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29(06.14, 라 라구나 데 카스티야 - 트라아카스테야)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라 라구나 데 카스티야 -  오 세브레이로 - 리냐레스 - 오스피탈 데 콘데사 - 파도르넬로 - 폰프리아 - 오비두에도 - 피요발 - 파산테스 - 트라아카스테야)

 

 오늘은 라 라구나 데 카스티야에서 트라아카스테야까지 약 26km의 길을 가야 한다.지나는 길은 계속해서 1,200m 정도의 산길을 걸어 피요발부터 내리막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이 길에서는 조금만 걸어도 마을이 나오기에 적당히 자신의 걸음에 맞추어 휴식을 취할 수가 있는 장점이 있다.

 

 오늘도 역시 아침 일찍부터 길을 떠나는데 약간의 비가 오기 시작한다. 출발할 때부터 비를 만나는 일은 이번 여정에서 처음이다.

 

 이제 오래 걸어온 레온을 지나는 길이다. 라 라구나 데 카스티야에서 조금 가면 순례의 마지막 지역인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서게 된다. 라 라구나 데 카스티야에서 까미노 길을 따라 마을을 나오면 머리위로 보이는 가파른 언덕 너머에 오 세브레이로가 있다. 언덕을 오르며 뒤를 돌아보면 철 십자가상이 있는 이라고 산이 멀리 보인다. 이제 괴로운 오르막은 끝난 것이고, 레온과 루고의 환상적인 풍경을 까미노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최고의 선물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걷는 오늘은 비가 와서 멀리 보는 풍경이 또렷하지는 않다. 하지만 비안개에 덮인 풍경은 또 다른 몽환적인 감흥을 준다.

 

운무에 덮인 산 풍경

 

 오 세브레이로로 올라가는 중간 지점에 갈리시아 표시석이 있다. 이제부테 레온을 벗어나 갈리시아로 들어가는 것이다.

 

 옛 이름이 갈레키아(Gallaecia)인 갈리시아(Galicia)는 스페인 북서부의 지방으로 북쪽과 서쪽은 대서양에 면하고 남쪽은 포르투갈에 접한다. 칸타브리아산맥의 서쪽 끝에 해당하며, 중앙부를 미뇨 강이 서쪽으로 흘러 대서양으로 들어간다. 산맥의 서쪽 가장자리가 함몰되어 많은 리아(ria:길고 좁은 쐐기형 후미)를 형성하여 양항이 많고 어업이 성하다. 리아스식 해안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산이 많고 경작지가 적어서 농업은 부진하다. 중심 도시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다. 기원전 3~2세기 고대 로마인이 정복했고 8세기까지 이슬람이 지배를 하였다. 이들이 사용하는 갈리시아어()는 원래 라틴어에서 파생한 것으로 에스파냐어보다는 포르투갈어에 가깝다.

 

갈라시아 표시석

 

갈리시아 안내도

 

 이제 신비로운 성체와 성배의 기적이 일어났던 오 세브레이로는 바로 앞이다. 성당의 종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향기로운 포도주 냄새가 우리를 유혹하는 길을 따라 1km를 걸으면 마을에 도착한다. 오 세브레이로에는 전통적인 건축물인 빠요사가 있다.

 

 순례의 마지막 지역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오 세브레이로는 성체와 성배의 기적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오 세브레이로에서 일어난 기적은 까미노 순례자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져 있다. 날이 궂은 어느 날 한 순례자가 마을에 도착하여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갔다.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며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할 것이라고 하자 순례자는 기도를 올리며 성체의 신비가 실제로 일어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미사를 집전하던 사제가 하늘에 성체를 바친 후 경배하고 눈을 뜨자 성체는 고기 한 조각으로 변해 있었고, 성배에는 포도주가 피로 변하여 가득 차 있었다.

 이 기적은 유럽 전체에 널리 알려졌고 수많은 참배객이 이 성당을 찾아와서 크리스털로 장식한 주전자와 은으로 만든 유물함을 봉헌했다. 그런데 욕심 많고 고집 센 이사벨 여왕은 기적의 성배와 성체를 담은 접시를 탐냈다. 여왕의 명령으로 군인들은 성배를 바쳐야 했는데, 성배를 등에 실은 노새가 라 파바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성배는 다시 오 세브레이로의 성당 안에서 현재까지 보관되고 있다.

 

청동여인상

 

 오 세브레이오에 도착하니 비가 제법 많이 온다. 작지만 수많은 순례자들이 반드시 들린다는 이 마을은 로마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소박한 전통을 보여주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더욱이 오 세브레이로 근교에는 오스 안까레스 산맥이 펼쳐져 있어 울창한 숲을 가로지르며 시원하게 흐르는 개울이 있고, 2000미터에 달하는 고지엔 대뇌조, 곰 같은 동물들이 산다고 한다.

 

 오 세브레이오의 산타 마리아 라 레알 성당(Iglesia de Santa Maria la Real)은 오래된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라미레스 양식이 남아 있는 로마 시대 이전의 건축물로 세 개의 신랑에 궁륭으로 덮여 있는 지붕과 종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당의 내부에는 12세기에 만들어진 성모상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설의 성체 접시와 성배, 페드로 2세가 산티아고로 순례하는 동안 봉헌했던 유골함이 보관되어 있다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성당은 문을 굳게 닫아서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했다. 이 길을 걸으면서 시간이 맞지 않아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해 안타까운 때가 적지 않았지만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이 아니기에 감수하면서 지나간다.

 

비에 젖은 성당의 모습

 

 

 또 오 세브레이로는 한 인간이 만들어낸 드라마틱한 기적이 있다. 오 세브레이로의 교구 신부인 돈 엘리아스 발리냐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부활시키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노란색의 페인트로 칠한 화살표 표시를 처음 만들었으며, ‘까미노의 친구 협회를 설립하고 강화한 인물이다. 그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소수의 신앙의 순례길로 남았고 현재와 같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단 한 사람의 노력으로 까미노는 부활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베네딕토 수도회에 대한 감사문(829년부터 이곳을 통과하는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돌보봄에 감사)

 

 비가 제법 세차가 와서 바에 들어가 비를 피하면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쉬다가 언제까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가 없어 다시 빗속을 걸어서 길을 떠난다.

 

 오 세브레이로에서 트리아카스테야에 이르는 22km는 포이오 언덕을 오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리 힘들지 않는 길이다. 이 길은 갈리시아 지방의 특색을 잘 나타내주는 곳이며 비옥한 땅과 목장, 시원한 샘물이 흐르는 길이다. 그러나 오 세브레이로에서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갈리시아를 지나는 까미노에서 가장 높은 해발 1,335m의 포이오 언덕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정상의 고원에 오르면 멀리 그림 같이 펼쳐지는 풍광을 감상 할 수 있다. 포이오 언덕의 정상 뒤로 트리아카스테야까지는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오 세브레이로에서 출발하여 내리막으로 내려가지만 비는 계속해서 와서 시야를 가려 걷기는 매우 불편하다. 오 세브레이로에서 걷는 길은 짧은 오르막길로 소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리냐레스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비가 많이 와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리냐레스는 오 세브레이로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로 고속도로와 인접하여 있는 바와 몇 개의 건물이 전부다. 그런데 비가 많이 와서 바는 닫혀 있고 잠시도 비를 피할 곳이 없어 그냥 비를 맞으면 걷는다. 조금 가면 성 로케 언덕의 유명한 순례자 조각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는 조각가 아쿠냐가 만들어놓은 바람을 뚫고 걸어가는 거대한 순례자의 동상이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데 비가 계속해서 와서 조각상으로 가지도 못하고 옆을 지나치며 사진을 찍었는데 별로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비가 오고 운무도 짙어서 사진에서 보듯이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인다. 아쉽지만 어디 자연의 변화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이런 아쉬움이 어디 이곳에서만 있었던가? 엄청나게 많은 아쉬움을 겪으면서 이 모든 것이 이 길을 걸으면서 느끼고 깨닫는 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순례자 조각상

 

비가 오는 도중에 잠시 보이는 마을

 

 여기서 피요발까지는 작은 마을 여러 곳을 지난다. 거의 붙어 있는 것 같은 마을들은 별로 큰 특징이 없는 시골의 마을이다. 순례자의 동상이 있는 산 로케의 언덕에서 오스피탈 데 콘데사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린다. 현재는 자취도 없으나 9세기 이 마을에는 가톤 백작의 부인 에힐로 백작부인이 순례자를 위한 병원을 만들어서 콘데사(Condesa; 백작)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조금만 가면 포이오 언덕의 산자락에 위치한 파도르넬로에 도착한다. 파도르넬로에서 포이오 언덕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짧으나 매우 가파르고 험하다. 중세의 포이오 언덕에는 성 후안 기사단의 기사령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정상을 올라온 순례자에게 포이오 언덕은 또 다른 축복을 선사한다. 다음 마을인 폰프리아까지 순례자는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아름다운 고원지대를 통과하며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를 카메라에 담는다고 하지만 오늘은 비가 너무 와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폰프리아 성당에는 '소이 데 폰프리아 (Soy de Fonfria; 난 폰프리아 출신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은으로 도금된 성작이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성작의 기원이 언제이며 새겨진 문구가 무슨 뜻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중간 마을에서 비도 피할 겸 카페에 들어가 잠시 쉬면서 뜨거운 커피와 빵으로 요기를 하며 몸을 녹였다. 비가 계속해서 와서 몸의 체온이 좀 떨어진 것도 같았다. 폰프리아를 지나고부터 약 1km 정도 지난 지점부터 가파른 내리막을 걸어야 한다. 폰프리아에서 다음 마을인 오 비두에도까지는 약 2.5km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도보 순례자들이 선택하는 왼쪽의 길은 오르비오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트리아카스테야를 멀리 조망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길이다. 오 비두에도 마을을 통과하여 칼데이론 산의 중턱의 목축지 사이를 지나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며 계곡을 지나야 한다. 여기에서 아름다운 오르비오 산의 풍경을 감상하기 좋으며 트리아카스테야가 멀리 내다보이는 피요발까지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야 한다.

 

피요발 표시

 

 피요발은 아주 작은 마을로 여기에서 트리아카스테야까지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피요발을 지나니 비가 그치기 시작한다. 뒤를 돌아보니 산 위에는 아직 구름이 잔뜩 덮여 있다. 지나온 곳은 고산지대라 비가 오고 산을 내려오면서 날이 개는 것 같았다. 오전 내내 비를 맞으며 걸었기에 구름 사이를 뚫고 비치는 햇볕이 너무 반갑다.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평화로운 숲을 걷다 보면 도로를 만나고, 도로를 건너 돌담에 둘러싸인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걷는다. 이 길은 중간에 있는 작은 마을인 파산테스와 트리아카스테야와 거의 붙어있는 라밀까지 이어진다.

 

 마을의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중세의 트리아카스테야는 세 개의 성이 있을 정도로 번성한 마을이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하나도 없다. 10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는 이 마을은 13세기 알폰소 11세에 의해서 재건되고 부흥했다고 전해진다.

 

 

 트리아카스테야 마을의 입구에는 1993년 산띠아고의 해에 만들어진 4층짜리의 근사한 알베르게가 있고,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하게 순례자를 환대한다. 하루 종일 비를 맞아 추위와 피곤함에 지쳐 들른 트리아카스테야 입구의 알베르게에 숙소를 정하고 비에 젖은 몸을 씻고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었다.

 

오래 된 고목

 

 

 

점심을 먹고 날이 개어 시내를 돌아다녔다. 제법 오래된 건물이 눈에 많이 보였고 순례자들을 위한 카페와 바가 즐비하게 늘어 서 있었다. 그 중에 한 식당 앞에는 한글로 쓴 메뉴판을 길가에 세워 놓았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오기에 메뉴판을 한국어로 써 놓았을까? 하는 의문이 아니라 감탄을 하게 만들었다.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 돌아와 잠시 쉬다가 저녁을 먹으로 갔다. 다른 사람들은 한국어 메뉴판이 있는 식당으로 갔지만 우리 무리 4명은 상당히 좋은 식당으로 생각되는  알베르게 라래 층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거기에서 오늘의 메뉴를 시키고 갈리시아에 들어온 기념으로 문어(폴보)와 가리비에 고급 와인으로 알려진 알바리뇨를 시켜서 떠들면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저녁을 먹고 있으니 길을 가면서 만났던 한국인들도 제법 들어온다. 특히나 젊은이들이 제법 들어와서 나름대로 저녁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길을 걸으면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가 너무 와서 주변의 경치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작은 마을에서 무엇을 찾아서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지나치고 걸었다. 다행히 하루의 길을 다 걸었을 때 비가 멈추어 화창한 날씨가 보인 것도 행운이다. 그리고 만찬을 즐기며 한잔의 와인으로 하루를 끝내는 것도 다 행복이라고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