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서해랑길 54코스(외당마을버스정류장 - 은파유원지 - 월명호수 - 근대쉼터 - 진포해양테마공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54코스는 외당마을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군산시의 외곽에서 시내를 통과하는 길이다. 군산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은파유원지와 월명호수를 지나면 군산의 근대문화유산거리가 나오고 이곳을 지나 진포해양테마공원에서 끝이 나는 11.65km의 비교적 짧고 평탄한 길이다.

 

54코스 안내판

 

 아침에 숙소에서 출발하여 외당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버스편을 기다리려니 시간이 오래 걸려 택시를 호출하여 가는데 기사님들도 이 외당버스정류장이라고는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당북초등학교 쪽으로 가자고 하여 중간에 내렸다.

 

버스정류장에서 약간의 언덕을 올라가니 제과, 제빵의 명인이라는 안영순의 집이 나온다. 이른 아침이라 빵을 팔지는 않고 있는 집을 지나 언덕을 넘으면 은파유원지의 호수가 펼쳐진다.

 

제과, 제빵의 명인 집

 

 군산시 나운동에 있는 은파호수공원(銀波湖水公園)으로 불리는 은파유원지(銀波遊園地)16세기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미제지(米堤池)’로 나타나 있는 오래된 저수지에 조성된 호수 공원이다. 은파라는 이름은 유원지의 햇살을 받은 물결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모습 때문에 지어졌다고 하지만 다른 설도 있다. 원래는 농업용 저수지로 조성되었던 곳이지만 1985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저수지 방죽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표시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선시대 이전에 쌓은 것으로 적혀 있다.

 입구 만남의 광장에는 군산 및 옥구 출신 독립유공자 충혼탑이 있고, 저수지 주변으로 6의 순환도로가 나 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물빛 다리는 길이 370m, 너비 3m의 보도 현수교로서 야간에는 조명으로 연출된 아름다운 빛을 비추어 휴식처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음악 분수는 은파의 특성과 이미지를 반영한 꽃잎 형태의 분수로 매회 20분씩 하루 8회 운영되고 있다.

 

은파유원지의 여러 모습

 

 이른 아침이라 아직은 사람이 드문 은파유원지를 돌아나와서 도로를 조금 걸으니 다시 높지 않은 산으로 올라가게 한다. 산길을 걸어가면서 '왜 산으로 가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조금 가니 밑에 터널이 있었다. 도로를 통과하지 못하여 산을 넘어가게 한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가니 이번에는 월명공원(호수공원)이 나온다. 어제 지나온 군산저수지부터 은파유원지, 월명호수로 계속 이어진다. 왜 이렇게 호수(저수지)가 많은 것인지 조금 이상하였다. 아마도 김제와 만경의 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서 옛날부터 만들어져야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길

 

 군산시 신흥동과 해망동에 걸쳐 있는 월명공원(月明公園)은 군산시의 상징인 월명산(月明山)을 비롯하여 주변의 여러 산으로 이어져 있다. 월명공원은 옛 도심에 위치한 시민의 안식처이자 관광지로서 산책로를 따라 공원으로 올라가면 군산 시가지와 서해 바다와 주변의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월명공원은 1906년 군산 각국 거류 지역의 명승지인 해망정 인근 약 3.3를 개발하여 일명 각국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각국이라는 단어를 떼어내고 군산공원이라고 불렀다. 1972년에는 해망동 수시탑에서 미룡동의 군산대 뒷산에 이르는 영역을 개발 제한 구역이자 공원 지역으로 지정하고 군산 공원월명공원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월명공원 안에는 1912년에 시민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제1수원지가 물안개를 뿜어내는 산 속의 호수(월명호수)로 변하여 산새와 작은 동물들이 목을 축이는 곳이 되었다.

 

 

 월명공원의 호수가에는 많은 군산 시민들이 나와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이름난 유원지가 아니라 동네 주민들에게 친근한 공원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었다. 대도시가 아닌 군산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는 공원이니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월명호수를 돌아나가니 계속 월명공원이 이어지고 있다. 약간의 산 언덕길을 계속 돌아나가는 공원길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월명공원의 여러 기념비들

 

 

 공원에서 내려오니 군산의 근대역사문화거리가 나타난다.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군산시간여행마을 먹거리타운이라는 표지다.

 

 군산은 구한 말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이주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전라북도와 충청남도라는 넓은 평야 지대를 배경으로 하고 금강과 서해안이 인접한 지리적 이점으로 지주와 상업 자본가들이 집중되며 도시의 기반 시설이 갖추어지기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군산 인근 지역에 설립된 일본인 농장들을 통해 생산된 미곡이 군산항에 집산되어 일본으로 반출되기 시작하였다. 군산 지역 자작농들은 일제의 정책과 일본 지주의 핍박으로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되었고군산역과 군산항에서 일용 노동자 및 하역 노동자로 살아가게 되었다.

1930년대 이후에는 기존의 철도, 도로, 항만 등의 재정비를 통해 전쟁에 필요한 식량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시설 확충이 이루어졌다.

 

 

 군산근대역사문화거리의 길목에 월명동성당이 있다. 오랜만에 보는 성당이라 안에 들어가 잠시 기도를 하려고 들어가니 평일 낮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미사에 참석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여 바깥에서 기도만 하고 잠시 보다가 그냥 나왔다.

 

 군산시 월명동에 있는 월명동성당(月明洞聖堂)은 천주교 전주 교구 소속으로 1960년 적산 가옥 연와제를 매입하여 성당과 사제관으로 개축하여 군산시 서북부 지역을 관할하다가, 인구 증가로 인해 주변의 여러 성당이 분리되었다. 구 시가지 일본인 거주 지역에 자리하고 있어서, 2012년 근대 시가지를 재현하는 군산시 근대 문화 추진 사업의 일환으로 성당 담쌓기 공사가 완공되어 근대 문화유산으로 한몫을 하고 있다.

 

월멍동성당

 

 이곳에서부터 군산의 근대역사문화거리가 쭉 계속된다. 군산시 원도심 월명동, 영화동 일원에 조성되어 있는 근대문화 거리는 원도심 지역의 근대문화 자원(근대 건축물)을 재조명해 근대 역사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지역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근대문화 역사거리는 일제강점기 역사의 현장을 보수·복원하여 그 시대 우리 선인이 받은 치욕의 고통과 아픔을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우리 후손이 잊지 않을 공간으로 재조명하여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근대문화 창조도시거리다.

 군산의 옛 도심은 18996월 조계지(외국인 거주 지역)로 설정된 후 근대기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구 조선은행 군산 지점,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 지점, 구 군산 세관 본관,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등 170여 채의 근대문화유산이 밀집돼 있다.

 

거리의 여러 모습

 

 이 거리를 걸으며 카페에 앉아 잠시 쉬면서 한적한 거리의 풍경을 한가로이 보다가 내가 이번 여정에서 군산에서 꼭 보려고 예정했던 '8월의 크리스마스'의 주 무대인 초원사진관으로 갔다. 서해랑길 코스에서는 좀 벗어나 있지만 꼭 보려는 마음이었기에 시간을 들여서 가니 친근한 사진관이 나온다.

 

 이 영화는 영화보기에 광적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나라 영회이기에 다소 장황하지만 네이버의 여러 글을 간추려서 여기에 소개한다.

 

 1998년에 개봉한 8월의 크리스마스는 한적한 소도시에서 초원사진관을 경영하는 정원(한석규)과 주차단속원 다림(심은하)의 사랑을 절제된 감정으로 잔잔하게 풀어내 평단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좋아하는 남자 친구 없어요?" 변두리 사진관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 정원(한석규)’은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이고 가족, 친구들과 담담한 이별을 준비하던 어느 날, 주차단속요원 '다림(심은하)'을 만나게 되고 차츰 평온했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저씨, 왜 나만 보면 웃어요?" 다림(심은하)은 밝고 씩씩하지만 무료한 일상에 지쳐가던 스무 살 주차 단속요원이다. '다림'은 단속차량 사진의 필름을 맡기기 위해 드나들던 사진관의 주인 '정원'에게 어느새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는데...

 

 어느 남자가 맞닥뜨리는 죽음의 과정을 다른 평범한 영화처럼 고통과 비극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정원과 다림이 만나고 헤어진, 여름과 겨울을 하나로 잇는, 삶과 죽음의 다름과 같음을 읽게 하는 의미로써 주목받았던 영화다.

 

 2013년에는 관객들이 뽑은 '다시 보고 싶은 명작' 1위에 올랐고, 같은 해 117일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복원, 재개봉되었다.

 

초원사진관의 외부와 내부 모습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관광객으로 이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웃고 즐기고 있었다. 또 젊은이들은 이 주변의 명소를 찾아다니며 스탬프를 찍어 확인을 받느라고 북적거리고 있었다. 한편의 영화가 엄청난 효과로 관광객을 끌어 모우고 있는 것이었다. 초원사진관에서 영화의 장면들을 보면서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보면서 볼 때마다 감동을 느끼던 생각이 났다.

 

초원사진관에서 발을 돌려 다시 서해랑길을 걸으니 근대건축물들이 많이 눈에 보안다. 물론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형태의 건물들이 예전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장미공연장 옆에는 채만식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이 세워져 있다. 군산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채만식(蔡萬植)1902년 대한제국 전라북도 임피군 군내면 동상리(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 극작가, 문학평론가, 수필가로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이다.

 1924조선문단에 단편 새길로를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카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초기의 작품 경향은 경향파 문학과 유사한 점이 있어 동반자 작가로 분류된다.

  대표작으로 중편 태평천하(1938)와 장편 탁류(1938)가 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공부는 뒷전이었고 제법 많은 소설을 읽었는데 그 때 <태평천하>와  <탁류>를 읽고 일제강점기의 군산의 모습을 상상했던 일이 생각났다.

 

채만식의 소설광장

 

군산 시간여행거리의 여러 모습

 

 

 

 군산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것이 이 여행의 목적이 아니라 서해랑길을 걷는 도중에 보는 군산의 모습이라 상세하게 설명은 하지 못하고 이 거리에서 중요한 건물 둘만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군산시 장미동에 있는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舊朝鮮銀行群山支店)1923년에 건립된 일제의 건물로 일제가 식민 지배를 위해 운영한 대표적인 금융시설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은행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상업 건축물로 사용되다가 근대 문화 중심 도시 조성 사업을 통해 전시 시설로 수리 및 보수하여 활용하고 있다.

채만식의 <탁류>에도 등장하는 은행으로, 해방 이후에도 한국은행, 한일은행 등 은행 건물로 쓰였다. 지금은 근대 건축관으로 군산의 근대건축물과 일제강점기 화폐, 역사 관련 유물을 전시한다.

 

 둘째로 군산근대역사박물관(群山近代歷史博物館)이다.

 

 조선 시대에 군산은 호남평야에서 거둔 세곡을 보관·수송하기 위한 조창이 설치된 경제적 요충지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참혹한 수탈이 할퀴고 간 군산은 상처투성이의 왜곡된 성장을 겪었다. 근대화의 상징인 기찻길이 놓이고 신작로가 뚫렸지만 모두가 일제의 약탈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던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이 같은 도시의 상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역사는 미래가 된다.’라는 모토로 과거 무역항으로 해상물류유통 도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던 군산시의 정체성을 확인하여 현재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전국 최대의 근대 문화유산을 소유한 군산시의 문화적 특징을 관광 자원으로 홍보하고자 건립되었다.

관람객을 위한 전시실 구성은 박물관 1층 입구의 어청도 등대 모형을 시작으로 1층에 해양 물류 역사관, 어린이 박물관, 2층의 특별전시관, 3층의 근대 생활관과 기획 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 조선선은행 군산지점

 

 

 

 근대역사문화유산거리를 이곳저곳 구경하면서 길의 코스도 좀 벗어나고 하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그래도 주마간산식이지만 군산의 근대거리를 구경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구 철길을 지나니 진포해양테마공원의 입구인 바다가 보이고 여기서 54코스는 끝이 난다. 잠시의 쉴 틈도 없이 그냥 다음 코스로 발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