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14 - 경주읍성과 시내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경주의 역사적 유적을 탐방하다가 오늘은 사람이 사는 시가지를 걸어 보기로 하였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앞의 버스정류장 부근에 경주읍성마을거리의 안내판이 서 있다. 그래서 오늘은 웁성마을을 중심으로 경주 시내를 소요해 보기로 한다.
경주읍성마을거리 안내
버스를 타고 가기에는 별로 멀지 안은 거리라 천천히 걸어서 읍성마을로 가니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조금 특이한 것을 전시하는 경주 벼루박물관이다. 그래서 구경을 하려고 하니 출타 중이라면서 문을 닫아 놓았다. 하는 수 없이 외관만 보고 읍성으로 갔다.
경주벼루박물관
경주읍성 (慶州邑城)은 신라 왕경의 북쪽에 해당하는 경주시 동부동과 북부동 일대에 위치하는 둘레 2,412m의 석축 평지성이다. 경주읍성은 1933년에 발행된 지리서 『동경통지』에 ‘읍성의 시축 연대는 불명이지만, 고려 우왕(1378)에 개축하였고 둘레가 4,075척, 높이가 12척 7촌으로 석축이다’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 때의 석축 읍성으로 추정된다. 안타깝게도 일제의 근대 도시계획에 따라 개축된 읍성 대부분이 헐려 현재는 동쪽 성벽만 50m 남짓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행으로 2002년부터 꾸준히 발굴 조사와 복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현재는 일부 성벽과 문만 복원되어 있다. 하지만 이 읍성을 돌아 다녀보면 어디가 어딘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관광객들을위해 안내판이나 표지판 정도는 세워 두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복원이 끝나면 고려에서 조선을 거쳐 현대까지 경주 역사의 층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경주읍성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걍주읍성 언내
복원된 성벽
향일문
반대쪽에서 보는 향일문
경주문화원과 이웃한 동경관(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은 본래 신라 왕실에서 집기를 보관할 용도로 지은 건축물이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외국 손님이나 서울의 벼슬아치가 지방에 오면 머무는 관아의 객사 건물로 이용했다. 일제강점기 때 학교로 사용되다가 광복 후 6.25전쟁을 거쳐 일부가 헐리고 서쪽 건물만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몇 차례 이전되면서 형태 변화가 발생했지만 영·정조 시기의 역사성을 품고 있는 건축물로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동경관
읍성을 나와서 조금 시내쪽으로 길을 가면 나오는 경주문화원과 동경관 사이 화랑수련원 간판을 내걸고 있는 건축물은 1920년경 경주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이었던 구 야마구치병원으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건축물 자체도 독특하지만 1930년대 이 병원 의사 다나카 도시노부가 경주의 어느 골동품상에서 ‘신라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를 구입했고, 훗날 경주박물관에서 그로부터 어렵사리 수막새를 기증받은 이야기가 얽혀 있어 눈길을 주게 된다.
화랑수련원(구 야마구찌 병원)
금리단길
발길이 가는대로 가다가 보니 문정현이라는 곳이 보인다. 문정헌은 풀이하면 '글이 샘솟는 집'이란 뜻으로 2012년 경주에서 개최되었던 제78차 국제 PEN대회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기념하여 건립한 한옥 도서관이자 북 카페이다.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5천여 권의 도서는 대부분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들의 기증으로 채워져 의미를 더했다. 도서관은 북 카페로 커피 한 잔과 함께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문정헌 안에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우물이 있다. 또 뒷마당의 쪽문은 봉황대가 있는 노동동 고분군으로 이어져 함께 둘러보기 좋다.
문정헌
다시 발을 돌려 구 경주역으로 갔다. 우리 세대에게는 너무 친근한 역이다. 어릴 때 경주를 올 때는 항상 이 역을이용하던 생각이 났다.
경주역(폐역)은 철도역 중앙선의 폐지된 철도역으로 1918년 11월 1일 협궤선 영업을 시작으로 2021년에 폐지된 역으로 지금은 경주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문을 닫아 놓아서 내부를 보지는 못했다.
경주역 일대는 경주 구시가지의 교통의 요지로 대부분의 대중교통이 경주역 앞을 통과한다. 역 앞에는 재래시장 성동시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대릉원 등 유적관광지와도 가까운 곳이다.
구 경주역(경주문화원)
역전 광장에 있는 황오동 삼층석탑은 원래 효공왕릉(孝恭王陵) 부근인 경주시 동방동 장골의 사자사지(獅子寺址)에 무너져 있었는데, 1936년 경주역을 사정동으로부터 옮길 때 석탑재(石塔材)를 모아 이전·복원하였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다.
이 탑은 신라 석탑의 형태를 보이나, 다른 석탑과는 달리 이중의 기단에 놓인 1층의 탑신은 너비에 비하여 높이가 매우 높다. 2·3층 탑신도 너비는 그다지 줄지 않으나 높이가 많이 줄었다. 이러한 특징과 함께, 전체적으로 안정된 기초 위에 조성된 날렵한 모습으로 미루어 고려 석탑으로 변천하는 과도기 양식으로 추정된다.
경주 황오동 삼층석탑
구 경주역 앞에는 경주에서 유명한 성동시장이 있다. 성동시장은 300여 개의 점포와 30여 명의 노점상들이 있다. 지난 1971년 개설 이래 지역의 대표적 재래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날로 침체 상태로 접어드는 재래시장 환경개선 사업으로 경쟁력을 높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시가 사업비 16억여 원을 투자해 착공에 들어간 성동시장 현대화 사업은 시장 입구 조형물 설치, 뒤 상가 및 먹자골목 아케이드 설치, 하수도 정비, 전기소방시설, 바닥정비, 와이드 칼라 250점을 게시해 새롭게 단장했다. 시는 성동시장 환경개선 사업을 신라 천년고도 이자 국제적인 문화·관광도시에 어울리는 재래시장으로 조성하고자 지역에 산재한 소중한 문화유산 250여 점을 소재로 와이드 칼라 사진에 담아 아케이드 벽면에 게시하여 경주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또 하나의 명물로 부상함으로써 재래시장 활성화가 기대되고 있다.
성동시장의 풍경
성동시장을 벗어나 조금 길을 가니 성동성당이 보인다.올해가 천주교에서 말하는 전대사의 해인데 이성당이 '전대사 수여를 위한 순례성당'이라는 휘장이 걸려 있다. 그래서 성당에 들어가니 아무런 인기척도 없어 혼자서 본당에 들어가 잠시 기도를 하고 나왔다. 나오면서 성당 뜰을 보니 옛날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받던 시절의 돌형구가 놀여 있었다.
성동성당
성당을 나와 아래로 더 걸어가면 중앙시장이 나온다. 경주중앙시장은 1900년대 초부터 농민 및 보부상들이 주축이 되어 장터를 형성하고 70여 년간 일반시장으로 운영된 오랜 역사가 있는 시장이다. 1983년에 현대화 시장으로 변화되었으며, 경주 사람들은 아래 시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천년고도 경주의 문화관광형시장으로 700여개의 점포가, 3개소의 주차장이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전통시장이다. 최근 대형 소매업체와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조형물설치, 시장통로 비가림시설 설치, 상하수도 및 바닥정비, 소방시설 설치등 시장현대화사업을 적극으로 추진해 쾌적한 전통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경주중앙시장은 다양한 세대 간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전통시장과 매 2, 7일째에 열리는 전통 오일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역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싱싱한 현지 특산물과 토산품, 경주토종한우, 한우소머리곰탕, 활어회 센터, 돔베기, 두치, 닭강정등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 그리고 즐길거리가 준비되어있는 문화관광형 시장이다.
특히 매주 목, 금, 토, 일요일 오픈되는 경주중앙시장 야시장인 달빛미행은 많은 시민,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경주중앙시장
한가롭게 시내 일대를 배회하면서 이곳 저곳을 구경하다가 보니 어느 새 시간이 많이 지났다. 오늘은 신라의 유적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냥 배회하면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돌아다녔다.. 역사적 유물이나 유적도 중요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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