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길 33-1코스(거진항 - 화진포관광안내소 - 대진항 - 통일안보공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평화의 길 33-1코스는 거진항에서 출발하여 화진포의 화진포관광안내소를 거쳐 대진항을 지나서 통일안보공원까지 가는 11.9km의 아주 짧은 길이다. 이 길은 해파랑길 49코스와 완전히 같은 길이기에 예전에도 이길을 걸었었다.
오늘 걸을 길은 아주 짧은 길이고 마지막 길이라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늦게 일어나니 숙소에서 창문을 열면 해돋이가 보인다는 숙소의 안내가 생각이 나서 창을 어니 동쪽 수평선이 붉게 빛나며 바다에서 해가 돋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해돋이였다.



숙소 창을 열고 보는 해돋이 풍경
33-1코스 출발점이자 해파랑길 49코스 시작점 옆이 거진항이다. 5백여 년 전 한 선비가 과거를 보려 한양으로 가던 중 이곳에 들렀다가 산세를 훑어보니 꼭 클 '거(巨)'자와 같이 생겨 큰나루 즉 거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 있는 거진항(巨津港)은 고성군 거진읍 거진리에 있는 어항이다. 광복 전 일제강점기 때는 정어리가 많이 잡혀 정어리 처리 공장이 3개나 있었으나 광복 후 갑작스러운 정어리 흉어로 어촌이 퇴락하였으나 명태가 잡히면서 다시 번창을 누리게 되었다 한다. 한때는 전국의 명태 어획량 중 60% 이상이 여기서 출하되었다는 항구로, 명태 덕분에 '거진항에는 거지가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지구온난화로 수온이 높아져서 우리나라에서는 명태도 거의 잡히지 않아 과거의 번화함을 찾기 어렵다.

33-1코스 출발점
33-1코스 출발점에서 바로 언덕으로 올라가면 거진해맞이공원이 나온다. 거진해맞이공원에서는 거진항이 일망무제로 보인다. 해맞이공원을 지나서 산길을 따라가면 다양한 조각이 산길에 서 있고, 화진포 소나무숲 산림욕장의 소나무들이 하늘로 쭉 뻗어 올라 위용을 자랑하며 뽐내는 숲 사이로 난 길을 호젓하게 걸어가면 응봉에 도착했다.
제법 긴 거리를 걸어 응봉에 도착해서 보니 해발 122m라고 되어 있다. 해안부터 걸어서인지 상당히 높은 산을 넘은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산에 오를 때는 제법 높은 곳에서 오르기 시작하니 높이를 오산하기 마련이다.
응봉에 도착해서 보는 풍경은 이 산길을 힘들게 걸어온 보람을 가지게 하였다.



거진해맞이공원에서 보는 거진항


















응봉표지석
응봉에 도착하여 손자에게 아침에 바다를 보여주겠다고 어제 약속을 했기에 영상통화를 하면서 멀리 보이는 금강산 자락과 화진포 동해 바다를 보여주니 할아버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며 할아버지는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래서 화면을 돌려 얼굴을 보여주니 왜 산에 있는지를 물었다. 아직 3살밖에 되지 않았으니 바다를 보여주며 산에 있는 것이 그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응봉에서 보는 화진포와 동해 바다
응봉에서 화진포 쪽으로 내려오면 마주치는 곳이 우리가 세칭 말하는 '김일성별장'이다.
화진포 해안가 산기슭에 있는 김일성별장은 김일성이 1948년부터 50년까지 처와 아들, 딸 등 가족과 함께 찾은 하계휴양지로 화진포 주변에 있다. 김일성별장은 당초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에 의해 1938년 독일의 망명 건축가 베버가 석조 건물로 지은 건물로 당시 건축물로는 제법 화려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건물은 1964년에 별장 터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석조 건물로 안보전시관을 새로 지은 것이다. 다소 화려하게 지어진 안보전시관에는 옛 별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를 비롯해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응접세트 등 각종 유품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전시되어 있으며, 북한 관련 자료와 함께 김정일과 김경희가 어린 시절 이곳에서 찍은 사진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안보전시관으로서의 의미보다는 화진포해변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김일성별장 설명판

김정일과 김경희가 어린 시절 이곳에서 찍은 사진

김일성별장 전경
별장을 내려오면 화진포가 나온다. 화진포(花津浦)는 거대한 ‘8자 형’으로 둘레 16km, 넓이 2.3㎢로 국내에서 가장 큰 석호로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여 겨울이면 고니 수천 마리가 날아들어 말 그대로 ‘백조의 호수’가 된다고 하지만 아직 철새는 보이지 않는 계절이었다. 호수는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며 남호 주변으로 갈대밭, 조류관찰대 등 자연 탐방 지대가 자리한다. 갈대가 우거지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이어진 화진포(花津浦)는 여름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화진호(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지금의 화진호 자리는 옛날에 부자였던 이화진이라는 사람의 농토였다. 어느 날 한 스님이 그의 집에 와서 시주를 청했는데 그 부자는 시주하지 않고 똥을 퍼부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쌀을 퍼서 시주하였다. 이에 스님은 며느리에게 이곳에 있으면 화를 입을 것이니 따라오라고 하여 며느리는 그 스님을 따라갔다. 며느리가 송정리의 고청고개까지 가서 주위를 돌아보니 함께 오던 중은 사라졌고 자신이 살던 집과 그 일대가 물바다로 변해 있었다. 이에 절망한 며느리는 그곳에서 목을 매어 죽었고, 그녀의 넋은 고성 서낭리의 서낭신이 되었다고 하며, 그래서 생긴 이 호수는 그 부자의 이름을 따서 화진호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화진포
화진포에서 길만 건너면 화진포해수욕장이다. 화진포해변(花津浦海邊)은 공식 해수욕장으로는 동해안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 잡은 곳이다. 화진포해수욕장은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준서(송승헌)가 죽음을 앞둔 은서(송혜교)를 업고 걸은 장면으로 유명해졌다. 해수욕장 끝에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거북이 모양을 닮았다 해서 이름이 붙은 금구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화진포해변을 지나 조금 걸으면 초도항이 나온다. 초도항은 화진포 해수욕장에서 조금만 위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아주 작은 항구로 성게가 특산물로 성게마을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초도항 입구 간판도 성게 모양이다.
초도1리 해변은 화진포해변과 인접한 간이해수욕장으로, 길이 500m의 깨끗한 백사장을 끼고 있다. 초도2리 해변은 길이 200m의 아담하고 깨끗한 해변이다. 평상시에는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 관리하는 군부대의 협조로 한시적으로 개장된다고 하였다.


초도해수욕장

금구도


대진해상공원
길을 계속하여 대진항 해상공원을 돌아서 나가니 대진의 가장 번화하게 보이는 거리가 나오고 그 거리를 돌아가니 대진항이 나온다. 내가 사는 부산의 큰 어시장과는 거리가 먼 조그마한 어시장이지만 소박한 맛이 더 정겹게 보였다.
대진항(大津港)은 고성군 현내면(縣內面)에 있는 어항으로 동해를 이어가는 해안도로를 따라 마지막으로 닿는 최북단의 항구이다. 현내면의 소재지인 대진리(大津里)에 있으며, 1920년에 처음으로 어항(漁港)이 축조되어 1935년 동해 북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원활해짐에 따라 명태, 청어, 정어리 등을 잡는 큰 어항으로 발전하여, 아침이면 밤새 잡은 수산물을 실은 어선들이 항구에서 위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조그마한 어항이다.
조용한 항구의 모습과 깨끗한 백사장은 그 위쪽으로는 휴전선으로 가로막혀 볼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대진항을 돌아가면 대진등대가 나온다. 대진등대는 등탑이 팔각형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고, 등탑 위 전망대에 올라서면 동해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할 수 있으며 환상적인 일출과 석양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대진등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동해안 최북단의 어로한계선임을 표시하면서 어선들이 월북 조업하지 않도록 안전한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무인 등대인 저진도 등을 원격으로 관리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대진등대를 지나서 해안 길을 걸어가면 금강산콘도를 지나가게 된다. 금강산콘도 앞바다의 풍경은 섬이 모래사장으로 연결되어 천혜의 해수욕장을 만들어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섬을 걸어서 건널 수 있게 만들었다. 아니 모래사장으로 연결되었으니 섬이 아닌가?





금강산콘도

마차진마을 회관


비로소 통일전망대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통일안보공원에 도착했다. 예전에 몇 번이나 와 본 곳으로 크게 변하지 않은 곳이다. 동해대로 방면 주차장 위쪽에 호림유격전적비는 한국전쟁 직전 북한 무장 게릴라의 남침을 저지하다가 희생된 호림유격대를 기리기 위해 조성했다. 전적비 상단에 횃불을 높이 든 유격대원 동상이 불굴의 기상을 보여준다.
이제 걷는 코스는 다 끝났다. 다음 코스는 차를 이용해야 하는 곳이다.

호림유격대 전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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