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아들과 함께하는 러시아여행(3) - 블라디보스토크의 시내의 동쪽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3. 블라디보스토크 - 시내의 동쪽

 

 러시아에서의 첫날을 맞이했다. 한국에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여 일찍 잠을 깨니 주위의 모든 여행객들이 아직 잠을 자고 있다. 조용히 일어나 세면을 하고 나니 아들놈이 깨어났다. 아침을 어제 저녁에 간이슈퍼에서 산 요구르트와 빵 그리고 홍차로 간단히 때우고 숙소를 나서서 본격적으로 시내관광에 나섰다. 오늘은 블라디보스토크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구경할 생각이다. 인터넷을 통해 보니 우리나라에도 장마전선이 북상하여 날씨가 좋지 않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이곳도 그 영향으로 날씨가 매우 흐리고 구름이 끼여 맑고 깨끗한 바다 풍경을 보지 못하게 될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오늘은 블라디보스토크 동쪽을 구경하기로 아들과 미리 의논을 했다.

먼저 블라디보스토크중앙역으로 갔다. 시베리아 횡단은 모스크바에서 출발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는 것이 정상 루트인 것 같았다. 왜냐하면 블라디보스토크중앙역에는 시베리아 횡단 종착점을 표시하는 기념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발을 어디에서 해야 하는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점이 아니다. 순서야 어떻게 되었든지 우리는 이곳을 출발점으로 삼고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중앙역에는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초기모형물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시베리아횡단열차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중앙역은 우리나라 동해에서 배를 타고 오면 내리는 여객부두와 바로 이어져 있다. 배를 타고 오면 이점은 상당히 편리하다. 중앙역에서 내일 갈 예정인 우스리스크행 열차표를 사고(135루블) 역 근처의 슈퍼에서 물을 구입했다. 러시아에서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물은 어디에서도 공짜로는 주지 않는다. 자기가 마실 물은 꼭 자기가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다.(그런데 물 값이 장난이 아니게 비싸다. 그래서 우리는 대용량의 물을 구입하여 작은 물병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면서 마셨다.) 그런데 우리가 러시아어를 잘 모르고 구입한 물이 탄산수였다. 조심하여 구입해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중앙역

 

 

 

 

 

옛 시베리아횡단열차와 시베리아횡단 표지석

(모스크바에서 9,288km임을 나타낸다)

 

 

 

구열차앞에서(오른쪽은 시베리아횡단 동판)

 

 역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시내를 계속 걸어가면서 시내의 풍경을 구경하면서 도착한 곳이 혁명전사광장(레닌혁명기념광장)이었다. 아직도 러시아에는 레닌을 신과 같이 숭배하고 있고 러시아혁명에 관한 유적이나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런 면에서는 아무리 개방이 되었다 해도 아직은 이념적으로 공산국가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광장에 상당히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중국인이었다.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많은 도시의 관광지에서 엄청난 중국인들을 보았다. 물론 중국이 인구도 많지만 그들이 해외여행을 다니는 수는 상상을 벗어나는 숫자였다, 그리고 그들의 여행 모습은 과거 일본인들이 때를 지어 다니던 모습보다 더했다.

 

 

 

 

 

 

혁명전사광장

 

혁명전사광장을 구경하고 다시 걸어서 간 곳이 C56 잠수함박물관이다.(입장료는 100루블) 잠수함박물관 주위에는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전몰장병위령탑(평화의 불)과 그들의 이름을 새긴 위령비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이곳뿐만 아니라 러시아 곳곳에서 이러한 기념비와 위령비를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은 용사들을 잊지 않고 항상 추모하고 있었다. C56 잠수함박물관은 잠수함의 내부를 개방하여 구조를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도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니콜라이 2세가 시베리아횡단열차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기념문과 막심고리키의 극장 등도 있었다. 그 밖에 여러 조형물들이 있었으나 러시아어를 읽을 제주가 없으니.....

 

 

 

 

 

잠수함박물관의 전경과 전몰장병 이름을 새긴 위령비

 

 

 

 

잠수함박물관 내부

 

 

 

꺼지지 않는 불꽃 -전몰장병 위령불꽃 -

 

 

 

니콜라이 2세 기념

 

 

 

막심고리키극장 안내와 앞의 휴식처

 

 잠수함박물관을 벗어나 블라디보스토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 독수리전망대를 찾아 가는 길에 점심 먹을 곳을 찾아보았다. 러시아도 개방이 많이 이루어져 패스트 푸드점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그중 로얄 버그라는 간판이 붙은 집에 들어가 보니 우리나라의 패스트 푸드점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햄버거 가격도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가볍게 점심을 러시아 햄버거로 먹고 독수리전망대를 향해 갔다. 우리는 철저하게 걸어서 찾아다니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에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 갔다. 길을 찾아가는 도중에 보니 전망대를 올라가는 전동차(푸니쿨라)가 있는데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운행을 하지 않고 있었다. 독수리전망대는 명색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하는데 고작 해발 210m의 높이다. 그래도 7월의 무더위에 걸어 올라가니 제법 땀이 솟았다. 독수리전망대는 과거에는 올라가서 사진을 찍는 것을 금지한 곳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블라디보스토크항은 군항으로 러시아 극동함대의 모항으로 군사적 보안을 위해 사진 찍는 것을 금지하였다. 하지만 요즈음은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였다. 이런 점은 러시아가 상당히 개방이 되었다는 점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독수리전망대에서 사위를 둘러보면 블라디보스토크항이 환히 보인다. 2012년 APEC 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놓은 금각교(golden horn bridge)는 항구를 가로지르며 이쪽 바닷가와 저쪽 바닷가를 연결해 주고 있었다. 조망대 위에는 러시아 문자인 키릴문자를 만든 키릴형제의 동상이 있고, 전망대 앞에는 세계 어디를 가도 보이는 살가운 연인들이 서로 사랑을 맹세하는 열쇠가 묶여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된 풍습이지.... 독수리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블라디보스토크항은 여느 항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항구이다. 항구도시인 부산에서 나서 자란 나에게는 부산보다 작은 항구가 그렇게 새롭게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국의 항구일 뿐이다. 그래도 날씨가 맑으면 시원한 바다바람을 맞으며 항구의 경치와 시내의 풍경을 구경하겠는데 날씨가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흐려 깨끗하고 맑은 경치를 볼 수 없어 조금 안타까웠다.

 

 

러시아 패스트 푸드점

 

 

 

 

 

 

 

독수리전망대와 키릴형제 동상, 블라디보스토크항 전경 

 

 독수리전망대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고 시내로 걸어 내려왔다. 시내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고 생각하며 걸어내려 오는 도중에 현대식의 고층건물을 건설하는 현장들도 보였고, 한국어로 식당 간판을 내건 식당(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도 보았다. 거리를 조금 걸어 지역사회박물관(Arsenyev Primorsky Krai Museum)이 보여 들어갔다.(입장료 200루블) 우리의 계획은 기본으로 각 도시의 박물관을 되도록 꼭 보고 간다는 것이었다. 아르세니예프 연해주 박물관은 1890년 개관한 박물관으로 여행가이자 현지 조사가인 아르세니예프의 이름을 따서 설립을 했다고 한다. 연해주(프리모르스키 주) 지역의 식생이라든지 고고학적 유물도 보관하고 있으며, 러시아가 이 지역을 점유한 이전,후의 개척 용품이라든지 그 역사에 관련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곳으로, 여러 차례 국제적 박물관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박물관 건물의 앞쪽에는 삼성로고가 새겨져 있는 휴대폰가게가 있어 상가인줄 알았는데 그 뒤에 박물관이 있었다. 러시아박물관은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이 많이 근무를 하고 있다. 이곳만 아니라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간 박물관 모두에 할머니들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노인들의 인력을 이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노인들이 돈벌이를 해야 하는 것인지? 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또 박물관 입장료는 왜 그렇게 비싼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러시아 각지의 박물관을 많이 구경하였는데 우리나라의 박물관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는 소장품을 가지고 있으면서 입장료는 우리나라보다 엄청 비싼 이유를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하지만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구경을 해야 하는 것은 우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장료를 지불하고 구경할 수밖에 없다.

 

 

 

 

박물관 안내 표지와 전경 

 

 

 

 

 

 

 

 

 

박물관 내부의 여러 전시물

 

 

박물관 건물의 전경

 

 박물관을 나와 그 옆에 있는 아르바트거리와 아무르만 유원지를 잠깐 구경하고 다음날 다시 오기로 하였다. 아들이 러시아 카페에 가보자 하여 갔는데 러시아 카페는 우리와 달라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물론 커피 등의 음료도 팔지만 주된 것은 음식이지 음료가 아니었다. 러시아를 여행하는 동안 카페라는 곳은 모두가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음식점이라 여겨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원래의 계획대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아들은 홍차를 마시고 휴식을 취했다. 러시아는 차 문화가 아주 발달하여 커피는 크게 보급되지 않아 아주 비쌌고 홍차는 러시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로 아주 귀한 홍차가 아니면 값도 싸고 맛도 좋았다. 러시아를 여행하는 동안만이라도 커피 대신에 홍차를 마시면 좋을 것인데 커피에 이미 입맛이 들대로 들어 참 어려웠다. 이 이야기는 뒤에 또 할 것이다.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도중에 아침에 가 보았던 슈퍼에 가서 저녁거리와 내일 아침거리를 구입하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행자의 자세로 들어가는 것이다. 저녁도 내일 아침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배낭여행자의 신세로 들어가는 것이다. 떠날 때부터 각오한 일인지라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하러 식당에 들어가니 또 다른 많은 외국의 나그네들이 있었다. 짧은 영어로 인사를 하고 저녁을 만들어 먹으며 물어보니 독일, 오스트리아, 캐나다, 미국 등등 세계 곳곳의 나그네들이 모두 자신의 음식을 만들어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이런 풍경도 여행을 하면서 얻는 즐거움이리라 생각되었다.

아들과 함께하는 러시아여행(2) - 블라디보스토크의 첫날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극동의 유럽 - 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중앙역

 

 7월 16일 인천을 출발하여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러시아! 우리 세대에게는 구 소련이 더 친숙한 나라이다. 1884년 조러수호통상조약으로 조선과 러시아가 수교를 하였으나 1904년 러시아가 일본과의 전쟁에 패하면서 파기되었고 그 뒤에는 전쟁과 동서냉전으로 소련과는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1980년대 이후 동서데탕트의 효과로 우리도 구 소련과 1990년 정식으로 수교가 이루어졌다. 그 후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로 바뀌면서 우리와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러다가 2014년부터 러시아가 무비자국이 되면서 더 편리하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많은 세대들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나라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의식이 많이 없어져 그저 외국의 한 나라로 생각할 뿐이다. 우리세대에게는 러시아여행이란 젊은 시절 꿈도 꾸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하여튼 나는 러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에서 약 두 시간 정도 거리였다. 시차도 우리나라와 두 시간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가는 방법은 강원도 동해항에서 배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으나 긴 여행을 할 것인데 처음부터 어렵게 여행을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비행기를 탔다. 블라디보스토크공항에 도착하니 우리나라의 작은 지방공항과 비슷했다.

    

 

 

 

 

블라디보스토크공항

 

 아들놈이 공항에서 스마트폰 러시아유심(가격 150루블)을 구입하여 자기 폰에 끼우는 사이에 공항 밖으로 잠시 나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공항에 들어오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공항직원이 무어라고 말을 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잠시 상황을 살펴보니 공항에는 입구와 출구가 따로 있었다. 우리나라야 그런 것이 없으니...... 입구를 찾아 들어가려니 또 모든 짐 검사를 다시 해야 했다. 참 번잡하게 여겨졌다. 러시아는 아직 구 제도가 많이 남아 있어 공항이나 기차역에 들어갈 때 모든 짐을 형식적이지만 검사를 했다. 왜 이런 제도를 아직도 두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곳은 러시아다. 러시아의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들놈이 제 애비를 잃어버릴까 걱정하여 나에게도 러시아유심을 끼운 구 스마트폰을 하나 주었다. 혹시 길을 잃거나 헤어져 있으면 러시아국내번호를 이용하여 통화를 할 수 있게 하였다. 또 심심하면 인터넷을 하고 놀아도 된다고 하였다. 시험을 해보니 모든 것이 잘되었다. 막내라고 어린 줄만 알았는데 애비 걱정도 해주는 다 큰 아이였다.

 

 공항에 들어와 아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로 가려고 보니 공항철도가 있었다.

 

 

 

공항철도입구와 자판기

 

 

 

공항철도 요금표와 승차권 자동발매기

 

 

 

 

공항철도와 내부

 

 이런 정보도 없이 ‘어떻게 버스를 타고 가나’하고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철도가 개통되어 있었다. 공항구내에서 바로 오른쪽에 철도역이 연결되어 편리하였다. 공항철도역에서 시간표를 보니 약 1시간마다 한편이 있었다. 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시내까지 지정석(비지니스)은 350루블, 일반석(스탠다드)은 200루블이었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음료수 자판기가 있어 사서 먹어 보았다.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하지만 가격은 우리나라보다 비쌌다. 앞으로 이 이야기를 다시 하겠지만 대체로 러시아에서 음료수 가격은 우리나라보다 상당히 비싸다. 유의해야 한다. 일반석을 타고 약 50분이 걸려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다 아무르만 주변을 달려 블라디보스토크 중앙역 바로 옆에 있는 공항철도역에 도착했다. 열차는 일반석도 타는 사람이 별로 없어 빈자리는 많았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도중의 아무르만의 풍경

 

 

블라디보스토크시내

 

 숙소로 정한 호스텔이 철도역 근처에 있어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고 시내를 잠깐 나갔다. 블라디보스토크는 그리 큰 도시가 아니기에 내일부터 걸어서 구경하기로 하고 잠깐만 이국의 정취를 느끼기로 했다. 도시를 거닐다가 시장기가 돌아 밥을 먹기로 했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저녁까지 있으니 배가 상당히 고팠다. 여러 곳을 찾아보다가 눈에 보인 집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주 유명하다고 스스로 간판에 소개하고 있는 Porto Franco라는 레스토랑이었다. 1919년에 오픈한 집이라고 하는 보헤미안풍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보르쉬’라는 수프와 ‘까르보나’ ‘파스타’ 등을 먹었는데 ‘보르쉬’는 우리나라 육개장과 흡사했다. 아들과 둘이서 적당히 먹고 후식으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아들은 홍차를 먹었다.

러시아에서의 첫 번째 먹는 저녁은 그런대로 만족했다. 또 가격도 그렇게 비싸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면 그 정도는 지불해야 되지 않을까하는 정도였다.(1,450루블)

 

 

 

 

Porto Franco의 소개글과 입구 전경

 

 

 

 

 

브르쉬와 파스타, 커피와 홍차

 

 

 

Porto Franco 내부 모습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저녁을 먹고 첫날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배정된 방에 들어가니 중국의 대학생들과 스위스의 젊은이를 만났다.(물론 뒤에 이야기하여 알게 되었음) 짧은 영어로 간단히 소통을 하였는데 특히 스위스의 젊은이는 3년을 계획으로 자전거를 타고 세계일주여행 중이었다.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고 했다. 잠시도 중간에 내리지 않고 7박 8일 동안 기차만 타고 왔다고 하며, 중국을 거쳐 동남아시아와 호주 아프리카를 거쳐 갈 것이라고 자신의 여정지도를 보여 주었다. 그가 준 명함에 적혀있는 블로그를 검색한 아들이 말하기를 상당히 유명한 블로거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도 입시나 시험이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세계를 직접 배우는 일이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가슴에 새겨졌다. 그들과 잠시 이야기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아들과 함께하는 러시아여행(1) -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아들과 함께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한달간 시베리아를 횡단하면서 러시아를 여행하였습니다. 이제부터 그 여행기를 계속하여 올리겠습니다.

 

1.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의 여행 지도>

 시베리아!

 

 나이를 어느 정도 든 어른들에게는 동토의 땅으로 알려져 있고, 젊은이들에게는 엄청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개발이 되지 않은 땅으로 타이가 삼림과 툰트라의 평원으로 낭만의 땅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꼭 여행해 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하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해 보고 싶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시베리아횡단열차를 어떻게 타고, 어디에서 출발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시베리아를 꿈꾸고 있다.

 

 지리적으로 시베리아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편의에 의해 태평양의 끝자락인 아시아 끝에서 모스크바 사이를 지칭하는데 우랄산맥을 기점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다.

 

 두산백과의 설명에 의하면 시베리아는 러시아 우랄산맥에서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북아시아 지역으로 러시아어로는 시비르(Sibir)라고 한다. 러시아 연방에서는 자연 ·인문 양면에서 우랄산맥 동쪽 사면에서 태평양 사면의 하천 분수령까지를 ‘시베리아’라고 부르고, 태평양 사면 부분을 ‘극동부’라고 하여 시베리아와는 명확히 구분한다. 또, 러시아 연방 국민경제회의의 경제지역 구분에서도 ‘넓은 의미의 시베리아’는 우랄, 서시베리아, 동시베리아, 극동지방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즉, 러시아의 개념으로 시베리아는 동서 7,000 km, 남북 3,500 km, 면적 650만 km2이고, 극동지방을 포함한 광의(廣義)의 개념으로는 면적 1380만 7037km2으로 아시아 대륙의 1/4을 넘는다. 라고 말한다.

 

 이 광대한 대지를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중간에 쉬지 않고 달리면 열차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7박 8일이 걸린다. 정확히 거리로 9,288km라고 러시아 국영철도회사에서 표시해 놓았다. 지구 둘레를 약 40,000km라고 하면 지구 둘레의 약 1/4을 기차로 여행하는 것이다. 웬만한 인내나 체력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쉽게 도전해 보지 못하는 여행이다. 물론 중간 중간에 내려서 러시아 여러 도시를 구경하면서 간다. 그러면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 그래서 바쁜 사람들은 중간에 쉬지 않고 논스톱으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7박 8일 동안 열차만 타고 광활한 대륙을 건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금의 러시아와 수교를 하고 여행을 할 수 있게 되고 나서 나는 언젠가는 꼭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건널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없는 꿈이었다. 처음에는 러시아여행 자체가 어려운 시기였고, 또 직장에서 그 긴 시간을 휴가를 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00년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러브오브시베리아’(2000년, 줄리아 오몬드, 리차드 해리스 주연)란 영화를 보고나서는 더욱 더 시베리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그 장엄한 자연의 대지를 한번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하지만 항상 꿈을 꿀 수밖에 없었다.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서 실행에 옮기기에는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월이 지나가고 나이가 60이 넘어가면서 이제는 꿈으로만 생각하고 그저 모스크바나 바이칼호수 정도는 한번 가 봐야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누가 말했던가?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러시아 여행을 하게 될 줄을......

 

 2014년 1월에 군에 가 있는 막내 놈이 휴가를 와서 갑자기 하는 말이 자기가 전역을 7월 14일에 하는데 전역을 하면 아버지하고 시베리아횡단기차를 타고 러시아여행을 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경비는 모두 아버지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不敢請固所願(불감청 고소원)이라 내가 아들놈에게 부탁을 해도 아들놈이 들어줄는지 모르는데 아들놈이 요청하는데 어찌 거절하랴. 옆에 있던 아내도 아무 말 하지 말고 무조건 가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도 가면 안 되는지 물었다. 아들의 말이 엄마하고는 중학교 때부터 함께 많이 여행했고 또 여행이 힘들 것도 같으니 아버지하고 둘이 가겠다고 했다. 아내도 선뜻 동의하여 감히 꿈으로만 여겼던 시베리아 횡단여행을 실행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아들이 아버지와 여행을 하면서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기특한 욕망도 들어 있었다.

 

 이 계획이 잡히고 나서 실제 출발하는 7월까지는 계속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무더운 7월과 8월 한국을 떠나 시베리아를 여행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몇 달을 보내며 준비를 했다. 준비래야 아들놈이 대부분을 계획하고 나는 그저 뒤에서 바라보며 따를 뿐이었다. 준비하는 도중에 러시아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시베리아횡단열차에 대해서도 여러 정보를 수집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정보는 생각보다 없었고 시중에 나온 러시아 여행기도 그저 감상문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들놈이 휴가를 나오는 틈틈이 둘이서 함께 계획하고 준비를 하였다.

 

 그 계획의 대략적인 것은 다음과 같았다.

1. 여행일정은 7월 16일부터 8월12일가지로 예정하였다.

- 그 이유는 아들놈이 7월 14일에 전역하고, 돌아와서 복학을 하기 때문이었다.

2. 출발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하여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간다.

3. 시베리아횡단열차는 6인실을 타고 간다.

4. 음식은 무조건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먹는다.

5. 숙박은 호스텔에서 한다.

6. 러시아 현지에서는 되도록 걷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둘 다 걷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7. 러시아 각 지방의 미술관, 박물관 등을 꼭 구경한다.

8. 되도록 모스크바의 볼쇼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에서 발레를 관람한다.

- 왜냐하면 발레는 러시아가 최고이기 때문이다.

 

 이런 계획을 세우고 우리는 인천에서 출발하여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비행기로 가서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의 여정은 블라디보스토크(우스리스크 포함), 하바롭스크, 이르크추크(바이칼 포함),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정하였다. 그리고 일정에 맞추어 항공권과 기차표를 예약하고 숙소를 예약하기로 했다. 항공권을 사는 것은 어느 시기에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여하튼 할인항공 사이트에서 항공권을 예약하고 기차표를 예약하기로 했다. 과거에는 러시아 철도를 예약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받는 큰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상당히 쉽게 할 수 있었다. 러시아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러시아 국영철도사이트에 영어 안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http://rzd.ru/에 접속하여 오른쪽 위에서 영어로 언어를 바꾸거나 또는 소치올림픽을 계기로 생긴 영문사이트- http://pass.rzd.ru/main-pass/public/en 에 접속하면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국내에서 우리 일정에 맞추어 모든 기차표를 예매를 할 수 있었다. 러시아 철도를 타려는 사람들은 국내에서 예매를 하는 것이 편리할 것이다. 괜히 말도 통하지 않는 러시아에서 열차표를 구입하려고 하지 마라. 러시아 기차역의 역무원들은 전혀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자신이 러시아어를 능통하게 말할 수 있으면 모르지만..... 한 가지 덧붙인다면 열차는 모두 침대석이다. 러시아 열차는 한 열차 안에 2인 1실(룩스), 4인 1실(꾸뻬), 6인 개방형침대(쁠라찌까르뜨)가 있다. 2인실, 4인실은 방의 구조로 문을 잠그게 되어있고, 6인실은 완전히 개방형 구조다. 나는 오히려 6인실이 더 안전한 구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하여튼 열차의 침대는 2층보다 1층을 택하도록 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 나중에 다시 말하겠다.

 

 열차표를 모두 예약하고 나서 이 일정에 맞추어 호스텔을 모두 예약하였다. 가난한 아버지와 아들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호화로운 호텔에서 잠을 잘 수는 없고 하여 하루에 우리 돈으로 25,000원 내외의 숙소를 구하였다. 숙소는 안전도를 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시내의 위치를 중시 여겨 여러 차례 사이트를 방문하면서 예약하였다.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예약이 크게 잘못 되지 않았다고 우리는 돌아와서 생각했다. 아니 어느 정도 만족하는 숙소였다고 생각했다.

 

 또 볼쇼이극장에서 발레공연을 예매하려고 했는데 모르는 것이 죄라고 볼쇼이는 8월에는 모든 것을 멈추고 휴가를 가버린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극장을 수배해 보니 우리가 필요한 날에 발레 ‘지젤’을 공연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 표도 미리 예매를 하고 갔다. 공연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마린스키극장예매권

 

 이렇게 준비를 하고 난 뒤 아들놈이 마지막 휴가를 와서 떠나는 짐을 정리하고 아들놈은 부대로 돌아가 7월 14일 전역하고 나는 15일에 서울에 가서 만나 7월 16일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 여행의 장도에 올랐다.

보수동 책방골목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부산 보수동에 헌책방가게가 밀집되어 있는 명물거리가 있다,

 

 부산 국제시장 부근의 보수동 쪽으로 나 있는 좁은 골목길에 헌책방들이 모여 있는데 이곳을 보수동책방골목이라 한다. 서점과 인쇄물이 홍수처럼 나오는 지금은 국내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헌책방 골목으로, 부산의 명물거리로 꼽힌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헌책으로 노점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보수동책방골목의 시초가 되었다.

 

 그 때는 먹고 살기가 어려워 많은 학생과 지식인들이 책을 내다 팔아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으며, 학업에 매진하는 학생들은 헌책을 구입하며 성황을 이루었다. 때때로 희귀본이나 값진 개인소장 고서도 흘러들어와 수집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과거와 달리 서점이 발달하였고, 또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인하여 과거와 같이 책을 사고 파는 사람들보다 관광객들이 더 많이 붐비는 곳이 되었다.

 

 과거 1970년대 부산에서 대학을 다닌 대학생들은 보고 싶은 책을 찾아 서점의 먼지를 마시며 책을 뒤져가면서 책을 고르곤 했던 추억이 있다. 아마 부산의 대학생 중에 이 보수동 책방을 둘러보지 않은 학생은 없을 것이다. 또 그 때 하나의 즐거움으로 주인장과 안면이 많으면 그 때 당시에 숨겨 놓았던 외국의 도색 잡지들(플레이 보이, 허슬러 등등......)을 구해 보는 재미도 있었을 것이다,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는 2005년부터 해마다 9월에 보수동책방골목축제를 열고,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보수동책방골목의 정기휴일은 첫째·세째주 일요일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을 보시며 옛날의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보자.

 

 

보수동 책방골목 표지석

 

 

 

책방골목과 일반주택이 함께 있는 곳

 

 

 

 

옛날과 다르게 책방골목도 변하고 있다. 카페가 들어서고 책방에서 팥빙수도 팔면서 문화공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을 그려 넣은 의자

 

 

 

 

책방골목에 여러 가지 먹거리를 파는 집도 있어 구경나온 젊은이들이 입맛을 돋우고 있다.

 

 

 

  

 

책방골목 안내도와 거리에 새겨진 명판들 - 우리 훈민정음과 작가들의 작품명이 새겨져 있다.

 

 

 

 

 

 

 

 

 

 

책방골목에 늘어선 책방과 책을 고르고 거리를 구경하는 사들의 모습 

 

 

 

대청동 올라가는 삼거리에 서 있는 책방골목 표지판

 

 

 

보수동 책방골목 입구와 책을 나르는 학생상

 

 보수동 책방골목은 나에게 추억이 어린 곳이다.

 

 1970년대에 부산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모두 이 골목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골목을 자주 와서 책을 구경하고, 또 여가시간을 보내고 했다. 

그때는 보고싶은 책도 많았지만 책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우연히 읽고 싶은 책을 구했을 때의 기쁨은 무어라 말하기가 어렵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 기쁨을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데 예전만큼 책을 읽지 않는 것 같다. 전자매체가 발달하면서 우리가 책 읽기를 멀리하고 빨리 머리에 들어오는 영상매체만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권의 책이 우리에게 주는 양식을 소홀히 하는 나 자신부터 반성하고 다시 책을 읽어 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이 보수동 책방골목을 되새겨 본다.

 

 

넓게 펼쳐진 백사장 -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다대포에서 시원하게 여름을 보냅시다.

 

 다대포는 부산 사람이 아니면 잘 알지 못하는 곳이다. 하지만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은 해운대보다도 더 넓고, 더 깨끗하다.

 또 물의 경사도 완만하여 어린 아이들이나 조용하게 바다에서 물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다대포는 부산시 사하구의 낙동강 하구 최남단에 있다.

낙동강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곳으로 모래톱이 형성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나 지금은 낙동강이 을숙도하구언으로 막혀서 더 이상 모래를 공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파도에 실려 오는 모래가 성을 이루어 지금도 해수욕장 앞에는 새로운 모래톱이 만들어지고 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 가보면 새로운 모래톱이 생겨난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해수욕장 주변의 몰운대(沒雲臺)와 함께 주변 바다와 산의 경치가 아름다운데다가 곱고 부드러운 흰 모래사장이 전개되어 좋은 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또한 역사의 고장으로사적이 있어 관광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다대포진(多大浦鎭)이라 해서 국방의 요충지를 이루었다. 이곳 아미산(峨嵋山)의 응봉(鷹峰)에는 당시 봉화를 올렸던 봉수대가 남아 있다.

 

 철새 도래지인 을숙도와 감천동 항구 사이에 위치한 다대포는 몰운대·화손대·해수욕장·낙동강 하구로 구분할 수 있다.

 

다대포의 풍경을 사진으로 보시기를.......

 

 

 

넓은 백사장을 자랑하는 해수욕장 전경

 

 

해수욕장 왼쪽에서 바라보는 모습 :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아주 넓게 펼쳐진다.

 

 

 

넓은 백사장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타는 모습 : 창공을 나는 즐거움

 

 

 

해수욕장과 다대포 일대의 아파트촌

 

 

 

 

넓은 창공을 날아 다니는 패러글라이더의 모습과 바다 물이 밀려 오면서 만든 해변의 기하학적 무늬가 아름답다.

 

* 지금부터 보는 사진은 다대포 해수욕장 왼쪽에 조성해 놓은 해변공원의 모습이다.

 

 

 

 

걸을 수 있게 나무 테크를 설치하여 바다를 보면서 산책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산책길에서 보는 다대포 앞바다 

 

 

산책길에서 보는 다대포해수욕장 

 

 

 

 

 

나무테크 끝에서 바다가로 내려가면 펼쳐지는 풍경 

 

 

 

 

바다물이 들어오는 모습 

 

 

 

 

 

 

 

 

다대포를 조망하도록 만들어진 나무테크를 따라 걸으면서 보는 풍경

 

 

 다대포는 한 때 해수욕장의 기능을 상실한 땅이었다.

 

 백사장의 모래가 해수욕장의 모래라 할 수 없게 된 땅이었다. 그러나 행정관청이 오랜 시간을 걸쳐 정화하고 해수욕장을 가꾸어 지금은 훌륭한 해수욕장으로 탈바꿈하였다.

 또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주변에 동양 최대라고 일컫는 분수도 만들어 시간에 맞추어 분수쇼도 보여주고 있다. 또 해수욕장 주변에 물길을 만들어 바다물이 회전해 나가도록 만들어 놓아 바다에 들어가 해수욕을 하지 않아도 물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였다.

 또 주변에는 몰운대가 있어 숲속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여유를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중 으뜸은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다.

아마 부산의 해수욕장 가운데 가장 넓은 백사장을 자랑하는 곳일 것이다. 또 수심이 아주 완만하여 어린 아이들이나 수영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도 아무런 부담없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주변에는 활어판매센터가 있어 먹거리도 훌륭하게 장만할 수 있는 곳이다.

 

 한번 가셔서 즐겨 보시기 바란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곳이다.

 

 사족으로 붙이면 이 곳의 해넘이 광경은 말로 할 수 없는 장관이다.

 각자가 구경하시기를...... 

 

서울에서 정남쪽 - 정남진(전라남도 장흥군)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망망한 바다가 보이는 곳

 

 새로운 명소로 가꾸어지는 정남진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는 서울 광화문 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정동진이 있으며, 정북으로는 중강진이 위치하고, 남으로는 정남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남진은 서울의 정남쪽에 있다고 알려진 옛날에는 나루터였으며며, 광화문으로부터 정남쪽을 가리키며 전라남도 장흥군에 해당한다.

 정남진은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 사금마을로 서울 중심점 표시돌(동경 126도 59분 04.5초)와 서울의 도로원표(동경 126도 58분 34.1초) 그리고 광화문으로부터 정남쪽에 위치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장흥군에서는 정남진 표지를 세우고 이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

 

 물론 정남진은 바다다.

하지만 전라남도는 따뜻한 인정이 서려 있는 마을 이곳을 정남진이라고 명칭을 붙이고 그 주변에 정남진전망대를 세우고 공원을 만들어 개발 중이다. 전망대에서는 날이 맑으면 제주도도 보이고 일본 대마도 등도 보인다고 했는데 내가 간 날은 날이 흐려 그저 뿌연 바다만 보고 올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다.

 

아직은 생소한 정남진을 사진으로라도 보시고 때가 되면 한번 들러 보시기를......

 

 

정남진 표지

 

 

 

정남진 가는길 표지석 : 장흥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다. 

 

 

정남진가는 도로 표지판

 

 

    

정남진 설명 표지 : 삼면을 모두 찍어 보았다.

 

 

정남진앞 바다 : 방파제를 만들어 가꾸고 있는 중이다.

 

 

 

 

 

 

정남진전망대의 여러 모습

 

 

  

 

 

정남진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남쪽 바다

 

          

 

엄청난 규모의 정남진 전망대

 

 

 정남진 전망대와 조형물

 

 정남진은 아직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지명이다.

 한적한 어촌 마을에 조용하게 자리잡은 곳이다. 지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진다든지, 역사적인 어떤 사건이 있다든지 하는 곳도 아니다. 그저 서울에서 정남쪽에 위치하였다는 의미외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꼭 어떤 의미가 있어야만 우리 눈을 끌고 우리 가슴을 적시는 것은 아니다.

이곳이 서울에서 정남쪽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한번쯤은 가 보아도 좋은 곳이다. 조용하게 바닷가를 거닐거나 전망대에서 망망하게 펼쳐지는 바다를 보아도 좋은 곳이다.

 아직은 잘 알려지지아 사람들이 많이 찾지를 않지만 지자체에서 유원지로 개발을 하고 있으니 곧 많은 사람들이 한번 구경하러 올 것이라 생각된다.

 

 전라남도 남쪽을 여행하는 길이 있으면 한번 둘러 보시기를 .......

해남 땅끝에서 보는 해넘이의 장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땅끝에서 보는 낙조의 장관

 

 여행을 하면서 저녁 해가 지는 광경을 보는 것은 흔하지 않는 일이다.

 

 지난 오월의 연휴를 맞아 전라도 섬을 여행하였다.

 

 둘째 날 여행의 끝자락에서 해남 땅끝에 갔다. 우연히 해남 땅끝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이었다. 땅끝 전망대에 올라가는 마지막 케이블카는 이미 표를 다 팔고 창문을 닫고 있었다. 우연히 관리원과 이야기하다가 아내와 두 명이라는 말에 표를 선뜻 팔아 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니 전망대 서쪽으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저녁 해넘이를 구경하는 일이 흔치 않았는데 이번에는 예기치도 않았는데 일몰의 장관을 구경하게 되었으니 이런 기쁨이 어디에 있을까?

 

 예전에 안면도 꽃지의 해넘이가 너무 장관이라 시간을 맞추어 갔으나 날이 흐려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또 어느 때는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여 보고 싶은 광경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순간들도 많았는데 이런 기쁨이 있을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더구나 날씨도 맑아서 일몰의 광경이 선연하게 보이고 있었다.

 

 필요없는 사설은 그만 두고 땅끝의 모습과 해넘이의 장관 보여 드리니 구경하시기를..........

 

 

땅끝 낙조 : 해가 막 넘어가려는 순간의 장엄함

 

 

 

 

땅끝 전망대로 올라가는 모노레일 승강장 

 

 

 

 

모노레일 승강장앞에서 보는 땅끝 바다 

 

 

  

 

 

 

  

 

 

 

 

 

 

 

 

 

 

 

 

여러 위치에서 찍은 해넘이의 모습 : 시간이 지나며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이 모두 다른 색을 지니고 있었다. 해가 저 멀리 섬에 걸리는 모습과 구름 사이를 뚫고 내려 가는 모습, 바다를 물들이며 떨어지는 해를 보고 감탄을 발하며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좀더 해넘이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으면 하는 찰나에 해는 바다 속으로 떨어졌다.

 

 

 

 

 

땅끝 전망대 앞에서 보는 땅끝 바다 

 

 

 

땅끝전망대에서 보는 보길도행 선착장 

 

 

 

해가 떨어지는 마지막 모습 

  

 

 갈두산 봉수대

 

 

땅끝전망대 

 

 

 

전망대 올라가는 모노레일의 모습 

 

 

땅끝 해넘이의 동영상임

 

 땅끝에서 해넘이 장관을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모든 자연현상에 때를 맞추는 것은 너무 어렵다. 특히 해돋이나 해넘이는 시간을 맞추는 것도 문제지만 일기가 좋아야 구경할 수 있는 광경이다. 천기를 우리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그저 자연의 무상한 변화에 맡길뿐이다.

 

 그런데 자연의 흐름에 내가 동참하여 그장엄함을 즐겼다는 것은 하늘이 준 축복인지도 모른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땅끝도 예전에 보던 곳이아니었다. 대도시의 유흥지를 방불케 하는 곳으로 변모하였다. 지난 날들에 이 땅끝을 구경할 때는 무언가 생각도 하였으나 이제는 그저 관광지의 한나로 인식될 뿐이라 마음이 찡했다.

 

 그래도 자연의 모습은 변함없이 나의 눈을 즐겁게 했고, 나의 가슴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부산 몰운대 - 조용히 거닐 수 있는 산책길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아름다운 부산의 서쪽 바다.

 

 부산 근처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많이 있다.

 

 그러나 부산하면 우리는 흔히 해운대를 생각하지만 해운대는 단지 부산 바다 중의 한 곳일 뿐이다.

 

 낙동강이 흘러 내려 바다와 합쳐지면서 수 많은 모래톱을 이루며 끝없이 넓게 펼쳐지는 바다를 보았는가?

 

 오늘은 부산의 동쪽 바다가 아니라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몰운대를 돌아 보자.

 

 새로운 부산의 바다 풍경을 볼수 있다.

 

 몰운대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몰운대는 부산광역시 중심지에서 남서쪽으로 떨어진 사하구에 있는 다대곶(지금은 다대포라 한다) 동편에 있다. 몰운대라는 명칭은 이 일대가 해류의 영향 때문에 짙은 안개가 시야가 자주 가려기 때문에 몰운대라 하였다고 한다. 예전에 몰운대는 섬이었다가 점차 낙동강에서 밀려온 토사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측한다.

 

 임진왜란 때 충장공(忠壯公) 정운(鄭運)이 이곳 지명을 듣고 운(雲)과 운(運)이 같은 음인 것을 따라 “내가 이 대에서 죽을 것이다(我沒此臺)”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으며, 정운의 순절을 기리는 유적비가 있다. 언덕 전체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예전에는 동백나무가 울창했던 곳이다. 지금은 공원으로 가꾸어져서 많은 시민들이 쉽게 풍광을 즐기며 한 바퀴 돌아보기 쉽게 길을 가꾸어 놓아 산책길로 많이 즐기는 곳이다.

 

자 이제부터 몰운대의 아름다운 바다를 즐겨 보자.

 

 

 

몰운대 자갈마당의 경치

 

 

 

몰운대 갈맷길 안내도 및 몰운대 입구 주차장

 

 

몰운대 입구의 소나무들

 

 

 

봄의 전령 진달래 : 올해는 유난히 꽃들이 빨리 피었다.

 

 

몰운대 시비

 

 

 

 

다대포객사 주변에 하얗게 핀 배꽃

 

 

 

 

 

다대포객사의 여러 모습

 

 

다대포객사의 정면

 

 

 

몰운대길의 이정표

 

 

 

자갈마당 앞의 섬

 

 

 

 

 

 

 

 

 

 

 

 

몰운대 자갈마당의 여러 모습 : 몰운대 자갈마당은 태종대 자갈마당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인적이 없어 조용하게 가족들이나 연인들이 바다를 보면 생각에 잠길 수도 있고, 가볍게 먹거리를 가져 왔으면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바다의 파도 소리가 울리며 깨끗한 바닷물이 들어 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곳이다.

 

 

 

길을 따라 걷다가 땅이 파인 곳을 보았는데 나름대로 괜찮아 보였다.

 

 

갈맷길 안내도

 

 

 

 

 

 

몰운대 길을 따라 돌면서 앞 바다에 펼쳐져 있는 양식장 부표와 등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이름 모르는 새

 

 

줄을 매어 놓은 다리 위의 아내

 

 

화사하게 핀 진달래

 

 

 

 

등대와 등대 그리고 섬...

 

 

 

 

 

 

 

 

 

 

몰운대 안에 있는 '화손대'의 아름다운 모습 : 넓게 펼쳐진 바닷가의 암반이 칼로 잘라 놓은 듯이 갈라져 있으며, 무슨 육식 동룰의 발자국 같은 것이 화석처럼 남아 있다. 태종대에 있는 공룡의 발자국 같은게.......

 

 

 

화손대에서 관리 사무소를 지나 가는 길

 

 

 몰운대는 부산 시민들에게는 제법 알려져 있으나 부산의 서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한바퀴를 돌아 보는 시간도 빠르면 두시간 정도 천천이 걸어도 세시간 정도로 적당하다.

 

 다대포 해수욕장을 옆에 끼고 있어서 분잡할 것 같으나 아주 조용한 곳이다.

 

 부산을 찾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해운대만 찾지 말고 조금 한적하지만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이 몰운대 같은 곳을 찾아 보기 바란다. 특히 이 몰운대는 바로 옆에 다대포 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해운대보다 더 좋은 곳이다.

 

 낙동강이 굽이 굽이 흘러 마지막 종착지가 이 부산 사하구이다. 낙동강물과 해류가 부딪혀서 모래톱을 만든다. 지금은 낙동강하구언 때문에 강물이 예전과 같이 흐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강물은 흐르고 바다는 밀물과 썰물로 움직인다.

 

 다대포 앞 바다에는 우리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모래톱이 만들어지고 있다.

 

 자연의 경이로운 현상이다.

 

이 모래톱을 구경하는 것도 다른 즐거움이다.

 

 사족 : 사실 몰운대의 해넘이 광경은 절경이다. 바다와 강이 마주치는 곳에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 감탄을 한다.

 언젠가는 이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겠다.

 부산을 찾아오는 분들은 이 해넘이를 구경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