가진 간월암이 있다. 만조 시에 바다 위에 떠 있는 간월암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며, 간월도는 어리굴젓과 영양굴밥으로 유명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간월도 입구에 들어서면 큰 기념탑이 눈에 들어온다. 음식물을 주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세워진  기념탑으로 알려져 있는 '어리굴젓기념탑'이다. 기념탑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주차장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이 공원 너머로 더 가면 내리막길이 있다. 그 앞으로 작은 섬 간월도가 보인다. 드넓은 바다와 갯벌이 어우러진 간월도는 해가 넘어가는 장면이 장관이다.

 

굴따는 아낙네의 조형물

 

천수만과 멀리 보이는 그림같은 간월암

 

어리굴젓탑

 

 여기를 지나다 보니 그림같은 천수만과 간월암을 볼 수 있는 곳에 카페가 있다. 이런 카페를 그냥 지나가는 것은 여행자의 도리가 아니다. 너무 시간이 촉박하면 어쩔 수 없지만 이번 여정은 64코스에서 끝내기로 마음을 굳혔기에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카페에 가니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고 나 혼자다. 호젓한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한잔 청하여 창가에 앉아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고 간월암으로 걸음을 옮긴다.

 

간월암 입구

 

 간월암으로 가는 길이 마침 물이 빠져서 걸어갈 수 있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간월암을 구경하고 간월암으로 들어가는 주차장에는 관굉버스도 보였다.

 

 간월도에 가면 물위에 떠있는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암자를 하나 만날 수 있다. 간월도에는 새끼 섬이 하나 있다. 이 새끼 섬은 하루 두 번씩 물이 빠질 때 30m 정도의 모래톱 길이 열려 섬과 육지가 된다. 손바닥만 한 이 섬에 조막만한 '간월암(看月庵)'이 들어앉아 있다. 과거 명칭은 피안암(彼岸庵)으로 삼국시대 당시에는 옛 명칭으로 불리다 어머니 등에 업혀 이 섬으로 들어오게 된 어린 무학대사가 이곳 토굴에서 달빛으로 공부를 하다가 천수만에 내리는 달빛을 보고 깨우침을 받았다고 하여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한다. 이후 폐사되었다가 1941년에 현재의 구조로 재건되었다. 근대 한국선 불교의 중흥조인 만공선사께서 간월암에 주석하시면서 수행 정진하셨고, 또한 많은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던 곳이다.

 

 바다 위의 작은 섬과 그 안에 있는 작은 절 간월암은 밀물과 썰물 때 섬과 육지로 변화되는 보기 드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간월암은 커다란 바위 전체에 아담한 암자가 자리하고 있어 만조 시 물이 차면 마치 암자가 물 위에 떠 있는 듯 신비로운 경관을 만들어낸다. 그 간월암 너머로 간월도의 명품인 일몰의 경관이 펼쳐지고, 가을이 되면 군무를 통해 새들의 천국을 이룬다.

 

물이 빠져 육지와 이어진 간월암의 모습

 

간월암 설명판

 

간월암과 간월암에서 보는 바다

 

간월암이 육지와 이어진 모래 길

 

 간월암을 돌아보고 나와서 다시 해안을 따라가니 서산 어리굴젓을 파는 집이 곳곳에 보인다.

 

 간월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자연산 굴이다. 어리굴젓 앞에 간월도가 붙어야 명품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정도이다. 아주 가난하던 옛날부터 간월도 주민들을 풍성하게 한 것은 굴이고, 지금도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 것도 역시 굴이다. 조선시대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렸던 진상품으로, 서산 굴은 색깔이 거무스레하고 알이 작은 편이다. 강장식품으로도 알려져 있는 서산 어리굴젓은, 임금님이 드시던 그 맛 그대로 서해안 갯벌에서 채취한 자연산 굴과 천일염 등 신선한 재료에 정성을 더하여 만든다.

 

 굴을 따는 시기는 보통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약 6개월 정도이며, 물이 빠지는 시간에 맞추어 개펄에 나간다. 굴은 대부분 여자들이 개펄에 나가 채취하는데 한 달에 약 20일 정도 작업을 한다.

 

 내가 음식에는 조금 욕심이 있어 여행을 다니면서 그 지방의 특별한 별미는 꼭 맛을 보거나 구입을 한다. 그래서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간월도 어리굴젓을 사서 택배로 집으로 보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보내온 어리굴젓에 여러 양념을 하여 맛있게 먹으니 다시 여행이 새롭게 머리에 떠올랐다.

 

간월도 어리굴젓 가게

 

멀리 보이는 서산버드랜드

 

 

 

 간월도를 지나 해안을 따라가면 조그마한 쉼터들이 나온다. 천수만쉼터, 간월호쉼터공원 등을 지나 도로를 따라가다가 다시 해안으로 나가면 창리포구로 향한다. 창리포구는 역사적으로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왜현리였으며 왜구의 침입이 잦은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수군의 배를 매어 두던 주사창이 있어서 주사창리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3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음력 정월 초사흘에 행해지는 풍어굿인 '창리 영신제가'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간월도로 가는 유일한 포구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서산 AB 방조제가 완공되어 아주 편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제법 큰 포구로 많은 낚시꾼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창리포구의 여러 모습

 

 창리포구를 빙 돌아나와서 더 가면 방조제가 나온다. 바로 서산 B지구 방조제이다. 이 방조제를 걸어 조금 가면 방조제 위에 태안관광안내소가 나오고 여기서 이 코스는 끝이 난다.

 

서산 b지구 방조제에서 보는 부남호

 

 여기에서 이번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원래 집을 떠날 때 예정했던 시간을 하루를 앞당겨서 여정을 마쳤다. 집을 떠날 때 걷기를 예정한 것보다 내가 그만큼 걷기를 잘하는 것이라 뿌듯했다.

 이제 겨울도 깊어가기에 다음 여정을 언제 다시 시작할는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의 여정을 끝낼 때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이제 너무 멀다. 창리에서 버스를 타고 서산으로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가는 먼 길을 가야 집으로 간다.

 

서해랑길 63코스(천북굴단지 - 홍성방조제 - 남당항 - 속동전망대 - 궁리출장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63코스는 천북굴단지에서 출발하여 보령을 벗어나 홍성으로 들어간다. 바로 붙어 있는 홍성방조제를 지나서 천수만을 왼쪽으로 끼고 해안을 계속 걸어가면 남당항이 나온다. 남당항에서 계속 해안을 따라 걸어 속동전망대를 지나서 궁리출장소에서 끝이 나는 11.2km의 짧은 길이다.

 

서해랑길 63코스 안내판

 

 보령을 벗어나니 안내판이 버젓하게 서 있다. 보령의 세 코스에서 안내판을 보지 못하다가 다시 보니 이게 무엇이라고 너무나 기뻤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이렇게 가볍다는 것을 느끼며 길을 가니 바로 홍성방조제다.

 홍성군 서부면과 보령시 천북면을 잇는 홍성방조제의 서쪽 바다에는 안면도가 수평선 위에 거대한 섬으로 떠 있고, 방조제가 끝나는 곳에 있는 수룡포구 쪽으로 내려가면 좀더 가까이서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내륙 쪽으로는 간간이 날아드는 철새들의 군무가 볼거리라고 하지만 내가 지나는 시간대는 대낮이라 철새들의 군무를 보지 못했다.

 

홍성방조제

 

홍성방조제에서 보는 풍경

 

 홍성방조제의 끝 부분에 수룡항 포구가 있다. 홍성군 서부면에 자리한 수룡항 포구는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다. 가까운 곳에 천북 굴 단지가 있어 저렴한 가격으로 굴 요리를 맛볼 수 있고 탁 트인 바다 앞에서의 힐링도 가능한 곳이다.

 

수룡항 포구

 

 수룡항 포구를 지나 해안을 따라 가니 어느 새 저녁이 되어 어스름이 짙게 드리우기 시작한다. 오늘의 여정을 남당항에서 멈추기로 예정을 하였기에 미리 예상을 해둔 숙박처에 전화를 하여 예약을 하고 그 집을 찾아 갔다. 그 집 앞의 식당에서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 편의점에서 내일을 대비한 먹거리를 구입하고 오랜만에 맥주도 한 캔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였다.

 

남당항 가는 길

 

 천수만변에 있는 어항으로, 홍성읍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있는 남당항은 우리나라 가을철 대표적인 축제인 대하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남당항에는 대하축제 기간인 9~10월 두 달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 한바탕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하지만 대하뿐만 아니라 천수만 최고 별미인 새조개가 유명해 미식가들을 유혹하는 곳으로 이른 봄에는 새조개축제가 열린다. 그러나 내가 이곳을 지나는 시절은 축제가 끝난 후라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그리고 식당마다 겨울을 맞이하는 김장 준비에 여념이 없어 바닷물에 절인 배추더미가 곳곳에 보였다.

 

 이 날이 올해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기상예보가 나오고 서해안에는 눈이 온다는 예보가 저녁에 있어 조금 걱정하였으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에 조금 눈이 왔어 대지를 하얗게 덮고 있었다.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풍경

 

 아침에 일어나 해안을 따라가니 아름다운 해안이 이어져 나오고 남당노을전망대가 나온다. 노을이 아름답다는 서해안을 걸으며 노을을 보고 지나온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내가 걷는 길에서 노을을 보기 위해서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남당노을전망대

 

 남당노을전망대를 지나 어사리쪽으로 길을 가니 나이가 든 여인들이 호미와 소쿠리를 들고 바다로 나가고 있다. 지나가면서 말을 걸어 무엇을 캐러 가느냐고 물으니 굴을 캐러 간다고 한다. 마을의 어촌계에서 모여서 굴을 채취하는지 바다를 보니 많은 여인들이 작업을 하려고 모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유명한 천수만의 어리굴젓의 생산지라는사실이 생각났다. 그들이 무리를 지어 떠들면서 모여서 잏하는 바다는 그들에게는 생활의 터전이고 살아온 고향이었다.

 

굴 캐는 여인들의 모습

 

어사리노을공원을 가리키는 이정표

 

 이곳을 지나니 저 멀리에 타워가 보이고 옆으로 숙동해안공원 표지가 보인다. 속동갯벌마을은 홍성 해안의 명소로 어사리 포구와 궁리 중간 서해안의 보고인 천수만 바닷가에 위치한 농어촌마을로 홍성 8경 중에 하나인 마을의 갯벌과 속동 전망대에는 외지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다. 푸른 해송림이 바다와 어우러져 있고, 해변 앞의 모섬까지는 언제나 섬에 오를 수 있도록 나무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바닷가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속동해안

 

 멀리에서 보이던 타워는 홍성스카이타워다. 홍성군은 대표 관광브랜드 육성을 목표로 관광객을 유인하기 위해 핵심시설로 속동전망대에  '홍성스카이타워'를 조성 중이다.

 

 홍성스카이타워는 높이 65m의 초대형 구조물에 256가지 색을 표현할 수 있는 RGB조명 시설을 도입하여 타워 자체의 아름다운 디자인이 세심하게 표현될 수 있도록 조명기구를 공간 배치해 천수만의 바다와 어울리도록 잔잔하고 고급스러운 경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스카이타워의 가장 상부에 설치돼 있는 첨탑 조형물의 조명 연출은 촛대 위에 촛불이 켜진 것처럼 예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하고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의 진한 여운과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타워의 상층 전망대느의 발아래는 모두 유리로 돼 있어 바닥이 훤히 보여 걸음을 옮길 때마다 스릴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내가 지나가면서 주위에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으니 아직 개장이 되지 않았다고 하여 아쉽지만 걸음을 옮겼다.

 

홍성스카이타워

 

 홍성스카이타워 옆에 서해랑길 쉼터가 보여 가보니 이직 시간이 일러 직원이 출근을 하지 않아 문을 닫아 놓았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 내가 가는 길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해랑 쉼터

 

궁리항 가는 길

 

 홍성스카이타워를 지나 길을 따라가면 궁리항이 나오고 여기서 이 코스는 끝이 난다. 종착점에 도착하니 아침 일찍부터 걷기를 시작하였기에 오전이 이른 시간이다. 오늘 이번 여정을 끝내기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기에 다음 코스로 발길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