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8(06.03,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오늘의 걷기 길 :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17.0km) - 레디고스(6.4km) -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3.2km)
오늘은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를 출발하여 이름도 긴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까지 약 27km를 걷는 길이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서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까지 27km는 평탄한 길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광활한 이 길을 걸은 순례자들은 한 마음으로 단조로움에 홀로 된 것 같은 외로움을 호소한다.
아침 일찍부터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의 알베르게를 출발하여 시내를 가로 질러 올라가니 어제의 축제의 열기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인적이 없는 적막함만이 감돈다.
산타 마리아 성당을 지나 산티아고 성당으로 가는 시내는 어제 몇 번이고 지나갔던 길이다.
산타 마리아 성당 입구 장식
시청 광장
산티아고 성당
시내를 지나 도시를 흐르는 카리온 강을 넘으면 카리온 데 콘데스의 출구로 이어진다. 오래된 돌다리를 넘으면 산 소일로 왕립 수도원(Real Monasterio de San Zoilo)이 나타난다. 아름다운 회랑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현관이 있는 산 소일로 왕립 수도원은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을 16, 17, 18세기에 걸쳐서 수차례 증 개축하였고, 현재는 고급 호텔로 개조하여 관광객들을 유혹하지만 숙박비가 만만하지 않다고 한다.
카리온 강
여러 문장의 모양
산 소일로 왕립 수도원(Real Monasterio de San Zoilo)
도로를 가로질러 계속 이어지는 포장길을 따라 약 4.5킬로미터 정도 이어지는 이 구간은 자동차가 거의 없어 걷기에 편하다. 또 드넓게 펼쳐진 밀밭 사이로 드문드문 나무들이 보이고 길은 그 나무들을 이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서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까지 17km의 길 중간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마을이나 쉴 수 있는 그늘이나 샘터도 없어 까미노 프란세스 중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가장 먼 길이다. 그러므로 길을 걷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음식과 음료수를 준비해야 한다. 중간에 만나게 되는 둥글거나 네모난 형태의 조그만 벽돌집은 이 지역의 오래된 건축물로 비둘기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약 10km 정도를 가니 반가운 푸드 트럭이 있다. 제법 먼 길을 걸어온 순례자들은 대부분이 이 푸드 트럭에 앉아 쉬면서 커피나 음료를 곁들여 약간의 음식을 먹고 떠난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 곳곳에 보이는 이 푸드 트럭은 스페인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운영하는 것이 보이는데 누가 운영하든지 길손들에게는 소중한 쉼터가 된다.
푸드 트력
이제 이 길을 걷는 순례자의 앞길은 피곤함과 지루함 외로움이 함께하는 구간이 나온다. 오른쪽으로는 멀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보이고, 순례자는 포장도로를 지나서 계속해서 나타나는 밀밭을 지루하게 보면서 외롭게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기 앞에서 걷고 있는 순례자의 모습만 보면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길을 갈 뿐이다.
산티아고 400km 표지석
끊임없이 계속되는 밀밭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는 아담한 마을로 위치가 분지 아래에 있어서 멀리서 보면 지평선과 혼동하여 지나쳐 버리기 쉽다. 아주 가까이 가기 전까지는 마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없어 더 지루하고 피곤한 길이 될 수 있다.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라는 마을 안에는 벽돌로 지은 아담한 집들이 있고, 마을의 소박한 산 마르틴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Martin)의 내부에는 푸안 데 푸니 화파가 그린 16세기의 봉헌화가 있다.
멀리 보이는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 표시
쿠에사 강 표시
길가에 피어 있는 스페니쉬 블룸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를 지나기 위해서는 마을 중앙의 마요로 거리를 지나 마을의 왼쪽으로 도로를 지난다. 마을에서 다리를 통해 쿠에사 강을 건너면 여기에서 레디고스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로 나뉜다. 옛길과 새길이 있는데 주저 없이 옛길을 따라가는 것이 좋다. 새길은 우회하는 길이다. 레디고스에는 순례자를 위한 특별한 시설이 없어 대부분의 순례자는 그냥 통과하지만 시내를 구경하기를 권한다.
레디고스는 1028년에 도냐 우라카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주교 영지로 이 마을을 기부했다. 당시 기부에는 비둘기 집과 함께 여러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산티아고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을 비롯해서 현재에도 당시의 전통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레디고스 마을 전경
레디고스를 떠난 순례자는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도로의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 것이 좋다. 쿠에사 강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1시간 정도 걸어가면 붉은색의 벽돌로 만들어진 무데하르 양식의 건물들이 길게 자리 잡은 12세기에 설립된 템플 기사단의 영지였던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 에 도착한다. 현재 마을에는 기사단과 관련된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마을의 이름에 끌린 많은 순례자들이 마을을 찾는다. 이 마을에는 황금 알을 낳는 닭이 묻힌 자리에 대한 전설이 있는데 이 전설은 템플 기사단과 관련이 있어, 이 전설을 믿는 중세의 연금술사들과 보물 사냥꾼들이 끊이지 않고 이 마을을 찾아 왔다고 한다.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 표시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에 도착하여 알베르게를 찾아가니 아직은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점심을 먹고 세탁을 하고난 뒤 알베르게 뜰에 앉아 일행들과 맥주를 한잔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외국인들이 말을 걸어 왔다. 우루과이에서 왔다는 젊은이와 스페인 사람이라는 50대 정도의 남자. 그리고 40대로 보이는 루마니아에서 왔다는 여인이었다. 사람들은 여행을 제법 했다고 해도 루마니아를 가 본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나는 루마니아를 일주일 정도 여행을 했기에 내가 여행을 한 곳들을 이야기하니 루마니아 여자는 아주 기뻐하며 이야기를 했다.
그들과 떠들고 이야기하며 쉬면서 보니 같이 길을 걸었던 한국의 모녀도 보이고, 태백의 젊은이도 보인다. 아마 이 마을에 알베르게가 없어 모두들 이곳에서 숙박을 하는 것 같았다. 제법 오랜만에 만나기에 반갑게 인사들을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 같은 일이 이 길을 걸으면서 항상 겪는 일이다. 한국에서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같은 길을 걷는다는 사실만으로 동류의식을 가지고 함께 하는 것이다.
한참을 쉬다가 저녁을 먹고 마을 구경을 나갔다. 오후 8시 경이었는데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다. 이곳은 낮이 길어서 오후 10시 경이 되어야 해가 떨어진다. 마을에는 산 페드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Pedro)이라는 소박한 성당이 있는데 마을의 주민이 적어서인지 문을 열어 놓지 않았다.
산 페드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Pedro)
마을에 있는 산티아고 길 표시
템플기사단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알베르게
조그마한 마을이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마을의 성당과 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함께 간 일행들과 여러 이야기를 하며 숙소로 돌아오니 9시가 되었다. 또 다시 가장 원초적인 행동을 계속하기 위해서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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