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30(06.15, 트리아카스테야 - 사리아)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트리아카스테야 -  루시오(3.8km) - 렌체(1.7km) - 사모스(4.3km) - 산실 - 몬탄 - 푸렐라(6.5km) - 핀틴(1.3km) - 칼볼, 루고(1.4km) - 아구이아다(0.5km) - 산 마메데, 루고(1.3km) - 사리아(3.4km)

 

 오늘은 트리아카스테야를 출발하여 사리아까지 가는 약 25km의 길을 걷는다.

 

 트리아카스테야에서 사리아는 걷는 길이 두 가지나, 두 길은 모두 까미노 프란세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산실로 가는 오른쪽 길은 아름다운 숲과 계곡을 지나 사리아까지 19km 정도로 약 6시간 걷는다. 왼쪽 길은 아름다운 훌리안 이 바실리사 왕립 수도원이 있는 사모스를 지나는 길로 검은 돌로 지붕을 얹은 시골집과 아름다운 목장, 강가의 숲길을 걸으며 근사한 갈리시아 지방의 매력적인 풍경을 감상하지만 25km 정도로 한 시간 이상을 더 걷는다. 갈리시아를 통과하는 까미노에서 가장 중요한 훌리안 이 바실리사 왕립 수도원이 있음에도 이 길은 개발의 논리에 밀려서 원래의 모습을 점차 잃고 있다. 숲은 벌목되고 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수도원 근처까지 공장지대가 침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길은 순례자의 마음을 끄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왼쪽 길을 선택해서 사모스로 간다.

 

 아침에 일어나니 일찍 떠나는 사람들은 벌써 떠나고 있다. 그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기에 나와 같이 길을 걷는 사람과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떠나기로 하고 식당에 가니 몇 사람이 간단한 아침을 먹고 있다. 간단한 식사를 하고 평상시에 비해 조금 늦게 알베르게를 나와 마을 출구로 가니 어제 와 본 곳에서 두 개의 까미노 표시석이 있다. 여기서 사모스로 가기 위해 왼쪽으로 발을 옮긴다.

 

마을 출구의 두 개의 표시석

 

마을 출구의 산티아고 십자가와 순례자상

 

안내 지도

 

 트리아카스테야에서 오리비오 강을 따라 걷게 되는 이 길은 거리는 더 길지만 완만한 평지를 걷기 때문에 편하다. 트리아카스테야를 통과하는 도로를 따라 오리비오 강 다리를 넘어서 피카카예 산의 울창한 숲을 감상하며 편안히 걸으면 루시오 마을을 지나 다음 마을인 렌체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걷는다. 렌체는 주민수가 아주 작은 마을로 마을의 바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아 그냥 지나친다. 길은 부드러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작은 언덕을 오르면 산 마르티뇨 도 레알이 보이고 오리비오 강을 작은 다리를 건너면 산 마르티뇨 도 레알로 들어간다. 오래된 시골 가옥들 사이를 지나 마을을 통과하면 도로의 아래를 지나는 터널을 지나 로우사라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 주위에 오래된 돌담이 늘어서있는 좁은 오솔길로 들어간다. 오우테이로 이 폰타오 성당을 지나 가파르지 않은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가면 사모스에 도착한다.

사모스를 제외하고는 지나는 마을들은 휴식처도 없고, 특별한 유산을 없어 모두 그냥 지나친다.

 

라스트레스 표시

 

산 마르티노 표시

 

사모스 가는 길 표시

 

사모스로 내려가는 길에서

 

 갈리시아를 지나는 까미노 프란세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에 하나를 간직한 사모스를 둘러싸고 있는 로우사라 자연보호구역은 산과 깊은 계곡, 시원한 개울과 짙은 초목 등으로 특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인데, 원래의 의미와 형태를 잃은 채 건조한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안타깝다.

 사모스는 오랫동안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도시답게 순례자들에게 친절한 도시다.

 

 산길을 내려가니 큰 건축물이 보인다. 이 길로 걸어온 순례자들은 모두 이 건축물을 보려고 온 것이다.

 

 우리가 베네딕토수도원이라고 알고 있는 산 훌리안과 산타 바실리사 왕립 수도원 건물이다. 이 수도원은 중세부터 현재까지 많은 순례자들이 꼭 보기를 원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이 수도원이 건축적으로 대단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수사들이 부르는 환상적인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앙이 깊은 순례자라면 이 아름다운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묵을 수도 있다.

 

 사모스 수도원이라고도 불리는 이 수도원의 기원은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 남아 있는 수도원 건물은 대개 16, 18세기에 건축된 것이다. 두 개의 회랑이 있는데,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하나의 회랑에는 16세기에 만들어진 네레이다스 분수(Fuente de las Nereidas)가 있고,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만들어진 다른 회랑에는 페이호 신부(Padre Feijoo)의 동상이 있다. 팔각형의 쿠폴라가 씌워진 감실과 거대한 바로크 양식 성당, 미완성으로 남은 거대한 파사드도 바로크 양식의 봉헌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 수도원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페이호 신부는 수도원이 환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 수도원은 은둔하기에 적당하며 울창한 산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구석구석이 닫혀있는데다가 억눌려 있기 때문에 수직으로 위를 쳐다보지 않으면 별을 볼 수 없습니다.” 베니또 제로니모 페이호 신부는 스페인 계몽주의의 가장 유명한 석학으로 말년을 이 수도원에서 보냈으며, 그가 죽은 다음 그의 저서에서 나오는 저작권 수입으로 수도원을 재건했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수도원 전경

 

사모스의 수도원 순환 루트 설명 - 약사에 관한 설명

 

사모스 수도원 순환 루트 - 수도원의 특별한 유산 안내

 

수도원의 알베르게

 

수도원의 문장

 

수도원 정문

 

수도원 전경

 

수도원 외부의 여러 모습

 

사모스 수도원 표시

 

 수도원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수도원의 외부를 구경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가려니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다며 문을 열지 않았다. 고지해 놓은 것을 보니 10시, 11시, 12시에 문을 연다고 되어 있다. 10시부터가 아니라 매 시간 문을 연다니 조금의 의아해 하면서 같이 간 일행과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약 한 시간을 기다려야 되지만 이곳을 보기 위해서 이 길을 걸어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변의 카페에 가서 커피와 빵을 시켜서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수도원으로 갔다. 수도원 입구 옆 건물에 기념품 가게가 있어 구경을 하고 있다가 무언가 의아해서 보니 입장권을 팔고 있었다. 그래서 급히 구입하니 10시가 되자 안내인이 나와 인솔을 한다. 그리고 그 안내인이 안내하는 동선을 따라가야만 하였다. 조금이라도 동선을 벗어나면 불호령이 떨어지고 심지어는 퇴장을 시킨다고 한다. 수도원을 구경하는 도중에 한 사람이 옆에 있는 닫아놓은 문을 열고 안을 구경하려니 엄청나게 화를 내며 야단을 친다. 아마도 수도사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공개하는 곳만을 안내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시간에 한 번만 안내인이 관람객을 모아서 안내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스페인어로만 안내를 하여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안내 팜플렛도 없어 그냥 따라다니며 구경만 한다.

 

 

네레이다스의 분수  

 

 이 수도원에 있는 네레이다스의 분수에는 괴물의 모습을 하고, 거대한 가슴을 가진 여성의 조각상이 있다. 언젠가 한 신심 깊은 베네딕토회 신부가 이 조각상이 수사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분수를 없애자고 주장하여, 수사들은 분수를 해체하여 수도원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무겁지 않던 분수의 조각상은 점점 무거워져서 나중에는 기구를 써도 들어올리기 어려웠다. 결국 분수를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수사들은 이 분수를 원래 있던 모습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내부에서 보는 건물들

 

내부의 벽화

 

페이호 신부(Padre Feijoo)의 동상

 

성당 내부의 여러 모습

 

수도원 내부 성당의 여러 모습

 

 약 한 시간이 걸린 수도원 관람은 시간이 아깝지 않게 보람찬 구경이었다. 이곳을 지나가며 시간이 없다고 그냥 지나간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꼭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시간을 맞추어서 아니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내부를 구경하기를 권한다.

 

 수도원을 나와 길을 돌려 산실로 향하여 원래의 사모스 길이 아니라 산실 길로 걷는다. 길을 걷는데 철조망이 쳐 있고 그 철조망에는 수많은 나무 십자가가 달려 있다. 길을 가는 순례자들이 신에 대한 자신의 기원을 담아 걸어놓은 것이다. 무슨 소망을 걸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정성이 갸륵하게 느껴졌다.

 

길가에 달아 놓은 십자가

 

 산실의 주거지를 왼쪽에 두고 약 30분가량 길을 오르면 해발 896m의 리오카보 언덕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 이곳에서 순례자는 아름다운 오리비오의 언덕과 계곡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리아도 희미하게 볼 수 있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갈리시아 지방 특유의 분뇨냄새가 진동하는 목장지대와 시내를 넘어서 오래지 않아 몬탄에 도착한다. 몬탄에서 아그레로 강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가면 푸렐라, 핀틴, 칼볼 루고, 아구이아다 등의 작은 마을들이 이어 나오고, 아구이다아 마을에서 트리아카스테야에서 사모스를 지나는 길과 합류한다. 이제 포장된 길을 따라 산 마메데 루고 등 여러 작은 마을을 지나 사리아에 도착한다.

 

 사리아로 오는 도중에 마을이 아닌 곳에 바가 있었다. 제법 오래 걸어서 그 바에 들어가 맥주를 한 병 시켜서 마시면서 같이 간 일행이 과일을 꺼내니 외부 음식은 먹을 수 없다며 제지를 해서 그냥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같이 길을 걷는 한국인들이 들어왔다. 그래서 외부 음식은 먹을 수 없다고 알려주고 화장실을 사용하려니 0.5유로를 내라고 한다. 자기 바의 손님에게도 화장실 사용료를 받는다는 것이 상당히 의아스러웠다. 계산을 하고 나오려니 주인이 돈을 더 내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맥주 두 병 값을 지불하니 돈을 탁자에 던지며 화를 낸다 말도 잘 통하지 않아 다툴 수도 없고 해서 1유로를 더 주고 나왔는데 아마도 화장실 사용료를 더 내라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인데 주인 여자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길을 걸으면서 스페인 사람들의 친절함에 고마워했는데 한 순간에 그 고마운 마음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물론 그 한 사람의 행동이 스페인 사람 모두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행동을 보고 우리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으며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리아 가는 길 주변의 풍경

 

사리아 표시

 

사리아 안내

 

 아스팔트 길을 따라 가니 사리아 시내가 나온다. 상당히 큰 규모의 사리아의 중심지 길에는 외양이 아름다운 각종 상점이 있고, 신시가지를 벗어나 구시가지족으로 가면 유명한 막달레나 수도원과 사리아 백작의 성곽 유적을 만날 수 있다. 고딕양식의 살바도르 성당을 지나고 강가의 도로에는 수많은 선술집, 그리고 유명한 뿔뽀(Pulpo)를 전문으로 요리하는 역사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뿔뻬리아(Pulperias; 문어요리 전문 식당)가 있다. 이곳에서 순례자의 눈은 아름다운 거리와 여러 예술 작품으로, 코와 혀는 향기롭게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으로 즐겁다.

 

 사리아에 사람이 살았던 것은 로마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도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강화된 이후부터다. 12세기 후반에 알폰소 9세가 마을을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알폰소 9세는 산티아고 순례 도중 창궐한 전염병 때문에 사리아에서 사망했고, 그의 순례를 기리기 위해서 그의 영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사리아 알베르게

 

 알베르게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대강 먹고 시내의 슈퍼에 가서 내일 먹을 먹거리를 장만하고 돌아와서 쉬다가 저녁에 미사에 참석하러 갔다.

 

 알베르게에서 조금 아래에 있는 성당에 가니 외부에는 버스들이 여러 대가 보이고, 스페인의 체험학습 온 것 같은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일반적인 미사가 끝나고 사제가 순례자들을 따로 모아서 축성을 해 주면서 순례길의 안전을 빌었다. 이 길에서 어느 성당을 가든지 순례자들을 위해 따로 강복과 축성을 해 주는 모습을 보고 스페인이 얼마나 순례자들을 대우하고 아끼는지를 알 수 있었고, 그들의 종교적인 믿음과 헌신을 느꼈다.

 

Crucerio Santa Marina 성당 

 

Crucerio Santa Marina 성당 내부

 

 미사를 마치고 알베르게로 돌아와서 잠시 쉬다가 우리 일행은 또 모여서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 간단한 맥주 파티를 연다. 걸을 때는 따로 떨어져서 자신을 찾으며 걷다가 저녁이 되면 모여서 또 하루를 보낸 것을 감사히 여기며 사소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여태 살아온 사회에서 이렇게 어떤 목적이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단순한 마음으로 소박하게 맥주를 한잔 마시는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