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남파랑길 90 코스(미황사천왕문 - 연포산 임도 - 땅끝탑)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의 마지막 코스인 90 코스는 미황사 천왕문 앞에서 시작하여 달마고도를 따라 걸으면 도솔암을 지나고 연포산을 넘어 땅끝탑까지 가는 13.9km의 짧은 길이지만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산길을 걷기에 편안한 길은 아니다.

 

90 코스 지도

 

송지초등학교 아래에 있는 숙소에서 어침 일찍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택시를 타고 미황사로 갔다. 미황사를 가는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택시를 탄 것이다.

 

 미황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108계단이 맞이한다. '마음 버리며 오르는 108계단'이라는 '자비의 108계단'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계단을 오르며 부처님의 큰 자비와 무소유를 생각하였다. 감히 내가 따라 갈 수 없지만 이 계단을 오르면서 잠시라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도 참 복받은 것이다.

 

자비의 108계단 간판

 

90 코스 안내판

 

 천왕문 옆에 난 산길을 걸으며 이 코스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편안한 산길인 달마고도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달마고도는 여러 코스가 있기에 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한가로이 걷는다. 내가 이 달마고도를 얼마나 걷고 싶어 했는지를 생각하면서 이 고도를 개척한 스님에게도 감사를 드리며 걷는다.

 

 

 완전히 기계화된 지금 세상에 곡괭이와 삽을 들고 지게를 사용하여 길을 냈다는 달마고도는 미황사의 주지이산 금강스님이 중심이 되어 군데군데 남은 길을 기반으로 하여 사라진 길과 잊힌 길의 흔적을 찾아 하루 평균 40여명의 인원이 열달을 걸려 완성했다고 한다. 스님은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과 같이 살아가면서 여행객이 달마산에 제대로 깃들여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길을 만들었다.

 

 

 미황사에 출발하면  달마고도는 처음에는 나무가 우거진 흙길이지만 30분 정도가 지나면 너덜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산 정상에서 바위가 쏟아져 내린 돌의 너덜경은 한 곳만 있는 것이 아니라 20여 곳이 있다고 하는데  몇 미터의 짧은 것도 있지만 150미터가 되는 긴 너덜경도 있다. 달마산의 깊은 산 속에서 나무와 하늘만 보다가 느닷없이 나타나는 바위계곡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는 것과 같이 신비롭다.

 

달마고도의 너덜경

 

 

 너덜지대를 지나 도솔암쪽으로 길을 가면 이 길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붙어 있다. 땅끝 천년숲 옛길은 대한민국 국토의 시발점 땅끝에서 시작하여 도솔암, 미황사, 대흥사 세곡재를 지나는 명품숲길로 총 52로 땅끝길(16.5), 미황사역사길(20), 다산초의교류길(15.5) 3코스의 테마로 나뉘어 있다.

 땅끝 천년숲 옛길은 다양한 해남의 역사와 문화재를 탐방할 수 있는 코스로, 작은 오솔길을 활용해 자연스러운 숲길을 2010년 조성하였다.

 

미황사 천년 역사길 표지

 

울창한 숲

 

 울창한 숲을 걸으면 도솔암이 나온다. 하지만 표지를 보고도 도솔암으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90 코스를 걷는 동안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앞서는지 다소 피로함을 느낀 때문이다.

 

 해남 달마산에 있는 도솔암(兜率庵)<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진다. “그 땅의 끝 편에 도솔암이 있고, 그 암자가 향한 형세가 곶(: 바다로 돌출한 육지의 선단)을 얻어 장관이 따를만한 짝이 없다. 화엄조사(華嚴祖師) 상공(湘公)이 터 잡고 지은 곳이다. 그 암자 북쪽에는 서굴(西屈)이 있는데, 신라 때 의조화상이 비로소 붙어살면서 낙일관(落日觀)을 수리한 곳이요, 서쪽 골짜기에는 미황사·통교사(通敎寺)가 있고, 북쪽에는 문수암과 관음굴이 있는데 그 상쾌하고 아름다움이 참으로 속세의 경치가 아니다.” 이후 도솔암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정유재란 때 명랑해전에 패한 왜구들이 해상 통로가 막혀 달마산으로 퇴각하던 중 도솔암이 불탔다고 전해진다. 2002년까지 주춧돌만 남은 폐사지로 방치되다가 200268일 월정사에 있던 승려 법조가 법당을 중건하였다.

 

중간에 갑자기 나타나는 아스팔트

 

 코스는 이 아스팔트를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아스팔트를 가로질러 좁은 산길로 인도한다. 산의 수림이 얼마아 울창한지 대낮인데도 어둠이 끼여 있다

 

울창한 수림

 

멀리 보이는 남해 바다

 

복잡한 이정표

 

 이제 연포산 줄기를 따라 걷는데 이 길이 만만하지가 않다. 아주 험한 길은 아니지만 오르락내리락을 거듭하는 길인데 곳곳에는 조그마한 암릉이 가로막고 있어서 바위를 돌아가야 하고, 길이라고는 아주 좁은 길이고 더구나 길인지 아닌지도 모를 지경으로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다. 그래도 주의를 기울이면 길이라는 것을 알 수는 있으니 제법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더구나 낙엽이 길을 덮고 있어 내리막길에는 미끄러지기가 쉬우므로 아주 조심을 해야 한다.잘못해서 미끌어지면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는 곳이다.

 

땅끝 천년숲 옛길 표시

 

 

 길을 가다가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남해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서해가 보인다. 두 바다를 동시에 보고 길을 계속해서 가면 멀리 땅끝전망대가 보인다.

 

상당히 어려운 산길

 

멀리 보이는 땅끝전망대

 

 

 드디어 연포산 산길을 벗어나면 아스팔트 도로를 가로질러 땅끝전망대로 가는 육교가 나온다. 이 육교를 건너 가면 여러 리조트가 나오고 땅끝이 가까운 갈두산이다.

 

 해남군 송지면 땅끝마을(갈두리)에 있는 갈두산(葛頭山)은 높이 156m로 칡이 많다 하여 칡머리라 하였고, 칡머리를 갈두(葛頭)라 하는데, 갈두에서 산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1981년에 갈두산 정상에 전망대를 세우면서 미황사의 창건설화에 나오는 사자포(獅子浦)와 관련지어 사자봉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해남군 토말(土末)이 한반도의 최남단임을 상징하는 토말비와 토말탑이 땅끝마을·칡머리로도 불리는 갈두리(葛頭里) 갈두산의 주봉인 사자봉 정상에 세워져 있다.

 

멀리 보이는 땅끝전망대

 

전망대로 가는 나무테크

 

땅끝 주변 안내도

 

 

 나무테크를 한참 걸어 땅끝전망대에 도착했다. 해남 갈두산 사자봉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진도에서 완도까지 서남해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제주도의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전망대 주변

 

 전망대에서 땅끝탑까지는 약 500m로 거리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땅끝탑이 있는 해안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길은 나무테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편하게 내려가게 한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발아래서 가깝게 들리는 길을 걷다 보면 드디어 땅의 끝이다.

 이곳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 17 21초 해남군 송지면에 위치한 노령산맥의 줄기가 내뻗은 마지막 봉우리인 갈두산 사자봉 땅끝이다. 땅끝을 알리는 새로운 땅끝탑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가 땅끝의 가진 감흥을 우리에게 준다.

 

 땅끝에서 보는 바다는 여느 바다와 같지만, 막상 도착하면 더 나아갈 수 없는 땅끝이 지닌 절박함이 와락 달려든다.

 

땅끝탑

 

땅끝 앞 바다

 

남파랑길 90 코스의 마지막과 서해랑길 1 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판

 

 땅끝탑이 있는 곳에서 남해바다와 서해가 갈라진다. 남파랑길 90 코스가 끝나는 종착점이자 새로운 길 서해랑길의 시작점이다.

 

부산의 오륙도에서 시작하여 여기까지 90개 코스1470km를 걸어 이제야 도착했다. 단 1m도 다른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거리를 다 두 발로 걸었다. 처음 1 코스의 시작을 봄이 시작하는 계절에 하였는데 마지막 종착지에 도착하니 12월 초순이다. 작년에 해파랑길을 끝낸 시점과 비슷하게 끝을 내니 감회가 새롭다. 많은 친구들이 내가 이길을 겯는 것에 도전을 할 때 걱정을 했지만 나는 무사히 걷기를 마쳤다. 내 자신이 생각해도 대단한 일을 하였다. 올해의 목표를 이루었기에 내년에는 서해랑길을 걸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천년숲 옛길 표지

 

땅끝버스정류소 주변

 

 내가 항상 걸으면서 예정한 시간에 맞추어 목적지에 도착한다. 오늘도 예정된 시간에 어긋나지 않고 끝을 냈기에 버스정류장에 와서 시간을 맞추어 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남파랑길 89 코스(원동버스터미널 - 바람재 - 미황사 천왕문)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89 코스는 원동버스터미널을 출발하여 86 코스의 처음 부분을 거슬러 올라간다. 거슬러 올라가서 남창사거리에서 이진마을을 거쳐서 바람재를 지나면 달마산으로 올라가 달마고도를 따라 산을 넘으면 미황사에 도착하는 13.8km의 비교적 짧은 길이다.

 

89 코스 지도

 

89코스 안내판

 

 처음 예정은 88 코스까지만 걷고 숙박을 하고 다음 날  89, 90 코스를 동시에 걸으려고 하였으나 88 코스를 마치는 시간이 아직은 이른 시간이었다. 나의 걸음걸이를 생각했을 때 89 코스를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걸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89 코스를 걷기 시작한다.

 

86 코스에서 걸어온 길

 

가다가 만나는 86 코스 안내판

 

 

 남창사거리를 지나면 86 코스와 같은 길을 벗어난다. 남창사거리에서 조금 가면 남창 5일장이 나온다.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는 전통시장인 남창5일시장(南倉五日市場)은 완도와 강진을 잇는 교통 요충지에 위치해 2일과 7일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공설시장이다.

 1945년 직후에 형성되어 1964년에 개설된 후 2005년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그 뒤 여러 편의시설과 증축과 시설의 현대화를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가 지나는 날이 장날이 아니어서 장터는 텅 비어 있었으나 장텨의 모습은 볼 수 있었다

 

남창5일장터

 

이정표

 

멀리 보이는 달마산

 

 해안도로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마을을 돌아나가면 이진리로 가는 표시가 보이고 그 표시를 따라 이진마을을 지나면 달마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이진마을 풍경

 

달마산 올라가는 길에서 보는 완도 앞 바다

 

 

 해남군 송지면 및 북평면에 걸쳐 있는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달마산(達摩山, 489m)은 높지 않지만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암릉으로 형성되어 있어 상당히 험한 산이다. 암릉은 달마산 정상(불썬봉)을 거쳐 도솔봉(421m)까지 약 8에 거쳐 기세가 이어진 다음 땅끝에 솟은 사자봉(155m)에서 갈무리한다. 산을 오르는 도중 여러 너덜지대를 통과하고 곳곳에 단절된 바위 암벽이 있어 산행이 쉽지만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해남)에 의하면 1218년 이곳까지 표류한 남송의 배가 이 산을 보고 "이름만 듣고 멀리 공경하여 마지않았더니 가히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살고 계실만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하여 지명이 달마대사와 관련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선종(禪宗)의 시조가 되는 달마대사(達磨大師)는 인도의 향지국(香至國)에서 셋째 왕자로 태어났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대사는 소림국에서 9년간 벽을 보고 수행을 한 후 법을 전해 주고 갑자기 사라졌는데, 사라진 달마대사가 해남의 달마산(達磨山)으로 왔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 중국 남송(南宋)의 고관들이 해남으로 건너와 주민들에게 이곳이 달마산이냐?”라고 물었다. 주민들은 그렇다고 대답하자 남송의 고관들이 너희들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너무 부럽다. 우리는 멀리 중국에서 평생에 한 번 오기를 소원하고 바라고 바랄 뿐인데……. 역시 달마대사가 머물 땅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후 남송의 고관들은 달마산을 그림으로 그려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달마산의 여러 모습

 

 달마산을 올라가면서 달마고도 표시가 여러 곳에 보인다.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 미황사에서 시작하여 송지면과 북평면으로 이어지는 달마산 둘레길인 달마고도(達磨古道)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이 기획하였다. 해발고도 220~380m에 이르는 달마산 중턱에 미황사에 전해 내려오는 12암자터 순례 코스를 개발하여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을 주제로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71118일 개통한 둘레길이다. 달마고도는 바다를 배경으로 12개의 암자를 끼고 있는 숲길로 소사나무와 편백나무 등 산림 군락과 달마산 동쪽의 땅끝 해안 경관도 볼 수 있다. 달마고도는 미황사에서 시작하여 큰바람재, 노지랑골, 몰고리재 등 달마산 주능선 전체를 아우르는 여행길로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 인력으로만 길을 닦아 자연경관의 훼손을 최소화하여 선인들이 걸었던 옛길을 복원하였다.

 

 북일면 이진에서 시작되는 옛길 이진로와 해남 대흥사에서 시작되는 옛길 미황로, 송지면 마봉리에서 시작되는 옛길 인길(마봉로), 북일면 영전리에서 시작되어 몰고리재에서 끝나는 옛길 13모통이 길은 기존 있던 길을 새로 손질하고 복원하였고, 달마고도 2코스, 달마고도 3코스, 달마고도 4코스 일부는 새롭게 조성하였다.

 

 달마고도는 4개의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길이는 17.74㎞로 한 바퀴 도는데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1구간은 2.72로 미황사 일주문 옆에서 시작한다. 숲길과 임도를 따라 1가량 가면 거대한 너덜지대가 나오며, 앞에는 완도가 바로 보인다. 2구간은 4.3로 농바위, 문바위골을 거처 노시랑길로 이어진다. 이서 소사나무 등 대규모 산림 군락지가 이어진다. 중간쯤 관음암 터에 이르면 작은 못이 나온다. 2구간 끝자락에 서면 동남쪽은 남해, 서북쪽은 서해로 서해와 남해를 한곳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 3구간은 5.63로 노지랑골에서 편백나무숲을 지나 몰고리재까지 연결된다. 4구간은 5.03로 몰고리재에서 미황사로 돌아오는 구간이며, 용굴과 도솔암, 편백숲, 미황사 부도전을 순례할 수 있다.

 

너덜지대

 

달마고도

 

 달마고도를 걸어 달마산을 넘으면 미황사에 도착한다.

 

 달마산을 병풍 삼아 서록에 자리 잡은 미황사는 이 산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절로서, 미황사의 창건 연대나 사적에 대한 기록은 숙종 18(1692) 병조판서 민암(閔黯, 1636~1694)이 비문을 지었다는 미황사 사적비에 다음과 같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신라 경덕왕 8(749)에 인도에서 돌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항)에 닿자 배에 오르니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있고, 놓여 있는 금함(金函) 속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40성중(聖衆), 53선지식(善知識), 16나한의 탱화 등이 있었다. 곧 하선시켜 임시로 봉안하였는데, 그날 밤 꿈에 금인이 나타나 자신은 인도의 국왕이라며, “금강산이 일만 불(一萬佛)을 모실만하다 하여 배에 싣고 갔더니, 이미 많은 사찰들이 들어서서 봉안할 곳을 찾지 못하여 되돌아가던 길에 여기가 인연토(因緣土)인 줄 알고 멈추었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모시면 국운과 불교가 함께 흥왕하리라.” 하고는 사라졌다.

다음날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미황사라 한 것은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웠다 하여 미자(美字)를 취하고, 금인의 빛깔을 상징한 황자(黃字)를 택한 것이라 한다.

 

미황사 천왕문

 

 천왕문을 통과하여  저녁의 어스름을 안고 절 안으로 들어가니 사찰의 안방이라고 할 수 있는 대웅전이 휴식 중이다. 대웅전을 통째로 벽으로 가두어 놓아 조금도 볼 수 없게 하였고 임시로 대웅전을 만들어 놓았는데 조금도 감흥이 없다.

 

미황사 전경 - 뒤에 달마산이 보인다.

 

 

 미황사 천왕문 앞이 89 코스의 끝이다. 

 

 미황사 주변에는 숙박울 하거나 음식을 먹는 곳이 전혀 없다. 그래서 숙박을 위해서는 멀리까지 나가야 하는데 교통편도 여의치 못하다. 그래서 처음부터 마음먹은 대로 택시를 호출하여 송지면사무소가 있는 곳으로 가서 숙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파랑길 88 코스(화홍초등학교 - 완도수목원 - 원동버스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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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파랑길 88 코스는 화홍초등학교 앞에서 학교를 끼고 옆으로 올라가면 산길로 접어든다. 상왕봉(상황봉)으 로 가는 길이다. 코스 안내에는 난이도가 높다고 하였으나 그렇게 어려운 길이 아니다. 상왕봉에서 완도 앞 바다를 조망하고 내려오면 완도수목원애 도착하고 수목원을 벗어나서 마을길을 걸어 원동버스터미널에 도착하는 15.3km의 길이다.

 

88 코스 지도

 

88 코스 안내판

 

화홍초등학교 옆길

 

 

 상황봉을 올라가는 길은 처음에는 임도가 계속되다가 어느 정도 올라가서는 산길로 올라가게 된다. 조금 힘들지만 그렇게 험한 길은 아니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상황봉가는 임도

 

남근바위

 

 산길로 들어가서 제법 올라가면 이름도 요상한 남근바위가 나오고 그 바위를 지나면 통천문과 같이 두 바위가 맞닿아 상황봉으로 올라가는 문의 형상을 하고 있다.

 

문의 형상을 하고 있는 두 바위

 

 이 돌문을 지나 더 올라 가면 상황봉에 도착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산을 올라오면서 보는 모든 이정표나 안내에는 상왕봉이라 되어 있는데 자료를 조사해 보면 모든 곳에서 상황봉으로 나온다. 이름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완도군에서 착각을 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통일을 할 필요가 있다.

 

 완도섬의 중앙에 위치하고 완도읍과 군외면의 경계에 있는 산인 상황봉(象皇峰, 645m)은 완도의 진산으로 오봉산의 중심봉우리이다. 백운봉을 잇는 줄기가 완도 섬을 동서로 나누어 생활권의 경계를 이룬다. 정상에 오르면 동··남 삼면으로 아름다운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북쪽으로는 굵직한 산줄기가 육지를 향해 힘차게 뻗어 있다. 동백나무가 무성하여 한겨울의 동백꽃은 완도 팔경 중의 하나인 백운홍춘국원(白雲紅椿國苑)의 하나이다.

 

 정상에 오르니 몇 사람들이 전망대를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조망의 편리를 제공하기 위한 공사인데 공사자재를 어떻게 가져 왔을까? 하고 생각하니 그들의 노고에 감사의 생각이 들었다. 공사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방을 둘러보니 탁 트인 남해가 눈앞에 펼쳐지며 올라오면서 흘린 땀을 씻어 주었다.

 

상황봉 정상 봉수대

 

상왕봉으로 표기된 정상석

 

봉수대

 

정상에서 보는 다도해

 

 정상에서 휴식 겸 사방을 둘러보며 조망을 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산을 올라오고 내려가는 동안 산 정상에서 공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지 않고 내려가니 완도수목원으로 향한다.

 

내려오는 길에서 보는 다도해

 

완도수목원 내려가는 길

 

 완도수목원(莞島樹木園)1991년 개장한 우리나라 유일의 난대수목원으로 완도 본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50의 면적에 752종의 자생 난대수종을 보유해, 국내 최대의 난대림 집단자생지이자 유일한 난대수목원이다. 완도수목원 내에는 관리용 임도가 거미줄처럼 길이 많이 나 있는데 아래쪽으로만 내려가면 수목원 입구가 나온다.

 

완도수목원의 여러 모습

 

 수목원을 나와 길을 걸어가면 여러 마을이 나오고 마을을 지나면 해안으로 간다. 원동선착장이다.

 

남파랑 쉼터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에 길이 30~50m6개의 석축으로 된 원동선착장은 선착장들이 흩어져 있어 항상 낚시꾼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이틀 전에 이곳에서 숙박을 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다시 이곳으로 왔다., 완도는 섬이기 때문에 섬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또 완도대교를 건너야 한다.

 

남파랑길 87 코스(완도항 해조류센터 - 정도리 구계등 - 화홍초등학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87 코스는 안도항 해조류센터 앞에서 시작하여 해변공원을 지나 다도해 일출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와서 망석항을 지나고 국립공원인 산길을 걸어 장도리 구계등으로 간다. 여기서 다시 화홍리 화홍초등학교에서 끝이 나는 18.0km의 길이다.

 

87 코스 지도

 

87 코스 안내판

 

 점심을 맛있게 먹고 87 코스를 시작하니 엄청 큰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완도항해조류센터다.

 완도 해변공원로에 위치한 완도군 해조류센터는 2015년에 개관한 전시시설 해조류 자생의 최적지인 완도 바다환경과 해조류가 무엇이며, 다양한 종류부터 시작해서, 해조류의 가치에 대해 알려주고, 해조류 터널에서는 해조 숲을 유리 모형과 조명으로 신비하게 연출하여 해저 탐험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완도항해조류센터

 

 해조류센터에서 완도항으로 가는 길가에는 해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완도여객선터미널이 있는 바다 앞에는 주도라는 조그마한 섬이 떠 있다. 그리고 해변공원에는 관광객을 위해서 여러 가지 조형물을 만들어 사진 찍기 좋은 곳을 만들고 있다. 또 뜻밖의 동백이 피어 눈을 즐겁게 만든다.

 

겨울에 핀 동백

 

완도항 해변공원 길

 

 

 해변공원길을 지나면 제법 오르막이 나오는 다도해일출공원이 나온다. 완도여객터미널 맞은편 입구부터 다도해일출공원의 정상부에 있는 완도타워까지는 모노레일이 움직이고 있고 그 옆에는 나무 테크가 설치되어 걸어 오르게 되어 있는데 제법 힘이 드는 길이다. 걷는 동안 장미 터널과 느티나무 쉼터, 소정원 등이 차례로 나타나 걷는 피로를 풀어 준다.

 

다도해일출공원 표지

 

모노레일과 나무테크

 

 공원의 정상부에는 완도타워가 있다. 완도 끝자락 다도해일출공원에 우뚝 솟아 있는 섬의 랜드마크인 완도타워는 76m 높이로 타워 상부에 타원형 전망대가 설치되었고, 그 위로 뾰족한 첨탑이 솟아 있어 언뜻 보기에 꼭 우주비행선이 내려와 앉은 모습이다.

완도타워

 

 

다도해일출공원을 한 바퀴 빙 돌아 나오면 잠시 길을 찾기가 난감하다. 아스팔트의 큰 길이 펼쳐지는데 이 길이 아니다. 조그마한 오솔길도 잘 보이지 않아 잠시 길을 찾으니 왼쪽으로 아주 작은 오솔길리 나오고 그 길을 따라 가게 한다. 왼쪽으로 펼쳐지는 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면서 길을 가니 조그마한 돌문이 나오고 아름다운 길 '동망산돌탑길'이라 칭해 놓았다.

 

동망산돌탑길 돌문

 

저 멀리 보이는 양식장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은 리조트

 

최강장군 가리포해전 대첩비

 

 여기서 임도를 따라 조금 가면 산길로 들어가게 한다. 그런데 이 길이 상당히 힘들다.두루누비 안내에는 평이하게 국립공원의 해안 풍경을 즐기며 걷는 길이라고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 아주 험한 길을 아니지만 아주 좁은 길이면서 오르막이 많은 편안하지 않은 길이다. 미리 이야기하면 88 코스가 어려운 코스라 하지만 그 길은 이길에 비하면 쉬운 길이다. 길은 험하지만 경치는 국립공원이라는 명성에 맞게 아름답다. 부꾸지에서 국립공원탐방센터까지의 약 3km의 길인데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상당히 험한 산길에서 보는 풍경

 

다도해해상국립공원안내소 부근

 

 여기서부터가 유명한 정도리 구계등이다. 사실 이곳은 그렇게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펼쳐지는 경치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곳이다.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에 1972년에 명승 제3호로 지정된 구계등은 신라시대 궁중에서 직접 봉한 녹원지였다. 구계등은 크고 작은 돌들이 모여 9개의 계단을 이루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완도읍에서 서남쪽으로 약 4에 위치한 남향의 궁형(弓形) 해안선을 말하며 해안선을 따라 오랜 세월 파도에 깎여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갈밭이 장관이다. 더구나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촤르륵' 청명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자갈돌들의 화음은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때론 경쾌하게, 때론 고요하게 마음 깊숙한 곳까지 그 울림이 전해오는 기분이다. 자갈밭은 약 800m에 걸쳐 이어져 있으며, 해안선이 자갈밭을 양쪽에서 감싸는 모양으로 수중절벽의 경관을 이루고 있다. 자갈밭의 너비는 80m 정도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약 5m의 바닷물 속까지 연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의 자갈은 갯돌(靑丸石)로 크기는 해변에 깔린 갯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기 주먹처럼 앙증맞은 것부터 수박만큼 큰 돌까지 크기도 모양도 모두 제각각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하게 깎여 있다는 점은 모두 똑같다. 자갈밭의 모양도 큰 풍파가 있을 때마다 쓸려서 수중으로 들어가 버렸다가 다시 해안으로 올라오기를 되풀이하기 때문에 전개 양상도 그때마다 다르게 변하며 대소 5개종의 천연석 청환석이 9계단을 이룬다고 한다. 이 곳의 갯돌들은 수만 년 동안 파도에 씻기고 깎인 탓에 표면이 아주 매끄러울 뿐만 아니라 형용도 모난 데 없이 동글동글하다. 또한, 자연적 연마에 의한 표면의 아름다움이 있는 동시에 양이 많아 양적으로도 압도하게 한다. 특히, 저녁에는 서쪽에서 지는 해넘이가 감탄하게 하고 이른 아침의 해돋이 광경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저녁이라 해넘이는 제대로 보았는데 아침에는 일찍 떠나서 해돋이를 보지 못해 안타까웠다.

갯돌 위를 걷기 편하게 나무 테크가 설치되고 중간중간에 앉아서 경치를 감상하도록 벤치가 만들어져 있어 관광객들과 마을 사람들이 한가롭게 앉아 즐기고 있었다.

 

구계등이 아름다운 또 다른 모습은 바다 위에 신기루처럼 떠 있는 여러 섬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청산도, 소모도, 대모도, 소안도, 보길도, 횡간도까지 두루 보이는 경치는 괜히 명승이 되고 옛날부터 녹원지로 봉해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앞의 해안의 경치에 더해 해안 뒤편에 우거진 숲은 구계등을 더욱 아름답고 포근한 공간으로 만든다. 수령 100년이 넘는 소나무부터 참나무, 팽나무, 떡갈나무 등 40여 종의 상록수와 단풍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한여름 더위를 피하고 방풍림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숲속 탐방로도 깔끔히 정비되어 있어 걷기도 편하다.

 

구계등 앞 바다의 섬들 안내도

 

정도리 구계등 안내

 

 숙소에 짐을 내리고 해넘이 시간을 맞추어 해안으로 나갔다. 마침 해가 자갈해변 끝쪽으로 지려는 시간이었다. 한참을 해넘이를 구경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곳곳에서 해넘이를 보았다. 보는 위치가 다 다르기에 그 때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구계등의 해넘이 풍경

 

 해넘이를 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민박집 주인이 고맙게도 김치와 밥을 한 공기 준다. 이 주변에서는 철이 아니라 밥을 먹을 식당을 찾기도 어려워 주인에게 부탁을 하니 라면을 가지고 와서 끓여 먹으라고 미리 이야기를 했기에 가지고 간 라면을 끓여 저녁을 먹고 쉬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라면으로 아침을 간단히 먹고 길을 떠났다.

 

아침에 보는 구계등

 

길을 떠나 정도리와 화홍리 마을을 지나니 화홍초등학교가 나온다. 여기가 87 코스의 종착점이다.

 

화홍초등학교

 

 87 코스는 망석리를 지나서 구계등까지 오는 길에서는 조금 짜증이 났다. 왜 남파랑길은 길 이름에 맞지 않는  산을 많이 넘어야 하는지가 처음부터 의문이었다. 그러다가 산을 넘어 구계등에 도착해서 보는 경치는 산에서 나온 짜증을 씻어주고도 남는 경치였다. 이 경치를 보게 하려고 그 고생을 시켰는지 의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87 코스는 상당히 어려운 코스다.

남파랑길 86 코스(해남 남창정류소 - 불목리선착장 - 완도항해조류센터)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86 코스는 해남 남창정류소를 출발하여 달도를 지나면  완도로 들어간다. 완도대교를 건너서 완도 서쪽을 해안을 따라 걸어가 불목리선착장을 지나 청해진을 구경하고 완도항 해조류센터에 도착하는 24.6km의 길이다.

 

86 코스 지도

 

 이번 여정을 시작하려고 아침에 집에서 출발하여 강진을 거쳐 남창정류소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되었다. 미리 저녁에 원동항까지 가기로 하고 길을 떠났기에 남창정류소를 출발하여 조금 내려가니 달도로 들어가는 다리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니 여기에 86 코스 시작  안내판이 있다.

 

달도 입구 다리

 

86 코스 안내판

 

 해남군과 완도섬을 연결하는 중간에 위치한 달도(達島)는 남창교와 완도대교로 두 지역을 연결하고 있으나 행정구역상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에 속한다. 섬에는 달도마을과 염수마을이 있다. 섬의 명칭은 풍수지리상 배의 닻과 같이 생겼다하여 닻섬이라 부르다가 완도군이 설치된 이후 달도리라 하였다고 전하며, 또 다른 설로는 이 섬이 다리 역할을 하면서 다리섬이 달도로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완도 입구

 

 달도로 들어가니 달도테마공원이라는 간판이 여러 곳에 보이고 해안으로 가니 길이 공원을 가로 질러 가게 하였다. 달도테마공원에는 개메기(전남지방 전통 어업 방식으로 밀물에 둑을 쌓아 썰물에 가둬진 고기를 잡는 방식)체험장이 있고, 공원, 어린이 놀이터 등이 있고 역사마당으로 전진도첩사당과 호남대장군 이순신을 기리는 스토리텔링 벽과 망뫼산 약샘 등이 있다.

 

달도테마공원 표시

 

달도마을 입석

 

전진도첩사당 비석과 스토리텔링 벽화

 

개메기체험장 표시

 

멀리 보이는 완도대교

 

 

 달도를 돌아 완도대교로 올라 대교를 걸어 완도로 간다. 완도대교(莞島大橋)는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에 위치하여 달도와 완도 사이를 잇는 왕복 4차로의 500m 길이의 다리로, 통일신라시대의 장군 장보고를 상징하는 무역선과 투구를 형상화하였으며, 1주탑 2면식 비대칭 사장교로 2012년 완공되었다.

 

완도대교

 

완도대교에서 보는 원동항

 

 완도대교를 건너 완도로 들어서면 바로 원동항이 나타난다, 오늘 저녁은 여기서 머물기로 미리 예정하였으므로 숙소를 정하고 바깥으로 나오니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어디에서든지 보는 해넘이는 너무 아름답다. 붉게 온누리를 비추며 사라지는 해를 보면 그 장엄함에 감탄을 하면서도 사라지는 아쉬움이 가슴에 남는다.

 

해넘이 광경

 

완도대교 야경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완도를 한 바퀴 돌기 위해서 채비를 마치고 길을 떠났다. 빙그레 웃을 '()'자와 섬 '()'자를 쓰는 해상왕 장보고 후예들의 섬인 완도(莞島)는 하늘의 축복 속에 탄생된 섬이다. 63.9km에 이르는 해안선을 끼고 있는 완도는 55개 유인도와 146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다도해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완도에서는 "개가 1,000원 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돈 많은 고장으로 유명했다. 완도라고 하면 우리는 김과 전복을 생각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톳, 미역, 다시마, 매생이, 등등 많은 건강식 먹거리와 웰빙 식품을 생산하고 있다.

 

꽃이 핀 비파나무

 

 

 계속 해안을 따라 걸으며 해안의 경치를 즐기다가 자갈로 된 해변에 도착했다. 두루누비의 안내에 의하면 만조시에는  우회하는 길이라 되어 있는데 다행히 내가 걷는 시간은 만조는 되지 않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만조가 되지 않은 해안

 

곳곳에 보이는 섬으로 가는 배 대합실

 

옹기와 돌로 아름다운 담을 만든 멋진 집

 

 해안을 따라 조금 더 가니 나무 테크로 연결된 장도가 나온다. 장도는 우리에게 청해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진이란 적군의 침입이나 공격을 막기 위해 짠 군사들의 대오나 기지를 뜻한다. 청해진(淸海鎭)은 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가 지금의 완도에 설치했던 군사 기지이자 무역항으로 중국과 일본을 오가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국제도시 역할을 했다.

 

 청해진 유적지는 오랜 세월 지역 주민들이 밭으로 사용하는 등으로 땅 밑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바다에 드러난 목책(원목열)으로 인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후 발굴조사를 통해 지금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며, 언제든 건너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유적지가 자리한 장도에는 당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을 비롯해 성문과 성벽, 사당 등이 고증을 통해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해안으로 내려와 조금 돌아가면 유적지가 발견되는 데 큰 역할을 한 목책들이 일렬로 나란히 묻혀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장보고(張保皐, ?~846)의 영정은 일본과 중국 산둥반도 적산법화원에서 찾을 수 있다. 9세기 서남해안의 해적을 평정하고 당나라와 일본을 상대로 국제무역을 주도했던 장보고는 우리 역사서보다 중국과 일본 역사서에 더 상세히 소개된 국제적인 인물이다.

 장보고에 대한 기록은 중국, 일본, 우리나라 모두 전해지나 우리나라의 기록이 가장 간략한 편이다. 우리 역사상 드물게 보이는 국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장도(청해진) 일대의 유적

 

 장도(청해진)을 지나면 장보고공원이 나오고 그 공원에 장보고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을 보려고 가니 하필 내부 수리 중이라 휴관이라는 고지가 붙어 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길을 가니 장보고어린이공원이 나오고 계속 가면 완도음식특화거리(전복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86 코스는 끝이 난다.

 

장보고 기념관

 

멀리 보이는 신지대교

 

 완도의 해변공원로 끝자락에 있는 수협어판장에서는 매일 아침 8시부터 위판이 시작된다고 한다. 일반인은 위판에 참가할 수 없지만 경매를 구경하는 것만도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수협어판장 뒤편에는 약 200m 거리에 40여 개의 음식점이 밀집한 음식특화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 음식점에서 완도의 특산물인 전복을 비롯하여 싱싱한 여러 생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여기에 도착하니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가 매생이국을 먹으려니 매생이국은 2인분 이상만 된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먹지 못하고 전복비빔밥을 한 그릇 먹고 휴식을 취했다.

 

 

완도의 상징 전복 모형

 

 여기에서 86 코스는 끝이 났다. 해안을 걸어오면서 코스를 벗어나서 창도(청해징)를 둘러 보고 온 것이 큰 소득이었다. 남파랑길은 걷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기에 주변의 역사적 유적지를 돌아보기는 상당히 어렵다. 조금 유의해서 코스를 정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파랑길 85 코스(사내방조제북쪽교차로 - 와룡교 -해남남창정류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85 코스는 사내방조제 북쪽교차로에서 시작하여 해남으로 들어간다. 방조제를 지나 계속되는 해안과 마을길을 걸어 멀리 보이는 완도대교를 보면서 가면 제법 큰 시내가 나오고 이 길을 걸어 내려가면 남창정류소에 도착하여 끝이 나는 18.2km의 아주 편안한 길이다.

 

완도, 해남구간 지도

 

85 코스 지도

 

85 코스 안내판

 

 

 이 코스부터 이제 남파랑길의 마지막 구간인 완도 - 해남구간이다. 참으로 먼 길을 걸어 왔는데 이제 마지막 구간 6 개 코스만 남았다. 점심을 먹고 출발을 하니 방조제가 엄청나게 길게 보인다.

 

 강진군 신전면 사초리와 해남군 북일면 내동리를 연결하는 사내방조제는 1989년에 착공하여 2002년에 완공하였으며 길이는 3,260m에 이른다. 호수 건너편에는 덕룡산과 주작산의 날카롭게 솟아 있는 암릉 구간이 보인다. 주작산은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고 있는 듯한 모습을 지녔다고 하여 붙여진 산이다. 방조제 중간에 해남군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어 행정구역이 해남군으로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내방조제 길

 

방조제 중간의 해남군 표시

 

사내호와 간척지

 

 방조제를 지나 해안을 따라 길을 가니 뜻밖에 고분 안내판이 있다. 해남내동리밭섬고분군은 해남군 북일면 소재지에서 내동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가면 해안이 나오고, 북동쪽으로 가면 밭섬이 나온다. 밭섬은 바깥 섬이라는 의미로,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말이다. 해남 내동리 밭섬 고분군의 안내도 설명에 의하면, 내동리 북동쪽 해안가의 밭 섬(바깥 섬을 의미함)이라고 불리는 외도(外島) 정상부(해발 22.5m)에 가장 경관이 좋은 지점에 2기의 삼국시대 고분이 있다. 20019월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해안을 따라 계속 가다가 보니 어느 집에 옹기로 치장을 한 모습이 보인다. 조개껍질을 붙인 항아리들이 가득 한데, 판매용인지? 아니면 취미로 만들어 집을 장식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옹기로 장식이 된 집

 

늘어선 전봇대들

 

 

 북평면으로 들어가 신남로를 걸어 해안길을 걸어가니 와룡리가 나온다. 마을이 용이 누워 있는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와룡마을에 있는 짜우락 샘은 특이하게 바다 안에 위치한다. 입구에 세워진 안내문의 전설을 읽어 보면, 방치되어 있던 샘을 지나가던 노인이 누가 용의 두 눈을 가려 마을에 변고가 생긴다고 하였다. 1년 사이에 젊은 청년 7명이 급사한 마을에서는 샘을 원상태로 복원시킨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완도대교는 이 길의 종점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뜻한다. 길을 가니 남창리로 들어서고 북평초등학교가 나온다. 북평초등학교 정문을 지나니 북평면 소재지답게 여러 편의시설들이 즐비하다.

 도시의 시내와 같은 길을 다라 내려가니 남창정류소가 나오고 85 코스 종점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다. 1 코스부터 85 코스까지 걸으면서 종점 표시는 처음이라 조금은 생소하다.

 실제로는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달도 입구에서 85 코스는 끝이 낭다.

 

멀리 보이는 완도대교

 

북평초등학교

 

남창버스정류소

 

 이곳에서 나는 이번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서 일상의 생활을 하다가 나머지 코스를 다음에 걷기로 했다. 2박 3일 동안 같이 걸은 동행은 계속 걸어 이번에 끝을 낸다고 하여 간단히 휴식을 하면서. 날씨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기에 몸조심하라는 인사를 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버스를 타는 시간이 여유가 있어 터미널 앞의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주인에게 물어보니 이곳에는 숙박업소는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완도에 가야 숙박업소가 있다고 한다. 매번 이야기하지만 면 소재지 정도 되는 곳도 숙박할 곳이 없으니 얼마나 숙박할 곳을 구하기가 어려운 지를 짐작할 것이다.

 

84코스와 85코스는 전 구간에 상점들이 전혀 없어 출발하기 전에 충분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두 코스 모두 단조로운 편으로 짧은 시간 내에 마칠 수도 있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면 자연을 즐기면서 걸을 수도 있다.

 

 여기서 하나 조금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일을 이야기하면 85 코스를 걷는 도중에 이 길을 걷는 두 사람의 여자를 보았다. 이야기를 해 보니 남파랑길을 걷는다고 하여 인사를 하고 먼저 앞서 걸었는데 우리가 한참을 앞서 걸었고 그 여자들이 우리를 추월하지도 않았는데 85 코스가 거의 끝나는 해안가의 쉼터에 도착하니 벌써 도착하여 쉬고 있었다. 나와 동행이 조금 의아하여 묻자 자랑스럽게 코스를 벗어나 지름길로 왔다고 하면서 당당해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렇게 걷는지가 의문이다. 코스를 이탈하여 지름길로 다닐 바에야 처음부터 차를 타고 가면 될 일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 여자들이 말하기를 80%만 걸으면 인증이 된다면서 그 인증을 받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들이 걸은 코스에 대한 신뢰도 사라졌다. 이렇게 걷고도 사람들에게는 당당하게 완주했다고 자랑을 할 것이라 생각하니 보기가 싫었다.  

 

남파랑길 84 코스(도암농협앞 - 도암배수갑문 - 사내방조제 북쪽교차로)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84 코스는 도암농협앞에서 출발하여 향촌리를 거쳐 농촌마을 길을 따라 걸어 신기마을을 지나서 강진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도암배수갑문이 나오고, 방조제를 지나 해안을 따라 걸으면서 풍광을 즐기다 가면 사내방조제가 시작하는 북쪽교차로에서 끝이 나는 13.7kn의 잛은 거리다.

 

84 코스 지도

 

84 코스 안내판

 

앞에서 말한 민박 집

 

숙박을 할 수 있다는 도암문화회관

 

 아침 일찍부터 길을 떠나기에 고마운 민박 집 주인에게 인사도 못하고 길을 가니 아직 해도 떠지 않았다. 조금 길을 다라 내려가 도암문화회관과 도암파출소를 지나 장촌교앞에서 좌측 길로 돌아가 항촌교를 건너니, 항촌마을 입구에 마을 보호수 사장나무가 있다.

 

항촌 사장나무 앞에는 정약용 남도 유배길 4코스(총거리:65.7km)중에서 1코스 주작산 휴양림길(20.2km)이라는 안내판도 있다. 남도의 끝자락 강진은 곳곳에 다산의 정신이 살아 있는 고장이다. 다산이 무슨 생각을 하고 갔던가를 생각하게 하는 다산 유배 길은 우리들의 미래를 읽는 아름다운 길이라 소개한다. 해남 윤씨 세장비(世莊碑)와 사장나무를 배경으로 하는 항촌마을을 좌측에 두고 도암천을 따라 간다.

 

향촌 사장나무와 그 주변

 

 저 멀리서 아침이 밝아 온다. 해파랑길과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해돋이를 엄청 많이 보았지만 어디에서든지 해돋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고 그 장엄한 광경에 압도당한다.

 

해돋이 모습

 

 농촌 마을길을 따라 한가로이 걸어가면 신기리(新基里) 신기마을이 나오고 농로와 차도, 마을길을 지나면 바다가 보이는 강진만 논정방조제로 나온다. 강진만 해안도로라는 안내판과 방조제 옆의 갯벌에는 그물이 처져 있는데 양식장 같다. 중간에 도암 배수갑문이 있고, 이어서 방조제는 계속된다. 30분 이상을 걸어야 되는 긴 논정방조제가 끝나면 좌측으로 강진만 해안도로는 계속된다.

 

도암배수갑문

 

해안 풍경

 

 종점을 눈앞에 둔 소공원에는 쉼터 정자가 있고, 그 뒤로 썰물 때라 육지와 섬이 연결되는 호래비섬이 보인다. 84 코스가 끝나는 지점에는 유일한 숙박업소인 바다가 보이는 집이 있다. 이 코스가 끝나고 숙박을 하려면 이 집에 예약이 안 되면 강진읍으로 나가서 자고 와야 하는데 문제는 교통편이 거의 없어서 택시를 호출해서 가고 다시 와야 하는 것이다. 전라도 구간의 남파랑길에서 제일 큰 문제가 숙박과 식사라는 것이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원래는 이 집 뒤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려고 했는데 식당은 손님이 없어서인지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여기를 지나 85 코스 길에도 식당에 대한 정보가 없어 잠시 쉬면서 가지고 간 빵으로 해결하기로 하려고 동행과 자리를 잡으려고 하니 마침 숙박업소의 주인아주머니가 나온다. 그래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라면이라도 끓여 줄 수 있는지를 물으니 고맙게도 낙지를 넣은 라면과 공기밥을 준다. 너무 고마워서 여러 이여기를 하며 지나가는 남파랑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마은으로 라면이라도 좀 먹을 수 있게 하면 너무 좋은 일이라고 권유를 하고 인사를 극진히 하고 길을 떠났다.

 

'바다가 보이는 집'의 모습

 

 이 집의 숙박은 민박도 되지만 숙박용 캠핑카를 운용하고 있어 색다른 낭만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나는 낮에 지나기에 그냥 지나쳤지만 이 코스에서 밯길을 멈추는 사람은 이 집을 애용하면 편리할 것이라 생각된다.

 

남파랑길 83 코스(구목리교서쪽 - 백련사 -도암농협앞)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83 코스는 구목리교서쪽에서 출발하여 탐진강을 따라 강진만생테공원을 옆에 끼고 내려와서 백련사와 다산초당으로 간다. 다산초당에서 산을 내려오면 석문공원이 나오고 공원의 산길을 걸어가서 내려오면 도암면 농협에서 끝이 나는 18.0km의 길이다.

 

83 코스 지도

 

83 코스 안내판

 

  82 코스가 끝나는 구목리교는 강진읍에 있다. 그래서 조금 걸어가 강진읍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83 코스 시작점으로 와서 걷기를 시작한다.

  83 코스의 시작은 82 코스와 같은 풍경을 보면서 걷는 길이다. 82 코스가 탐진강과 강진만생태공원을 왼쪽으로 끼고 걸어가는데 83 코스는 강을 건너 오른쪽에 끼고 길을 간다. 물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같은 풍경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코스도 생태공원안으로 들어가 나무 테크길을 걸으며 자연을 즐기는 것이 원래의 길이지만 조류독감으로 길을 모두 봉쇄해 놓았다. 하지만 강변으로 걸어가는 길이 있어 82 코스와는 다르게 우회를 하면서 길을 걷고 두루누비에 이 사실을 알려 주니 곧 코스 수정의 공지가 나왔다.

 

강진만생태공원

 

 이 길을 가면 '남도유배길'이라는 입간판을 자주 본다.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은 삼남대로의 한 갈래이다. 강진군의 다산수련원에서 시작하여 다산초당~백련사~철새도래지~사의재~영랑 생가~고성사~무위사~태평양 녹차밭~누릿재~천황사~월출산 자락~성풍사지 5층석탑~도갑사~왕인박사 유적지~영암 구림마을까지 이어지는 약 55에 걸쳐 펼쳐진다. 전라남도에서 새롭게 조성한 해남군 북일면~다산초당 구간을 포함하면 남도 유배길의 총 길이는 65.7에 이른다. 그러니 이 길은 남파랑길가 제법 겹친다.

 

남도유배길 표시

 

겨울 철새들

 

 강진만생태공원을 지나면 내륙으로 길을 안내한다. 백련사로 가는 길이다.

 

백련사 가는 길

 

 백련사 입구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하고 백련사로 올라가니 장애인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인을 데리고 온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 와서 해남 땅끝까지 걷는다고 하니 감탄을 한다. 이 길을 걸으면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감탄을 하는 일이 다반사다.

 

 강진군 도암면(道岩面) 만덕리(萬德里) 만덕산에 있는 백련사(白蓮寺)의 원래 이름은 만덕산(408m)에 있으므로 만덕사(萬德寺)로 신라 문성왕때 무염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그 뒤 고려 희종 7년 원묘국사 요세스님이 옛터에 중창하고 백련결사로 크게 이름을 날려 백련사로 불리게 되었고 그 뒤 이 절에서는 120년 동안을 이어 고려의 8국사(國師)를 배출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만덕사로 불렸지만 근래에 다시 이름을 고쳐 백련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백련사의 자랑은 많으나 그 중에서 유명한 것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숲이다. 아름드리 동백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서 있는 3,000여 평에 달하는 숲속은 사시사철 푸르고 두터운 잎으로 인해 대낮에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동백나무숲을 지나 다산초당 가는 산책길에는 백련사에서 재배하는 차밭과 야생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백련사가 있던 산은 고려시대 때부터 자생해온 이 야생 차밭이 있어서 다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때문에 정약용이 이곳에 유배와 지냈다는 의미로 다산이라는 호를 지어 사용했다고 한다.

 

단풍이 곱게 든 백련사 뒷산

 

백련사 일주문

 

백련사 단풍

 

백련사 동백나무숲

 

다산초당 가는 길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자락에는 두 곳의 유명 여행지가 있는데 백련사(白蓮寺)와 다산초당(茶山草堂)이다. 두 곳을 이어주는 오솔길은 다산 정약용이 백련사의 아암 혜장 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사색의 길이다. 길이는 800m 정도이며 도보로 30분 정도 소요되는 산 속 숲길 주변에는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경사도 완만하여 걷기에 아주 좋다.

 

백련사 차밭

 

다산초당 가는 길에 보는 백련사

 

다산초당 가는 오솔길

 

 오솔길을 지나서 내려오면 다산초당의 건물들이 보인다. 비록 현대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다산의 자취를 흠모하는 사람들과 많은 관광객들에게는 많은 정감을 느끼는 곳이다.

 

 강진만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과 관련된 문화재로 1963년에 다산초당을 포함한 관련 유적 일대가 사적 제107호로 지정되었다.

공식 명칭은 강진 다산 정약용유적 또는 강진 정다산유적이다. 원래는 초가였지만 현재는 기와집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에 유적지로 불리고 있다.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강진으로 귀양을 와서 18(1801~1818)의 유배 기간 동안 11년가량(1808~1818)을 머물며 생활하던 집이다. 이곳에서 정약용은 유배가 끝날 때까지 생활하며 학문에 몰두한 끝에 목민심서를 비롯한 숱한 저서들을 남겼다.

 현판에 판각된 다산초당'이란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을 집자해서 모각한 것이다.

 

 다산초당과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고 다산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지만 나의 지식으로 이야기하기보다 백과사전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다산초당의 여러 모습

 

다산초당 안내판

 

 

 다산초당을 지나 바로 밑의 찻집에서 동행과 함께 향기로운 솔순차를 마시며 휴식을 잠시하고 다시 길을 가니 남도명품길 중의 하나인  '강진바스락길'을 표시하면서 '인연의 길'로 명명된 이정표가 보인다.

 

강진 바스락길은 백련사에서 시작해 해남 대흥사에 이르는 총 37.4의 걷기 길로 전라남도가 남도 명품길조성사업의 하나로 해남 미황사 달마고도와 함께 첫 번째 사업으로 만든 전남의 대표 길이기도 하다.

이중 인연의 길코스는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과 석문공원을 거쳐 도암면 소재지에 이르는 8구간이다.

인연의 길이라는 이름이 불리게 된 것은 19세기 초 이 오솔길을 통해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련사의 혜장선사와 아름다운 우정과 배움을 나눈 인연 때문이다.

 

인연의 길 표시

 

길가의 기이하게 자란 소나무

 

 산을 내려와 조금 가니 석문공원이 나온다.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리며 강진군에 있는 석문공원은 석문산과 만덕산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공원의 절경이 너무 멋이 있어서 이런 별칭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석문(石門)이라는 이름은 북동쪽의 만덕산에서 남서쪽의 덕용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중간에 하천 양안에 솟아 있는 암석지형은 긴 세월과 비바람이 조각한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마치 돌문처럼 생겼고 멀리서 보면 큰 바위 안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석문공원에서 보는 기암괴석

 

 석문공원을 따라 올라가면 큰 도로 위에 도로를 가로 지르는 구름다리가 보인다. 이름도 조금 특이한 '사랑+ 구름다리'다.

 

 만덕산과 석문산의 단절된 등산로를 연결하는 길이 111m, 1.5m로 산악현수형 출렁다리인 사랑구름다리는 구름다리 양끝에는 하트모양의 게이트 겸 포토존 조형물이 설치되어 등산객들에게는 만남의 장소로 연인들에게는 사랑이 이뤄지는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다.

 원래 등산로가 만덕산과 석문산이 따로 있었는데 이 사랑구름다리를 통해 단절된 등산로가 연결이 되어 이름을 사랑+로 지었다고 한다.

 이 다리는 심하지는 않지만 출렁거리는 출렁다리다. 그리고 밑을 보면 차들이 지나다니는 대로가 아찔하게 보이는 곳으로 건너는데 제법 재미가 있다.

 

사랑+ 구름다리

 

 다리를 건너니 길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산길을 가게 만들어 놓았다. 밑에는 사람이 다니는 길은 없고 차가 다니는 길만 있어 어쩔 수 없이 산길을 가는데 하루 종일 걸었는데 저녁 마지막 길에 산길을 가는 것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다.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산길을 가니 바라보는 경치가 제법 솔솔했다.

 

 

 구름다리를 건너 데크를 내려와서 조금 가면 세종대왕(탕건) 바위가 나온다. 느닷없이 세종대왕이라니 하는 의문을 가지며 돌아보니 구름다리 주변의 암석의 경치가 그냥 지나칠 수 없이 좋았다.

 

 세종대왕이 익선관을 쓰고 인자한 모습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의 바위 세종대왕의 가슴으로 뱀 한 마리가 생동감 있게 기어 올라가고 있다. 세종대왕의 자애로운 모습으로 봐서 이것이 뱀이 아니라 평범한 민중들이 아닐까 생각되는 형태이다.(안내판의 설명)

 

강진의 남도명품길 표시

 

 산길을 내려와 도암면 소재지로 들어가 농협앞에서 이 길은 끝난다. 이곳은 면소재지이지만 숙박을 하는 곳이 없다. 온갖 인터넷을 뒤져서 겨우 숙소를 정했는데 이 집의 주인도 자기 집에서는 숙박을 할 수 없다고 오면 다른 집을 소개해 주겠다고 해서 예약을 한 곳으로 가니 다른 집으로 데려 간다. 전문적인 숙박업소가 아니라 그냥 아는 사람들에게만 숙박을 허용하는 곳인 것 같았는데 집이 아주 기풍이 있는 집이었다. 아주 고대광실은 아니었지만 정결하게 꾸며진 집으로 각 방마다 당호가 붙어 있었다. 그것도 제법 오래되어 퇴색한 당호가 있었다. 주인과 이야기를 해 보니 아마도 이 곳에서는 명망이 있는 집인 것 같았다. 뜻밖에 좋은 집에서 머무르게 되어 어제의 가우도와 같이 좋은 운이 따랐다.

 숙소에 배낭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가니 어디에 숙박을 하는지를 물었다. 그래서 이곳에 숙박지가 없어 참 어려웠다고 하니 마을문화회관을 재단장하여 숙박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면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물어 보았는데 그런 말이 없었다고 하자 주인이 조금 화를 내면서 내일 면에 가서 따져야겠다고 의아해 한다.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참조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