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서해랑길 40코스(법성리버스정류장 - 홍농버스터미널 - 영광승마장입구 - 고리포 - 구시포해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40코스는 법성리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하여 농촌 마을길을 걸어 홍농버스터미널을 지나고 계속 가을 농촌의 여유로움을 즐기며 고리포에 도착한다. 여기서 해안을 따라 조금 걸으면 저녁 해넘이의 노을이 아름다운 구시포해변에서 끝이 나는 13.7km의 비교적 짧은 길이다.

 

40코스 안내판

 

 40코스의 시작이 법성포 중심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약 한 달전에 법성포에 왔다가 이곳의 유명한 굴비정식을 먹지 못해 아쉽게 생각하며 돌아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굴비정식을 먹기로 마음속으로 깊게 명심하였다. 비교적 내가 식탐이 있는 편이라 어느 지방이든지 그 지방의 명품 음식을 꼭 먹어야만 분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래서 아는 굴비 파는 집에 가서 식당을 추천받아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법성포의 명품 굴비 다리 조형물

 

 굴비는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것으로 참조기로 만든 영광굴비가 유명하다. 특히 산란을 위해 3월 중순 영광 법성포 칠산 앞바다를 지나는 참조기를 쓴 굴비를 영광굴비라 하며 가장 유명하다.

 전통적인 영광굴비는 조기의 아가미를 헤치고 조름을 떼어낸 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다음, 아가미 속에 가득히 소금을 넣고 생선 몸 전체에 소금을 뿌려 항아리에 담아 이틀쯤 절인다. 절인 조기를 꺼내어 보에 싸서 하루쯤 눌러 놓았다가 채반에 널어 빳빳해질 때까지 말린다. (식품과학기술대사전에서) 영광굴비는 섶간이라 하여 1년 넘게 보관해서 간수가 완전히 빠진 천일염으로 조기를 켜켜이 재는 것이 특징이다.

 

 사람들은 굴비를 연상하면 법성포 굴비를 떠올리지만 이제는 법성포 인근의 칠산 바다에서 조기가 더 이상 살지 않고, 대신 추자도 인근에 조기 어장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법성포 굴비는 추자도산 조기를 많이 사용하여 만들어진다. 더구나 중국산 조기로 굴비를 만드는 일이 허다하여 국내산 조기는 많이 귀하다. 그리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굴비를 제조하는 집은 거의 없다. 그래도 영광에서 조기가 건조되니 '여전히 영광굴비는 영광굴비다'라는 주장이 있다.

 굴비라는 어원은 고려 인종 때 난을 일으킨 이자겸이 정주(지금의 법성포)로 귀양을 왔다가 해풍에 말린 조기를 먹어보고 그 맛이 뛰어나 임금에게 진상하였다 한다. 그는 말린 조기를 보내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의 '굴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때부터 영광굴비는 수라상에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예전에는 "돈 실로 가세. 돈 실로 가세. 영광 법성으로 돈 실로 가세."라는 뱃노래를 부를 만큼 참조기 어업이 성행했었고 엄청난 양의 조기가 잡혔다고 하지만 이제는 참조기가 그만큼 잡히지 않아 모양이 비슷한 수조기를 이용하여 속여 파는 일도 제법 있다.

 

굴비 가게가 쭉 늘어서 있는 거리

 

 굴비거리를 지나가서 가리켜준 식당을 찾아가니 굴비정식은 1인분은 팔지 않고 2인분이상으로만 주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왜 그러는지는 익히 알고 있다. 상차림이 2인분이 기본이니 1인분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그 지방의 특산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 항상 일어났다. 내가 전국을 걸어다니며 느끼는 현상인데 좀 합리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 요즈음은 홀로 여행하는 사람도 많은데 언제까지 홀로 음식을 먹으려는 사람은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가 의심스러웠다. 내가 작년에 남파랑길을 걸으며 강진에 갔을 때 음식점에서 혼자라니 상차림비를 좀 더 주면 1인분을 주겠다 하여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글을 썼던 일이 있다. 그래서 주인장에게 상차림비를 더 줄테니 1인분을 주문하자 하니 굉장히 난감해 하면서 안된다고 하였다. 굴비정식은 먹어야 하겠기에 혼자서 2인분을 시켜서 배불리 먹고 남은 굴비를 포장해 달라고 하니 기꺼이 포장을 해 준다. 이런 점은 또 굉장히 친절하였다. 어찌 되었던 맛있게 굴비정식을 먹었으니 만족하였다.

 사실은 이 굴비정식에 나온 굴비구이나 굴비매운탕ㄷ도 맛있었지만 간장새우절임장과 간장꽃게장, 양념꽃게장이 더 맛있었다. 내가 게장과 새우장을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이것을 먹기 위해서라도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밥을 배불리 먹고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니 주인장이 자기는 강화도 출신이라면서 내가 걷는 종착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한잔 마시고 충분히 쉬고 나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굴비정식 상차림

 

내가 점심을 먹은 식당

 

 

 법성포를 벗어나 농촌의 길을 걸어가니 홍농읍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1985년 읍으로 승격한 영광군의 서북단 맨 끝에 위치한 홍농읍(弘農邑)은 북동쪽으로 전북 고창군 공음면(孔音面), 남쪽으로 법성면(法聖面), 북쪽으로 고창군 상하면(上下面)에 접하고, 서쪽으로 서해에 면해 있으며 구암천이 남쪽 경계를 지나 서해로 유입된다.. 서부의 금정산(264m) 일대는 200m 내외의 산지를 이루며,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100m 이하의 저평한 산지와 평지를 이루고 있다. 계마리에 영광 원자력발전소와 가마미 해수욕장이 있다.

 

홍농읍의 여러 모습

 

 

 홍농읍거리를 걸어가니 영광승마장 입구가 나오고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지나가며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기고 있다. 제22회 홍농읍민의 날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많은 관광버스들이 주변에 보이기도 한다. 가을걷이를 앞두고 읍민들이 모여 친목도 도모하며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홍농읍민의 날 모습

 

이정표

 

가을의 풍경

 

 홍농읍을 지나 농촌을 조금 지나면 전라남도를 벗어나 전라북도로 들어선다. 기니긴 남도를 드디어 다 걸은 것이다. 구시포가는 길의 이정표도 나오고 유명한 풍천장어집을 가리키는 안내판도 보이니 고창으로 들어선 것은 확실했다.

 

구시포해수욕장 가는 이정표

 

 

 구시포를 가는 길에 조그마하지만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고 조용하게 아주 친근해 보이는 어항이 나타난다. 고리포다.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에 있는 고리포(古里浦)는 조선 시대 봉화를 올렸던 고리포 봉수대가 있었던 포구로 유명하며 봉군들이 머물렀던 마을로 추정된다. 봉수대는 포구 북동쪽 600m 지점의 안산의 정상에 있었다고 한다.

현 고창 지역의 포구 중 유일하게 그 위치가 이동되지 않고 원형이 유지되고 있는 포구로 모래사장에 있는 고리포 포구는 10척의 소형 선박들이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안쪽의 해변에는 1.3정도에 걸쳐 양어장이 건설되어 있다.

 

고리포의 풍경

 

 고리포에서 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구시포다. 그런데 고개이름이 주씨고개다. 무슨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알지를 못한다.

 

 

 조금 가니 송림이 나온다. 바로 40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구시포 송림이다. 이 송림을 지나 해안을 따라 조금 가면 종착점이 나온다.

 

구시포 송림

 

구시포해수욕장 전경

 

구시포해변의 고창 그네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에 있는 구시포(九市浦)는 조선 전기부터 확인되는 옛 포구로 한자로 구시포(仇時浦)로도 표기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3월에 법성포를 출발한 세곡 선단이 첫 번째 정박하는 곳이었으나 조운 제도가 폐지된 1895년 이후에는 마을 어항으로서의 기능만 유지해오고 있다. 구시포의 원래 이름은 새나리불영(새 바닷가의 불같이 일어날 마을)이었으나 현재 이름은 아홉 개의 도시, 혹은 아홉 개의 저자를 먹여 살릴 마을이란 뜻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구시포로 바뀌었다.

 조선 시대에는 구시포 마을의 앞이 포구였고 당시에는 구시포 마을 안쪽에 있는 섬포(蟾浦)마을까지 바다였고 조수가 구시포 마을 앞 좁은 물목을 통하여 섬포까지 왕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구시포 마을 앞을 막는 간척으로 인하여 섬포는 바닷물이 차단되어 1955년 구시포 염전으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으며, 구시포는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해양수산부에서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 100'에 뽑혔으며, 울창한 송림과 넓고 단단한 모래사장을 갖춘 구시포 해수욕장과 해수 찜이 잘 알려져 있다.

 

 구시포에는 각종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음식점과 편의점뿐만 아니라 숙박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많았다. 그러나 숙박시설에 전화를 하니 방이 없다는 답이 많이 돌아왔다. 순간적으로 조금 당황하였으나 어느 펜션에 전화를 거니 방이 있다고 한다. 주인장과 이야기를 해 보니 혼자서 숙박할 수 있는 시설은 드물고 대부분이 단체나 가족 단위로 숙박을 하는 시설이라 하였고 더구나 주말이라 방이 없다고 하였다.

 

 숙소에 배낭을 풀고 시간이 되어 구시포의 해넘이를 구경하러 나갔다. 해넘이 풍경을 보는 것은 여행을 하면서 수시로 보는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그 장엄하고 신비로움에 감탄을 한다.

 

구시포의 해넘이

 

 해넘이를 구경하고 편의점에 가서 다음 날 아침에 먹을 빵과 음료수 등을 구입하고 오랜만에 맥주를 한 캔 마시기로 하고 맥주와 주전부리를 구입하였다. 내가 길을 걸으면서 술은 마시지 않기로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거의 지키고 있지만 이런 날은 조금의 알콜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품을 구입하고 숙소롤 돌아와 한가로이 쉬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