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서해랑길 53코스(새창이다리 - 증석교 - 회현초등학교 - 백석버스정류장 - 외당마을버스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53코스는 새창이다리를 출발하여 느긋하게 아름다운 가을의 만경강 풍경을 즐기며 만경강 강안을 걸어가 증석교를 지나고 백석버스정류장을 지나 군산으로 들어가 외당마을버스정류장에서 끝이 나는 19.6km의 길이다.

 

53코스 안내판

 

53코스 시작점 알림표(처음 보는 시작점 표시다.)

 

여러 가지의 안내문

 

 새창이다리를 다 건너오니 여기에는 더 많은 안내문이 서 있다.

새창이 다리 이야기, 구 만경대교 역사 이야기, 새창이 연꽃 마당 이야기 등의 안내판이 서 있다. 그 중에서 구 만경대교 역사 이야기를 보면 193384일 동아일보 기사를 인용하고 있다.

 

 새창이다리를 지나 도로를 조금 따라 가니 만경강 강안으로 걷는 길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강안을 따라 긴 길을 가게 한다.  52코스에서는 만경강 옆을 걸어왔지만 제방이 가로 막아 만경강을 볼 수가 없었는데 여기에서부터는 만경강을 걷게 한다.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강안을 혼자서 호젓하게 걸으며 가을 햇살에 빛나는 강물과 억새들 그리고 갈대들, 만경강의 흐름이 빗어내는 사구들 모두가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도 머리에도 각인되는 것 같았다. 아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마음의 여유로움을 즐기는 것이 여행의 참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이 여유를 즐기면서 강안을 걸었다.

 

 만경강은 전북 완주의 원등산에서 발원하여 호남평야의 중심부인 가르며 서해로 흐르는 강으로 길이 74의 비교적 짧은 강이다. 충적평야 위를 흐르는 전형적인 곡류하천으로 하구에서 48떨어진 삼례부근까지 대조(大潮)시 하천수위가 상승하는 감조하천이다.

 ‘만경강이란 이름은 만경현(萬頃縣)에서 비롯된다. 만경의 ()’자는 백만이랑이란 뜻으로 넓은 들을 뜻하며, 만경강은 만경현으로 흐르는데서 유래되었다. 만경강의 본래 이름은 신창진(新倉津)으로 조선시대까지 사용해오다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하며,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하류는 신창진, 상류는 안천(雁川, 현재의 고산천)과 남천(南川, 현재의 삼천천과 전주천)라고 적혀 있다.

 

연꽃 마당 표지석

 

도로 통행을 막아 놓았다.

 

만경강의 여러 풍경

 

이정표

 

 

 

 만경강을 지나 다시 넓은 만경들판과 마을을 지나니 군산으로 들어선다. 첫머리에 제법 작은 산이 나오고 크게 보이는 호수가 나타난다. 청암산과 군산호수다.

   

 군산시 옥산면에 있는 청암산은 해발 117m로 구릉성 산지이다. 이산은 해발 100m 내외의 저산성 산지와 충적 평야로 이루어져 있는 금성 산지에 해당된다. 북쪽으로 이어진 금성산과 함께 청암산은 군산 저수지, 또는 옥산 저수지로 불리는 제2 수원지를 품고 있다.

 청암산은 조선시대 이전 푸른산이란 의미의 취암(翠岩)산으로 불리다 일제강점기 청암(靑岩)산으로 명칭이 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멀리 보이는 군산호수

 

전북천리길 표지

 

 전라북도의 길을 걸으면 전북천리길이라는 표지를 자주 보게 된다. 전북 1,000리길은 14개 시군 44개 길이 있으며, 전라북도 명품길을 산들길, 해안길, 강변길, 호수길로 나누고 있다.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숲이 우거진 길을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군산도보행 길인 군산 구불길 중 4개코스(구불4길 구슬뫼길, 구불5길 물빛길, 구불6-1 탁류길, 구불8길 고군산길)가 포함되어 있다.

 

 군산호수 둘레길은 청암산 품에 안긴 군산호수공원의 수변산책로를 말한다. 예전에는 옥산저수지라고 불렀는데 회현면 주민들의 반대로 지금은 군산호수로 이름을 변경하여 공원으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군산호수공원 일대는 오래 동안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되어 왔다. 수변산책로 주변은 보존 가치가 높은 다양한 습지식생환경으로 야생 동식물의 중요한 서식처이기도 하다. 둘레길을 걸어가야 아름다운 대나무 숲과 호반의 멋진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군산호수공원을 돌아 나오는 길에 억새 숲으로 은빛 장관을 연출한다.

 

밀림 깉이 우거진 대숲

 

군산호수의 여러 풍경

 

 군산호수를 돌아 나오니 억새가 활짝 피어 나부끼는 곳이 있다. 하얀 억새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보면 정녕 가을이라는 느낌을 느끼게 한다.

 

억새밭

 

호수공원 입구의 모습

 

 

 

 호수공원을 지나서 군산시의 외곽을 걸어가니 방송에서 자주 보던 백석교회의 표지가 보이고 그 길을 따라 계속 가니 당북초등학교가 나오고 외당사거리에 도착하여 이 코스는 끝이 난다.,

 

 외당사거리에는 숙박업소가 없어 사전에 조사해 둔 곳을 찾아가려니 버스편이 좀 늦고 드물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군산시청 부근에 숙박업소가 엄청나게 밀접해 있는 곳으로 가서 숙박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내일을 기약한다.

 

서해랑길 52코스(심포항 - 망해사 - 진봉면사무소 - 만경낙조전망대 - 새창이다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52코스는 심포항에서 출발하여 언덕을 넘어 망해사에서 바다를 보고 길을 가면 엄청난 김제습지가 나온다. 그 습지를 빙 돌아나가서 진봉면사무소를 지나 만경강을 따라가면 만경낙조전망대가 나오고 계속 길을 가서 새창이다리를 건너서 끝이 나는 18.4km의 길이다.

 

52코스 안내판

 

 어제 저녁에 이 심포에 도착하여 시간도 있고 저녁도 먹기 위해서 심포항 해안을 잠시 걷다가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잔 마시고 나와서 음식점을 보니 뜻밖에 중국음식점이 있어 오랜만에 그 집에 들어가서 짬뽕을 한 그릇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길을 떠났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서해와 만나는 지점에 조성된 심포항은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 규모가 꽤 컸던 포구였으나 현재는 새만금간척지조성사업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끝나면서 이곳은 사실 바다로서의 운명을 다했다. 새만금방조제로 갇힌 거대한 호수로 변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백합 생산의 60%를 차지하던 어항이었으나, 새만금사업으로 어업이 거의 중단되었다. 2019년 이후부터는 민물 조개인 재첩을 수확하여 "새만금 재첩"으로 판매하고 있다. 어민들의 치열한 생존공간이었던 갯벌은 요즘 체험학습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근처에 망해사가 있는데, 해거름녘 풍경이 일품이다.

 

심포항의 모습

 

김제시 표지

 

 아침에 해안에 나 있는 도로를 따라 조금 가니 진봉산으로 올라가게 한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서 동쪽을 보니 저 멀리서 해가 떠오르는 풍경이 보인다. 어디에서든지 해가 떠오르는 풍경은 멋있다.

 

 

진봉산을 올라가 잠깐 내려가니 진봉망해대라는 전망대가 있다.

 

 진봉망해대(進鳳望海臺)는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뒷산인 나지막한 진봉산(進鳳山, 72.2m)에 있는 3층 규모의 전망대로, 서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멀리 바다 풍경과 만경평야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진봉망해대는 남서쪽의 봉화산에서 시작하여 북동 방향으로 진봉산, 국사봉, 나성산으로 이어지는 진봉반도 북쪽의 산줄기에 있다. 북쪽은 만경강 하구에 해당하며, 군산시가 위치한다. 이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는 서해 바다의 풍경은 일품이다.

 

 진봉망해대에서 보는 사방 풍경

 

진봉망해대

 

 진봉망해대에서 아름다운 아침의 경치를 구경하고 산을 내려오니 망해사가 나타난다.

 

 진봉산 고개 넘어 깎은 듯이 세워진 기암괴석의 벼랑 위에 망망대해를 내려다보며 서서, 만경강 하류 서해에 접하여 멀리 고군산 열도를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는 망해사는 오랜 역사에 걸맞지 않게 규모가 초라한 편이다. 전하는 바로는 이곳은 본시 섬이었다 하여 642년에 부설거사가 사찰을 개창하여 수도하다가 입적하신 곳이라 하며, 그 후 754년에 당나라의 중 중도법사(일명 통장화상)가 중창하였으나 조선 시대 억불 정책으로 거의 폐허가 되었고 1609년에 진묵 대사(震默大師)가 중창하였다. 진묵 대사는 망해사에 머물면서 많은 이적을 남겼다고 하며 오늘날까지 널리 전승되고 있다. 그 후 여러 번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해의 섬들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에 있고, 서해의 일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여 망해사라 하였다고 한다.

 

 망해사에 있는 수령 약 400년의 팽나무 아래에는 1999년 가을에 세운 매향비(埋香碑)가 있다. 매향이란 1000년 뒤에 꺼낼 것을 기약하며 바닷물과 계곡수가 만나는 곳에 향나무를 묻어 복을 빌고 미륵불이 출연하기를 기원하는 불교 의식이며, 매향비는 그 기원과 향을 묻은 자리를 기록한 비석이다.

 

망해사

 

 이곳에서 망해사 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코스가 잘못되었다는 경고가 들린다. 지도를 보니 망해사 반대쪽으로 길을 가야 한다. 그래서 다시 길을 잡아 조금 가니 갯벌은 아닌 것 같은 습지가 펼쳐진다. 이곳에 이런 습지가 있었다니. 깜짝 놀랐다. 습지라면 잘 가꾸어 놓은 순천만이 대표적인데 이곳은 아직 사람의 손이 가미되지 안아 자연의 멋이 그대로 보였다. 이 길이 새만금바람길이라는 곳으로 습지 가에 제대로 난 길이 없어 그냥 자연의 길을 대부분 걷는 길이었다. 너무 낭만적인 길이다. 누구든지 한번쯤은 가 보면 좋을 것이다. 

 

새만금 바람길(전북천리길) 표지

 

 

 한 폭의 그림같이 느껴지는 습지를 계속 걸어가니 전선포 표지가 나온다.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포구 전선포(戰船浦)는 옛날에는 지금의 해군기지와 같은 군항(軍港)으로서, 고려 후기에는 왜구와 접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만경강 입구에 위치해 있어 전라도를 적으로부터 지켜내는 요새의 역할을 하였으나, 1920년대 일본인들이 간척 사업으로 만든 전선포 제방으로 인해 일부는 농경지가 되고 일부는 해안이 되어 전선이 정박했던 포구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다. 지금은 전선포라는 작은 팻말을 세워 둔 것이 전부이다. 현재 전선포에는 습지 뒤에 10여 가구가 모여 있는 한적한 농어촌 전선포 마을이 있다. 남쪽에는 간척지 평야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으며, 북쪽에는 만경강을 사이로 군산시 대야들이 보인다

 

전선포 표지

 

김제 습지의 아름다운 풍경들

 

진봉방조제 표지

 

 습지를 벗어나 제방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만경강을 옆에 끼고 김제평야의 들판을 걸어가니 만경낙조전망대가 나온다. 하지만 나는 발걸음을 전망대로 가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내가 지나는 시간이 낙조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제 들판

 

새만금 광역 탐방로 안내판

 

강가의 갈대와 억새

 

 

 

 계속 길을 가니 이름도 재미있는 새창이다리 표지가 나온다. 새창이다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멘트 다리라고 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평야다. 그리고 이 넓은 들에서 나는 쌀은 양과 맛에서 최고라고 알려졌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제일 먼저 한 일이 김제의 질 좋은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빼앗은 쌀을 보관할 창고를 새로 지은 곳이 이름 그대로 새로 지은 창고가 있는 곳이라는 지금의 신창마을이다.

그리고 그 창고에 쌓아둔 쌀을 실어간 항구가 군산이어서, 일제강점기의 군산은 북적거리는 풍요의 항구였다. 그런데 신창과 군산을 가로막는 교통상의 장애가 있었으니 바로 만경강이었다. 그래서 일제가 교통상의 장애를 해소하려고 서둘러 놓은 다리가 구 만경대교 혹은 지역말로 사창이다리, 새챙이다리라고 불리는 다리다. 새챙이다리, 사창이다리라는 명칭은 오랜 연원을 가진 강 연안의 거점이자 강의 이름인 신창진(新倉津)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하면 속칭, ‘새챙이다리라는 지역이름은 바로 배 나루인 신창진을 대체하고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다리의 줄임말로 자연스럽게 그리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새창이다리는 김제의 쌀을 군산항으로 실어가기 위한 다리로 우리나라 농민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했던 다리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다리가 아직도 끄떡없이 버티고 서 있다.

 

 새창이다리 입구에 들어서면 다리 입구에 아치를 만들어 새창이 다리라고 써여 있는데 다리 난간에 새겨진 다리 이름은 글자가 마모되어 잘 보이지도 않는 만경교라고 쓰여 있다. 그 옆에 풍요의 강, 만경강 이야기라는 입간판이 하나 서 있다.

 

이 다리는 지금은 붕괴 위험이 있어 자동차 통행을 금지하고 있으며 사람만 걸어서 건너가도록 허용하고 있다. 나무를 심은 커다란 돌 화분으로 차가 못 들어가게 막아놓은 새창이다리를 건너기 시작한다. 유유자적하게 편한 마음으로 한가롭게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김제의 관광명소를 소개하는 사진이 다리 양쪽 옆에 걸려 있다. 그중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수류성당이다. 내가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예전에 본 영화 <보리울의 여름>의 촬영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시사회에서 배우 차인표씨에게 사인을 받은 기억도 있다. 나는 추억을 살리면서 이 다리를 건너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에 곡식을 수탈당하고 이 다리를 건너가던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새창이다리와 그 주변 풍경

 

 새창이다리를 건너니 다리 입구에서 이 코스가 끝이난다.

 

 그늘에 앉아 잠시 쉬고 있으니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사람이 나에게 길을 묻는다. 하지만 나도 나그네인지라 갈을 알 수가 없다. 단지 내가 지도에서 본 것을 설명해 주고 쉬다가 다음 코스로 발을 옮긴다.

 

서해랑길 51코스(동진강석천휴게소 - 알콩쌀콩들녘체험관 - 성덕우체국 - 봉화산 -심포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51코스는 동진강석천휴게소를 출발하여 이름도 아름다운 알콩쌀콩들을 지나서 성덕우체국 주변에 가면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을 지나길을 걸어 나지막한 봉화산으로 올라가 산을 넘으면 심포항이 나타나고 여기서 끝이 나는 23.4km의 긴 길이다.

 

51코스 안내판

 

 석천휴게소라고 명명이 되어 있어 먹을거리나 음료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도착하니 황량한 벌판이다. 아마 휴게소를 운영하기 위해서 건물을 지었는지 완공이 되지 않아 퇴락한 건물만 보이고 인적이라고는 전혀 없다. 다행히 쉴 정자는 있어 앉아서 요기를 잠깐 하고 동진강을 따라 길을 떠났다.

 

석천휴게소라는 이름의 폐허같은 건물들

 

장독과 호박의 정겨운 풍경

 

 길을 가면 아주 넓은 들판이 나온다. 동진강 옆의 들판이 이름도 특이한 '알콩쌀콩들판'이다. 쌀과 콩의 전국 최대 주산지인 동진강 권역에서 알찬 콩과 쌀이 나온다는 의미를 뜻하는 알콩쌀콩 들판은 쌀과 콩이 튀어나오는 듯한 모습으로 생동감 넘치는 마을과 넓은 들판을 뜻한다.

 

알콩쌀콩들

 

조그마한 배수 갑문

 

 

 우리나라 콩의 최대 산지라는 이름이 허명이 아니게 들판에는 콩을 심어 수확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태까지는 콩을 이렇게 대량으로 심는 곳을 보지 못했기에 조금은 생소하였다. 이 들판을 걸어가니 성덕면이라는 표지가 보이고 길을 왼쪽으로 틀어서 나가니 아래의 한국기독교순교사적지라는 설명판이 있다.

 

남포 어린이집

 

 어린이 집을 지나 길을 조금 가니 시골 길을 걸으면서 좀처럼 보지 못했던 슈퍼가 보이고 식당이 있다. 지도에 의하면 성덕반점이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중국음식점인가 오인을 했는데 가까이 가니 문을 닫아 놓은 것 같았다.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먹을 곳과 잘 곳을 검색하여 거기에 맞추어 걷고, 이번 여정에서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려고 생각했는데 약간 난감했다. 그래도 문을 열어보니 다행히 문이 열리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리에 앉으니 주문도 받지 않고 그냥 돼지김치찌개를 가져다준다. 전혀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게 집에서 밥을 먹듯이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먹는 도중에 아마 이 근방에서 공사를 하는 사람들인지 서넛이 들어와 점심을 먹는다. 정말 편안하게 집에서 밥을 먹듯이 맛있게 포식을 하였다. 아마 서해랑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은 이 잡에서 한 끼를 해결하고 가는지 주인아주머니가 길손들을 잘 알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와 여러 이야기를 하고 쉬다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점심을 해결한 성덕반점

 

식당 앞의 슈퍼

 

넓게 펼쳐진 김제평야

 

 

 넓고 넓은 김제평야를 보면서 논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면서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는 이 김제평야에서만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었고 그 때 이 지방을 지나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넓은 들을 보던 생각이 났다 .들판을 지나고 거전마을을 지나니 봉화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봉화산(烽火山)은 김제시의 진봉면 심포리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는 85m이며, 남서쪽에 거전마을이 위치하고, 북동쪽에 심포항(深浦港)이 위치한다. 서해를 바라보는 봉화산(烽火山) 정상에 봉화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보이는데 정상부에 봉수대의 흔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헬기장으로 사용하면서 거의 없어졌다. 봉수대는 고려시대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봉화산의 봉수대가 조선시대에 이르자 일반 백성에게 피해를 입힌다 하여 계화도로 옮겼다는 설이 있다.

 

봉화산 숲길 안내도

 

 봉화산 숲길 안내도가 있는 곳에서 봉화산으로 올라가려니 길을 안내하는 리본도 보이지 않고 GPS에 나오는 방향에는 길이 없다. 아마도 여름이 지나면서 잡풀이 우거져 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잡풀을 헤치고 가면서 멀리 보니 리본이 보였다. 그래서 길이 아닌 언덕으로 잡풀과 숲을 헤치고 리본이 있는 곳에 도착하여 길을 걸었다. 길을 걸으면서 여름이 지나면서 잡풀이 우거져 길을 찾을 수 없는 곳이 숱하게 많이 보았다. 코리아둘레길 지킴이들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너무 무신경한 것 같아 아쉽게 생각이 되었다.

 

봉화산 올라가는 길에서 보는 김제평야

 

봉화산 봉수대터

 

봉수대 옆에 있는 새만금 바람길 안내도

 

 봉화산을 내려와 심포항으로 가니 주변에 공사가 한창이다.항구에 도착하기 전에 공사판을 지나니 항구 입구에서 이 코스는 끝이 난다.

 

심포항 입구의 표지

 

 짧지 않은 이 길에서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도 맛보았고 넓게 펼쳐진 김제평야에서는 풍요로움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숙박을 할 예정이었기에 미리 아침에 전화를 해 둔 모텔을 찾아가서 몸을 씻고 나와 저녁을 먹고 내일을 기약하며 쉰다.

 

서해랑길 50코스(부안군청 - 신흥버스정류장 - 고마농촌테마공원 - 창동경로당 - 동진강석천휴게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50코스는 부안군청 앞을 출발하여 도로를 따라 가다가 언덕을 넘어 다시 도로를 따라가서 또 농촌 길을 걸어가면 고마농촌테마파크가 나오고, 테마파크의 고마제를 우회하고 저수지 위의 테크를 통과하여 농촌 길을 계속 가서 만나는 동진대교를 지나 동진강석천휴게소까지 가는 11.1km의 짧은 길이다.

 

50코스 안내판

 

 아침 일찍 숙소를 출발하여 부안군청 앞에 도착하여 오늘의 여정을 시작한다. 부안군청 앞에서 큰 도로를 따라 제법 걸어가서 부안역사문화관이라는 작은 건물이 나온다. 어떤 의미가 있는 건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역사문화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 초라했다. 계속 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니 석정문학관이 나온다.

 

부안군청

 

부안역사문화관

 

사람도 차도 없는 아침 거리

 

석정문학관 표지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신석정의 고택이 나온다. 이 집의 주인이었던 신석정(辛夕汀)은 반속적(反俗的)이며 자연성을 고조한 동양적 낭만주의에 입각한 시를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부안 출신의 시인으로 본명은 신석정(辛錫正). 아호는 석정(夕汀, 釋靜, 石汀) 외에 석지영(石志永), 호성(胡星), 소적(蘇笛)을 쓰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는 신석정 시인의 시가 입시에도 자주 나오기 때문에 자주 언급이 되는 시인이다.

 그는 부안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향리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그의 시작활동은 1924419일자 조선일보에 소적이라는 필명으로 기우는 해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 1931시문학지 동인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표작으로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꽃덤불>, <들길에 서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등이 있다.

 김기림은 그를 현대문명의 잡답(雜踏)을 멀리 피한 곳에 한 개의 유토피아를 흠모하는 목가적 시인이라 평가하였다.

 

 신석정고택이라는 집은 부안군 부안읍에 있는 시인 신석정과 관련된 주택으로 1993년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신석정은 은행나무, 벽오동나무, 자귀나무, 측백나무로 울타리를 두른 이곳에서 시상(詩想)을 다듬으며 창작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신석정이 시인으로서 꿈과 청춘을 키우며 첫시집 촛불과 제2시집슬픈목가를 탄생시킨 곳이다.

 신석정이 이 집을 마련한 것은 1935년이다. 그는 시문학 동인이 되어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하였으나 어머님의 부음을 받고 귀향하였다. 그 후 이 집을 마련하여 분가하였으며 스스로 청구원(靑丘園)이라 이름지었다. 1952년 전주시 노송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신석정이 이 집에서 살았다.

 원래는 초가 3칸이었으나 4칸의 목조기와집으로 개수하였다.

 

고택 주변에는 석정 문학관이 함께 조성되어 있다.

 

신석정고택과 그의 시비

 

석정문학관

 

언덕으로 올라가기 전의 별장과 같은 집들

 

 

 언덕을 넘어 길을 따라 조금 가니 제법 큰 저수지가 나온다. 고마제라고 알려져 있는 동고저수지다.

 부안군 동진면 내기리에 있는 대규모 저수지로 고마제, 고마지, 동고지라고도 한다. 고마 지구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농업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저수지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19581230일 완공되었다. 제방은 길이 746m, 높이 8.5m, 계획수심 6.2m으로 제법 큰 저수지다. 주위가 한적하고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어 주말이면 가족 단위의 낚시인파가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저수지 주변에 농촌 관광농원, 녹지 공원, 수변 테마 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저수지 전경

 

지금은 피어 있지 않은 연꽃군락지

 

고마지구농촌테마공원 안내판

 

고마저수지에 조성된 농촌테마공원은 자연과 문화, 사회자원을 토대로 다양한 형태의 테마공원으로 조성되어 지역특산물인 뽕 관련 산업 홍보와 부족한 지역주민 휴양시설 확보 등 농촌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못줄다리 설명

 

못줄다리

 

못줄다리와 고마제 전경

 

솟대

 

저수지 주변

 

 

 고마제의 풍경을 즐기면서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테크 길을 걷기도 하고 저수지 둘레를 따라 걷기도 하며 저수지를 벗어나서 누렇게 익어 있는 벼를 보면서 마음의 풍요를 느끼며 길을 가니 내가 어릴 적에 보던 떡방앗간도 보이고 전형적인 농촌마을이 있다. 이 마을들을 지나 가니 하천이라기보다는 강의 모습이 보인다. 동진강이다.

 

 동진강(東津江)은 정읍시 산외면의 상두산(象頭山, 575m)에서 발원하여 김제평야를 지나 새만금 사업지구로를 지나 서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유로연장이 44.7인 짧은 강이다.

동진강(東津江)이라는 명칭에서 동진(東津)은 옛 부안 고을의 동쪽에 있던 동진 나루를 뜻한다. 동진의 별칭인 통진(通津)은 황해로 통하는 나루터를 뜻하는 이름으로 풀이된다.

 동진강의 하류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인 김제평야와 계화도 간척지의 드넓은 농경지가 있다. 동진강 유역은 대부분 평지여서 비옥한 농경지를 이루고 있다.

 

 

 동진강을 가로지르는 동진대교를 건너니 동진강석천휴게소가 나오고 여기서 50코스는 끝이 난다.

 

 잠시 쉬다가 다음 코스로 걸음을 옮긴다.

서해랑길 49코스(부안신재생에너지테미파크 - 구암리지석묘군 - 신월경로당 - 매창공원 -부안군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49코스는 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를 출발하여 오랜만에 바다를 벗어나 육지 내륙 길을 걸어 간다. 농촌의 길을 여유롭게 걸어가면 뜻밖의 구암리지석묘가 나오고, 계속 길을 가면 부안읍으로 들어간다. 읍길을 따라가면 매창공원이 나오고 공원을 지나 부안군청 앞에서 끝이 나는 19.2km의 길이다.

 

49코스 안내판

 

인적이 없는 마을

 

 이 날은 안개가 엄청 자욱하게 끼여서 새로운 세상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몇 년째 길을 걷고 있는데 이런 안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안개 자욱한 들판을 지나고 언덕길을 지나니 구암리라는 동네가 나온다.

 

안개 낀 들판

 

 구암리에 들어가니 지석묘공원이 나온다.

 

 지석묘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무덤으로서 고인돌이라고도 하며, 책상처럼 세운 북방식과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인 남방식이 있다. 한반도에는 전 세계에 있는 지석묘의 40%가 넘는 40,000여 기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 중 20,000여 기가 호남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호남지역의 지석묘는 바둑판식(남방식) 지석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구암리에는 고인돌이 총 13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10기만 남아있다. 대체로 자연암석을 떼어내 덮개돌로 사용한 바둑판식 지석묘로, 뚜껑돌이 큰 것은 길이가 6.35m, 너비 4.5m, 높이 70-100에 받침돌 8개를 돌아가며 세웠다. 보통 4개의 받침돌을 이용하는데 반해 8개의 받침돌을 돌려 다른 지역 고인돌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구암리지석묘군(龜岩支石墓群)1956년에 처음 조사되었고, 19631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처음에는 민가의 울타리 안에 있던 것으로 처음 조사할 때는 모두 13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현재 10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덮개돌의 모양이 타원형에 가깝고 가운데로 갈수록 두꺼워져서 거북이처럼 보인다. 거북이를 닮은 지석묘는 마을 사람들의 삶과 오랜 기간 함께 해왔으며 이로 인해 마을 이름도 구암리(龜巖里), 거북바위마을이라고 불리고 있다.

 

공원 입구의 팽나무

 

거북 모양의 지석묘

 

지석묘공원의 여러 모습

 

 지석묘를 구경하고 나오며 마을을 보니 아주 평화로운 마을이다. 구암리 지석묘군은 원래 가정집의 울타리 안에 있었다고 한다. 오래된 마을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돌담길과 시골집들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석묘와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지석묘 주변이 공원이 형성되면서 지석묘는 구암리 사람들과는 약간은 거리기 있는 느낌을 준다. 문화유산을 보호한다는 미명이겠지만 사람들과 문화유산이 함께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솔직하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지석묘를 보러오겠는가를 생각하니 마을 주민들이 이 지석묘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광경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가을 들판

 

거두어 놓은 콩

 

새모양의허수아비

 

 멀리 부안경찰서가 보인다. 이제부터 부안읍으로 들어선 것이다. 길을 따라 가니 길 이름이 매창로이다. 그리고 가로수가 내가 봄이 되면 꼭 아름답게 핀 꽃을 보러 가는 이팝나무다. 아! 봄에 이 거리를 걸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계속 길을 가면서 이 길이름에 대해 궁금해 하였다.

 

매창로 표지

 

이팝나무 가로수 길

 

부안생활문화센터 건물

 

 도로를 따라 제법 가니 부안이라는 표지가 보이고 공원이 나타난다. 이름이 매창공원이다. 조선시대의 기생이면서 문인이었던 매창을 생각하며 이곳이 매창의 고향인가하고 생각하다가 주변의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 물으니 이곳이 매창의 고향이고 옆에 매창의 묘가 있다가 가르쳐 주었다. 매창의 시를 엄청 이야기했으면서 매창의 고향인지를 몰랐다니 나도 참 모자라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조금 가니 매창을 기려서 만든 매창공원이 나온다.

 매창공원(梅窓公園)은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있는 부안 출신의 여류 시인이자 명기였던 이매창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이곳은 원래 공동묘지가 있었던 곳이었는데 도시가 확장되면서 묘를 이전하게 되었으나 매창을 사랑하는 지역민들의 반대로 이매창의 묘와 부안 출신 명창 이중선의 묘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1983824일 이매창 묘가 전라북도 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 전라북도 부안군이 매창의 묘가 있는 곳에 시문학 공원을 조성하였다. 2011년 매창 공원을 확장하는 기본 계획을 수립했고, 2013년 공원 조성 계획 수립을 완료하여 공사에 들어가 2019년 매창 사랑의 테마 공원, 매창 테마관과 부속 광장 등의 완공과 함께 공원 영역이 확대되며 부안의 중요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공원을 문화공간으로 만든 아주 좋은 예로 생각된다.

 

매창공원 표지석

 

이중선의 묘

 

 공원을 들어가니 입구에서 먼저 반기는 것이 이중선의 묘이다. 우리에게 이화중선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중선은 그렇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중선은 부안의 뛰어난 명창이었다.

 

 이중선(李中仙)은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 때 활약했던 판소리 여류명창으로 본관은 경주다. 당시에 추월만정, 사랑가로 가장 명성이 높았던 이화중선(李花中仙)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자기만의 독특하고 애절한 한이 서린 흥타령과 육자배기 가락을 구성지게 잘하여 한이 어린 민족의 소리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언니의 명성에 가려 크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하였으나 뛰어난 공력을 가진 명창이었다고 전해진다. 1932년 갓 30세를 넘긴 나이에 폐병으로 사망하였다.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매창공원에 묘소가 있으며, 19884월 국악인협회와 국악동호인들에 의해 새롭게 정비된 묘역에 돌비석이 세워졌다.

 

매창에 대한 허균의 글

 

매창의 시를 새긴 비

 

 이 돌비를 보고 조금 옆에 있는 매창의 묘를 찾아갔다.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은 조선 선조(宣祖) 때의 여류 시인으로 이름은 계생(癸生, 桂生) 또는 향금(香今)이라 했으며, 자는 천향(天香)이고 호는 매창(梅窓)이다. 전라북도 부안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 매창이 기생으로 살아간 것으로 보아 매창의 어머니는 부안현에 소속된 관비(官婢)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한테 글을 배워 시()에 뛰어났으며, 가무에도 소질이 있었고 특히 거문고를 잘 탔다고 한다.  황진이(黃眞伊)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의 명기(名妓)였고,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난 유희경(劉希慶), 허균(許筠), 이귀(李貴) 등과 교우가 깊었다. 1610년에 38세의 나이로 죽어서 매창뜸에 거문고와 함께 묻혔으며, 죽은 지 45년 만인 1655년 묘비를 세웠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사랑했던 촌은 유희경(村隱 劉希慶)이 서울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자 읊은 시조로 고등학교 때 대부분이 배웠던 작품이 있다.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져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1668에 개암사(開巖寺)에서 매창의 시 58편을 모아 매창집(梅窓集)을 펴내었다. 매창집은 현재 세권이 남아있는데 서울의 간송미술관에 두 권, 미국의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한 권이 보존되어 있으며, 1956년에 역시 부안이 고향인 시인 신석정이 최초로 대역한 매창집이 있다.

 매창의 묘제는 매년 음년 45일에 부풍율회 회원들에 의하여 지내지고 있다.

 

매창의 묘

 

 

 매창에 대한 여러 가지 소회를 생각하며 길을 돌아 공원 밖으로 나가니 바로 옆에 가을의 전령 국화전이 열리고 있다. 넓은 공원 부지에 형형색색의 모양으로 꾸며진 국화를 올 가을에 처음 접하는 것이다. 내가 꽃을 키우지는 못해도 보는 것을 좋아하여 곳곳에 꽃구경을 가는데 올해 가을에는 처음 보는 국화의 무리다.

 아름답게 피어 있는 국화를 보고 즐기며 공원을 돌아 나갔다.

 

국화가 피어 있는 모습

 

 국화전시를 하고 있는 곳을 돌아나가니 주변에 습지공원도 있고, 여러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 중 특이하게 황토길 운동장을 만들어 이곳 주민들이 그 황토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참 참신한 공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창의 시를 새긴 문

 

습지공원의 여러 모습

 

황토길 운동장

 

 이곳을 지나 부안읍내를 걸어가다가 보니 옆에 추어탕 집이 보인다. 무언가 포스가 느껴져 조금 늦었지만 점심을 먹으려고 들어가니 제법 알려진 집 같았다. 추어탕을 한 그릇 시켜서 맛있게 먹고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추어탕도 맛있었고 특히 이 집의 반찬 중에서 어리굴젓은 나에게는 아주 입맛에 맞는 맛있는 반찬이었다. 부안을 가는 사람에게 권할만한 집이다.

 

추어탕집

 

 추어탕집에서 조금 가니 서림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이제 이 서림공원을 통과하면 부안군청에 도착하는 것이다.

 서림공원은 부안 읍내 북쪽 성황산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부안군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산책코스이다.

이 서림공원과 임정유애비는 2016년에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국가산림문화자산이란 산림 생태, 경관, 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유형 또는 무형의 자산을 산림청이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서림공원의 서림이란 관아의 서쪽에 있는 숲이란 뜻으로 임정유애비는 숲과 정자를 가꾸었던 현감 조연명과 이필의의 공직을 치하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다.

 

울창한 서림공원 숲

 

서림공원 정자에서 보는 부안읍내

 

 

저 멀리 보이는 부안향교

 

 1414(태종 14)에 창건된 상소산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부안 향교는 조선시대 유림의 구심점으로 부안 지역의 교육과 교화의 중심이 되었던 곳으로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9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현재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만화루, 양사재, 동재, 서재 등과 입구에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고 대성전에는 5(五聖), 송조4(宋朝四賢), 우리나라 18(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연리목

 

서림공원의 매창시비

 

서림공원 안내도

 

 이 서림공원을 돌아나와 조금 내려가니 부안군청이 보이고 여기서 이 코스는 끝이 난다.

 

 이 코스에서는 해안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여러 흔적을 보는 길이라 더 의미있게 느껴졌다.

 

 이 부안군청에서 조금 길을 내려가 숙소를 정하고 오늘의 여정을 마쳤다.

 

서해랑길 48코스(변산해변버스정류장 - 새만금홍보관 - 해창쉼터 - 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48코스는 변산해변버스정류장이 출발점이라 두루누비에는 나오지만 출발점은 사랑의 낙조전망대이다. 이곳에서 출발하여 해안에서 조금 들어온 길을 따라 걸으며 새만금홍보관과 해창쉼터를 지나 부안신재생 에너지테마파크에 이르는 10.2km의 아주 짧은 길이다.

 

48코스 안내판

 

 전날에 변산해변에 도착하여 해넘이를 구경하고 숙박하고 아침 일찍부터 길을 떠났다. 숙소에서 제법 걸어 사랑의 낙조전망대에서 이 코스를 시작하여 해안도로를 따라 길을 가면 펜션단지가 나타난다.

 

변산의 해안

 

 도로를 따라 가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조그마한 길로 내려가 해안으로 가게 인도한다. 좁은 오솔길을 걸어가니 뜻밖에 패총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이 방면에 흥미가 많아 여러 패총을 직접 답사도 하고 파 보기도 하였기에 반가웠다. 그런데 이 패총은 내가 일반적으로 보았던 패총이라기보다 밭과 같은 모양을 띠고 있었다.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 있는 대항리패총(大項里貝塚)은 변산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약 1km 떨어진 합구미 마을 동쪽 산 밑 밭에 있다. 바닷가에 접한 밭이 파도에 깎여 낭떠러지를 이루자 지층이 드러나 1947년 발견되었다. 규모는 남북 약 14m, 동서 약 10m이며, 130cm 깊이의 암반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층위가 쌓여있다. 이 패총은 전라북도 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조개더미로 신석기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치는 대규모 유적이나 정식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의 정확한 성격은 알 수 없으나 서해안 지역의 패총문화와 신석기인의 생계와 어로활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대항리패총은 고고학적 자료로서 활용 가치가 있어 1981411일 전라북도의 기념물 제50호로 지정되어 보전하고 있다.

 

대항리패통으로 가는 이정표

 

패총 앞 바다

 

대항리패총의 모습

 

 

 대항리패총을 지나 그림같은 서해안의 아름다운 해안이 만들어내는 갯벌과 오밀조밀하게 빚어내는 해안을 즐기면서 제법 길을 가니 변산마실길 시작점이 나온다. 특별히 이름도 마실길이라 정감이 더 가는 길이다.

 

변산마실길 시작점 표지

 

변산마실길 안내판

 

부안변산마실길 66km의 시작점 부근

 

 저 밑에서부터 부안변산마실길을 거의 다 걸었는데 내가 걸은 코스는 반대로 걸어온 것이다. 원래는 여기서부터 아래로 가는 코스지만 서해랑길의 코스는 그 길을 꺼꾸로 걸어오는 길이니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곳에 아주 큰 고무신 모형이 돌로 만들어져 있다. 아마도 지난 날의 어려운 시절의 추억을 상기하면서 느긋하게 이 길을 걷자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살아온 시대를 상징하는 검정고무신 조형물을 보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이곳을 지나면 올해(2023년) 우리에게 좋지 않은 뉴스로 한 때를 장식했던 유명한 새만금이 시작된다. 아주 넓은 간척지로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아직 어떻게 사용될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이런 땅을 간척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길을 가니 먼저 새만금간척박물관이 나온다.

 

새만금 간척박물관

 

 박물관을 지나니 본격적으로 새만금의 넓은 벌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완전이 간척되지는 않은 흔적이 곳곳에 보이며 길게 뻗은 방조제 길도 보인다. 하지만 서해랑길은 방조제로 가지 않고 새만금을 우회하는 길이다.

 

 

 새만금 개발사업은 1960년대 말 심각한 가뭄과 세계적인 식량 파동을 계기로 안정적인 식량자급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새만금이라는 이름은 만경평야의 ""자와 김제평야의 ""자에 새롭게 확장한다는 뜻의 ""자를 덧붙여 만든 신조어로, 만경과 김제평야와 같은 옥토를 새로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새만금 사업은 세계 최장의 방조제 33.9Km를 축조하여 부안과 군산 앞 바다를 매립하는 엄청난 공사였다. 이 간척지에 경제와 산업, 관광을 아우르는 동북아 경제중심지를 건설할 계획이었는데 지금은 뜻대로 되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새만금방조제 표지석

 

 

 길을 따라 조금 가니 새만금홍보관이 나온다.

 

 새만금 홍보관은 우리나라의 기술력과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서해안 바다 위에 지어진 새로운 땅 새만금에서 앞으로 일구어 나갈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을 공유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는 곳이다. 또 자연과 인간의 어우러져 조화로운 삶을 일구어내는 곳을 희망하는 새만금 개발사업의 궁극적 모토를 내포하는 주제로, 개발중심의 도시형성이 아닌 지속가능한 친환경적 삶터의 개발을 지향함으로 알고 함께 살아갈 우리의 새 땅의 미래를 구상하여 알리고자 하는 곳이다.

새만금홍보관

 

간척지에 있는 장승

 

 

 길을 따라 가는데 10m 앞도 보이지 않게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앞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길을 따라 계속 가니 길가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아마도 올해에 이곳에서 개최된 세계 잼버리에 참가한 국가들의 국기인 듯했다.

 

 길을 따라 가니 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에 도착한다.

 

 20116월 세계 최장 33.9km의 새만금 방조제의 부안군 하서면에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를 조성하여, 고갈되지 않는 신재생에너지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진 곳이다.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는 21C 환경 보존과 녹생성장의 기틀아래 국제신재생에너지산업의 첨병역할을 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곳에 있는 연구소들은 세계 최첨단시험시설을 갖추고 기업의 신기술과 새로운 제품의 테스트를 매개로 대학, 과학자, 기업 개발자가 어우러져 신재생에너지 기술발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무슨 의미의 조형물인지???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를 통과하여 올라가니 경로단이 보이고 이 코스가 끝이 난다. 코스가 끝나는 지점에 쉼터가 있어 잠시 쉬면서 간단히 간식을 먹고 다음 길을 떠난다.

 

 이 코스는 아주 짧은 길이지만 굉장히 정감이 가는 곳이 많은 길이었다.

서해랑길 47코스(격포항 - 수성당 - 하섬전망대 - 변산해변버스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47코스는 격포항에서 시작하여 해안을 걸어가면 적벽강과 수성당이 나온다. 적벽강을 지나 해안을 따라 걸으며 서해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하섬전망대를 지나서 계속 해안을 따라 걸어 변산해변에 도착하는 13.9km의 길이다.

 

47코스 안내판

 

 격포항에서 조금 올라가 47코스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부안의 특식을 먹으려고 하니 역시 1인분은 팔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와서 회비빔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길을 떠났다.

 

멀리 보이는 적벽강

 

 조금 길을 따라가니 격포해수욕장이 나온다. 가을도 깊어가는 시간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장에 보인다. 한가로이 해변을 거니는 모습이 여유롭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격포해수욕장은 백사장의 길이는 약 500m로 길지 않은 아담한 해안이지만 모래가 곱고 한적하여 서해에서 손꼽는 해수욕장이다. 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아 여름에는 피서객들이 해수욕을 위해 많이 찾는다. 격포해변의 왼쪽에는 채석강이 위치하고, 오른쪽에는 사자바위를 중심으로 약 2km에 이르는 적벽강이 있다.

 

격포해수욕장 주변 건물

 

격포해수욕장 풍경

 

 

 격포해수욕장을 지나 길을 따라 가면 수성당으로 가는 길 표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퇴락한 건물 사이의 길도 아닌 곳으로 가야 하는데 리본의 표시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잠시 헤매고 있는데 이곳 주민으로 보이는 지나오는 사람들이 수성당으로 가는가를 물어 그렇다고 하니 이 길로 가면 된다고 하여 가니 리본이 보였다. 조금은 아쉬운 길 안내였다.

 

수성당을 가리키는 이정표

 

 수성당 주변에는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가 제법 넓게 피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큰 감흥을 주지 않았다. 경남 하동의 북천 코스모스 축제에 여러 번 다녀왔기에 어지간한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곳은 그저 지나갈 뿐이다.

 이 수성당 옆에는 바로 적벽강이다. 그래서 수성당으로 올라가기 전에 적벽강을 먼저 구경하였다. 사실 우리는 부안 격포에서 채석강은 잘 알지만 적벽강은 채석강만큼은 모른다. 하지만 적벽강은 매우 아름답다.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채석강보다 더 아름답다는 사람들도 많다.

 

 변산해변의 절경을 빚어내고 있는 채석강 반대편에 있는 적벽강(赤壁江)은 격포리에 있는 경승지로 197642일 전라북도기념물로 지정되었고, 20041117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부안 격포리 후박나무 군락이 있는 연안으로부터 수성당(水城堂)이 있는 용두산(龍頭山)을 돌아 대마골여울굴을 감도는 층암절벽과 암반으로 이어지는 2의 지역이다. 적벽강(赤壁江)은 중국 송나라 문장가 소동파(蘇東坡)가 노닐던 중국의 적벽강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채석강과 같이 지형적 강이 아니고 중국의 특정 지역과 관련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죽막(竹幕)마을을 경계로 북쪽이 적벽강이고, 남쪽이 격포해수욕장을 포함한 채석강이다.

 적벽강은 붉은색을 띤 바위와 절벽으로 해안이 이루어져 있어 맑은 물에 붉은색이 영롱하며, 특히 석양 무렵 햇빛을 받아 바위가 진홍색으로 물들 때 장관을 이룬다. 후박나무 군락 앞 해안의 암반층에 형성된 석물상 하나하나가 만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적벽강에는 숱한 전설이 얽혀 있다. 이곳에 서 있는 수성당(水城堂)은 수성할머니를 바다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수성당 주변의 코스모스

 

적벽강의 풍경

 

멀리 보이는 격포항 일대

 

죽막마을 유래 설명판

 

 적벽강을 구경하다가 수성당이 있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격포항에서 채석강의 바닷가를 따라 북쪽으로 3킬로미터 정도 가면 죽막 마을이 있고 죽막 마을에 가면 적벽강 절벽위에 수성당(水聖堂/水城堂)이 있다.

 이곳은 칠산바다를 관장하는 개양할미를 모신 해신당으로 해마다 음력 114일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여신은 키가 매우 커서 굽나무 깨신을 신고 서해바다를 걸어 다니며 깊은 곳은 메우고 위험한 곳은 표시를 하여 어부들을 보호하고 풍랑을 다스려 고기가 잘 잡히게 해준다고 한다. 또 수성할머니는 딸 여덟을 낳아 가까운 섬에 딸을 한 명씩 시집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의 수심(水深)을 재어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해 준다고 한다. 예전에 부르던 명칭은 구랑사(九嫏祠)였으나 어느 날 수성당으로 명칭이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당 안에 무신도(巫神圖)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불타 없어졌다.

 이 수성당 주변은 성스러운 곳으로 함부로 접근이 금지되었으며, 절벽 주변에는 동백나무와 시누대가 무성하다. 당집의 개축에 관한 기록은 국립전주박물관의 조사에 의하면, 수성당의 상량(上樑)에 쓰인 승정기원후사갑자조선순조4, 18046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철종 원년(1850) 이전부터 당집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고종 원년(1864)3차 및 1940년에 4차로 중건되었다. 이후 1973년에 다시 중건되었으며, 근래에 보수되었다.

 

수성당의 모습

 

적벽강 주변의 명승지 소개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순직연구원 추모비

 

저곳에 가고 싶다(고군산군도, 하섬)소개 안내판

 

멀리 보이는 고군산군도

 

하섬

 

 

 멀리 보인는 고군산군도와 여러 섬과 하섬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길을 가면 하섬전망대에 도착한다.

 

 하섬전망대는 '물 위에 연꽃이 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하섬(荷島), 그 신비의 섬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하섬은 새우를 닮아 새우 하() 자를 써서 하섬(蝦島)이라고도 부르며, 한 달에 두 번 바닷길이 열리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매월 음력 1일과 15일 전후, 간조 때 하섬 전망대에 오르면 시원하게 펼쳐진 하늘과 약 2km에 이르는 신비의 바닷길을 볼 수 있다. 전망대의 지대가 높아 하늘이 잘 보이고 서해안 3대 낙조라 불리는 외변산의 해넘이도 감상할 수 있는 명소이다.

 

하섬전망대 설명판

 

멀리 보이는 하섬

 

하섬전망대에서 고사포해수욕장까지 가는 바다 풍경

 

 해안을 따라 경치를 즐기며 걸어가면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해루질을 하는 고사포해수욕장 (故沙浦海水浴場) 이 나온다.

 

 고사포해수욕장은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2km에 이르는 백사장과 방풍을 위해 심어 놓은 약 300m의 넓고 긴 송림이 장관을 이룬다. 일대의 해수욕장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울창한 송림은 야영지로서 적격이다. 서해의 다른 해수욕장보다 물이 맑고 깨끗하며 모래도 곱고 부드럽다.

 해수욕장 앞에는 새우 모양을 닮았다 하여 하()섬으로 불리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매월 음력 보름이나 그믐쯤에는 해수욕장에서 이곳까지 사람들이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약 2km의 바닷길이 열린다. 이때에는 섬까지 걸어갈 수 있으며, 조개나 낙지·해삼 등을 잡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고사포해수욕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캐는지 잡는지는 모르겠으나 바닷가 갯벌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이 동네 어른에게 조개가 많이 나오는지를 물으니 예전과는 달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하니 어려서 저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해 주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사포해수욕장에서 해루질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해루질은 원래는 밤에 얕은 바다에서 맨손으로 어패류를 잡는 일을 말하는 충남, 전라 방언이었으나 블로그, 카페, 유튜브 등을 통해 널리 쓰이게 되면서 본 의미에서 보다 확장되어 시간, 도구를 가리지 않고 바다에서 수렵, 채취하는 행위 전체를 의미하는 단어로 흔히 쓰인다.

 전문적인 도구 없이도 맨손으로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어 예로부터 어민들과 바닷가를 방문하는 어촌 관광객이 재미로 많이 해 왔다. 요즈음에는 많은 지자체에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갯벌체험, 자연체험 등의 관광상품을 개발하며 상품 내에 해루질을 포함시키기도 하여 해루질이 광범위하게 보급되었지만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어촌마을에 갈등의 요소가 되고 있다.

 

 

고사포해수욕장

 

옛날의 해안초소

 

고사포해수욕장에서 변산해수욕장 가는 도중의 풍경

 

 고사포해수욕장을 지나 제법 가면 유명한 변산해수욕장이 나온다. 서해안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불리는 변산해수욕장은 이제 국립공원의 일부로 발전하고 있다.

 

 부안읍에서 남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변산반도에 자리잡은 변산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해수욕장의 하나로 1933년에 개장되었다. 대천과 만리포 해수욕장과 함께 백사청송(白沙靑松)을 자랑하는 서해안 3대 해수욕장의 하나로, 희고 고운 모래로 된 2에 이르는 긴 사빈(砂濱)과 배후의 푸른 소나무 숲과 더불어 천혜의 절경을 이룬다.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으며, 수온도 적당해 가족단위 피서지로 적합하다. 썰물시 1정도 물이 빠지는 갯벌에서는 조개 채취를 하며 갯벌체험을 즐길 수 있다.

 변산반도는 삼림, 계곡, 폭포, 사찰, 해안절경이 한데 어우러져 천연의 관광지를 이루어다가, 198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변산해수욕장은 노을이 머무는 사계절 관광지로 각광을 받으며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변산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내가 미리 예정한 시간이었다. 이번 여정을 이곳에서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예정했기에 주변의 경관을 주마간산으로 보면서 종착점까지 걸어갔다. 다음 여정을 이곳에서 시작해야 하겠기에 다음 여정의 시작할 대때조금 일찍 와서 이곳에서 숙박하면서 자세히 돌아볼 생각이었다.

 종착점까지 가서 다시 돌아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너무나 교통편도 불확실하고 먼 길이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불러 부안읍까지 가서 거기에서 버스를 타고 전주로 가서 부산으로 가는 심야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서 일상을 보내다가 다시 여정을 시작하려고 변산해수욕장에 오후 일찍 도착했다. 변산의 해넘이를 보려는 목적으로 숙소를 정하고 종착점인 사랑의 낙조공원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저번에 미처 보지 못한 여러 조형물과 경치를 즐기면서 낙조공원에 올라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해넘이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변산해수욕장의 여러 풍경

 

 사랑의 낙조공원으로 올라가는 나무테크가 공사 중이었다. 저번에는 공사 중이 아니었는데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이렇게 상황이 변하였다. 하는 수 없이 주변을 살쳐보니 코스를 조금 벗어나는 우회로가 보인다. 옆길을  따라 걸으니 우회하는 길에도 볼거리가 많았다.

 

공사 중인 나무테크

 

우회로의 여러 모습

 

 길을 우회하여 사랑의 낙조공원에 올라가 해넘이 시간을 기다리며 주변도 돌아보고 정자에 올라 주변 경치를 조망하며 사진을 찍고 기다리니 드디어 해가 지기 시작한다. 정자에서 조금 내려가 해넘이를 보기가 가징 좋다고 마련해 놓은 소공원에서 해넘이를 구경한다. 내가 길을 걸으며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는 많은 해넘이 풍경을  보았지만 어디에서든지 보는 해넘이는 장엄하다.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흥이 다르겠지만 바다를 물들이며 지는 해는 어떠한 풍경도 따르지 못하는 장엄함이 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무언가가 가슴에 가득 차 오름을 느낄 것이다.

 

사랑의 낙조공원에서 보는 주변 풍경

 

해넘이의 여러 광경

 

 해넘이를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보는 변산의 해변에는 불이 밝혀져 있다. 형형색색으로 밝힌 변산의 모습은 낮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사람들이 낮보다 밤에 전등에 불이 들어오고 그 광경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변산의 밤 풍경

 

 해넘이를 보고 돌아오면서 식당에 둘러 저녁을 먹고 주인장과 이야기를 좀 하였다. 내가 생각보다 해넘이의 광경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히면서 내가 본 여러 곳의 해넘이를 이야기하니 12월 31일에 해넘이가 장관이며 축제를 연다고 하면서 그 때 꼭 와서 자기 집에 둘러달라고 한다.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식당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편의점에서 내일을 위한 먹거리를 장만하고 숙소로 돌아가 내일부터의 길 떠남을 위해 편안히 쉬었다. 운이 좋게 숙소에서 창을 통해 변산의 밤바다가 모두 보이는 곳이었다.

서해랑길 46코스(도정리모항 - 해양수련원 - 궁항전라좌수영 - 격포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46코스는 도정리모항을 출발하여 계속 해안을 걸어 해양수련원을 지나 궁항전라좌수영을 거쳐서 격포항에 이르는 10.6km의 비교적 짧은 해안길이다.

 

46코스 안내판

 

모항해수욕장 주차장의 큰 나무

 

모항해수욕장의 펜션

 

 

 모항해수욕장을 지나 아름다운 해변을 계속 걸어가니 큰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 건물들 사이로 가니 정자가 있어 잠시 쉬어 가기로 하고 배낭을 벗어 놓고 땀을 식히며 가지고 다니는 음식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였다. 해안이나 농촌을 걸을 때는 음식점을 보기가 어려워 항상 배낭에 적당량의 음식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이 불편하지만 하루 이틀 겪은 일이 아니니 이제는 무신경하다.

 

 이 건물이 무엇이가 하니 전라북도학생해양수련원이다.

 부안군 변산면 변산로에 위치한 전라북도학생해양수련원(全羅北道學生海洋修鍊院)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격포의 솔섬 앞 바다를 배경으로, 전라북도 학생들을 해양 훈련을 통해 국가관을 확립하고, 개척정신을 기르며 건전한 청소년을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1998623일 개원하였다. 이 학생수련원 건물을 돌아 해변으로 내려가면 여러 건물들이 서 있고 학생 수련의 장소로 이용하는 해변이 펼쳐진다.

 

학생수련원 주변의 바다 풍경

 

 학생수련원을 지나 상록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해안과 해안을 둘러싸고 있는 언덕길을 번갈아 가면서 나오는데 이 길에서 보는 바다의 경치는 아름답다. 그 바다에는 조그마한 섬이 보이는데 바로 솔섬이다. 이곳의 해넘이 광경이 그렇게도 아름답다고 하지만 나는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이곳을 걸어 지나간다.

 

상록해수욕장 가는 길의 풍경

 

이정표

 

농협수련원

 

 이곳을 지나 해안을 따라 계속 가니 꼭 활과 같이 구부러진 해변을 가진 마을이 보인다. 길을 가며 보니 마을 이름이 '궁항마을'이다. 해변의 모양을 따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궁항마을 설명판

 

궁항마을의 이정표

 

궁항마을의 풍경

 

 마을을 지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길을 가니 전라좌수영 세트장이 나온다.

 변산반도의 상록해수욕장과 격포항 사이에 있는 작은 어촌마을인 궁항에 영화 명량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전라좌수영과 바닷가 어촌마을이 이 세트장에 재현되어 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넓은 부지에 총 21동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감상하는 낙조 풍경이 일품이라고 한다.

 사실 이 변산반도 일대는 전라좌수영이 아닌 전라우수영 관할이었던 곳이라고 하는데 서해안도로의 접근성과 기존 세트장이 연관되어 궁항에 전라좌수영 세트장이 건립되었다고 한다.

 

세트장 전경

 

 세트장에서 언덕을 넘어가면 멀리 격포항이 보인다.

 격포는 격포해수욕장과 채석강이 외변산의 진수를 선보이는 곳이다.

 이 채석강과 격포에 대해서는 내가 예전에 쓴 나의 블로그의 글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https://lhg5412.tistory.com/91, 격포 채석강에 가을이 들다.

 

격포항

 

 격포항 바로 옆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채석강이 있다. 아주 예전에는 그냥 채석강 주변에서 구경을 하였으나 요즈음에는 물이 들어오는 물길을 따라 나무 테크를 설치하여 더 자세히 이 채석강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채석강은 강()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런데 왜 강()이라는 명칭이 붙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이곳의 풍경이 이태백이 강물에 뜬 달그림자를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彩石江)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중생대 백악기(7,000만 년 전)의 퇴적암 성층으로 오랜 시간의 흔적을 날것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퇴적된 절벽은 마치 책이나 판자를 수천 겹으로 포갠 듯한 특이한 형상의 단애다. 채석강은 물때를 잘 맞춰야 물이 빠졌을 때 찾아야 바위 위를 거닐며 채석강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

 

채석강의 모습

 

 채석강을 돌아나가니 격포항이 나온다. 여러 번 왔던 곳이지만 다시 새롭게 보인다.

 해산물이 풍부하고 해넘이가 아름다운 관광어항인 격포항은 변산반도국립공원의 맨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격포항은 주변의 위도, 고군산군도, 홍도 등 서해안의 섬들과 연계된 해상교통의 중심지다. 서해의 감칠 맛 나는 수산물이 많이 나오는 곳으로, 봄 주꾸미 산란철과 가을 전어 철에는 차를 주차할 공간이 없을 정도로 전국 각지에서 온 미식가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오래 전부터 개발이 진행되어 현재 격포항에는 채석강교, 분수광장, 채석강 광장, 낚시터 및 전망대, 해안산책 보도교, 유람선과 관공선 전용부두, 조명타워가 조성되었으며 방파제도 리모델링이 완료되었다. 그리고 각종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서 싱싱한 해산물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격포항의 여러 모습

 

 이 격포항에서 46코스는 끝이 난다. 아름다운 해안을 걸으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걸은 것 같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음 코스로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