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31(06.16, 사리아 - 포르토마린)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사리아 -  바르바델로(4.5km) - 렌테 루고(0.8km) - 페루스카요(3.9km) - 모르가데 루고(2.8km) - 페레이로스 루고(1.1km) - 아 파로차(5.6km) - 빌라차(1.3km) - 포르토마린(2.5km)

 

 오늘은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까지 약 22km 남짓한 길을 걷는다.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까지 걷는 길에서 순례자는 조그만 흥분으로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것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100km가 남았다는 거리표시가 있는 표지석 때문이다. 이 표지석 앞에서 순례자는 기념사진을 찍고 스스로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생각하며, 이제 이 여정의 목적지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은 행복한 기쁨을 즐길 것이다.

 

 사리아에서 오늘 통과하는 루고 지방은 까미노에서 가장 쾌적한 구간으로 비옥한 땅과 향기로운 과수원이 펼쳐진다. 페레이로스를 지나면서 포르토마린까지의 내리막 이외에는 특별하게 힘든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으며 떡갈나무와 밤나무 숲속의 그늘로 편안히 걸을 수 있다.

 

 역시 바쁘게 움직이는 한국 사람들은 오늘도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 새벽같이 일어나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동도 트기 전에 길을 떠난다. 같은 숙소에 머무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과에 맞추어 길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 숙소가 신시가지에 가까워서 길을 떠나면 구시가지쪽으로 발을 옮긴다. 인적이 없이 적막함 속에서 길을 떠나니 구시가지에 있는 막달레나 수도원(Convento de la Magdalena)이 나온다.

 

사리아 표시

 

멀리 보이는 사리아 신시가지

 

막달레나 수도원(Convento de la Magdalena)

 

 사리아의 구시가지 언덕 위에 위치해 있으며 도시와 근교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은 막달레나 수도원(Convento de la Magdalena)은. 이사벨 여왕 시대에 만들어진 고딕 양식 성당으로, 플라테레스코 양식 문과 고딕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양식의 회랑이 있다.

 

 막달레나 수도원을 지나 도시를 빠져나와 약 1km 정도를 걸어 강을 건넌다. 다리를 건너 과수원과 목장 사이의 평화로운 숲길로 가서 작은 마을들을 지나 아스팔트로 포장된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면 수도원의 유적이 남아있는 바르바델로다. 사리아의 출구에서 바르바델로까지는 약 한 시간이 걸린다.

 

길가의 오래 된 고목들

 

바르바델로 신티아고 성당 설명  - 산티아고 가는 길을 발전시킨 공로를 표현한 설명

 

바르바델로 산티아고 성당(Iglesia de Santiago)

 

 수도원 때문에 오 모스테이로(O Mosteiro; 수도원)라고도 불리는 바르바델로는, 중세 시대에 수도원을 중심으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오래된 수도원의 유적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과 요새의 약간 부분만 남아 있다.   갈리시아 지방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형적인 성당은 강인해 보이는 탑과 팀파눔과 주두의 부조가 돋보ㅇ니다. 성당 안에는 순례자 산띠아고의 상이 있다. 팀파눔에는 어떤 남자가 장미와 십자가로 둘러싸인 채 팔을 펼치고 있는 장면이 새겨져 있는데, 이 장면이 템플 기사단의 입회자가 로사크루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 길을 걸으며 만나는 작은 마을에는 루고라는 명칭이 마을 뒤에 붙어 이곳이 루고지방임을 알리고 있다.

 루고주(Lugo)는 스페인 갈리시아 자치지방에 있는 주로 주도(州都)는 루고이다. 북쪽으로 비스케이만()에 면하며, 내륙에는 칸타브리아산맥이 동서로 달리고, 서남부를 흐르는 미뇨강 유역에는 규모가 작은 마을들이 교구(敎區)를 중심으로 넓게 분포한다. 대체로 산이 많고 경작지가 적어서 축산이 중요한 산업이며, ·구리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18세기 이후 새로운 일을 찾아 신대륙으로 나가는 사람이 많았고,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유럽의 산업국가들로 이민가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중간에 만나는 알베르게 - 마잔 말

 

넓게 펼쳐지는 평원

 

 산티아고의 조각상이 있는 성당을 지나면 바르바델로에서 렌테까지는 약 1km 정도로, 마을 출구에서 오르막을 걸어가면 멀리 아름다운 오르비오 산의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오고 렌테에 도착한다. 조금만 더 가면 드디어 순례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100km가 남았다는 표지석을 만난다. 100km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먹먹해진다. 이제부터 걸어갈 거리는 걸어온 거리에 비해서 아무 것도 아니고 이제는 다 왔다는 안도감에 잠시 빠진다. 많은 순례자들이 모두 이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는다. 서로가 서로를 찍어주며 수고했다고 칭찬을 한다. 잠시 사진을 찍고 휴식을 한 뒤 모르가데까지 걸어가면 페레이로스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나온다.

 

산티아고 100km 표지석

 

돌집의 쉼터

 

 여기서 페레이로스까지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여러 마을을 통과한다. 페레이로스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포르토마린까지는 약 9km가 남아있으며 여러 작은 마을을 지난다. 작은 마을의 바에서 휴식한 후에 다시 길을 가서 빌라차에 다다르면 강 맞은편으로 벨레사르 댐 때문에 도시 자체를 온전히 이동했다고 알려진 포르토마린이 보인다. 여기서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나면 어느 쪽으로 가도 비슷한 거리로 같은 곳에서 마주친다. 아스팔트 포장 길을 따라 내려가 긴 다리를 건너면 포르토마린에 도착한다.

 

포르토마린 표시

 

 과거 로마인들이 미뇨 강 위에 다리를 놓았을 때부터 포르토마린은 강가에 위치한 마을이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였다. 이런 이유로 마을의 다리는 남편 알폰소 1세와 맞섰던 도냐 우라까의 명령으로 파괴되었고, 이 다리는 산티아고 대성당을 건축한 마테오 데우스탐벤의 아버지이자 순례자 페드로로 불렸던 페드로 데우스탐벤에 의해 재건되었다. 1946년에 스페인 역사예술단지로 지정되었지만 포르토마린 역시 근대화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63년 포르토마린은 벨레사르 저수지를 건설하면서 강의 왼쪽에 있는 성 베드로 마을과 오른쪽에 있는 성 요한 마을을 이어주던 중세부터 순례자들이 건너오던 아름다운 다리는 수몰되었지만 산 니콜라스 요새 성당, 산 페드로 성당의 파사드, 마사 백작의 집, 베르베토의 궁전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들의 일부가 새 도시로 자리를 옮겨 보존될 수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포르토마린은 과거와 현재의 조합이 잘 이루어진 매력적인 곳이 되었다. 새로 몬테 데 크리스토 언덕 위에 만들어진 포르토마린은 미뇨 강에서 이 마을을 바라보면 환상적이라고 한다. 역사적인 건축물 외에도 포르토마린에는 여러 곳의 관광지가 있으며, 강 계곡의 길에서 여러 개의 다리와 풍차 등을 보며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포르토마린 엠블렘

 

 미뇨강을 건너 몬테 데 크리스토 언덕 위에 만들어진 포르토마린으로 올라가면 제법 높은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통과하면 신시가지가 펼쳐진다. 새로 만들어진 도시답게 새로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도시는 편리하게 조성되어 있다.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오늘의 숙소인 알베르게가 길가에 있다.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바로 옆에 슈퍼가 있어 편리했다. 슈퍼에 가서 내일을 위한 먹거리와 저녁을 위해 약간의 주류를 구입하고 거리로 나가니 어제 사리아에서 본 스페인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있다. 그들도 여기서 오늘하루를 마치고 머무르는 것이다. 거리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산 니콜라스 요새 성당(Iglesia Fortaleza de San Nicolas)이 나온다.

 

 산 니콜라스 요새 성당(Iglesia Fortaleza de San Nicolas)은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이 12세기 말에 설립한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으로 망루가 있는 벽과 건물의 높이가 요새로서 사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장미창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과 매우 비슷한 외양의 정문 장식이 아름답다. 이 정문을 장식하고 있는 24명 인물상은 산티아고 대성당을 건축한 거장 마테오 데우스탐벤(Mateo Deustamben)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수태고지 장면을 조각한 부분을 보면 성모와 천사 사이에 다산과 불멸을 상징하고 가톨릭의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세 개의 솔방울이 있다. 주두 장식에는 왕관을 쓴 사람 머리에 새의 몸통을 한 동물의 부조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마테오 데우스탐벤의 아버지이자 까미노의 가장 훌륭한 건축가 페테로 데우스탐벤(Pedro Deustamben)의 작품이다.

 원래 성당 건축의 규칙은 제단이 있는 곳이 동쪽이나 예루살렘을 향해 있고 파사드가 서쪽을 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돌을 하나씩 옮겨 성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성당의 제단과 파사드의 방향이 잘못되었는데 이 때문에 다른 성당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빛의 향연을 만끽 할 수 있다고 한다.

 

 성당 외부를 돌아보고 안으로 들어가려니 문을 닫아 놓아서 들어가지를 못하고 문 앞에 보니 오후 7시에 미사를 한다고 붙어있다. 그래서 그 시간에 맞추어 미사에 참석하고 내부를 구경하기로 하고 주변을 보니 여러 건물이 눈에 띈다.

 

 

 

성당 설명

 

Cruceiro de San Nacolas(산 니콜라스의 십자가)

 

 성당 외부에 Cruceiro de San Nacolas(산 니콜라스의 십자가)가 서 있다. 이 길을 걸으며 숱하게 많은 십자가를 보았는데 이 십자가는 '하늘로부터의 용서'를 뜻한다. 즉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이 십자가를 세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는 길가는 여행자 즉 순례자를 보호한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갈리시아만 해도 약 12,000개 정도가 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죄를 용서받기를 원했으며 순례자를 보호하려는 의지도 강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산 니콜라스 요새 성당(Iglesia Fortaleza de San Nicolas)

 

위에서 이야기한 마을의 역사 설명

 

갈리시아의 순타상

 

의회

 

  산 니콜라스 요새 성당(Iglesia Fortaleza de San Nicolas) 주변의 광장에는 여러 조형물들이 보인다. 모두 수몰된 옛 마을에서 가져온 곳으로 완전한 것도 있고 일부만 복원한 것도 있다. 그 중 의회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페드로 성당의 일부를 복원한 것이다. 산 페드로 성당(Iglesia de San Pedro)은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현재에는 성당의 문을 포함한 정면 부분만 옮겨져 남아 있다.

 

 성당 내부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우리 일행 4명은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이곳의 여러 음식 중에서 츌레톤(chuleton)이라는 스페인식 왕갈비가 유명하다고 작년에 이곳을 거쳐간 아들이 미리 알려주어서 4인분을 시키니 티본 스테이크와 같은 거대한 갈비를 구워온다. 고기가 담긴 그릇이 달구어진 쇠그릇이라 계속 익히면서 고기를 잘라 먹게 하였고 식판이 식으면 다시 갈아 주었다. 가격에 비하여 양이 상당히 많았고 맛도 있어 오랜만에 소고기를 맛있게 먹고 떠들면서 와인도 마시며 주변을 보니 한국인이 눈에 많이 띈다. 모두들 즐겁게 저녁을 끝내니 어느 새 저녁 미사를 할 시간이 되었다.

 

츌레톤

 

 천주교 신자도 아닌 일행 모두 나와 같이 성당에서 미사를 보는 것이 보편화된 행동이 되어 함께 미사에 참석하니, 길을 걸으며 만난 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길을 무사히 걷기를 서로가 빌어 주었다. 미사가 끝나니 순례자들을 위해 특별히 강복이 있고 세요를 성당에서 찍어 주었다.

 

산 니콜라스 요새 성당(Iglesia Fortaleza de San Nicolas) 내부

 

 미사를 마치고 주변을 조금 배회하다가 숙소로 돌아와 하루의 피로를 가볍게 풀기 위해서 맥주를 한잔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잠자리에 든다.

 

 오늘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 하였다. 특히 캐나다에 살면서 거의 매년 이 길을 걸어 17번째 길을 걷는다는 한국인, 불편한 다리를 끌고 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대만의 여인, 그리고 불편한 다리를 지팡이에 의존하여 길을 걷고 있는 서양인, 그들 모두는 무엇 때문에 이 길을 걷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지만 그들 자신만의 동기가 있고 얻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다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