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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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유감
  2. 아들에게 쓰는 편지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유감

鶴의 주저리 주저리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유감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최근 어느 원로 법조인이 은퇴를 하고 대형 로펌에 가지 않고 아내의 조그마한 가게일을 도우며 지내다가 대형 로펌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말로 언론에 보도된 말이다. 언론은 그 법조인의 깨끗함을 칭송하면서 이 제목을 달았지만 나는 이 말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 말은 원래 《맹자(孟子)》양혜왕(梁惠王) 편 상(上)에 나오는 말이다. 어느 날 제(濟)나라 선왕(宣王)이 정치에 대하여 묻자, 백성들이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지내면 왕도의 길은 자연히 열리게 된다며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경제적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도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뜻있는 선비만 가능한 일입니다. 일반 백성에 이르러서는 경제적 안정이 없으면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부정하고 허황되어 이미 어찌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들이 죄를 범한 후에 법으로 그들을 처벌한다는 것은 곧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과 같습니다(無恒産而有恒心者 唯士爲能 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 苟無恒心 放僻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然後 從而刑之 是罔民也). 그리고는 이어서 “어떻게 어진 임금이 백성들을 그물질할 수 있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항산무항심 [無恒産無恒心] (두산백과)

 

 이 말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경구로 나도 항상 이말을 조금 변형하여 잘 사용하는 글귀이다. 나는 이 말을 ‘유항산(有恒産)이면 유항심(有恒心)이요, 유항심(有恒心)이면 유항산(有恒産)이다.’라고 말하면서 필부인 내가 그저 마음이 변하지 않을 정도의 재물을 얻기를 바라고, 또 변하지 않을 마음을 가지기를 항상 기대하고 살고 있다.

 

 맹자에 따르면 뜻있는 선비는 ‘무항산(無恒産)이라도 유항심(有恒心)’이라야 한다. 일개 시정의 필부가 아니라면 항상 자신이 가지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고위직을 지내고 존경받는 어른으로 알려진 분께서 자신의 소신을 버리고 필부와 같이 행동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며 현세에는 제대로 된 선비를 찾을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재물을 가진다는 것이 욕되거나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니다. 자신의 정당한 노력으로 떳떳하게 얻은 재물은 누구에게라도 찬사를 받을 일이다. 도덕적으로 아니 법률적으로라도 비난을 받지 않는 재물을 가지는 것을 누가 헐뜯고 욕할 것이랴? 누구든지 재물에 대한 욕심은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의 노력으로 얻지 못하는 재물이기에 많이 가진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도 또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질투심이라 이것 또한 욕할 것이 없다.

 

나는 일찍부터 재물을 모으는 일에는 소질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재물에 대한 욕심은 일찍 버리고 내 마음이 편안하게 살아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부동산 투기에 미친 듯이 내달릴 때도 나는 오연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집이란 내가 거주하기에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살기에 편한 곳에서 그저 오래 살아왔다. 내가 결혼한지가 30년이 넘었는데도 이사를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면 모두들 놀란다. 이 한 번도 자식들이 생기고 성장함에 집이 작아서 좀 큰집으로 이사를 한 것뿐이다. 집을 사고팔면서 재물을 더 가진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이와 같은 생각으로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내 아내의 생각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아내 역시 재물에 대한 욕심은 크게 없이 편안히 자신의 삶을 살기를 열망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나는 아내에게 큰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미안함도 가지고 있다.

 

나는 재물에 대해서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면 내가 아무리 욕심을 내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자그마한 재물에 만족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나의 인생관이었다. 내가 흔히 말하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이 자가용을 탈 때 나는 택시라도 탈 수 있으면 만족하고, 다름 사람이 택시를 탈 때 나는 버스라도 탈 수 있으면 만족하고, 남이 버스를 탈 때 나는 걸을 수 있는 건강이 있으면 만족한다.” 그만큼 재물에 욕심이 없었다는 말이다. 하늘이 내게 재물을 얻을 수 있는 재능을 주었으면 재물을 얻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노력으로 내가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으면 그도 족한 것이라 생각하고 평안하게 마음을 먹고 살았다.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재물을 모으기보다 자연을 즐기며 여러 곳을 여행하며 즐겁게 보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 왔다. 이제 이순(耳順)의 나이에 이르러 지난 날을 돌이켜 보아도 후회는 없다.

 

이제 사회의 저명한 인사가 소박한 삶을 벗어나면서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는 말을 하고 있음을 보고 나는 생각한다. 유항심(有恒心)이면 유항산(有恒産)이 아닐까? 굽히지 않는 마음을 가지면 재물에 미혹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재물이 먼저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야 되지 않을까? 내가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재물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물론 필부이니 내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물(남보다 더 잘 살고, 호화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보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편안하게 살 수 있을 정도)만 있으면 족하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많은 생각이 든다. 공자님이 “나물밥 먹고 맹물 마시며 팔을 굽혀 베고 자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다. 옳지 못한 부나 귀는 내게 있어서 뜬구름과 같다(飯疎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고 말씀하셨다. 부니 귀니 하는 것은 떠가는 구름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다. 비록 성인들의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오늘도 성현의 말씀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살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수오재기’에서 말했듯이 나를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아주 중요하다. 나를 잃어버리기 쉬운 시절에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이 기사를 보고 다시 생각해 본다. 비록 필부고 세속에 찌든 인생이지만 나를 계속 지키고 마음을 바로 가지고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유항심(有恒心)이면 무항산(無恒産)이라도 좋은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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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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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에게


 새해가 시작된 지가 어제 같은데 어느 새 파릇한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계절이 되었다.

밤은 점차 깊어 가고, 온 사위는 고요한 가운데 매일 매일 바쁘게 열성적으로 생활하느라  아직 귀가하지 않은 너를 기다리며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쓴다.

 매일 바쁘게 살다 보니 아침에 잠간 얼굴을 마주하며 밥을 먹는 것 외에 속 깊은 이야기를 해 본지도 제법 오래 되었구나. 아버지는 항상 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저번에 가족이 모두 모여, 형님과 동생 그리고 너와 어머니까지 모두 미래의 희망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나, 아버지는 사실 많은 걱정을 하였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가 항상 가지는 걱정이었겠지?

 물론 아버지 세대와 20대인 너희들 세대가 생각이 일치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아버지 세대는 너무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세대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직장이나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너희들의 생각에는 아버지의 사고가 너무 현실에 안주한다고 생각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도 항상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도 역시 지나간 세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열심인 나의 둘째 아들아!


 아버지가 너에게 가지고 있는 걱정이 있다. 아버지는 너를 볼 때마다 아버지의 과거 모습을 보는 두려움을 가진다. 너의 총명함과 잠재적 능력을 아버지는 인정하고 믿고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충분하게 지원해 주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총명함과 뛰어난 능력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겸손함과 끊임없는 노력과 항상 진취적인 도전 정신이라 생각한다. 아버지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볼 때마다 항상 가지는 아쉬움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의식과 노력이 부족했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현실에 적당히 안주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뒤떨어지지 않고, 내가 속한 조직 내에서도 뒤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기에 다른 세계에 대한 도전이라든가, 새로운 것에 대해 절실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삶이 아버지가 더 발전하지 못하고 현 상태에 머무르게 했다고 생각하니 지금 많은 아쉬움이 있다.

 물론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가지는 아쉬움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 항상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 가 보았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 그러나 내가 선택한 길에서 목표를 잃지 않고, 별로 부족하거나 후회도 하지 않으면서도 젊은 시절에 좀 더 진취적이고 도전의식을 가졌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아들아!


보통의 아버지와 마찬 가지로 아버지도 너에게 가지고 있던 기대는 매우 컸다. 어렸을 때부터 많은 면에서 좋은 능력을 발휘했던 너를 보고 아버지는 항상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면서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다른 아이들이 모두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한다고 할 때도 아버지는 자신이 있었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도 너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너는 기대대로 학교만 열심히 다니면서도 아주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2, 3학년 때 사춘기의 방황을 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상당히 고민을 했다. 과연 내 아들이 잠시의 방황으로 끝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제아가 될 것인가? 그러나 아버지는 너를 믿었다. 천성이 아주 착하고 남에게 모진 행동을 못하는 너의 품성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중학교의 생활이 너에게 무엇인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너에게 이야기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나아질 것이라고…….  그 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다시 자신의 본 모습을 찾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역시 우리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기뻤다.

 고등학교 3년을 열심히 노력한 뒤 아주 좋은 성적을 얻었으나 운명의 가혹함으로 가족 모두가 바라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차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때 아버지의 아픔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최상의 성적이었다고 자부했는데 선택의 잘못으로 실패했고, 더구나 그 선택이 아버지의 의견이었다고 생각할 때 아버지는 너에게 너무 큰 죄를 지은 것 같아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다행히 네가 자신의 아픔을 삭이고 대학입시의 실패(?)를 대학에서 만회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진학하여 열심히 생활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이제 나의 판단보다는 너의 판단을 더 중시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대학에 진학하여 열심히 공부하면서 다방면에 걸쳐 활약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는 너를 보고 아버지는 다시 너에게 자신을 가지게 되었다. 일시적인 패배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너 자신을 다시 단련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남아로서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대학에 복학한 너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한 반면, 두려움과 슬픔도 있다.


 아버지가 너를 살펴볼 때, 너는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너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네가 살아가기에는 너무 좁은 세계라 생각한다. 너는 더 큰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픔을 겪으면서 더 큰 세상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버지보다 훨씬 똑똑한 아들에게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듣기 싫어할지언정. 그러나 아들아 너는 이해해야 한다. 어린 아이도 아닌 군 복무까지 마친 아들에게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아버지의 논리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아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나이가 많아도 부모의 눈에는 항상 걱정의 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버지는 우리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인생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든지 항상 도전하고, 성취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기를 바란다.

지금의 위치에 만족하지 말고 더 큰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과거의 시간을 반추해 볼 때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더 큰 미련이 있다면 잘못된 삶을 살아 온  것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바람은 있을지라도 걸어온 길에 대해 후회는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선택하고 걸어온 길이 최상의 길이어야 한다. 아니 최상의 길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내가 선택한 길에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항상 새로운 길이 내 앞에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아, 기분이 나쁘다든지 무엇인가 일이 잘 안되어 좌절하는 시간은 잠시이어야 한다.

인간인 이상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은 누구든지 가지는 감정이다. 그러나 감정에 자신이 좌우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네가 살아가는 동안에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짜증이 나거나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만 기분이 나빠야 한다. 그 일이 너의 뜻대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면 짜증과 절망감은 스트레스만 쌓게 할 뿐이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라.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라. 사람과 사람이 좋은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나의 재산이다. 또 사람을 대할 때는 항상 겸손해라. 비굴하게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만을 내세우지 말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항상 귀를 열어 놓고 입은 열어 놓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항상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무조건으로 줄줄 알아야 나도 남에게 얻을 수가 있다. 내가 다 쓰고 남은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쓸 것을 쓰지 않고 남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항상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명심해라.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아들아!


 이 모든 아버지의 걱정이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바란다. 아버지보다 훨씬 뛰어난 아들에게 아버지가 가지는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우리 아들이 보여주리라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다.


 그래도 아들아 나는 아버지란다.


 항상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이글을 쓴다.


  아버지가


 2010년 3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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