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서해랑길 75코스(청산리나루터 - 용주사 - 구도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75코스는 청산리나루터에서 출발하여 눈앞에 바로 보이는 직선거리로는 500m도 되어 보이지 않는 구도항까지 가는 길이다. 눈 앞에 빤히 보이지만 가로림만을 빙 돌아가는 길로 거리는 20.8km나 되는 긴 길이다.

 

75코스 안내판

 

 지난 번 여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휴식과 여러 일을 처리하고 다시 길을 떠나려고 집을 떠나 청산리나루터까지 오는 길만 하루가 걸린다. 그리고 청산리나루터 주변에서 숙박을 하기에는 불편하여 태안터미널 주변에서 숙박을 하고 첫차로 청산리나루터에 도착하니 08시 30분 정도가 되었다. 내가 길을 걸으면 보통 06시 30분경에 걷기를 시작하는데 어쩔 수 없이 늦게 시작한다.

 

 청산리(靑山里)는 서해안의 해안 마을로, 바다가 내륙으로 많이 들어와 있는 만입부에 속한다. 따라서 남쪽에 바다가 있고, 동쪽에는 청산리 나루터가 있다. 이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산이 많은 편인데, 마을이 푸른 산 밑에 형성되었다 하여 청산리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다.

 

청산리나루터 풍경

 

 아주 고요한 청산리나루터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나룻배인지 어선인지 모르겠는 배들만 묶여 있다. 

 

 우리가 청산리나루터라고 부르는 태안군의 원북면 청산리에 있는 나루터는 원래 불너물나루터로 불리던 곳으로 이적산 동남쪽의 가로림만에 있고, 맞은편에는 서산시 팔봉면 호리의 구도나루터가 있다. 청산리에서 구도나루터로 가려면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했는데, 배가 건너편의 구도나루터에 정박하여 있으면 배를 불러서 타고 건넜다고 한다. 이렇게 나룻머리에서 배를 불러서 타고 다녔다 해서 '불러머리나루터'라 하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불러멀나루터'로 줄었다고 한다. 현재의 '불너물나루터''불러멀나루터'의 음이 변한 것이다.

 

 이곳을 출발하여 도로를 따라 걸으면 왼쪽으로 바다가 보인다. 물이 빠진 바다는 갯벌을 드러나고 있다. 이제부터 눈앞에 보이는 구도항까지 가로림만을 빙 돌아가는 것이다.

 

 가로림만(加露林灣)은 충청남도 서산시와 태안군 사이에 있는 반폐쇄성 내만이다. 태안군 이원면 만대와 서산시 대산읍 벌말을 마주하여 가로림만은 길이 25, 2~3에 달하고 병목 모양을 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길게 만입되어 있다. 연안 면적은 15985ha, 전체 해안선 길이는 162km이며, 개펄만 8000ha에 이르는 가로림만은 서해안에서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2007년 환경가치 평가에서도 1위에 올랐다. 가로림만의 갯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일 뿐 아니라,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나라의 갯벌 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자연 상태가 보존된 곳이다. 가로림만은 조석 간만의 차가 심하고 수심이 얕아서 갯벌이 잘 발달되어 있어, 간조시에는 만 전체 면적의 2/3 정도가 갯벌로 드러난다. 만의 내부에는 고파도, 웅도, 율도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형성되어 있다. 이 곳은 각종 보호종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며, 다양한 수산생물의 산란장이다. 이러한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2016728일 해양수산부는 이 곳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도로를 따라가다가 농촌 길로 들아가면 시우치저수지가 나온다. 이 저수지는 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민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 놓은 곳이다. 이 저수지의 언덕 위에는 별장 같은 집이 두어 채 보이는데 너무 좋은 장소에 자리 잡은 집을 보면 약간은 부러움이 생긴다.

 

저수지 옆의 집

 

 

 가로림만을 돌아가니 물이 빠진 갯벌에 섬도 아니면서 아주 묘한 형상을 한  바위가 서 있다. 해안에 보니 이 바위의 이름이 선돌바위라고 라고 하며 설명판이 서 있다.

 

선돌바위

 

태안서해랑길 엠블렘

 

 별다른 특징이 없는 작은 산의 임도와 해안을 번갈아 가며 걸으니 인적이 없는 길에서 느끼는 호젓함이 다시 몰려온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길을 걸으면서 고요함을 느끼면서 사방의 경치를 즐기는 것은 내가 길을 걷는 즐거움이고 실제로 길을 걸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감정이다. 이 느낌이 좋아서 내가 길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산리 생태공원

 

서해의 자랑인 갯벌에 대한 설명

 

가로림만의 갯벌

 

이정표

 

버려져 있는 염전

 

어은2리마을 표석

 

방파제에서 보는 갯벌

 

어느 집 담장에 붙어 있는 사마구

 

서산 아라메길 표시

 

 아무 생각 없이 길을 따라 걸으니 어느 사이에 태안을 벗어나 서산으로 들어왔다. 서산이 자랑하는 아라메길의 표시가 보이고 길을 다라 가니 구도항이 나타나고 75코스는 끝이 난다.

 

 75코스는 빤히 보이는 마을들을 긴 길을 걸어 도착하는 길이다. 가로림만이라는 큰 만을 접하여 어촌이 만들어져 있고 배를 타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육지의 길을 따라가면 아주 먼 길이다. 이 같은 길을 보면서 또 다름 인생의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우리는 살아가는 인생에서 어떤 때는 직진이 아니고 우회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서해랑길 74 코스(누리재버스정류장 - 당산3리버스정류장 - 청산리나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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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랑길 74코스는 누리재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임도길을 따라 노인봉을 지나 당산3리버스정류장을 지나고 국사봉, 가제산, 마봉산, 이적산 등의 조그마한 야산 옆의 임도를 따라 걷는다. 그리고 산을 내려와 청산리나루터에서 끝이 나는 17km의 길이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내가 걷는 도중에 찍은 사진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74코스 안내판을 찍은 사진이 없다. 그래서 안내판이 없이 이 코스를 시작한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농촌 길을 따라 걸어가니 산으로 올라가라는 표시가 있으나 산길을 보니 잡풀이 우거져 길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따라가기를 믿고 산길로 올라가니 임도가 나타나고 74코스는 이 임도를 따라 산을 돌아가게 만들었다. 산길을 따라 걸으면 인적이라고는 전혀 없이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에 취하여 여유롭게 걸으면서 보는 바다는 조용하다.

 

산으로 올라가는 곳

 

산의 임도를 걸으며 보는 여러 풍경

 

이정표

 

철늦게 길가가 피어 있는 꽃무릇

 

 

산을 내려와 해안을 따라 조금 걸어 다시 야산으로 올라가서 단조로운 길을 걸어 산을 내려오면 청산리나루터가 나오고 74코스는 끝이 난다.

 

 

 74코스는 아무런 특징이나 역사적인 흔적도 없이 그냥 임도를 한가로이 걷는 길이라 단순하게 걷기를 즐기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주변에 아주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것도 아니라 한가롭게 길만을 걷는 재미로 걸어야 한다.

 

 74코스를 다 걷고 나니 시간이 참 모호하다. 그리고 오랜만에 걷기를 하였기에 컨디션도 조금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예정보다 빨리 이번 여정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버스를 기다렸다가 이번 여정을 마쳤다.

서해랑길 73 코스(만대항 - 후망산 - 누리재버스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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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랑길 73코스는 만대항을 출발하여 해안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걸어 후망산으로 올라가는 임도를 따라 걷고 장구도로 내려와 다시 해안도로를 걷는 아주 편안한 길이다. 후망산의 길도 편안한 임도로 앞의 72코스에 비하여 너무 편안하여  11.7km를 너무 쉽게 걷는다.

 

73코스 안내판

 

만대항의 민박 집

 

 아침 일찍 일어나 오늘의 길을 걸으려고 도로로 나가니 아무도 없다. 항상 떠나는 길에서 사람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코스를 걸을 때도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거의 없이 혼자서 산길과 해안 길을 걸을 뿐이다.

 

만대항

 

 길을 걸으니 염전이 보인다. 태안의 명품길이 '솔향기길'인데 지나는 곳곳에 보이는 이름이 솔향기가 붙어 있다. 물론 염전의 이름도 솔향기염전이다.

 

솔향기 염전

 

 

솔향기염전을 지나 조금 가면 산으로 올라간다. 산길이라고 하지만 너무 편안한 임도로 그냥 편안하게 옆으로 펼쳐지는 바다를 보면서즐기면서 숲속 길을 걸으면 된다. 너무 편안한 길이라 도시의 길을 걷는 것 같으나 청량하고 고요함을 어디에 비할 바가 없다. 아무도 없는 호젓한 산길을 혼자서 조용하게 걸어 보라.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무런 욕심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길을 걷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후망산을 내려오면 어제 지나갔던 꾸지나무골해수욕장 옆에 난 길을 다시 걷는다. 71코스, 72코스, 73코스의 길은 바로 옆에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며 이원반도를 한 바퀴 빙 도는 길이라 조금 옆에는 지나간 길이 보이기도 한다.

 

 

 다시 해안 길을 조금 걸으면 길은 없이 암석과 자갈로 덮인 바다가를 걸어가게 한다. 여러 번 이런 길을 걸었지만 걸을 때마다 물때가 맞아 해안을 돌아가는 경우가 없었다. 자연스러운 바다가을 걸으면 해안 길과는 다른 묘미가 또 있다.

 

바다길

 

 바다에서 다시 해안 도로로 올라가 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시목여항비가 나오고 곧 이 73코스의 종점인 누리재버스정류장이 나온다.

 

 

 73코스는 산보하듯이 걷는 길이다. 이전 코스인 72코스가 사람을 힘들게 하였는데 그 보상으로인지 너무 편안한 길이다. 73코스를 끝내니 출발한지 2시간이 조금 넘었다. 그래서 조금 쉬다가 바로 74코스롤 향한다.

서해랑길 72코스(꾸지나무골해변 - 여섬 - 만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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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랑길 72코스는 꾸지나무골해변에서 해안 언덕을 따라 난 오솔길을 걸어 용난굴과 여섬을 지나 만대항에 이르는 아주 짧은 8.4km의 길로 태안이 자랑하는 '솔향기 길 1코스'다. 하지만 미리 말하면 이 길은 결코 편안한 길이 아니다. 두루누비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의 몇 배가 힘이 드는 길이니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리고 길 주변도 위험한 곳이 많으니 사고에 조심을 해야 하는 길이다.

 

72코스 안내판

 

 꾸지나무골 해변에는 시원한 바닷가에 평일인데도 제법 많은 텐트족이 있다. 4시간이 넘게 걸어온 꾸지나무골바닷가의 솔향기 그윽한 백사장에서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고 72코스의 길을 시작한다. 그리고 솔향기길 1코스도 거꾸로 시작한다. '솔향기길'은 태안군 이원반도에 조성된 아름다운 길로 이 솔향기길을 걷는 동안 솔향에 취하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예쁜 길로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부터 사랑을 받는 길이다. 솔향기길은 지난 200712월 발생한 서해바다 기름유출 사고 현장의 일부로 당시 흔적들은 찾을 수 없지만 전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는 보은의 정성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길이다. 솔향기길 5개 코스는 1코스(10.2) 만대항 - 여섬 - 꾸지나무골해수욕장까지, 2코스(9.9)는 가로림만을 거쳐 희망벽화방조제까지, 3코스(9.5)는 밤섬나루터에서 새섬까지, 4코스(12.9)는 청산포구에서 갈두천까지, 5코스(8.9)는 용주사에서 백화산 냉천골 까지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높지 않은 산길을 걸으면 어디를 가든 해송이 울창하다. 내가 이 길을 걸으려고 준비를 하는 도중에 관광버스 한 대가 정차하며 나이가 제법 되는 일군의 사람들이 내린다. 그리고 꾸지나무골에서 만대항까지 솔향기길을 걷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72코스의 시작점에서의 길 안내가 정확하지 않으니 유의해야 한다. 두루누비의 따라가기를 실행하여 걸으면 길이 없다. 무리하여 없는 길을 찾아 산길로 제법 가도 길이 없다. 그래서 되돌아 와서 리본을 따라가니 계속 경로 이탈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경고음을 무시하고 리본을 따라가면 어느 정도 가서 따라가기와 마주친다. 그러니 리본을 따라가야 한다.

 

 

 꾸지나무골에서 시작된 72코스는 걷는 동안 내내 좌측으로 펼쳐진 서해바다를 보며 걷는다. 상큼한 솔향기와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도심의 찌든 때를 말끔히 정화시켜 준다. 작은 동산 길을 오르고 내리고를 수없이 반복하는 지루함도 있지만 즐겁고 재미있는 길이다.

꾸지나무골을 출발하며 1시간 정도를 걸어 전망대에 서서 서해바다를 바라다보면 그 모습이 절경이다. 1코스 중 가장 으뜸의 비경이라는 용난굴로 가는 길에는 신비스럽고 거친 기암괴석이 즐비하다는데 가보지를 못했다. 썰물 때만 볼 수 있다는 용난굴 동굴 안은 10m 정도며 매우 시원하며, 용 두 마리가 살았다가 한 마리가 승천하고 한 마리는 승천하지 못하고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이 담긴 굴이다. 굴 안에는 붉은 바위가 보이는데 용의 피()라 한다.

 

솔향기길 1코스 안내도

 

 길을 계속 걸으면 만나는 여(餘)섬은 200m 정도 떨어진 섬으로 높이 20m의 작은 섬이나 절경이다. 옛날 선인들이 섬 지명을 지을 때 앞으로 이 섬이 유일하게 남게 될 것을 예견하고 여섬이라 불렀다 한다.

 

여섬

 

 

 솔향기길 1코스는 만대항에서 꾸지나무골해수욕장까지로 천혜의 해안 절경과 피톤치드가 가득한 솔향을 맡으며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이고, 서해랑길 72코스는 거꾸로 걷는 길이다..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울창한 송림 숲길로 솔향기와 바다, 숲의 새소리, 파도소리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으나 길이 그렇게 평탄하지 않다. 오르막 내리막길이 계속 반복되어 굉장히 길을 걷는 것이 어렵다. 또 길의 폭이 좁고 나무나 돌계단의 높이가 너무 차이가 많아 발걸음을 딛기가 아주 불편하다. 더구나 해안 쪽에 안전을 위해 로프를 묶어 놓은 말뚝이 곳곳에 땅에서 분리되어 있는 곳이 많아 잘못하면 사고가 나기에 쉽게 보였다. 그래서 내가 이 길을 걷고 태안군에 전화를 하여 그 위험을 말해 주니 담당자가 살펴보고 수선을 하겠다고 하였다.

 

회목쟁이

 

72코스를 계속 걸으면 가마봉을 지나 당봉전망대에 도착한다. 당봉은 옛날 넓은 바위가 있어 풍어제를 지내던 곳으로 매년 11일 해맞이 행사와 떡국 나눔 행사를 하는 곳이다. 당봉전망대에는 솔향기길 강강수월래 노래비가 있다. 노랫말에는 솔향기길 1코스가 지나가는 여러 지명이 나타나 있다.

 

당봉전망대 안내판

 

솔향기길 1코스 설명판

 

솔향기길에서 보는 서해

 

산행 팀들이 묶어 놓은 리본

 

 

 끊임없는 오르막 내리막을 걷다 쉬다를 반복하다 보니 만대항이 멀지 않았다. 만대항은 태안에서 이원반도 가장 북쪽에 있는 작은 포구다. 태안읍에서 31km 정도 떨어져 있는 일명 태안의 땅끝마을이다. 만대항 이름은 주민들이 먼데 먼데로 멀리 있다는 의미에서 만대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고, 지명 자체가 가다가다 포기하고 만다는 뜻을 지녔을 정도로 충남도내에서도 오지 중 오지로 통한다.

 작은 포구에는 횟집이 여러 곳 있고 북쪽 해안절벽에는 데크 산책로도 조성되어 있다. 동으로는 가로림만이 있어 서해안에서는 드물게 바다와 대산반도 위로 해가 떠오를 것이다. 서쪽으로는 울도에서 덕적도까지, 덕적군도의 섬들이 흩어져 있다. 2007년 유조선 충돌사고로 원유가 유출되어 오염되었던 그 해안인데 해안은 생태계와 풍경을 완전히 회복했다고 한다.

 

만대항 나무 테크

 

 만대항에 도착하니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늦었다. 8.4km밖에 되지 않는 길이기에 처음 예정으로는 두 시간에 주파하고 다음 코스를 걸을 생각이었는데 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만큼 72코스는 걷기가 쉽지 않은 길이니 두루누비의 설명을 믿지 말고 이 길을 걷는 사람은 자기 페이스를 잘 조절해야 한다.

 

 만대항에서 오늘 걷기를 멈추고 숙박업소를 찾으니 민박집 하나밖에 없다. 민박집을 찾아가서 숙박하기로 하고 밥을 먹으러 나오니 큰 횟집이 여러 곳이 보이고 그 옆에 무인카페가 있고 옆에 숯불돼지갈이 눈에 띄었다. 해안을 걷기 때문에 거의 매 끼니마다 해산물을 먹었기에 그 집에 들어가니 내부 장식이 옛날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내가 어릴 때 보던 그런 1950년대와 60년대의 향기가 나는 모습이라 잠시 추억에 잠기게 하였다. 그 집에서 우렁쌈밥을 시켰는데 돼지 제육과 쌈장 그리고 쌈 채소, 밑반찬이 너무 풍부하였다. 비교적 먹성이 좋아 많은 음식을 먹는 나에게도 많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배불리 먹고 나오면서 주인장에게 너무 많다고 불평아닌 투정을 하고 기분 좋게 나왔다. 잠시 해안을 거닐다가 숙소로 돌아가 내일을 위해 방송을 조금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서해랑길 71코스(학암포해변 - 꾸지나무골해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71코스는 학암포해변에서 출발하여 잠시 언덕으로 올라가서 내려오면  이원방조제가 왼편에 보인다. 벽화가 그려져 있는 이원방조제를 옆에 두고 바다를 보면서 걸어가 율포해수욕장을 지나 도로를 따라 걸어가서 해안으로 가면 꾸지나무골해수욕장이 나오고 여기서 끝이 나는 20.4km의 길이다. 

 

71코스 안내판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하게 가지고 있는 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오니 학암포항이 적막하게 보인다. 아직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해변을 걸어가니 아무도 걸은 흔적이 없는 백사장에 내 발자국만이 찍힌다. 백사장을 어느 정도 걸어서 해안 길로 들어가 이원방조제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학암포항

 

학암포해변

 

학암포해변 안내판

 

이정표

 

가을이 익어가는 들녘

 

방조제 안의 습지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들녘을 걸어가니 수확을 끝낸 논에는 기러기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자꾸 보인다. 기러기들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찍으려고 몇 번을 시도했으니 번번이 순간을 맞추지 못하고 날고 있는 모습만을 찍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쉬웠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들

 

 

 멀리 보이는 태안화력발전소를 계속 보면서 이원방조제를 향해 들판을 지나가니 멀리 방조제가 보이지만 거리가 멀어 가지는 않고 코스를 따라 걷는다. 길이 2981m의 이원방조제 저편으로 거대한 태안화력발전소가 있고 방조제 안쪽에는 대규모 호수가 생겨 큰 습지를 이루고 있다. 이 방조제 안의 들판을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이원반도를 돌아가는 길이다.

 

 이원반도는 태안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툭 튀어나온 모양을 하고 있는, 우주의 독수리성운에 있는 성간가스인 '창조의 기둥'가 놀랍게도 닮은 지형으로 태안의 땅끝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최북단에 만대포구가 있는데 가로림만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서산 벌천포와 마주 보고 있다. 이원반도는 길이 20km, 최소폭 500m의 가늘고 긴 모습으로 가장 기이한 반도 지형으로 내륙으로 들어가 마봉산(69m), 가제산(185m), 국사봉(206m) 기슭을 오르내리며 북상하는 사이 작은 마을과 들판, 해안선이 스쳐 지나간다.

이원반도는 바다를 끼고 있는데도 온통 솔향기. 염전 이름도, 반도를 돌아가는 해안길 이름도 솔향기. 높지 않은 야산에 빽빽한 들어선 해송 숲 때문인데, 한반도 특유의 동고서저(東高西低)와 달리 이원반도는 서고동저(西高東低)형 지형으로 산에 숲이 짙으니 방풍이 되어 마을과 경작지가 모여 있는 동안(東岸)은 매우 아늑하다.

 

멀리 보이는 이원방조제

 

길가의 호박꽃

 

이름도 특이한 볏가리마을

 

해송 숲

 

곳곳에 보이는 태안절경천삼백리 표지

 

 

 

 큰 특이점은 없으나 한적하고 아름다운 해안을 눈으로 보면서 꾸불꾸불한 좁은 길을 따라 즐기면서 걸어가면 꾸지나무골해수욕장에 도착한다.

 

 태안에 위치한 꾸지나무골해수욕장은 생소한 이름만큼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곳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작고 아담한 백사장은 솔밭과 암반이 어우러져 안온한 운치가 있으며, 백사장 양 끝에는 갯바위가 있어 바다 낚시터로 많이 이용된다. 이곳의 소나무 숲은 그늘이 짙어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이다. 아직 피서객의 발길이 많지 않은 곳이라 주변에 편의시설이 적다.

 

 

 꾸지나무골해수욕장에서 71코스가 끝이 난다. 아침도 부실하게 먹어서 조금 이르지만 점심을 먹으려니 식당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음식을 구하려고 가니 문을 닫아서 물품을 팔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카페가 보여 들어가 주인장에게 밥을 먹을 곳을 물으니 바로 옆에 식당이 있었는데 나는 보지 못하고 지나쳐 왔다. 식당에 가서 물회를 한 그릇 시켜서 먹고 충분히 쉬다가 다음 코스로 향한다. 

서해랑길 70코스(의항출장소 - 학암포해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70코스는 의항출장소를 출발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구 중의 하나인 신두리해안사구를 지나서 아름다운 구례포해수욕장을 지나 해넘이가 너무 멋진 학암포해변에서 끝이 나는 19.2km 의 길이다.

 

70코스 안내판

 

 69코스를 끝내고 이어서 바로 70코스 길을 걷는다. 원래 예정이 오늘 70코스까지 걷는 것을 목표로 하였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길을 간다. 의항포구에서 해안을 따라 가니 오랜만에 갯벌의 물이 빠져서 생기는 기하학적인 무늬를 본다. 항상 물이 빠진 갯벌을 보면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낀다. '왜 물이 빠지면 정해진 곳에만 고랑이 생길까?'하는 의문을 항상 가지면서 길을 간다.

 

의항포구 버스 정류장

 

의항포구의 모습

 

이정표

 

물이 빠진 갯벌에서 고기를 잡는 낚시꾼

 

 의항포구를 지나 해안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물이 빠진 서해 바다를 보고 걸으니 갯벌의 물이 조금 있는 곳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사람이 모습이 보인다. 그곳에 어떤 물고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유유자적하며 낚싯대를 드리운 그 사람의 모습은 세월을 낚는  강태공과 같았다.

 

 여유로운 풍경을 보면서 길을 가니 소근진성이라는 표지가 보이고 조금 가니 성이 있는 마을 입구가 나온다.

소근진성(所斤鎭城)은 태안군에서 서북쪽으로 13.6km 떨어진 소원면 소근리에 해안가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으로 조선 중종 9(1514)에 쌓은 것이다. 이 곳에 성을 쌓게 된 동기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특히 고려 말부터 이 지역에 나타난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피해가 심각했다고 한다. 19931231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었다.

 

소근진성 안내판

 

 

 소근진성을 지나 해안을 따라가면 넓게 펼쳐지는 모래밭이 나오고 국내 최대의 모래언덕이라는 신두리해안사구가 나타난다.

 

 2001년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신두리 해안사구는 길이 3.4km, 0.5~1.3km 국내 최대의 모래언덕으로 뒤에 위치한 두웅습지와 함께 한국지리 교과서에도 많이 나오며 바다 풍경도 좋아 관광지로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의 사막을 가 본적은 없지만 영화나 TV를 보면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밭과 모래바람만 휘몰아치는 사막을 본다. 그런데 광활하게 펼쳐진 해변에서 만나는 모래벌판은 때로는 꿈을 꾸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그런 분위기를 느끼는 동양 최고의 해안사구인 신두리해안사구는 물은 맑고 깨끗하며 고운 모래로 된 넓은 백사장의 해수욕장을 끼고 있다. 신두리해안사구는 빙하기 이후 약 15,000년 전부터 서서히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강한 바람에 모래가 파랑에 의해 해안가로 운반되면서 오랜 세월을 거쳐 모래언덕으로 만들어졌다. 북서계절풍을 직접 받는 지역으로, 강한 바람에 모래가 파도에 의해 해안가로 운반되어 무한한 세월에 걸쳐 이룬 퇴적지형의 모래언덕이다. 이 모래언덕은 내륙과 해안을 이어주는 완충 역할과 해일로부터 보호 기능을 하고 있다.

신두리해안사구는 자연이 그대로 살아 있는 생태계의 보고로 독특한 생태계가 조성되어 식물군으로는 전국 최대의 해당화 군락지, 통보리사초, 모래지치, 갯완두, 갯매꽃을 비롯하여 갯방풍과 같이 희귀식물들이 분포하여 있다. 동물군으로는 표범장지뱀, 종다리, 맹꽁이, 쇠똥구리, 사구의 웅덩이에 산란을 하는 아무르산개구리, 금개구리 등이 서식하고 있다.

 

 해안사구를 구경하면서 걸어가니 쇠똥구리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이 보이고 넓은 들판에 몇 마리의 소가 한가로이 서 있는 모습도 보인다.

 

신두리해안사구의 여러 모습

 

 해안사구를 지나 해안을 조금 따라 걷다가 산으로 올라간다. 산이라고 하지만 작은 언덕과 같은 길을 따라 가니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조그마한 능파사라는 절이 있다. 그 절을 지나 언덕을 내려가 바닷가로 가니 시원한 약수가 나오는 거북 모형의 수도시설이 있다. 시원하게 물을 마시고 세수를 하고 다시 높지 않은 산길을 걸어간다.

 

이정표

 

능파사

 

거북 모양의 약수 수도

 

먼동전망대에서 보는 서해

 

먼동해변 풍경

 

 

 

 계속 해안을 보면서 서해의 아래쪽 해안은 갯벌이 발달되어 있는데 위로 오면 갯벌도 나타나지만 넓게 펼쳐지는 모래밭이 많이 보인다. 그러니 해수욕장이 발달하여 여름에는 많은 피서객들이 이곳에서 즐기는 것이다. 계속 가니 아주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보이고 구례포라는 이정표가 있다.

 원북면 황촌리에 있는 구례포해수욕장(九禮浦海水浴場)1993KBS 1TV 사극 먼동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방영 이후 구례포의 바다에 반해 피서객이 몰렸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잔잔한 바닷물과 양쪽으로 펼쳐진 백사장 그리고 아름다운 해변은 한 편의 그림을 보는 느낌을 준다.

 

구례포해변

 

 구례포를 지나니 바로 이어서 오늘의 종점인 학암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날이 제법 싸늘해져서 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없지만 넓게 펼쳐져 있는 모래밭에는 제법 사람들이 보였다.

 

 해변에 물이 빠졌을 때 드러나는 바위의 형상이 마치 학의 모습처럼 보인다 하여 유래된 학암포(鶴岩浦)해변은 태안읍에서 북쪽으로 20km 떨어진 원북면 방갈리에 있는 포구이다. 이 포구 앞의 대분점도(大盆店島)에 커다란 학바위(鶴岩)가 있는데 거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그전에는 분점포(盆店浦)라고 하여 조선 시대에 명나라와 교역을 하던 무역항이었는데, 교역품으로 질그릇을 만들어 수출하였으므로 분점(盆店)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주변 일대의 백리포, 천리포, 만리포해변을 포함하여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학암포해수욕장 풍경

 

학암포이야기와 학 모형

 

태안 바라길 안내 벽화

 

 학암포에서 머물기로 예정을 하여 숙소를 정하고 시간을 맞추어 해넘이를 보러 갔다. 학암포의 해넘이가 장관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시간을 맞추어 나가니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하여 일명 대포 카메라를 들고 모여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았기에 좋다고 생각되는 자리를 잡고 휴대폰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었다.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간의 변화에 따라 해가 지는 광경을 한 지점만을 중심으로 찍는 것도 묘미가 있었다. 학암포의 해넘이는 다른 곳에서 보는 해넘이와는 달리 크게 바다를 물들이지는 않고 다른 느낌을 주었다.

 

학암포의 해넘이 풍경

 

 해넘이를 구경하고 숙소에 붙어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올라가 피곤한 몸을 자리에 눕히고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였다.

서해랑길 69코스(만리포해변노래비 - 의항출장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69코스는 만리포해수욕장을 출발하여 해안의 언덕길을 걸어 태안의 아름다운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구름포해변을 보고 즐기고, 서해를 한눈에 조망하는 태배전망대를 지나서 의항출장소까지 가는 13.4km의 비교적 짧은 거리다.

 

 오랜만에 서해랑길을 다시 걷는다. 4월말까지 서해랑길을 갇다가, 나의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려고 5월부터 6월까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그리고 조금 쉬다 보니 이번 여름은 너무 더워서 길을 걸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산티아고 까미노길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9월도 지나고 10월이 되니 기온도 내려가고 가을 하늘이 맑았다. 그러니 방랑하는 병이 있는 내 몸이 먼저 반응을 하여 또 다시 길을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시작점인 만리포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멀었다. 부산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천안으로 가서 다시 만리포가지 가는 버스를 타고 만리포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벌써 하루가 지났다.

 

서해랑길 69코스 안내판

 

 숙소를 정하고 만리포해수욕장을 구경하러 나갔다. 만리포사랑 노래비가 있는 옆에 '정서진'이라는 표석이 있고, 표석에는 대한민국 서쪽 땅끝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표석이다. 물론 관광지로 선전을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를 하지만 좀 더 사실에 맞아야 한다.

 

만리포사랑 노래비와 정서진 표시

 

만리포해변

 

해변을 거닐다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해변의 야경을 즐기려고 제법 긴 해안을 따라 걸으며 밤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었다. 한가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보니 나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해변의 야경을 즐기고 있었다.

 

밤의 해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예전과 같이 걷기에 나선다. 오랜만에 걷는 길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으나 몇 년이나 길을 걸었기에 곧 익숙해지리라 생각을 하였다. 아침의 만리포해변에는 아무런 인적도 없이 혼자서 해변을 걷다가 곧 언덕길로 올라간다. 산도 아니면서 산과 비슷한 길을 따라 조금 가면 멀리 천리포해변이 보인다.

 

아침의 만리포 해변

 

만리포의 옛이름 설명

 

해변 끝에 있는 희망광장의 희망의 고리

 

이정표

 

산 언덕길

 

  소원면 의항리에 있는 천리포해수욕장(千里浦海水浴場)은 수심은 1~2m, 백사장 길이는 약 1km이고 따뜻한 수온의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남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만리포해수욕장이 있고, 북쪽으로는 2km 정도 떨어져 백리포(방주골) 해수욕장이 있다. 원래는 고기를 잡던 어막이 많아서 막동이라고 불리던 곳이나 1955년 만리포 해수욕장을 개장하면서 이곳에도 피서 인파가 몰려들어 천리포로 불리게 되었다.

 저녁 일몰의 천리포 해변 바다 풍경은 매우 아름다워 여름이 아닌 계절에도 많은 이들이 찾는다. 주변에 2개의 닭섬이 있는데 육지에 붙어 있는 산을 뭍닭섬, 바다에 떠 있는 섬을 섬닭섬이라 하며 자연적인 방파제 역할을 한다. 주변에는 미국인 밀러(한국이름은 민병갈)60ha 면적으로 일군 천리포수목원이 있다.

 

멀리 보이는 천리포해변

 

국사봉에서 보는 천리포해변

 

태안 해변길 2코스 안내판

 

 

 

 천리포를 벗어나 조금 가면 이어 백리포가 나온다.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는 그냥 이어진 해변이라고 해도 그렇게 틀렸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다.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에 있는 백리포해수욕장은 천리포 수목원을 지나 북쪽으로 산기슭을 넘으면 비탈진 숲 아래에 있는 자그마한 해변으로 서해안의 절경 중 바닷물이 맑고 모래가 제일 으뜸이다. 원래 '방주골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이었으나 만리포해수욕장, 천리포해수욕장과 연결되어 있어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숲과 숲 사이에 해변이 펼쳐져 있고 해변 양쪽에 절벽이 있는데 어떤 유명한 절벽보다 더 아름답다. 병풍처럼 펼쳐진 주변의 소나무 숲이 아름답고, 인적이 드문 바닷가 해변에는 껍질이 예쁜 꽃 조개가 심심치 않을 정도로 많고, 물에 빠진 바위에는 홍합이 제법 많다. 원하는 만큼 주워 끓여 먹는 맛이 일품이다.

 

멀리 보이는 백리포해변

 

망산고개를 가리키는 이정표

 

수망산 산길

 

망산고개에서 보는 서해

 

 

 

 망산고개를 넘어가면 멀리 의항해수욕장이 보인다.

 일명 십리포해수욕장이라고도 부르는 의항리에 있는 의항해수욕장(蟻項海水浴場)은 남쪽으로 백리포, 천리포, 만리포, 어은돌, 파도리 해수욕장이 이어진다. 해변의 지형적인 생김새가 개미의 목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으로, 경사가 완만하며 밀물 때에도 깨끗한 바닷물 상태를 유지하여 준다. 온통 조약돌로 구성된 백사장이 햇볕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일품이며 포근한 곡선 모양의 해변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백사장은 가지각색의 조약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사가 완만하고 바닷물이 깨끗해 가족 피서지로 적합하다.

 

의항해수욕장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끓었을 해변에는 인적이 없다. 이제 해수욕철이 지나고 내가 걷는 날이 주말도 아니어서 넓은 백사장에는 바다물만 넘실거리고 있을 뿐이다.

 

화영섬의 여러 모습

 

태배전망대로 가는 이정표

 

 길을 가는 도중에 뜻밖에 이태백의 동상이 있고 그의 시가 쓰여 있는 비석이 있다. '이곳에 무슨 이태백이?' 하고 의아심을 가지고 지나니 여러 곳에 비석이 보였다. 그리고 구름포라는 이색적이며 꿈같은 이름의 해수욕장이 보인다.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에 있는 구름포해수욕장은 해변의 길이가 짧고 규모가 작은 해수욕장으로 만리포에서 북쪽으로 가면 천리포수목원을 지나고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구름포해수욕장이 차례대로 나온다. 물이 맑고 수심이 얕아 가족 단위의 휴양지로 적합하지만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산한 편이다

 ‘옛날 중국의 시성인 이태백이 조선에 왔다 이 지역의 빼어난 자연경관에 빠져 머물렀다는 유래에서 지명이 붙여질 만큼 경관이 빼어난 이곳엔 국토교통부가 2010년 전국의 아름다운 해안경관 풍광 17곳을 선정해 해안경관 조망 공간장소로 조성한 태배 전망대가 있다.

 

이태백의 동상과 시판

 

구름포해수욕장

 

 

 

구름포해변을 지나 높지는 않지만 편안하지는 않는 산길을 걸어가면 태배전망대가 나온다.

 

 태배전망대에서는 광활한 서해바다와 칠뱅이섬(일곱개의 섬) 등 아기자기한 섬들, 불같이 타오르는 황홀한 낙조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전망대에는 2007년 유류사고 당시 피해극복을 위해 바위의 기름을 닦는 자원봉사자의 모습 등 극복과정이 사진에 생생하게 담겨져 전시돼 있어 당시의 아픔과 치유의 과정을 모두 체험할 수 있는 공감과 역사의 장이기도 하다.

 

태배전망대에서 보는 서해

 

 전망대에서 서해를 조망하고 내려오니 옆의 휴게소에 나 정도의 나이의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도 휴식을 하기 위해 그 옆에 앉으니 그들은 태안의 노인자원봉사자로 해변길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무며 커피를 한잔 얻어 마시고 인사를 하고 내가 갈 길을 다시 떠났다.

 

전망대를 내려와 해안을 따라 걸으니 해변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간 곳에 돌로 띠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나라 해안의 곳곳에 보이는 전통적인 고기잡이인 독살이었다. 이와 같은 모습을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은 '어린 아이들이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것이다. 도시의 어두운 환경에서 이런 자연을 보면서 즐겁게 놀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안타까운 생각만 든다.

 

독살

 

 

 

 나지막한 산을 내려와 바다 가를 걸어가니 여러 조형물과 그림이 그려진 해안 벽이 보인다. 의항(개목)마을이다. 그리고 이 마을의 이름의 유래를 알리기 위해서 꾸며 놓은 곳이었다. 이 해안을 지나 조금 가니 의항출장소가 나오고 69코스는 끝이 난다.

 

의항(개목)마을 이름의 유래

 

해안길의 조형물과 그림

 

오랜만에 걷는 길이지만 예전에 걷던 습관이 남아 있어 힘들거나 어려움은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걷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즐겁게 길을 가니 지루함도 없이 즐거움만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36(06.21, 무시아, 피스테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여정 : 무시아, 피스테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오늘부터 귀국하는 날까지는 쉬면서 스페인의 몇 곳을 여행한다. 오늘은 산티아고에 머물면서 무시아와 피스테라를 다녀오고 대성당을 다시 가보고 그 주변을 다닐 예정이다. 아침에 여행사에서 마련한 버스를 타고 무시아로 가는 도중에 아름다운 다리가 있어 그 곳에 버스가 멈추어 구경을 한다. 어제까지 쉬지도 않고 걷다가 갑자기 버스를 타고 움직이니 새로운 세상에 온 것 같다.

 

 폰테 마세이라(Ponte maceira)는 네그레이라 지방 동쪽에 탐브레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작은 마을로, 2019년부터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 마을에는 13세기 탐브레 강 위에 지어진 원시 정착지, 오래된 방앗간, , 예배당, 현대식 장원 집, 다리 등등 많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있다.

 

 마을을 이어주는 폰테 마세이라 다리의 가장 뛰어난 모습은 탐브레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강 자체의 아름다움이다. 강이 흐르는 모습도 한 폭의 그림이지만 그 위의 다리는 화룡점정이다. 폰테 마세이라 다리는 12세기에 탐브레를 넘어 이 마을의 입구에 세워졌으며, 이 다리는 이전 로마 다리의 기둥을 사용했다고 한다. 5개의 메인 아치와 2개의 릴리프 아치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리의 중앙 아치에는 현저하게 뾰족한 둥근 천장이 있다. 오랜 기간 동안의 구조물의 안정성은 기반암 위에 기둥의 일부가 기초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도로서 야고보의 임무는 서유럽을 기독교화 하는 것이었다. 선교 후에 그는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서기 44년에 참수형을 당했다. 그의 제자들 중 아타나시에(Atanasie)와 테오도미로스(Teodomiros)는 산티아고의 시신을 되찾았고, 기독교인의 장례식을 위해 그를 갈리시아로 데려가는 데 성공했다. 갈리시아에 있는 산티아고의 제자들은 머리 없는 사도의 시신을 묻을 장소를 찾고 있었다. 사도 야고보의 제자들이 로마 군단의 추격을 받으면서 남쪽으로 피신할 때 기독교인들은 가까스로 폰테 마세이라 다리를 건넜으나 로마인들이 그들을 따라가려 하자 '신성한' 개입으로 다리가 무너져 기독교인들만 탈출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은 실제로 폰테 마세이라 다리 상류 또는 하류에서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네그레이라 문장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머리 없는 몸'이라는 표현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지하실에 있는 산티아고의 은관에 사도의 머리가 없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성 야고보 대성당의 붉은 대리석 조각으로 표시되고 6개의 봉헌 등불로 둘러싸인 제단 아래에 그의 머리가 묻혀 있다고 한다. 오직 가톨릭의 관계 성당만이 이 문제에 대해 해답의 빛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다리 아래를 흐르는 강물은 아침의 안개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깨끗하고 맑은 물은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는 것 같아서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며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을 한다. 다리를 건너 강 아래로 내려가서 보는 풍경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다리 건너에 있는 성 블라사의 작은 예배당은 18세기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고 19세기에 반원형의 네오 로마네스크 아페스가 추가되었다.

 

 이 곳에서 다리도 건너고 다리 아래로도 내려가서 강을 보면서 제법 노닐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무시아로 향한다.

 

강 안개가 낀 몽환적인 분위기

 

산 블라사 예배당

 

폰테 마세이라 마을 설명판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 인증서

 

강 아래에서 보는 풍경

 

 무시아(Muxía)는 갈리시아의 아코루냐주에 있는 피스테라 곶에 위치한 자치단체로, 무시아는 '죽음의 해안'을 뜻하는 코스타 다 모르트의 일부이다. 이는 이 지역을 코스타 데 라 무에르테라고 부른 것을 갈리시아어로 옮긴 것으로 해안에 돌이 너무 많아서 수많은 배들이 침몰했기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무시아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3km 거리에 위치하는 베네딕토회 수도원이었던 상 슐리앙 드 모라이므 성당을 처음 세운 수도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전해지며 스페인어로는 무히아라고 한다. 본래 12세기 초에 세워진 모라이므 수도원이 성당의 모태이나 수도원은 1105년 노르만 해적의 약탈로 파괴되었는데 당시 미래의 알폰소 7세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래서 1119년 알폰소 왕자는 막대한 자금을 출연하여 수도원을 복구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 가운데 하나인 무시아의 대표적인 명소로는 상 슐리앙 드 모라이므 성당 외에 비르시 다 바르카 성소가 있다. 이곳은 본래 켈트족의 성소였으나 12세기 갈리시아 지역이 기독교화된 이후 주민들은 이곳을 기독교 성소로 만들었다. 전설에 따르면 갈리시아 지역의 선교가 지지부진해 좌절한 기독교도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위로한 장소라고 알려져 있다. 17세기 성소는 성당으로 개축되었으나, 2013년 번개가 떨어져 전소되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무시아에 도착하여 성당을 한 바퀴 돌고 언덕위의 조형물로 올라가 구경을 하고 주변이 언덕에 올라가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대서양 바다와 주변을 눈에 담고 해안으로 갔다. 해안에는 배 모양과 흡사한 제법 큰 바위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성 야고보가 타고 온 배가 돌로 변하였다고 하는데 믿고 말고는 각자의 몫이다.

 

성당 주변

 

전망탑 표시

 

옛날의 십자가

 

성 야고브의 배라는 돌

 

바닷가에 새로 지은 성당

 

 무시아를 잠시 구경하고 이제 피스테라로 간다.

  

 중세시대부터 갈리시아 토박이들은 코스타 다 모르트를 피스테라(Fisterra)라고 불렀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90km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인 피스테라는 '지구의 땅 끝'이라는 라틴어의 Finis() + Terrae()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중세시대부터 세계의 끝(End of the world) 혹은 땅 끝(Land's end)이라고 불렸으나, 정확히는 스페인의 땅 끝도 유럽 대륙의 땅 끝도 아니다. 실제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서쪽 땅 끝은 포르투갈의 호카 곶이고, 스페인 본토에서 가장 서쪽 땅 끝은 무시아 자치단체의 토리냥 곶이다. 그러나 고대 사람들은 이 지역의 피스테라 곶을 세상의 끝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 것이다.

 

 로마시대에 하루의 마지막 해를 볼 수 있는 피스테라 곶을 방문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중세에 병원들이 피스테라 곶 인근에 형성되어 순례자들을 보살폈기 때문에 이 풍습은 중세까지도 이어졌고, 지금도 순례자 일부는 피스테라 곶 인근에 위치한 피스테라 지방을 순례의 최종적인 목적지로 삼고 걷기도 한다.

 

 피스테라는 서기 44년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야고보의 유해를 나룻배에 실어 보내자, 그 시신이 해안에 닿았다는 설화가 있어 많이 방문하는 순례지다. 성 야고보 유적 발견 이후 순례자들은 산티아고에서 피스테라까지 도착해 성 그리스도상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산 길레르메의 유물을 관람하며, '지구의 끝'을 보기 시작했다. 1479년에는 도착한 순례자들을 수용할 병원이 지어졌다. 항구에서 3km 정도 이동하면 등대를 향해 이동할 수 있으며, 0km라고 적힌 표지석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신발이나 옷가지를 태워 대서양에 뿌리는 의식을 행했으나 현재는 금지되어 순례자들이 물건을 태운 흔적만 발견할 수 있다.

 

 피스테라에는 18세기에 지어진 노사 세뇨라 도 본 수초 성당이 광장에 있다. 피스테라 곶 끝에 있는 600m 높이의 전망대 '몬테 파초'에 등대가 있다. 원래 몬테 파초는 켈트족 네리오족이 태양을 기리는 제물과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 등대로 올라가는 길에는 산토크리스토 예배당이 있는 산타 마리아 데 피스테라 교구 성당이 있다.

 

0km 표시석

 

피스테라 등대

 

멋어 놓은 신발 조형물

 

바닷가의 십자가

 

 

 

 피스테라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온 일행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자유롭게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면서 즐긴다. 30일 넘게 제대로 구경이라고는 하지도 못하고 길만 걸은 사람들에게 이만큼의 자유로움도 마음에 벅차다.

 

 순례자들이 벗어 놓은 신발의 조형물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멍하게 만든다. 오랜 시간을 걸쳐 먼 길을 걸어 최종목적지에 도착한 순례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이 땅 끝에서 자신의 발을 보호하고 자신과 함께 고난을 겪으며 걸어온 신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발을 벗어 더 이상의 고생을 하지 않도록 바위위에 올려놓고 감사를 표시한다.

 

 

 피레스테가 항구라 주변에는 여러 조형물이 보이는데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것은 별로 없고 비교적 현대에 만들어진 조형물들이다. 주변을 구경하다가 언덕위의 카페에 올라가 느긋하게 맥주를 한잔 마시면서 대서양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가 돌아갈 시간이 되어 버스로 가니 길가에 백 파이프를 연주하는 사람이 있어 약간의 돈을 기부하고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돌아왔다.

 

누군가 벗어 놓은 신발 -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여러 나라의 도시를 가리키는 팻말 - 우리나라는 없다.

 

피스테라 안내 조형물

 

거리의 악사

 

산티아고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대성당을 다시 보러 갔다. 대성당의 광장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순례를 마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어제는 다소 황망하여 주마간산으로 보았던 정문으로 가까이 가서 영광의 문도 다시 보고 첨탑의 조각들도 조용히 다시 보고, 광장의 기념품 가게에서 산티아고의 기념품을 조금 사고 광장을 배회하고 있으니 길을 걸으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이 또 보인다. 하루의 시차를 두고 도착한 것이었다.

 

대성당의 여러 모습

 

대성당 광장에서 대성당의 여러 모습을 눈에 담고 성당 밑의 음식점이 모여 있는 거리로 내려갔다. 함께 길을 걸은 4명이 여정을 끝낸 망중한을 즐기려고 음식점에 앉아 갈리시아의 해산물요리와 맥주를 시켜 마시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지나가며 인사를 한다. 이제 이 여정도 끝이 났기에 한가롭게 우리가 걸어온 길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하면서 담소를 즐기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까미노는 공식적으로 끝이 났다. 내일은 마드리드로 가서 이틀을 쉬고 귀국행 비행기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