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27(06/12, 폰페라다 - 비야 프랑카 델 비에르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폰페라다 - 콜룸브리아노스(4.5km) - 푸엔테스 누에바스(3.0km) - 캄포나라야(2.0km) - 카카벨로스(5.7km) - 피에로스(3.0km) - 빌투일레 데 아리바 -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7.0km)

 

 오늘은 폰페라다에서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까지 약 25km를 걷는다. 오늘의 걷는 길은 크게 특징적인 마을이나 유적이 있는 길이 아니었으나 중간에 길을 걸으며 여러 추억에 남는 일도 있었고, 마지막 도시에서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만든 날이었다.

 

 오늘도 일찍부터 떠난 길은 템플 기사단의 성 옆에서 어제 오후에 다 지나갔던 성 안드레스 성당, 엔시나 바실리카 성모 성당이 있는 광장으로 이어지고 계속하여 렐로흐 거리를 통해서 시청 광장으로 이어진다. 시청 광장에서 길을 가려니 가게를 정리하던 한 여인이 길을 가르쳐 준다. 우리가 가려는 길이 아니고 아래로 가라고 해서 그 길을 따라가니  예스러운 마을을 지나 시내를 벗어나게 한다.

 

멀리서 보는 템플 기사단의 성

 

 폰페라다에서 도시를 관통하는 실 강변을 따라 공원을 지나서 아무런 구경거리도 없이 우리나라의 빌라 단지와 같이 비슷한 집들이 늘어서 있는 주거지역을 걸으면 콤포스티야에 도착한다. 주거용 단지를 계속 걸으면  축구장이 보이고, 십자가상이 있는 작은 성당 건물을 지난다. 도로와 포도밭을 지나고 아스팔트 도로를 걸으면 토레노와 비야브리노를 지나는 도로와 베가 데 에스피나레다를 지나는 도로가 교차하는 콜룸브리아노스에 도착한다. 마을을 지나가니 아직 시간이 일러 카페는 아무 곳도 문을 열지 않았고 큰 볼거리도 없어 그냥 지나친다.

 

조그마한 성당

 

콜룸브리아노스 표시- 왼족에 첨탑이 보이는 산 에스테반 성당

 

 콜룸브리아노스를 지나가며 멀리 보이는 산 에스테반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Esteban)18세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전원분위기를 풍기며 주변의 포도밭과 아름답게 어울린다.

 

 콜룸브리아노스에서 갈라지는 길 중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까미노 표시들 따라 걸으면 부드러운 언덕에 숨어있는 농가와 과수원을 지나고 푸엔테스 누에바스에 도착한다. 마을의 출구에는 공동묘지가 있으며 마을 외곽을 따라 조금 걸으면 캄포나라야에 도착한다. 캄포나라야에서 카카벨로스는 6km 정도로, 이 길은 지친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부드러운 흙길이며 완만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된다. 이 길을 걸으면서 길가의 체리를 엄청나게 따 먹었다. 제철이 되어 익어가는 체리는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과는 다른 신선한 맛이었다. 주인도 없는 나무의 체리를 따 먹으며 걸으니 체리를 파는 아저씨가 있다. 너무 따 먹었기에 미안한 마음으로 한 봉지를 사니 1유로라고 하여 놀랐다. 같이 걷던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최소 20,000원은 받을 정도라 고맙게 사서 마음껏 먹었다. 그러다가 길을 조금 더 가면서 보니 자동차가 한 대 오면서 길가는 사람들 옆에 멈춘다. 멀리서 보며 무엇인가 의문이 들었는데 우리 앞에도 멈추면서 차안의 젊은 운전자가 체리를  나누어 준다. 차에 체리를 싣고 가면서 순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격려의 표시로 체리를 나누어주는 것이다. 그 인정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져 이 길을 걷는 의미를 또 달리 생각하게 만들었다. 베품과 나눔은 큰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가장 풍부한 것을 함께 가지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개 해 주어었다.

 

푸엔테스 누에바스 표시

 

캄포나라야 표시

 

체리를 파는 마을 주민

 

 

 별 특징이 없는 길을 그냥 걸으니 카카벨로스에 도착한다. 카카벨로스는 순례자를 위한 여러 편의 시설이 있는 곳이며, 역사적 사건과 흥미로운 전설이 많은 마을로 비에르소 지방의 특성이 살아있는 매력적인 마을이다. 온화한 날씨로 비에르소 포도주의 중심지이고, 낙천적이고 유머가 넘치는 마을 사람들은 카드놀이를 즐기며, 이 마을에서 타로 카드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카카벨로스 마을 표시

 

넓게 펼쳐진 포도밭

 

포도밭의 와이너리 표시

 

포도밭

 

 산타 마리아 데 라 플라사 성당(Iglesia de Santa Maria de la Plaza)

 

 카카벨로스의 바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며 쉬다가 마을을 질러가면 보이는 산타 마리아 데 라 플라사 성당(Iglesia de Santa Maria de la Plaza)은 16세기에 재건된 성당으로 우아한 로마네스크 양식을 보여준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니 문을 닫아놓았는데 문 사이로 제단이 보였다. 그래서 그 사이로 사진을 찍었는데 제단의 예수님이 다소 몽환적으로 보여 더 좋은 느낌이었다.

 

 카카벨로스에서 로마네스크 양식의 소박한 성당 건축물 이외에는 볼 것 없는 피에로스로 가는 도중에 조그마한 마을을 지나는데, 이곳이 포도주의 고장임을 보여주는 옛날의 포도를 짜는 기구가 전시되어 있다. 예전의 우리나라 디딜방아와 유사한 모습으로 포도를 짜내고 와인 생산에 사용될 포도즙을 얻는데 사용되는 전통 건물과 장치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피에로스 가까이 가니 스페인의 규모로 볼 때 강과 같은 제법 큰 개울이 흐르는 위에 그림 같은 집이 지어져 있다. 집 아래로 운하와 같이 물이 흐르는 구조를 보고 누구인지 복받은 사람의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포도즙을 짜는 도구

 

물 위의 아름다운 집

 

피에로스 표시

 

 피에로스에서 순례자는 아스팔트 포장 길로 올라섰다가 포도나무 사이의 흙길로 들어가 조금 길지만 경치가 아름다운 길로 우회하여야 한다. 이제 순례자는 발투일레 데 아리바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을 통과하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지 못하는 순례자를 위해서 축복과 대사를 펼쳤던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의 산티아고 성당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라 비르헨 도로 끝에 포도밭과 체리나무 소나무 숲이 있고, 이곳을 지나면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

 

빌투일레 데 아비라 가는 길 표시

 

끝없이 펼쳐지는 포도밭

 

 

 끝없이 이어지던 포도밭을 지나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에 가까이 가니 궁전은 아니면서 저택의 모퉁이에 탑을 세워 궁전의 위용을  나타내는 마르케스 후작의 궁전(Castillo Palacio de los Marqueses)이 보인다. 이 건물은 16세기 초 벽돌과 돌로 지어졌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표시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에는 아름다운 초원과 숲이 많으며 그림 같은 포도나무 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오래된 전통 집, 기념품 가게, 순례자를 대하는 친절한 전통, 맛있고 다양한 요리 등이 이 마을의 볼거리다.

 아구아 거리(Calle del Agua)는 산티아고 가는 길의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는 전형적인 까미노 거리로, 많은 옛 건물을 볼 수 있다. 마을에서 나가는 길에 있는 누에보 다리 근처에는 15세기부터 한 가족이 운영해 온 오래된 여관이 있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의 산티아고 성당에서는 병이 들거나 지쳐 순례를 할 수 없는 사람들에 한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받는 축복과 대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마을의 입구에 성벽이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옆에는 산 프란시스코 성당이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서 있다. 까미노 길은 성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벽 주변을 돌아 구시가지로 향한다. 오래된 수도원 터에 남아있는 산 프란시스코 성당(Iglesia de San Francisco)은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 현관이 남아 있고, 15세기 고딕 양식의 성당의 두 개의 탑은 17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수도원은 13세기 초반 여왕 도냐 우라까가 지신이 소유하고 있던 저택을 기증하여 설립되었다.

 

성벽

 

산 프란시스코 성당 설명

 

 구시가지로 들어가니 거리가 아주 삼엄하다. 경찰과 군인들이 총을 들고 경비를 서고 있다. 오늘 이 도시에 스페인국왕이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바로 이 거리를 지나가는 것이었다. 산타 마리아 성당에서 국왕이 참석하는 행사가 있는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난 뒤에 산타 마리아 성당에 가서 보니 산티아고와 비야프랑카 델 비에로스가 6월부터 11월까지 영혼의 이어짐이라는 의식을 거행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직접 국왕을 보지 못했으나 일행 중에 국왕을 본 사람이 카톡에 사진을 올려놓아서 그 사진을 첨부한다.

 

거리를 통제하고 있는 모습

 

추기경을 비롯한 성직자들

 

대중과 인사 중인 국왕

 

거리의 모습

 

 국왕이 행사를 마치고 가서 조금은 조용해졌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은 거리의 식당에 앉아 점심을 순례자 메뉴로 먹고 있으니 많은 성직자들이 지나가는 모습도 보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는 모습도 보인다.

점심을 먹고 알베르게를 찾아가니 오늘의 숙소인 알베르게는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곳이었다. 원래는 산 니콜라스 엘 레알 수도원(Convento San Nicolas el Real)으로, 17~18세기에 만들어진 수도원 건물 내부에는 수도원의 설립자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왔다고 하는 희망의 그리스도’(Cristo de la Esperanza)가 보존되어 있고 현재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건물의 일부는 조금 개조를 하여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이 알베르게가 왜 우리에게 잘 알려졌는가 하면 모 TV에서 예능 프로로 방영한  '스페인 하숙'의 배경이었던 곳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금 동경을 가지고 찾아가는 곳이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방송은 어디까지나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하루를 이곳에서 머문 우리 일행들은 대부분이 우리가 거쳐 온 다른 알베르게에 비해 시설이 뒤떨어진다고 말했다.

 

  산 니콜라스 엘 레알 수도원(Convento San Nicolas el Real) 전경

 

 이 수도원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스페인하숙에 나오는 입구가 있고 여기를 통해서 알베르게로 들어간다. 물론 다른 입구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이나 TV에 방영된 입구로 일부로 들어갔다.

 

'스페인 하숙' 입구

 

 알베르게에서 휴식을 하다가 저녁도 먹고 일대도 구경을 하기 위해 까미노를 함께 걷는 4명이 광장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거리를 통과하여 우리가 머무는 곳을 지나 올라갔다. 올라가니 큰 성당이 나타나는데 바로 오늘 국왕이 행사를 치른 클루니아코의 산타 마리아 성당(Colegiata de Santa Maria de Cluniaco)이었다. 성당으로 가니 행사의 현수막도 걸려 있고 표지도 있었다. 그리고 많은 관광객들이 나오면서 무어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아마도 성당 문을 닫아 내부에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 같았다.

 

 이 성당은 16세기 후반의 고딕 양식 건축물로 미완성된 상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내부에는 바로크 양식의 다양한 봉헌화와 성가대석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보지를 못했다.

 

클루니아코의 산타 마리아 성당(Colegiata de Santa Maria de Cluniaco)

 

오늘의 행사 안내

 

행사 안내 현수막을 걸어 놓은 성당

 

 성당을 보고 그 옆으로 가니 부르비아 강(Rio Burbio)이 나타나고 내일 가야한 길 위에 다리(Puente Medieval de Villafranca)가 있다. 다리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구시가지가 모두 보인다.

 

 다리( (Puente Medieval de Villafranca ) 

 

부르비아 강(Rio Burbio)

 

누에보 다리에서 보는 시가의 여러 모습 -성당과 수도원 성벽 등등

 

 다리 위에서 시가의 여러 건물들을 보고 옛날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골목길을 지나 숙소로 돌아오니 제법 시간이 늦었다. 모두가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 내 침상에 누우니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잠자리에 누워 오늘 하루를 생각해 보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항상 같은 길을 걷기에 자주 보는 한국의 모녀,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 대만인과 일본인 그리고 많은 서양인들과 만나면 인사를 하고 또 언제 헤어졌는지도 모르고 길을 걷다가 다시 만나면 인사를 한다. 언제 모르는 사람들을 이렇게 오래 만남과 헤어짐을 계속해 왔던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체리를 팔던 아저씨, 차를 타고 가면서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체리를 나누아 주던 젊은이, 이 모든 사람들에게서 인간의 따뜻함을 느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