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평화의 길 13코스(군남홍수조절지 - 그리팅맨 - 신망리역 - 대광리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평화의 길 13코스는 군남홍수조절지를 출발하여 옥녀봉을 돌아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신망리역을 지나 대광리역까지 가는 19.8km의 길이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겨울철새인 두루미(천연기념물), 재두루미(천연기념물), 흑두루미(천연기념물)가 매년 겨울 최대 200마리 이상 월동하는 대표적인 곳으로, 남북한 접경 지역이라는 지리적 여건과 임진강 자연환경이 만들어 낸 특수성으로 인해 수달, 고라니, 두루미, 어름치 등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는 천혜의 자연 생태지역이다. 그래서 201110월 준공한 군남홍수조절지 옆에 두루미 테마파크를 조성하여 두루미가 들려주는 평화와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스토리텔링을 하였으며, 평화의 북, 소원나무, 두루미 조형물 등 다양한 이야기의 시설물과 우수한 환경영향 저감시설들이 조성되어 있다.

 

두루미테마파크의 여러 모습

 

두루미테마파크에서 보는 군남댐

 

 군남댐을 지나 옥녀봉으로 올라간다. 경기 최북단 연천의 연인산 옥녀봉에는 북녘땅을 향해 양손을 가지런히 옆에 붙이고 15도 각도로 고개와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조각가 유영호의 작품으로 남북한 서로에 대한 배려, 존중, 평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은 아름다운 조각상과 동시에 석양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지만 내가 지나가는 시간은 한낮이라 석양은 볼 수 없으나 옥녀봉 산길을 걸으며 보는 북쪽에서 흐르는 임진강은 또 다른 경치를 보여 주었다.

 

평화의 길 이정표

 

옥녀봉의 산길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

 

 

 옥녀봉을 빙 돌아서 내려와 상리마을로 가는 길목에 약수터가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먹을 수 있게 시설을 해 놓은 곳으로 시원한 물로 목을 적시고 물병을 채우고 산을 내려갔다.

 

약수터

 

길가의 비닐하우스에 열려 있는 호박

 

 길을 따라 걸으니 철로가 보이고 조금 가니 신망리역에 도착한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신망리역(新望里驛)은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상리에 위치한 경원선의 철도역이다. 1956821일 경원선 역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신망리역은 11선의 선로로 승강장과 역사가 매우 좁은 것이 특징으로 기차역과 동네 길이 맞닿아 있다. 역원은 없지만 대신 주민들이 역원을 자처해 어느 역사보다 예쁘게 꾸며진 곳이었다. 20194월부터 시작된 경원선 동두천역~연천역 구간 전철화공사로 통근열차가 더 이상 다니지 않으면서 현재는 운영하지 않고 있다.

 신망리라는 이름은 19546.25 전쟁 피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정착촌으로, New() Hope() Town()을 한자로 번역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0194월 이후 열차 운행이 임시 중단되고 202112월에 경기에코뮤지엄 사업지로 선정되어 역과 주변이 리모델링되었다.

 

신망리역 주변에는 제법 많은 음식점이 다양하게 있다. 점심때도 되었기에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으면서 휴대폰도 충전하고 쉬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경원선 철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지금은 다니지 않는 기차가 저 멀리에서 오는 것 같이 머리 속에 상상하면서 걸었다.

 

신망리역과 철길

 

 

 신망리역에서 길을 따라 걸으면 옛 경원선의 끊어진 철길도 보이고 하천을 가로지르는 철도의 다리들도 여러 곳이 보인다.

 

 구 경원선(京元線)은 서울특별시 용산구와 북한의 강원도 원산시 사이에 부설된 철도로 191496일 개통되었으며, 총 연장은 223.7이다. 강원도 철원과 안변을 거쳐 원산시에 이르나 지금은 국토의 분단으로 서울 용산역에서 경기도 철원군 철원읍에 있는 백마고지역까지의 94.4만 운행하고 있다.

 경원선은 국토를 가로질러 수도 서울과 동해를 잇는 간선 철도로, 함경선과 이어져 두만강 연안에 이르고, 국경을 지나면 대륙 철도에 접속되어 여러 면에서 막중한 위치에 있었다. 서울과 당시 동해안 제일의 항구였던 원산을 연결하는 경원선의 중요성으로, 그 부설권을 획득하기 위한 제국주의 열강의 외교전이 매우 치열하여 프랑스와 독일 일본 등이 경원선과 부설권을 청구하였으나, 당시의 우리 조정은 이를 모두 거절하였다.

 

 당시 우리나라가 일관하여 내세운 원칙은 철도와 광산 경영은 일체 이를 외국인에게 불허한다.’는 것이었다. 1899617일 정부는 경원선의 부설을 박기종(朴琪淙) 등의 국내 철도 회사에 허가하고, 그 달 24일 이를 관보로 공포하였다.

 

그러던 중 일본은 경원철도부설을 위하여 기채(起債)할 경우, 일본과 먼저 협의한다.’는 의무 조항을 교묘히 악용하여, 경원선에 대한 출자 권리를 내세우며  경원군용철도론을 내세워 1904629일부터 시작하여 서울~원산 사이 철도 부설 노선 답사를 우리 정부의 제지 없이 마치고 그 해 827일 경원선을 군용 철도로 부설하기로 결정하여 발표하였다. 그리고 19104월 용산쪽에서부터 선로 측량이 시작되어 그 해 1015일 용산에서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이듬해 3월 다시 원산쪽에서 측량을 시작, 10월에 기공하였다. 19111015일 용산의정부 구간 31.2가 처음 개통되었고, 1914814일 세포고산(高山) 구간 26.1가 개통됨으로써 222.7의 전 노선이 완공되었다.

 

 경원선은 추가령구조곡의 지구대(地溝帶)를 따라 건설되어 고산협곡의 험준한 지형적 장애를 상당히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철령산지를 비껴 넘어야 하였고 기존 도로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공정 전반이 쉽지는 않았다. 특히, 경술국치 직후라 민간인과 의병들의 저항과 습격이 잦았다고 한다. 운행 초기에는 운송 실적이 저조하였으나, 주변에 금강산, 원산해수욕장 등의 관광명소가 있어, 철에 따라 객차를 늘리거나 임시 열차를 운행하기도 하였다.

 광복 후 동북 지방의 개발에 큰 몫을 할 수 있었던 경원선은 국토 분단으로 원산까지의 운행은 중단되었다.

 

구 경원선 철로

 

 

 

 신망리역에서 철로 주변을 따라 걸어 대광리역에 도착한다. 연천군 신서면에 위치한, 19121021일 경원선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대광리역은 한때 연천 이북의 철도역 중에서 가장 번화한 역이었다. 대광리는 대광산 아래 위치하여 과거에는 강원도에 속했지만 1963년 경기도 연천군에 편입되었다. 인근의 다른 역과는 달리 한국전쟁으로 인한 소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역사의 모습도 한국전쟁 이후 지어진 삼각지붕의 역사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2015년 무인역이 되었지만 대신 벽면에 그려진 벽화와 낡은 의자, 닭장처럼 손때 묻어나는 소품들이 세월의 흔적으로 남아 역사를 따뜻하게 데운다

 역 주변에 신서면사무소가 있어, 인적이 거의 없는 신망리역 ~ 백마고지역 구간에서는 그나마 역세권이 형성되어 있는 편이다.

 이름의 유래는 고려 목종 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대종불사공덕을 통해서 큰 빛을 보았다고 해서 대광리라고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대광리역은 도신리에 자리하고, 다음 역인 신탄리역이 대광리에 있다.

 201941일부터 경원선 동두천~연천 구간 전철화 공사로 인하여 동두천~백마고지 구간을 운행하던 모든 통근열차 운행이 임시 중단되었다. 역사는 잠겨서 출입이 불가능하고 화장실만 갈 수 있다.

 6.25 전쟁 당시에는 경원선 최북단 역이자 남한 최북단 역으로 중부전선의 격전지인 철의 삼각지 일대로 보낼 물자와 병력 등을 집결하는 집결지로 이용되었다. 대광리역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신탄리역은 휴전 협정 체결 후인 1955년 운행을 재개했고, 현재 실질적인 남한 최북단 역인 백마고지역은 2012년에 개통하였다.

 

대광리역

 

 대광리역에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여기서 조금 무리하면 다믕 코스를 걸어 백마고지역까지 갈 수 있지만 기상 예보에 의하면 다음 날에는 비가 비교적 많이 온다고 해서 오늘은 여기서 멈추고 내일 비가 오지 않는 오전에 백마고지역까지 가기로 하고 숙소를 찾아 들어가 휴식을 하였다.

 대광리역 주변은 제법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어 먹을 곳을 찾거나 잠잘 곳을 찾기에는 어렵지 않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