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22(06.07, 레온에서의 하루)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레온 시내

 

 오늘 하루를 쉬기로 하는 일정은 처음 이 길을 떠날 때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정해진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마음 편하게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레온 시내를 구 시가지를 중심으로 구경하기로 한다.

 

숙소 주변의 레온 대학 병원

 

 아무런 시간의 제약이 없어 아침도 늦게 시작한다. 잠은 깨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누워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오늘의 하루를 시작하려고 숙소를 나선 시간이 10시였다. 이 길을 걸으며 이렇게 아침을 늦게 시작한 날은 전혀 없었다, 그만큼 오늘은 여유롭다. 숙소 옆에 있는 대학병원이 레온 시내의 버스 노선의 대부분이 종점이라 구 시가지로 가기에 편했다. 그래서 먼저 버스를 타고 레온 대성당 쪽으로 가기로 하였다. 버스 정류장에 가서 노선도를 보니 상세히 설명이 되어 있어 버스 타기는 쉬웠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해프닝이 일어났다. 버스가 아주 좁은 길을 가는데 양쪽으로 주차가 되어 있어 간신히 버스가 지나갈 수 있었지만 기사는 능숙하게 운행을 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차가 멈추었다. 길가에 승용차가 조금 튀어나와 주차를 하여 버스가 지나갈 수가 없었다. 경적을 울리고 경찰을 불러도 승용차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버스는 멈추었기에 제법 기다렸다가 버스에서 내려 걷기로 하였다. 여행지에서 겪는 황당한 일이었지만 그렇게 불쾌하지는 않았다.

 

도로를 가로 막은 승용차

 

 걸어서 구 시가지로 가서 먼저 성벽과 성문을 통과하여 주변을 구경하면서 간곳이 레알 바실리카 데 산 이시도로(Real Basilica de San Isidoro)다. 레온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레알 바실리카 데 산 이시도로(Real Basilica de San Isidoro) 성당이며, 현재 교회가 위치한 장소는 고대 로마의 신전이 있던 자리이다. 원래의 교회는 10세기에 아랍 군대의 장군 알만수르(Al-Mansur)가 레온 지역을 정복한 이후 지역 전체가 황폐화되면서 교회도 파괴되었다. 현재의 교회는 11세기 초엽에 레온 왕국의 알폰소 5(Alfonso V)가 재건축한 것이다. 10세기와 11세기에 만들어진 바실리카와 박물관, 왕가의 무덤이 있다. 남쪽 두 입구의 조각은 툴루스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조각과 유사하며 순례에 연관된 성당의 계열을 나타낸다. 서쪽에 교회에 딸린 왕실 판테온(Panteón Real)에는 중세시대 레온 왕국 11명의 왕을 비롯해 많은 왕비와 왕족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 수많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 많고 10세기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로마네스크의 시스티나 성당' (Capilla Sixtina del Romanico)이라고 불린다. 200개가 넘는 주두는 아름다운 장식으로 이뤄져 있고, 고딕 양식 패널화도 보존되어 있다. 왕궁이던 곳은 현재 박물관으로 이곳에는 세례자 요한의 턱뼈를 비롯한 여러 성인의 유해가 보존되어 있다. 보물관과 도서관에는 도냐 우라카의 성배(Caliz de dona Urraca)와 같은 보물들과 대리석 궤, 고사본(古寫本), 행진용 십자가 등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진귀한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1063년 성인 이시도로의 유골이 이 교회로 옮겨져 안장되었다. 이후 유명한 순례 성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가는 길목에 교회가 위치한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많은 종교적 혜택을 누렸다. 처음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했으나 이후 많은 부분을 보수·개조하면서 고딕 양식이나 르네상스 양식 등을 첨가하여 현재는 여러 건축 양식이 섞인 복합 양식의 건축물이 되었다.

 

성벽과 성문

 

알폰스 9세 상

 

 

 성당에 들어가 내부를 구경하다가 조그마한 성전이 있어 가니 아침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다. 우연히 내가 성당에 들를 때에 미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도 하나의 축복이라 생각하고 미사에 참석하여 영성체를 하니 신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그냥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시도르 성당 내부

 

이시도르 성당 설명

 

이시도르 성당 전경

 

 이시도르 성당을 나와 가우디의 보티네스 건물로 가는 도중에 조그마한 공원이 있다. 무심코 지나가기 마련이지만 조금 주의를 기울려 보면 로마시대의 관개수로를 볼 수 있다. 공원을 지나 조금 가면 유명한 보티네스가 나온다.

 

보티네스 주변 공원 - 프로타 카스티요 내부에서 발견된 로마 수로

 

 보티네스 저택인 카사 데 보티네스 (Casa de Botines)는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í)가 카탈루냐 지방에서 벗어나 조성한 소수의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이 건물은 호화로운 저택을 원하던 기업가 시몬 페르난데스(Simón Fernández)의 의뢰로, 근대 스페인 건축계의 거장 가우디가 1892년 건축을 시작해 이듬해 완성했다. 중세의 향기가 살아있는 모더니즘 건축물로 첨두아치로 된 창문과 검은 돌 판으로 이루어진 지붕은 고딕 양식의 분위기를 풍긴다.

 

 가우디는 레온의 기존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이 건물을 중세풍으로 설계하면서 곳곳에 네오고딕 특성을 가미했다. 마치 중세시대의 성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건물은 전체를 4층으로 조성했으며 별도로 지하층과 다락층을 두었다. 1950년에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했으나 가우디가 건물에 부여한 특성은 그대로 보존했다. 1969년에 스페인의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보티네스의 전경

 

 보티네스 건물 앞 광장에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의 상이 있다. 관광객들은 대부분이 이 옆에 앉아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다. 바쁘게 움직이는 여정에서 여유를 찾으며 한가로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의 표시인지도 모르겠다.

 

보티네스 광장의 책읽는 사람 상

 

보티네스 광장

 

 보티네스로 들어가니 스페인의 유소년들이 체험학습을 온 것 같이 많이 보였다. 무리를 지어 있는 어린이들이 귀여워 사진을 찍으려고 인솔한 선생님에게 허락을 구하니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와서 아쉽지만 사진을 찍지 못하였다. 서양에서는 성인은 물론이고 어린 아이도 초상권이 엄격하게 보호된다. 그러니 함부로 다른 사람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서는 안 된다.

 

보티네스 안의 여러 전시물

 

보티네스 내부에 있는 마법의 거울

 

 

 

 보티네스를 나와 주변을 조금 거닐다가 아시안 마켓을 찾아가기로 하고 구글 지도에 의존하여 시내를 걸어가다가 우리나라의 다이소와 비슷한 곳을 발견하고 들어가니 선글라스가 진열되어 있다. 선글라스를 분실하였기에 적당한 가격이면 하나를 사려고 값을 물어보니 상상이하의 가격이었다. 우리 돈으로 5,000원 정도고 성능도 나쁘지 않아 하나 사서 옆에 있던 일행들에게 이야기하니 너도 나도 하나씩 산다. 모두들 싼 가격에 만족하며 웃고 떠들며 더 걸어가 아세안 마켓에 도착하니 우리나라의 식품들이 즐비하다. 여기서 한국 라면을 좀 사서 앞으로의 길에서 끓여먹기로 생각하고 라면을 구입하였는데 라면 값은 엄청나게 비쌌다. 하지만 한국에서 수입하여 판매를 하려면 그 정도는 받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세안 마켓을 나와 또 제법 뜨거운 햇빛 아래를 걸어 시내를 가로 질러 산 마르코스를 찾아갔다.

 

 레온의 산 마르코스 광장에 있는 산 마르코스(San Marcos)는 산 마르코스 광장 한쪽 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대규모 건물로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건물 전체가 황금빛으로 빛난다. 특히 건물 앞면 주 출입구 주변의 정교하게 제작한 수많은 조각상으로 유명하며 스페인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손꼽힌다. 16세기에 건축한 유서 깊은 건물로, 처음에는 군대 시설로 조성했다가 이후 수도원, 병원, 감옥 등 용도가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현재 일부는 호화로운 고급 호텔로 사용되고 있고, 일부에는 교회와 아담한 규모의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플라테레스코 양식의 걸작인 파사드가 있다.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이 단지를 이루는 주위는 산 마르코스 단지로 불리는데 이 단지에는 성당과 교육 센터, 신학교, 감옥이 있었다고 한다.

 성당에는 첨두아치로 된 아름다운 회랑이 있으며, 올리바레스 백작의 명령으로 스페인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염세주의 문학가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가 갇혀있던 감옥을 볼 수 있다.

 

 건물의 앞에는 호세 마리아 아퀴나(José Maria Aquña)가 조각한 순례자상이 있는데 메세타를 힘들게 걸어온 순례자가 신발을 벗어놓고 십자가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모두들 이 순례자상 옆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고 또 앞으로 걸어갈 길도 생각한다.

 

산 마르코스의 전경

 

광장에 있는 순례자상

 

산 마르코스 전경

 

신성한 은총의 어머니 상 설명

 

내부의 복도 - 기하학적 무늬로 돌을 깔았다.

 

내부의 여러 모습

 

산 마르코스 옆의 다리

 

 산 마르코스를 구경하고 어제 갔던 뷔페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고 찾아 갔다. 산 마르코스 광장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뷔페에 가니 같은 길을 걷는 한국인들이 제법 보였고 그들도 모두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당분간은 마주치기 어려운 음식들이라 모두 기쁘게 떠들면서 배불리 먹고 나와서 슈퍼에서 내일을 위한 사과와 자두 복숭아(납작복숭아)와 바나나 등의 과일과 요플레와 빵을 장만하였다.

 

 슈퍼에서 먹거리를 장만하고 조금 옆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 갔던 뷔페 건물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간단한 저녁을 먹고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으니 같은 길을 걷는 대구의 부부가 방으로 오라고 초청을 한다. 그 방에서 7명이나 모여서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웃으며 까미노의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또 순례자의 모습으로 돌아가 길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