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평화의 길 15-1코스(백마고지역 - 철원역사문화공원 - 학저수지 - 태봉대교 - 고석정 /철원관광정보센터)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평화의 길 15-1코스는 백마고지역에서 출발하여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곳으로 유명한 철원의 구 노동당사를 지나, 학저수지를 돌아 한탄강의 주상절리와 직탕폭포를 보면서 즐기며 한탄강 주변을 걸어 고석정의 철원관광정보센터까지 가는 21.3km의 길이다. 평화의 길 15코스와 15-1코스는 반 이상이 같은 길이다. 그러나 16코스가 예약되지 않아 걸을 수 없기에 15-1코스를 걷고 이어서 16-2코스를 걷기로 생각하고 이번 여정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고 바깥을 보니 어제는 제법 오던 비가 그치고 하늘만 맑다. 비가 온 덕분에 하루를 푹 쉬었기에 가뿐하게 행장을 꾸리고 숙소를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택시를 타고 백마고지역으로 가서 오늘의 걷기를 시작한다. 비가 온 뒤에 맑은 하늘은 기분을 상쾌하게 하였고 일찍 가을걷이를 끝낸 들판을 보면서 길을 걸으니 소이상전망대로 올라가는 표지가 나오고 계속 가니 철원역사문화공원이 나타난다.

 

소이산전망대 표지

 

철원역사문화공원 입구

 

 철원역사문화공원보다 그 앞에 있는 구 철원 노동당사가 더 흥미롭기에 먼저 구 철원 노동당사로 갔다.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로 이용되었던 건물이다. 1946년 초에 북한정권하에서 착공하여 지상 3층에 연건평 580평 규모의 건축물로 신축되었다. 이 건물은 1945815일 광복 후 북한이 공산독재정권 강화와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하고 한국전쟁 전까지 사용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악명을 떨치던 곳이다. 현재 이 건물은 6·25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건물 전체가 검게 그을리고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게 나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6·25전쟁과 한국의 분단 현실을 떠올리게 해서 유명가수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나 유명 음악회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20012월 근대문화유산에 등록되면서 정부 차원의 보호를 받고 있다.

 

구 철원 노동당사의 여러 모습

 

 노동당사를 한 바퀴 돌면서 나름대로 구경하고 철원역사문화공원으로 갔다. 소이산 주변의 철원역사문화공원은 1930년대 경제적으로 번성했던 철원읍 시가지를 축소판으로 재현한 곳으로 옛 철원 시가지에 있던 건물들을 당시 사진을 토대로 똑같이 복원해 놓았다. 중앙거리를 따라 이동하면 옛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여러 건물이 보인다.

 

 옛 철원 시가지가 번창하여 옛날에는 금강산으로 가던 사람들이 철원역에서 내려 물건을 사고 다시 기차를 타고 금강산으로 가던 시절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의 모습

 

 철원역사문화공원은 구 철원 시가지를 복원했다고 하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별로 큰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주마간산식으로 구경하고 벤치에 앉아 쉬면서 가볍게 아침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노동당사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제법 걸으면 길가에 도피안사가 나온다.

 

곳곳에 보이는 평화의 길 안내판

 

 화개산 도피안사 (花開山 到彼岸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로, 865(경문왕 5)에 도선(道詵)이 향도(香徒) 1,000명과 함께 이 절을 창건하고 삼층석탑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였다.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사적기에 의하면, 도선이 철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철원의 안양사(安養寺)에 봉안하려고 하였으나, 운반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서 찾았더니 도피안사 자리에 안좌하고 있었으므로 절을 창건하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르렀다 하여 절 이름이 도피안사로 명명되었다. 도피안사(到彼岸寺)의 절 이름은 한국의 대부분 절의 이름처럼 3글자가 아닌 4글자인데, 그 의미는 (;도달하다), 피안(彼岸; 이세상이 아닌 저쪽세상 즉 극락세계), (; )’로 곧 피안에 있는 절이라는 뜻으로, 이곳이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가고 싶은 극락세계임을 뜻한다.

 도선은 이 절을 800의 비보국찰(裨補國刹) 중의 하나로 삼았으며, 화개산이 마치 연꽃이 물에 떠있는 연약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에 석탑과 철불로 약점을 보완하여 국가의 내실을 굳게 다지고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오래도록 국가의 비보사찰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1898년 봄에 큰 화재로 전소된 뒤 주지 월운(月運)이 강대용(姜大容)의 도움을 받아 법당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였으며, 승료(僧寮)와 누헌(樓軒) 등을 중수하였다. 6·25 때 소실된 뒤 주지 김상기(金相基)가 중건하였으며, 1959년에는 15사단 장병들이 법당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요사채가 있으며, 국가유산으로는 창건 당시 조성된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이 있다.

 

입구의 표지석

 

일주문과 설명판

 

도피안사의 여러 모습

 

 경내를 대략이나마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약수가 흐르고 있었다. 주위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먹을 수 있는 물인가를 물으니 식수로도 사용한다고 해서 한 바가지를 마시고 잠시 이야기하다가 경내를 나왔다.

 

흐르는 경내의 약수

 

 도피안사를 벗어나 조금 걸으니 학저수지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작은 저수지로 생각하였는데 계속해서 둘레를 따라 걸으니 저수지가 아니라 호수와 같이 넓었다.

 

 동송읍 오덕리 대위리 관우리에 걸쳐있는 학저수지는 현재 강산리, 중강리, 하갈리 등 인근 협곡에서 유입되는 수자원을 원천으로 삼는 인공 저수지이다. 면적 185, 저수량 25628톤 규모로 조성된 학저수지의 이라는 이름은 학저수지 인근 금학산(金鶴山)의 모양이 마치 학이 내려앉은 모양과 닮았는데, 이 때문에 학저수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학저수지가 있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오덕리도 학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저수지는 1921년에 일제에 의해 처음으로 설비되었으며, 광복 이후에는, 1975년 중앙농지개량조합에 의해 주도 아래 보수 및 확장되었다. 학저수지는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으로, 해질 무렵 저수지를 물들인 붉은빛 풍경은 사진 촬영을 위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2010년에 학저수지가 포함된 쇠둘레평화누리길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선정되었다. 또한, 2016년에는 학저수지에 생태탐방로가 조성되어 일대의 생태 경관과 농촌 문화 체험을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다량의 수생식물과 어종이 서식하고 주변 경관이 빼어나 휴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철새들의 휴식처로 유명하다.

 

학저수지의 여러 모습

 

 

 

 학저수지를 지나 조금 걸으면 한탄강으로 접어 든다. 한탄강(漢灘江)은 강원도 평강군에서 발원하여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포천군·연천군을 거쳐 임진강으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유로연장이 141이고, 남대천과 차탄천 등의 지류가 있다.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추가령 구조곡을 따라 흐르며,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절벽과 협곡이 곳곳에 발달하여 수 많은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이다. 계속 걸으면 만나게 되는 고석정은 오래된 명승지로 유명하며 순담계곡도 유명하다. 한탄강이라는 이름은 큰 여울이라는 뜻으로 옛사람들은 섬내, 한 여울, 큰 여울로 불렀다고 하며,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는 여울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한탄강을 가리켜 체천(砌川)과 대탄(大灘)으로 표기하고 있다. 대탄(大灘)이란 큰 여울을 뜻하므로 오늘날의 한탄강과 의미가 같다. 한탄강의 명칭에 관한 다른 유래는 한탄강(恨歎江)’ 이야기가 있다.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도망치다 이 강 주변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여서 한탄강(恨歎江)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과 6·25전쟁 당시 피난길에 한탄강을 만나 건너지 못하여 한탄하였다는 이야기도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는 큰 강이라는 의미보다는 신세를 한탄하는 의미로 더 잘 알려진 듯하다.

 

 한탄강은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이다. 유로의 양안에는 용암이 식으면서 형성된 다각형 기둥, 즉 주상절리가 수직 절벽을 형성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편마암이나 화강암이 노출된 곳도 있다. 주상절리 절벽이 잘 발달한 지역은 대교천 현무암 협곡, 차탄천 주상절리, 철원의 송대소 주상절리 등이 주상절리 절벽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철원의 고석정은 제4기 현무암과 쥐라기 화강암이 부정합을 이루는 지역에 있다. 현무암의 개석 과정에서 노출된 화강암 지형이 용암대지 사이에 남아 수려한 경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고석정은 국민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곳곳에 보이는 한탄강 주상절리

 

 어제 비가 제법 많이 왔기에 한탄강을 흐르는 물소리가 제법 세차게 귓가를 때리고 있었다,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는 귀로 즐기고 눈으로는 주상절리를 감상하면서 길을 가니 직탕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그런데 평화의 길은 직탕폭포를 가는 길이 아니었으나 길을 벗어나 폭포로 향했다.

 

 직탕폭포(直湯瀑布)는 한탄강 본류에 자리한 폭포로 편평한 현무암 위에 형성되어 우리나라의 다른 폭포들과는 달리 하천 면을 따라 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직탕(直湯)이라는 이름은 한탄강의 물이 하천 중앙을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현무암 암반을 넘어 수직으로 쏟아지는 모습에서 유래한 지명이라 짐작된다. 일명 직탄폭포(直灘瀑布)’라고도 한다. 직탕폭포를 이루고 있는 암석은 신생대 제4기에 만들어진 현무암으로 형성 시기는 54만 년 전에서 12만 년 전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이 암석은 추가령구조곡 하부의 연약한 지점을 따라 솟아오른 용암이 흘러내려 굳어진 것으로, 철원 용암대지를 구성하고 있는 현무암의 일부분이다. 폭포 주변에 노출된 현무암에서는 육각형 및 다각형 모양의 구조가 눈에 띄게 관찰되는데 이는 현무암에 특징적으로 발달하는 주상절리로 유명한 한탄강 주상절리다.

직탕폭포는 용암이 겹겹이 식어 굳어진 현무암 위로 오랫동안 물이 흐르면서 풍화와 침식작용을 받는 과정에서 현무암의 주상절리를 따라 떨어져 나감으로써 계단 모양의 폭포가 형성된 것으로 높이는 약 3m에 불과하지만 너비는 약 80m에 이른다. 여름철 피서지로 최적지이며 이곳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끓이는 매운탕 맛은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

 

직탕폭포의 모습

 

 어제 비가 제법 많이 왔기에 직탕폭포를 흐르는 물이 많아 흔히 사진에서 보는 폭포의 암석은 보이지 않고 폭포 전부를 물이 넘쳐 흐르고 있다. 폭포를 구경하고 나서 시간은 아직 되지 않았으나 이곳에서 한탄강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음식점에 들어가니 매운탕을 2인분 이상으로 판다고 한다. 사정하여 일인분을 주문하고 기다리다가 맛있는 민물고기 매운탕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시 한탄강의 여러 주상절리를 구경하면서 한탄강 주상절리 중 가장 유명한 송대소 주상절리가 나온다. 송대소 주상절리는 한탄강 물줄기가 심하게 꺾이는 곳에 있어 강의 양 벽에 물의 침식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닌 결과 수직 현무암 절벽이다. 다양한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데,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뿐 아니라 부채꼴 모양과 민들레꽃 모양의 주상절리를 만나볼 수 있다. 높이 30m의 위용을 자랑하는 수직의 적벽은 그 절벽 높이보다 더 깊어 보이는 비취색의 한탄강물과 조화를 이루며 장관을 이룬다.

 

송대소 주상절리

 

 송대소를 지나 길을 가니 태봉대교가 나오고 다리 건너에는 햇불전망대가 보인다. 태봉대교(泰封大橋)는 고석정 상류의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철제다리로 철원 상사리와 장흥리를 연결한다. 이 다리는 교통량 분산으로 지역주민들의 교통 불편을 해소하고자 놓였으며 교량 약 240m, 폭은 17.8m, 높이는 50m에 달한다. 다리의 이름은 궁예를 상징하는 태봉(泰封)에서 차용하였다.

 

태봉대교와 햇불전망대 모습

 

 

 태봉대교를 지나 약 한 시간이 정도 걸어가니 고석정국민관광단지가 나온다. 고석정은 조선시대 임꺽정이 은거한 곳이라 하여 관광단지 입구에는임꺽정의 형상이 서 있다.

 

고석정 국임관광지의 임꺽정 상

 

 15-1코스를 다 걷고 다음의 16-2코스를 걷기 인증을 받으려고 QR코드를 찾으니 찾기가 너무 얿다.주변을 살펴보다가 평화의 길 망뚝 뒤를 보니 조그마하게 QR코드가 보였다. 왜 이렇게 QR코드를 찾기 어렵게 설정해 놓았는지 의아해서 두루누비 사무국에 연락해서 수정을 부탁했다.

 

 그리고 시원한 냉커피를 한잔 마시고 쉬다가 다음 코스로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