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32(06.17, 포르토마린 - 팔라스 데 레이)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포르토마린 - 곤사르(8.5km) - 오스피탈 다 크루즈(3.5km) - 벤다스 데 나론(1.5km) - 리곤데(3.2km) - 아이레세(1.0km) - 포르토스(2.0km) - 팔라스 데 레이(5.5km)

 

 오늘은 포르토마린에서 팔라스 데 레이까지 약 25km를 걷는다. 포르토마린에서 팔라스 데 레이까지 25km의 길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그러나 리곤데까지 약 15km는 고도를 300m 이상 올라야 하는 길이니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여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순례자는 치즈로 유명한 벤다스 데 나론을 지나고 리곤데의 라메이로스 십자가상을 만난다. 팔라스 데 레이에 도착하기 전의 약 10km는 아스팔트 포장길과 나란히 흙으로 만들어진 길을 걷는다.

 

포르토마린을 떠나기 위해서는 미뇨 강의 지류인 토레스 강 위를 지나는 좁은 다리를 건넌다. 강가에서 산언덕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막을 올라간다. 길은 밤나무와 유칼립투스 나무가 만들어주는 시원한 그늘을 따라 이어지며 오솔길로 변한다. 포르토마린에서 곤사르까지 약 9km는 순례자를 힘들게 하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포르토마린 거리

 

미뇨강 주변

 

 강을 지나 언덕을 오르는 지점에서 같이 길을 걷던 일행 중에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길로 갔다는 사람이 있다. 표시가 여러 개가 있어 다른 길로 가 강을 계속 따라갔다는 것이다. 물론 뒤에서는 다시 만나겠지만 우회하는 길이라 다시 돌아와서 같이 길을 걷는다.

 

호레오(HORREO) - 곡물 저장 창고

 

 갈리시아를 걷다가 이상한 모양의 건축물이 다양한 형태로 집에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무엇인지를 몰라 길가는 일행들이 모두 추측성 말을 하며 궁금해 하였는데 알고 보니 호레오였다. 기록에 따르면 13세기부터 있었다는 호레오(HORREO)는 곡물을 저장하는 일반적인 헛간으로 대부분은 갈리시아에 존재하고 프랑스, 영국 제도, 스칸디나비아에도 유사한 곡물 창고가 있다. 호레오는 저장된 곡물을 설치류로부터 보호할 목적으로 돌이나 땅에 기둥을 세워 건축하며, 대부분 직사각형과 정사각형 모양을 가지고 있다.

 

곤사르 가는 언덕 길

 

곤사르는 샘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떡갈나무 숲과 시원한 그늘이 있어서 순례자들이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옛날 켈트인이 살던 흔적과 예루살렘 성요한 기사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오늘날엔 소박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주변에 아담한 시골집뿐이다.

 

 곤사르를 지나 약 1km 가량 더 가면 나오는 가스트로마이오르의 산타마리아 성당(lgrexa de Santa Maria de Castromaior)은 곤사르의 교구성당과  비슷한 건축양식을 보이는 소박한 로마시대 이전의 건축물이다.

 

카스트로마이오르 성당 설명

 

길가의 집

 

 곤사르에서 약 3km 떨어져있는 오스피탈 다 크루즈로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며 주위는 적막하다. 오스피탈 다 크루즈는 마을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순례자를 위한 병원이 있었던 곳으로,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 출구에서는 까미노 표시가 잘 보이지 않아서 당황하기 쉽다. 다리를 넘어서 오우렌세에서 루고로 들어가는 도로를 건너면 금방 벤타스 데 나론에 도착하게 된다. 다음 길이 경사가 급한 해발 756m의 리곤데 언덕이라 이 언덕을 오르기 위해서는 벤타스 데 나론에서 휴식을 가지는 것이 좋다.

 

 

 

 이상하게 이 길에서는 마을의 표시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제까지 길을 걸을 때에는 마을이 가까우면 마을의 표시가 보여 이정표의 구실을 하였는데 오늘의 길에서는 마을 표시가 없어 어느 마을을 지나는지도 모르고 마을을 지나 길을 걷는다. 어느 마을인지를 모르겠으나 조그마한 성당이 있어 들어가니 눈이 먼 관리인이 지나가는 순례자에게 세요를 찍어주고 있다. 세요를 찍기 위해서 그 관리인의 손을 잡고 자기의 크렌디시얼에 맞추어 순례자들은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작은 돈을 헌금을 한다. 모두가 마음이 너그러워진 것 같다.

 

마그다레나 성당(Capilla de la Magdalena) 설명

 

마그다레나 성당(Capilla de la Magdalena)

 

 리곤데로 가는 길에 몬테로사(Monterrosa)라는 조그마한 마을을 지난다. 이 마을을 지나는 길에 지금까지 걸어오며 본 일이 없었던 아이들이 보인다. 마을의 나무에 모여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여서 사진을 찍자고 하니 웃으며 포즈를 취해 준다. 어디에서나 아이들은 쉽게 사진의 모델이 되어 주는데 어른들은 꼭 아이들을 찍지 못하게 한다. 어른들이 가진 선입견이 무섭다.

 

몬테로스 안내도

 

마을 아이들

 

 몬테로사(Monterrosa)를 지나 조금 가서 휴식을 하려고 바에 들어가니 한 무리의 스페인 사람들이 모여서 빵과 음료를 먹으며 휴식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순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아 보였다. 그들은 음식을 함께 가지고 다니면서 쉼터에서 나누어 먹고 또 나머지는 다시 가지고 길을 떠나고 있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음식을 나누는 사람에게 말을 하더니 나에게 빵을 나누어 주어 고맙게 얻어먹었다. 참으로 순박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먹을 음식을 나누는 것은 참으로 쉽지가 않은 행동이다.

 

 

lgrexa de Santiago de Lestedo

 

 아름다운 문장이나 특이한 파사드로 장식된 전통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 리곤데는 미뇨 강과 우야강의 발원지이며 우요아 산과 시몬 산이 만나는 곳으로 아이레세는 상당히 가까우며 여기에서 파요타 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올라야 한다. 이어서 인적이 없는 포르토스가 나오고 아스 로사리오 언덕을 오르면 팔라스 데 레이가 저 멀리에 보인다. 팔라스 데 레이에 가까운 곳에 Meson A Brea라는 작은 마을이 있고, 그곳을 지나면 팔라스 데 레이로 들어간다.

 

팔라스 데 레이 표시

 

 팔라스 데 레이에 들어가는 길은 상당히 멀다. 길을 따라서 가니 여러 도시의 시설물들이 보이고 공원을 가꾸는 사람들도 보인다. 조금 더 가니 관광안내소가 있어 세요를 찍으러 가니 안내인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어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곳에서도 제법 걸어가니 오늘의 숙소인 알베르게가 보인다.

 

 팔라스 데 레이라는 이름은 왕의 궁전’(El Palacio de un Rey)이라는 의미다. 이곳에는 서고트의 왕 위티사가 그의 아버지 에히까의 치세 동안 갈리시아 지방의 총독을 맡아서 살던 궁전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되었다.

 

 아 우요아 지역의 중심도시인 팔라스 데 레이는 선사 시대의 고인돌, 로마 시대 이전의 성벽, 로마 시대의 건축물, 성과 수도원,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모여 있는 곳이다. 또한 까미노 데 산티아고와 관련된 흔적도 많이 남아 있다.

 

 

 숙소에 머무르다가 슈퍼에서 고기와 야채 등을 사서 저녁을 만들어 먹고 쉬다가 저녁 미사에 참석하러 갔다.  크지는 않은 성당이었는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신부님이 하는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지만 의식은 한국과 같으므로 따라 하고 있으니 어던 의미인지 모르겠으나 눈물이 났다. 무언가 성령의 힘이 깃든 것인지 아니면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미사를 끝내고도 잠시 앉아 마음을 다스렸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같이 길을 걷고, 미사를 보았던 한국의 여성분이 말하기를 자기도 미사 도중에 눈물이 나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같은 느낌을 받은 동류의식으로 걸어오면서 서로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숙소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었다.

 

lglesia de San Tirso de Palas de Rei

 

 하루를 보내는 시간은 항상 일정하다. 물리적인 시간은 하루를 24시간으로 구성해 놓았고 우리는 그 시간에 맞추어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항상 동일한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하였다.

 

 항상 길가며 보았던 대만의 여인은 오늘도 다리를 쩔뚝이며 길을 갔다. 다리는 불편하지만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걷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무 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성당의 미사에서 눈물이 나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범위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많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