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23(06.08, 레온 - 산 마르틴 델 카미노)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레온 - 산타아나 델 까미노 - 라 비르헨 델 카미노(7.6km) - 발바르데 데 라 비르헨(4.6km) -  산 미켈 델 카미노(1.4km) -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7km) -  산 마르틴 델 카미노(4.5km)

 

 레온에서 하루를 푹 쉬고 오늘은 레온에서 산 마르틴 델 카미노까지 약 25km의 거리를 다시 걷는다.

레온을 빠져 나오기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내가 까미노 길을 걷지 않는 단순한 여행자라면 며칠을 더 머무르면서 차분하게 많은 곳을 천천히 돌아보아야 하는 도시였다. 하지만 나는 관광을 목적으로 이 도시를 찾아 온 것이 아니라 산티아고 까미노를 걷는 도중에 잠시 머문 도시였다.

 

 레온에서 산 마르틴 델 카미노에 이르는 구간은 약 25km로 약 7시간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길은 평탄하고 단조로워 어려움이 없다. 오늘의 길은 갈림길이 많으므로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레온까지 꾸준하게 걸어온 순례자는 평원을 기대하게 되지만 라 비르헨 델 카미노까지는 참고 견뎌야 한다. 라 비르헨 델 카미노는 1505년 성모가 발현한 곳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이곳에서 길을 따라서 약 3km 정도를 걷다 보면 순례자는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곳을 지나게 된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지므로 왼쪽으로 가지 말고 정면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도로와 나란히 걷다 보면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를 지나 산 마르틴 델 카미노에 도착할 것이다.

 

로바호 델 카미노 표시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를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가니 버스가 없다. 다시 숙소에 돌아와서 프론터의 직원에게 물어보니 7시부터 버스가 다닌다고 해서 산 마르코스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산 마르코스 단지에서 유유히 흐르는 베르네스가 강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면 복잡한 시가지의 크루세로 지구까지 이어진다. 기찻길과 나란히 지나가며 십자가 광장에 다다르면 기찻길이 멀어진다. 이 광장을 지나가면 레온의 위성도시인 트로바호 델 카미노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던 트로바호 델 카미노는, 20세기 중반부터 레온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레온 근교의 베드타운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별로 특징도 없어 그냥 지나친다.

 

 도로를 건너면 오래된 포도주 저장고와 함께 불규칙적인 주택들과 공장지대가 어지럽게 보인다. 길을 가다가 보니 현대자동차 전시장이 보인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기업 표시를 보니 상당히 뿌듯하다. 조금 더 길을 따라가면 성모가 발현하였다는 라 비르헨 델 카미노에 도착한다.

 

현대자동차 전시장

 

 라 비르헨 델 까미노 표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던 라 비르헨 델 카미노는, 조용한 마을로 까미노의 성모에게 봉헌된 까미노 성모 성당이 있다. 까미노의 성모는 여러 기도를 들어준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져서 해마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이 마을을 찾는다고 한다.

 

 라 비르헨 델 카미노 마을에 들어가서 입구에 있는 바에서 가볍게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나니 상당히 특이한 모습의 성당이 나타난다. 외벽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성당과는 다른 조각상이 장식하고 있는 성당이다. 바로 까미노의 성모 성당 (Santuario de la Virgen del Camino)이다.

 

 이 성당의 성모 발현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150572, ‘엘리사벳의 성모 방문 기념 축제에 벨리야 데 라 레이나의 목동 알바르 시몬 페르난데스가 가축을 돌보던 중 성모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성모에게 다가갔고 성모는 그에게 말했다. “도시로 가서 주교에게 알리고 이곳에 내 조각상을 보관하기 위한 성전을 세우도록 하라. 그러면 내 아들이 이 땅의 번영을 위해 이곳에 나타날 것이다.” 목동이 놀라서 대답했다. “성모님, 어떻게 하면 절 보낸 분이 성모님이라는 것을 그들이 믿겠습니까?” 그러자 성모 마리아는 목동의 새총과 작은 돌을 집어 들고 돌을 멀리 쏘아 보낸 후 말했다. “주교와 함께 돌아오면 이 돌이 거대한 바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증거가 되리라. 돌이 떨어진 자리가 나와 내 아들이 나의 조각상을 보관하도록 결정한 곳이다.” 목동이 주교에게 가서 사실을 말하고 주교와 함께 이곳으로 돌아오자 모든 것이 성모가 예언한 대로 일어났다. 주교는 이곳에 우미야데로 성당(Ermita del Humilladero)을 지었다. 이 성당은 1961년엔 현대식 성당으로 재건축되어 까미노의 성모 성당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 성당은 수사였던 프란시스꼬 꼬에요의 작품으로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조각가 호세 마리아 수비락이 청동으로 만든 열세 개의 거대한 이 조각들은 성모 마리아와 열두 사도를 의미한다. 내부에는 성모의 발현으로 제작된 작가 미상의 16세기 성모상이 있다.

 

성당 외벽의 성모와 열두 사도 상

 

까미노의 성모 성당( (Santuario de la Virgen del Camino)

 

 길을 걷는 사람은 성당을 지나 라 비르헨 델 카미노 출구에 두 개의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만난다. 두 개의 길 중 정면으로 향하면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과 산 미구엘 델 까미노,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를 거쳐 산 마르틴 델 카미노에 이르는 약 25km의 길이다.

 

 이 길은 표지판의 정면에 있는 도로와 평행하게 만들어진 보행자 길이다. 도로와 나란히 걷다가 왼쪽으로 전진하여 도로 밑을 지나는 터널을 지나면 커다란 안테나가 있는 곳까지 평범한 오르막을 오른다. 이어서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며 물푸레나무가 이름다운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에 도착한다.

 

길 안내 표지판

 

산티아고 300km 표시 - 이제 3/5은 걸었다.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 표지

 

 원래는 발베르데 델 카미노(Valverde del Camino)였으나 이름이 바뀐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의 주변은 우아한 물푸레나무와 상큼한 초원이 가득하다. 이 마을의 집들은 아담한 성당 주위에 모여 있고, 성당의 첨탑 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황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길을 가는 일행이 왜 황새가 성당의 첨탑에만 둥지를 틀까?” 하고 의문을 가지니 다른 일행이 하느님과 가까운 곳이라서라는 답을 해서 잠시 웃었다.

 

산타 엔그라시아 교구 성당 (Iglesia Parrroquial de Santa Engracia) - 첨탑의 황새 둥지

 

폐쇄된 포도주 저장고

 10세기부터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이 작은 마을의 끝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약 1.5km 가면 산 미겔 델 카미노에 도착한다.

 

 산 미겔 델 카미노는 작은 마을이나 화려한 성당과 수도원이 있어 순례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래서 산 미겔 델 카미노에는 순례자를 위한 휴식처가 많이 있다. 이곳에서 카페에 앉아 쉬고 있으니 길에서 만났던 많은 한국인들이 지나가기도 하고 잠시 머물기도 하면서 인사를 한다. 우리와 생장에서부터 같이 출발한 한국인 모녀 중에 딸만 보여 웃으면서 엄마와 헤어졌느냐? 하니 명랑하게 웃으며 따로 걷는다고 한다.

 

 이제 산 마르틴 델 카미노까지는 11km 정도가 남았다. 이곳에서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까지는 1시간 반 가량이 걸린다.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는 ‘라 마탄사’(La Matanza)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드넓은 초원 위에 세워졌다. 기차역 부근은 전투왕 알폰소 1세와 그의 아내 도냐 우라까가 1111년경에 벌인 전투가 일어난 장소다. 마을의 중심부에 있는 산티아고 성당의 현관에 새겨져 있는 전투장면은 산티아고 성인이 나타났던 클라비호 전투가 아니라 이 부부 사이의 전투를 묘사한 것이라고 하는데 가 보지는 못하였다.

 

도로를 따라 난 길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 표시

 

카페

 

 길을 가다가 현대식 건물로 지은 카페가 보여 들어가 잠시 쉬면서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한잔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났다.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 마을의 중심을 통과하여 운하와 도로 사이로 이어진 직선 도로를 따라 1시간 정도를 걸으면 산 마르틴 델 카미노에 도착한다. 산 마르틴 델 카미노 마을을 가까이 두고 걷고 있으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세차게 오는 비가 아니기에 그냥 맞으며 길을 가니 계속해서 비가 온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방수가 안 되는 옷으로는 감당하기가 조금 어렵다. 그러나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어느 정도 방수가 되는 옷이라 그냥 계속 걸어 산 마르틴 델 카미노 마을 입구에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비에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갈아입고 몸도 씻고 알베르게의 식당에 가니 점심시간이 끝났다고 주문을 받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고 마을의 슈퍼에 가니 슈퍼도 문을 닫아놓고 17시에 문을 연다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슈퍼 앞에서 배회하다가 시간이 되니 주인이 멀리서 차를 타고 와서 문을 열었다. 슈퍼에서 내일을 위한 여러 가지 식품을 사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알베르게 식당에 미리 주문을 하였기에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가니 맛있는 파에야를 아주 풍성하게 탁자마다 주고, 스페인의 가장 유명한 음식인 돼지고기를 훈제한 하몬도 주었다. 사실 이 하몬은 점심 때 식당에서 주인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맛본 것인데 주인이 잊지 않고 서비스로 내어 주었다.

 

산 마르틴 델 카미노 표시

 

알베르게 장식

 

알베르게 마당의 닭

 

 저녁을 먹고 그 자리에서 가볍게 맥주를 한잔하면서 오늘의 길에 대해서 같이 걸은 사람들과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잠자리로 돌아와서 누우니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나와서 알베르게를 돌아보니 조금은 특이한 장식을 하고 있었고, 마당에는 닭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을 혼자 앉아 멍을 때리다가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