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길 30-2코스(원통버스터미널 - 설화관광농원야영장 - 한국시집박물관 - 백골병단역사전시관 - 진부령미술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평화의 길 30-2코스는 원통버스터미널 옆의 중앙공원에서 출발하여 설화관광농원야영장을 거쳐 만해마을과 한국시집박물관을 지나 용대삼거리의 백골병단역사전시관에서 진부령미술관까지 가는 28.2km의 길이다.

30-2코스 시작점 원통 중앙공원
30-2코스의 출발점을 찾으려 주변을 돌아다녀도 보이지 않았다. 평화의 길 표시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흔히 있었기에 주변을 둘러보니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문에 아무런 표시도 없이 OR 코드만 조그마하게 붙어 있었다. 이렇게 표시를 붙여 놓으니 찾을 수가 없던 것이다. 그래서 두루누비에 전화해서 코스 시작 안내판도 없고 평화의 길 표시도 없는 사실을 알려주고 고쳐ㄷ주기를 요청했다.
원통 중앙공원을 출발하여 단풍이 든 큰 도로를 따라가다가 북천을 따라 걸었다. 북천(北川)은 인제군 북면 용대리 용대교에서 발원하여 하류로 가면서 인북천, 소양강과 만나 소양호로 흘러간다. 북천은 북면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북면은 현(顯) 소재지에서 북쪽에 위치하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천을 따라가는 길의 풍경
북천을 따라 걸어가면서 전형적인 푸른 가을 하늘을 보니 가슴이 탁 트이었다. 이제 설악의 권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큰 도로 옆에 있는 옛 46번 도로를 따라 걸으니 설악광장이 나타나고 계속 걸어서 한계령 계곡으로 들어갔다.






46호선 옛길표시
옛 46번 도로를 따라 걸으니 인제관광호텔이 나오고 호텔 앞을 지나 계속 가니 한계터널이 보이고 그 아래에 맑고 푸른 한계천이 흐르고 있다. 한계천(寒溪川)은 인제군 북면 한계리 대승폭포에서 발원한 하천으로 한계령에서 출발한 44번 국도와 나란히 달리다가 원통삼거리 한계리에서 북천과 합류한다. 하천이 인제읍 한계리에 소재하는 것으로 보아 이름이 한계리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872년지방지도』에서 한계천을 확인할 수 있다.

















한계천 주변의 단풍 든 풍경
한계천을 따라 걸으며 보는 단풍은 설악의 다른 어디보다 못하지 않게 아름답다. 주전골, 오색, 내설악 등등 많은 설악의 단풍을 구경했는데 한계 시냇가의 단풍은 자기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올해는 여름에 너무 더웠고, 10월에도 강원도 설악권 일대에 25일간이나 비가 왔다는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단풍이 제대로 들지 않았을 것인데 그래도 한계의 단풍은 아름다웠다. 옛 46번 도로를 따라 걸으니 이 아름다운 길을 걷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다. 이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혼자서 만끽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면서 흥겨운 마음으로 길을 걸으니 승용차 한 대가 멈추면서 60정도 되어 보이는 여인이 내렸다. 그래서 잠시 인사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단풍을 즐기라고 이야기했다. 그 여인은 고맙다고 하면서 나에게도 조심해서 여행하라고 인사를 했다. 모두가 이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에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감사하는 감정이 풍부해진 것같았다.
한계천을 따라 계속 올라가니 십이선녀탕계곡이 나왔다. 십이선녀탕(탕수동계곡)계곡은 인제 고성 간 46번 국도 12㎞ 지점인 북면 용대 1리에 백담계곡 옆에 있다. 인제 8경 중 하나로 밤마다 선녀들이 하늘에서 설악산으로 내려와 십이선녀탕에서 목욕했다는 전설이 있어 선녀탕이라 부르고 있다. 예로부터 총 12개의 탕이 있다고 전해져 십이선녀탕이라 부르나 실제로는 총 8개의 탕이 있으며, 폭포와 탕의 연속으로 구슬 같은 푸른 물이 흐르고 있다. 탕의 모양은 장구한 세월을 거쳐오며 자연의 섭리에 의한 거친 하상 작용으로 오목하거나 반석이 넓고 깊은 구멍을 형성하는 등 신기하고 기막힌 형상을 이루고 있다. 길을 걷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 십이선녀탕을 구경하지는 않고 계곡을 따라 걸었다. 다음에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다시 십이선녀탕을 구경하리라고 생각하고 계곡을 따라 길을 계속 갔다.






십이선녀탕계곡의 풍경
십이선녀탕계곡을 지나 좀더 가니 오늘의 숙박지로 생각한 만해마을이 나타났다. 카운터에 숙박을 하려고 요금을 물으니 생각보다 비쌌다. 그러나 여기에서 숙박하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객실을 정하고 결제하니 카운터에 종사하는 분이 객실 점검을 위해 잠시 갔다 오더니 싼 객실이 났다고 다른 객실로 바꾸어 주었다. 뜻밖에 숙박 요금이 모텔보다 싼 가격으로 호텔을 이용하게 되었다. 그 분에게 지금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장사속이 아니라 고객을 대하는 자세가 아주 본받을 만하였다.
공기와 물, 그리고 숲이 살아 숨쉬는 인제군 내설악의 넉넉하고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 자리한 만해마을은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휴식의 공간으로, 한국문학의 우뚝 선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대선사의 치열한 오도(悟道)의 수행공간이자, 시집 님의 침묵을 집필한 백담사를 배경으로 2003년에 조성되었다.
2003년 8월 완공된 만해마을은 (재)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만해의 자유사상, 진보사상, 민족사상을 기리고 실천하기 위해 만들었다. 박물관, 문인의 집을 비롯해 운동장, 강당, 광장까지 갖춘 작은 마을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내설악의 조용한 공간은 콘크리트로 치장했을 뿐 그대로 내설악 백담사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날이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만해마을 곳곳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보는 단풍이 참 아름다웠다. 백담계곡의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만해마을에 든 단풍이 그 말을 대변해 주었다.















만해마을의 여러 모습
만해마을 호텔에서 편안하게 하루를 숙박하고 평소의 걷는 습관대로 다음 날 아침 일찍 길을 떠나니 사위는 아직 어둠에 덮여 있고 멀리서 해가 떠오르려고 하는 붉은 빛이 보였다. 청량한 산속의 공기가 온몸을 감싸고 고요한 아침의 분위기는 내가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가장 좋은 분위기였다. 조금 길을 걸어가니 '한국시집박물관'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근·현대기의 시집을 체계적으로 전시하는 한국시집박물관은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다. 한국시집박물관은 한용운, 박인환 등 대표적인 문인을 배출한 인제군에서 2014년도 10월에 개관한 박물관으로 마치 산속의 조용한 도서관에 찾아온 분위기를 연출하며 로비는 편안한 휴식이 가능하도록 소파가 준비되어 있고,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유명한 시문학 작품들이 준비되어 있다.
한국시집박물관은 국내외 많은 시인과 소장가들이 기증한 기증 시집 1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으며, 기증 시집에는 정지용 시집(1935년, 1946년), 김립 시집(1939년) 등을 비롯한 오뇌의 무도, 해파리의 노래, 육사 시집 등과 같이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1950년대 이전에 간행된 희귀 시집 100여 권도 있다.
명색이 내가 국문학과 출신이라 박물관을 돌아보고 싶었으나 너무 이른 아침이라 문을 아직 열지 안았고 기다리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해서 그냥 외관만 보면서 지나쳤다.



한국시집박물관 전경
'한국시집박물관' 바로 옆에는 '여초서예관'이 있다. 지금의 서울 성북구 번동에서 태어난 여초 김응현은 ‘추사 이후 여초’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근현대 한국서단의 최고 대가(大家)로 인정받았다. 한문서예 오체를 두루 잘 썼으며, 한글서예와 전각도 뛰어났다. 그의 글씨는 원숙미와 독창성이 돋보이며 서체가 활달하다는 평가와 함께 명성이 국외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단절되고 왜곡된 우리의 전통서법을 다시 잇기 위한 노력으로, 1956년 국내 최초의 서예연구교육기관인 ‘동방연서회’ 창립을 주도하고 서법교육에도 평생을 바쳤다.
1990년 10월 한국 서예가로는 최초로 중국혁명박물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해 우리나라 서예의 우수함을 널리 알렸다.
1999년에는 교통사고로 오른 손목에 골절상을 입게 되자 3개월 동안 왼손으로 붓을 들고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 다음해에 ‘좌수전(左手展)’을 개최하기도 했다. 2007년 2월 1일 당뇨병 합병증으로 타계하였다.
대표 작품으로 광개토대왕비문과 경복궁 ‘강령전’ 현판, 경북 김천의 ‘영남제일문’ 현판과 ‘직지사’ 현판, 공초 ‘오상순 시비’, 하동의 ‘칠불사’ 현판, 낙산사의 ‘보타전’ 현판이 있다.
여초는 1996년 인제군 북면 한계리에 《구룡동천(九龍洞天)》으로 명명된 집을 짓고 자연과 벗 삼아 만년에 자유로운 작품세계를 펼치시다 2007년 2월 80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2013년 6월 전국 최대 규모의 서예전문박물관인 여초서예관이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세워졌다. 여초서예관은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의 문화재급 서예작품과 유품 그리고 국내외 서법관련 자료, 서적 등 총 6천여 점의 소장품을 보존, 전시하고, 현재 서예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전시 및 교육 사업이 진행하고 있다.
2012년 완공된 서예관 건축물은 빼어난 건축미를 인정받아 2012년에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올해의 건축 Best7’에 선정되었다. (여초서예관 홈페이지에서 발췌)



여초서예관 전경
계속 걸어가는 길은 백담계곡 길이다. 이곳을 지나는 날이 올해 가을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일기예보에서는 한파주의보가 내렸으나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는 않은 날씨였는데 길을 걸어가니 서리가 내려 길가의 들판을 하얗게 장식하고 있었다.
인제군 북면에 소재한 백담계곡은 백담사에서 용대리에 이르는 8㎞ 구간을 말한다. 구간에 차도가 있으나 일반 차량의 통행은 금지되고 있다. 백담계곡은 시냇물처럼 폭이 넓고 길이도 길어 내설악의 대표 계곡이라 할 수 있지만, 계곡의 깊이는 발목과 무릎 중간이 가장 깊은 전반적으로 얕은 계곡이다. 백담(百潭)계곡은 100개의 담(물이 고인 깊은 곳)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백담계곡 중심부에 자리한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의 자취가 서려 있는 고찰로서 유명하지만 우리 현대사에서는 다른 면에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백담계곡을 걸어가면 이 일대에서 겨울이 되면 우명한 황태 덕장이 곳곳에 보인다. 옛날에는 우리나라 동해에서 잡힌 명태를 말렸으나 이제는 우리 연안에서는 명태가 거의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 덕장에서도 러시아나 알래스카 북해 등지에서 잡힌 명태를 수입해서 말리고 있을 뿐이다. 기후의 변확가 심각함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는 현실이다.


서리가 하얗게 덮인 풍경





백담계곡의 풍경





길가의 장승
용대 2리를 지나 용대삼거리를 향해 가는 길가에 뜻밖에 '백공마술관'이라는 현대미술관이 있다. 설악산의 풍요로움과 내린천의 시원함이 함께하는 백담사 입구, 인제군 북면 황태길에 있는 백공미술관은 한국의 근현대 미술 작품을 소개하고, 내설악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휴양지의 여유와 예술이 함께할 수 있는 특성화된 문화공간을 모색하고 있다. 2011년에 개관한 백공미술관은 한국 근대 회화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매년 기획 전시를 통해 현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백공미술관은 미술관 본연의 기능을 넘어 지역의 문화 소통자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관을 들어가 여러 작품을 보고 싶었으나 역시 이른 시간의 아침이라 아직 개관을 하지 않아 외관만 보고 그냥 지나쳤다.


백공미술관 전경
백공미술관을 지나 용대삼거리로 가는 길가에 너와집이 보인다. 전통 너와집과는 좀 다르지만 그래도 요즈음은 거의 볼 수 없는 집이라 눈길이 갔다.



너와로 지은 펜션
용대삼거리는 제법 번화한 거리였다. 많은 음식점과 편의점 그리고 탁 트인 거리와 복바위라고 불리는 큰 바위가 나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 진부령미술관까지는 차량이동구간이라고 두루누비 앱에 나와 있기에 주변 상인에서 버스 시간을 물으니 상당히 오래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먼저 백골병단전적비를 보러 갔다.
대구에서 창설된 백골병단은 한국군 최초의 유격부대다. 1950년 12월 대통령령인 국민 총동원령에 따라 대구의 육군보충대에 집결한 6000여 명 중 엄선된 817명을 육군 제 7훈련소에서 훈련받게 했는데 이것이 백골병단의 효시다. 이후 인원이 늘어 1,430여 명의 백골병단이 구성되었고 이후 1951년 1월 첫 전투에 투입되어 본격적인 유격 활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 인민군 69여단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으며 인민군 중장 길원팔, 대좌 강칠성을 사로잡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지만 그들의 희생도 적지 않았다. 그해 3월 설악산 부근에서 퇴각하던 중 적의 포위 공격을 받자 11연대 소속 윤창규 대위가 부대원의 탈출로를 확보하고 적을 유인하기 위해 수류탄으로 자결했다. 잦은 행군과 굶주림으로 400여명이 전사, 실종하고 4월 생환 장병은 겨우 283명에 그쳤다. 부대는 2개월의 짧은 임무를 마치고 미8군에 예속되면서 해체됐다.
대한민국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자신들의 생명을 헌신하신 백골병단 속했던 모든 분께 경의와 존경 그리고 감사를 표한다.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위치하는 백골병단 전적비는 한국 최초의 유격대로 창설된 640명의 백골병단 대원들은 설악산에서 적을 교란함으로써 아군 작전에 기여했던 전공을 기리고 순국 산화한 장병의 명복을 빌고자 건립한 비다. 백골병단 전적비가 세워진 입구에는 전적비뿐만 아니라 백골병단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빛나는 위훈을 기린다는 건립 취지문이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또 왼편에는 백골병단 기념사업회에서 세운 형성비와 백골병단 참전-개선 52주년인 2003년에 세운 백골병단 무명용사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용대삼거리 풍경



백골병단전적비 일대
백골병단전적비 아래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차를 손을 들어 세워 보았으나 대부분이 그냥 지나쳤다. 승용차 한 대가 멈추었기에 진부령까지 태워 주기를 말하였으나 그분은 여기서 멈추는 차였다. 하는 수 없이 버스를 기다리다가 다시 손을 들고 차를 세우니 그중에 한대가 멈추고 타라고 한다. 50대의 남자는 자신도 걷기를 좋아하여 우리나라 길을 엄청나게 많이 걸었다고 하였다. 학교 다닐 때부터 방학이 되면 배낭을 짊어지고 국토순례를 하였기에 내 모양을 보고 자신괴 동류의식이 생겨서 흔쾌히 차를 멈추었다고 하였다.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동류의식이 작용한 것이었다. 그 사람과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편안하게 진부령고개에 있는 진부령미술관에 도착했다.
진부령미술관은 진부령고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편안하게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작품 ‘소’ 등으로 유명하하고 친근한 이중섭의 전시실을 운영하니 쉬면서 잠시 감상하고 가면 좋은 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2000년 고성읍 출장사무소 건물을 개조해 진부령문화스튜디오로 개관하였고, 2005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매년 다양한 분야의 미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이중섭 상설 전시실에는 이중섭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2.7m×4m의 대형 액자에 담긴 황소 작품도 볼 수 있다.

진부령미술관 전경

진부령 정상 표시
진부령미술관 앞에서 30-2코스는 끝이 났다. 평화의 길을 걸으며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즐기며 걸어온 길이었다. 원통골부터 한계의 시냇가, 십이선녀탕계곡, 백담계곡을 한가롭게 걸으면서 보는 설악의 단풍은 다시 이렇게 여유롭게 즐길 날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한계령에서 끝청과 중청 대철을 거쳐 걸으면서 보는 단풍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단풍이었다.
주변에서 잠시 쉬다가 다음 코스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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