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평화의 길 16-2코스(고석정 - 승일교 - 철원소방서 -남대천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평화의 길 16-2코스는 고석정 국민관광단지에서 시작하여 고석정 꽃밭을 구경하고 승일교를 지나 계속 도로를 따라 걸어 철원소방서를 지나 문혜2리 버스정류소부터는 걷기에는 위험히여 차를 타고 가는 구간이다. 차를 타고 불당천 정류소에서 내려 시골 길로 들어가 지경리를 지나서 남대천교까지 가는 12.8km의 길이다.

 

고석정 국민관광단지 광장의 임꺽정

 

 고석정 국민관광단지에서 고석정은 코스에서 벗어나 있으나 고석정으로 발을 돌려 주변 경관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고석정은 철원 9경의 하나로 한탄강 중류에 있는데 강 중앙에 우뚝 솟은 고석(孤石)과 정자 및 그 일대의 현무암 계곡을 모두 아울러 부르는 이름이다. 610년에 고석 바위 맞은편에 10평 규모의 2층 누각을 짓고 고석정이라 이름했다 한다. 그 후 1560년 의적 임꺽정(林巨正)이 정자 건너편에 석성(石城)을 쌓고 웅거하였다 하는데, 누각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던 것을 1971년 복원하였고, 그 뒤 1989년 개축 정비하였다.

 강 중앙에 위치한 10m 정도 높이의 거대한 기암봉(奇巖峰)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자연동굴이 있고, 건너편 산 정상에는 석성이 남아 있다. 이 일대는 1977317일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고석정 설명과 현판

 

강 중앙의 우뚝 서 있는 고석

 

철원 평야 지형의 설명판

 

 고석정을 한 바퀴 돌며 구경을 하고 관광단지로 돌아오니 날이 제법 덥다. 그래서 냉커피를 한잔 사서 가게의 평상에 앉아 좀 쉬다가 16-2코스의 길을 시작한다. 길을 조금 따라가다 오른쪽을 보니 아주 넓은 꽃밭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고석정 꽃밭이라고 하며 많은 관광객이 꽃을 구경하고 있다.

 나도 지나가는 길이라 꽃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려고 입구에서 사진을 찍으니 안내를 하는 아주머니가 아주 고압적이었다. 꽃밭을 사진 찍는데 비키라고 하며 서 있지 못하게 하였다. 입장권을 발급받아 들어가라고 아주 강압적인 말을 한다. 내가 개방된 공간인데 어디에서 사진을 찍든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해도 막무가내로 너무 고압적이다. 아마 주변의 주민들이 동원되어 안내원의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관광객을 대하는 태도가 관광객을 몰아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좀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

 

 고석정 꽃밭은 철원의 대표 관광지인 고석정 근처에 조성된 꽃밭으로 시즌별 다양한 매력의 꽃을 볼 수 있는 특색 있는 공간이다. 촛불맨드라미, 코스모스, 해바라기, 천일홍, 백일홍, 코키아, 구절초, 메밀꽃 등 오색빛깔의 다채로운 꽃들이 다양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꽃을 풍경으로 하여 선명하고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길가에서도 넓은 꽃밭을 구경할 수 있다.

 

고석정 꽃밭

 

고석정 꽃밭을 지나 조금 가니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한탄대교 옆에 승일교라는 다리를 건너게 코스가 정해져 있다.

 

 지금은 보행용으로만 이용되며 철원의 '콰이강의 다리'로 불리는 철원 승일교는 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는 다리다.

 한탄강은 깊은 협곡으로 예로부터 주민들의 동서 교류를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한탄강 협곡에 최초로 세워진 근대식 콘크리트 다리가 철원 승일교. 철원 승일교를 자세히 보면 가운데를 기준으로 좌우 다리 모양이 다르다. 그 이유는 다리를 놓은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 지역을 점거하던 때, 철원과 김화 지역 주민을 노력공작대라는 이름으로 동원하여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다리의 절반 정도를 시공하였을 무렵 한국전쟁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었다. 수복 이후 남한이 다른 공법을 사용하여 나머지 구간을 공사하고 완성하면서 승일교라고 이름하였다. 철원 승일교는 원래 한탄교라는 이름으로 공사를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방치된 사이 이름도 잊혔다가 6·25전쟁이 끝난 후 남북 합작의 공사 과정을 알고 있는 철원 주민들은 김일성이 시작하고 이승만이 끝냈다고 하여 이승만의 '()'자와 김일성의 '()'자를 한자씩 따서 승일교(承日橋)라 했다는 설과 '김일성을 이기자'고 해서 승일교(勝日橋)라고 했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한국 전쟁 중 큰 공적을 세우고 조선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혀간 연대장 박승일(朴昇日, 1920~ 몰년 미상) 대령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昇日橋)라고 지어졌다는 설이 있는데 1985년 세워진 승일교 입구의 기념비에 이를 정설로 소개하고 있다.

 승일교는 교량높이 35m, 길이120m, 8m 철근 콘크리트 아치교로서 교량의 조형미가 돋보이는데,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 과장 김명여 교사가 설계한 것으로 1948년에 북한이 착공하여 1958123일에 남한이 완공한 다리이다. 시작과 완성의 시공법과 주체가 달라 아치의 크기 등 교각의 모양이 겉으로 구별되어 분단과 한국 전쟁이 빚은 독특한 의의가 있다.

 승일교가 완공되기 전에는 국군과 유엔군이 임시로 목조 다리를 놓아 통행하다가 철거하였다. 지금은 승일교를 인도로 사용하고 바로 옆에 한탄대교를 개설하여 차량이 통행하도록 하고 있다.

철원 승일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26호로 등록되었다.

 

 이 다리의 명칭에 대해서 수 십년이 지난 뒤에 일화가 있다. 유홍준이 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의 '한탄강의 비가'라는 글에 승일교를 소개한 내용이 있다. 이 책에서 명칭에 대한 설명에서 박승일대령을 조금 비방하는듯한 내용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박승일 대령의 명예가 훼손했다고 주장하여 1995년 박승일(朴昇日) 대령의 유족은 이 책의 출판사인 창작과 비평사를 상대로 이 책에 대한 출판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유족은 철원군의 승일교는 박승일 대령을 추모하기 위해서 '昇日橋'라고 명명되었는데 책에서는 이승만(李承晩)과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에서 유래한 '承日橋'가 맞는 명칭이라고 주장하여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었다. 재판의 결과는 출판사가 8판까지의 책을 수거하고 9판부터 해당 부분을 수정하여 출판하는 사실을 인정하여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승일교에 대한 설먕과 모습

 

승일교 지나 6.25 전쟁의 기념비와 송덕비

 

 승일교를 지나 도로를 따라 걸으니 문혜리가 나온다. 문혜2리 버스정류장부터 불당천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하라고 두루누비에서 지시해 놓았기에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니 언제 올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택시 차고지에서 택시를 타고 불당천 정류소로 가자고 하니 기사도 어딘지를 잘 몰랐으나 GPS가 가리키는대로 찾아가서 불당천 정류소에서 내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평화의 길 안내판

 

 불당천 정류소에서 길을 걸어 지경리에 도착하니 아직은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코스가 끝나는 남대천교 주변에 숙소를 검색했으나 찾을 수 없어서 지경리에 있는 모텔에 숙박하기로 미리 생각했기에 오늘의 여정을 멈추고 머물기로 했다. 숙소에 식당도 겸하고 있어서 저녁을 먹고 쉬기에는 편리했다. 더구나 아침밥도 일찍 내가 길을 떠나는 시간에 먹을 수 있기에 더 좋았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벌판에 안개가 제법 자욱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주인과 여러 가지이야기를 하고 다시 종착점인 남대천교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안개가 자욱한 들판

 

남대천교

 

 남대천교 앞에 도착하니 다음 코스인 17코스 시작의 말뚝만 있고 아무런 안내가 없다. 여러 번 이야기한 것같이 QR코드를 주의해서 찾아서 인증을 받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