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운남 여행 16 - 텅충, 화순교향(고진)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조용한 즐거움이 있는 오래된 마을 화순
텅충의 마지막 여정은 화순으로 정했다.
운남성 보산(保山)시 텅충(騰沖)현 경내에 위치해 있는 화순교향은 텅충현에서 불과 10여분의 거리에 있으며 6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마을로, 명나라 때 호남성에서 이주를 해 온 사람들은 2/3는 군사적 이유였고 1/3은 농사가 주 목적이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 곳의 날씨에 의하여 양문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가 청의 강양제 시기에는 살기 좋고 서로 다투지 않아 화순교향이라고 했으며 마을 입구의 두 다리를 멀리서 보면 쌍 무지개가 뜨는 것과 같아 우의교라 불리기도 한다. 이 두 다리를 건너면 화순의 마을 안으로 진입을 할 수가 있다. 화순의 인구는 거의 80%가 화교이고, 나머지가 원주민이라고 한다.
이 화순 역사의 뒤안길에는 지진 10번에도 견딘다는 토성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라져 볼 수가 없다. 토성의 옛 사진에 의하면 토성의 높이는 7m, 너비는 3.8m였다고 한다.
그리고 길의 담장이 화산석으로 되어 있는데 이 담장을 청수담장이라고 한다.
화순고진 입장권
화순고진으로 들어가는 대문
화순에 들어서면 그림처럼 아름다우며 지나간 세월의 소박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온다. 아늑한 골목 양옆에는 검은 기와를 쓴 오래된 저택들과 장엄하면서도 우아한 사당과 패방, 자그마하면서도 정교한 누각과 정자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건물들 사이로 푸른 나무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나무의 그늘 아래서는 주민들이 환담을 하거나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광경에 접하면 누구든지 저도 모르게 마음이 평안해진다.
화순고진 경내 안내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문
화순표지석
화순의 마을 사이를 흐르는 냇물
이곳에는 건립 시기는 1924년도인 중국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향교 도서관이 있으며 책만 7만여 권이 있으며 옛 고서들 또한 1만여 권이 비치가 되어 있다 한다. 이 1만여 권의 가치는 이 곳의 가이드 말에 의하면 단 한 권만을 팔아도 집을 살 수 있는 큰 가치가 있다고 한다. 이 도서관은 외지에 나간 화교들이 돈을 보내와 지었으며 책도 화교들이 희사하였다고 한다. 도서관 내의 사진들을 보면 이 향촌을 빛낸 인물들 위주로 전시가 되어 있으며 대표적인 여러 사람 중에 중국의 5대 비취왕 중에 한 분의 얼굴이 가장 인상적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창천루라는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은 쉽게 들어 갈 수 없게 되어 있으며 이 안의 책들은 모두 고서들로 위에 언급을 한 것처럼 가치가 무지 소중하다고 한다.
화순도서관의 모습
옛날 방식으로 종이를 만드는 방법을 보여 주는 곳
화순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실크로드 함께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 중국 서남부 운남성, 사천성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인도까지 이어지는 육상 무역의 길로, 차(茶)와 말을 교역하던 중국의 높고 험준한 옛길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이며 이 길을 따라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이 오갔다고 하여 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나라 이전인 기원전 시기부터 형성되었고 당·송 시대를 거치면서 번성하였으며 이후 네팔, 인도, 유럽까지 연결됐다. 길이가 약 5000㎞에 이르며 평균 해발고도가 4,000m 이상인 높고 험준한 이 길을 따라 물건을 교역하던 상인 조직을 마방이라고 하는데, 수십 마리의 말과 말잡이인 '간마런'으로 이루어지며 교역물품은 차와 말 외에 소금, 약재, 금은, 버섯류 등 다양하게 변했다. 근대에 차마고도를 따라 많은 도로가 건설되었지만 아직도 일부 마방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차마고도의 출발점이라고 하면서 기념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어병부
검은 기와를 쓴 오래된 저택들
화순 마을의 길 모습
유씨종사
백세방 문 - 이 문을 통과하고 난 길을 걸으면 장수한다는 길이다.
화순고진은 중국의 다른 고성과는 달리 물로 둘러 쌓여 있다. 고진내에는 넓은 호수가 있으며 마을 사이사이로 흐르는 냇물은 마을을 깨끗하고 평화롭게 보여 준다.
호수의 수상주루
화순의 호수(야압호 : 야생오리호수)
이 곳 화순의 가장 안쪽에는 애사기(艾思奇) 기념관이 있는데 그 앞의 광장에 있는 수령이 250년 이상인 이름이 용수(榕樹)라고 하는 큰 나무가 멋있게 뻗쳐 있다.
애사기(艾思奇 1910~1966)는 17세에 중국 공산당에 입당을 하였으며 마르크스주의를 중국에 전하는데 엄청난 공헌을 했으며 중국의 실직적인 공산주의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애사기의 원명(原名)은 "이 생선"으로 그는 모택동 주석으로 부터 '애사기'라는 시호를 받게 되었다 한다. 애사기라는 이름의 뜻은 "쑥을 생각하니 기이하구나"라는 뜻인데 더 깊이 그 의미로 "쑥은 어떠한 악조건의 환경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으로 세상에 싹을 올리는 식물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이로운 식물이다." 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간상 이곳을 찾아가지를 못했다.
화순의 길가에 붙어 있는 객잔 안내
이 골목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음식을 파는 노점 비슷한 곳이 많이 나온다. 아무 곳이나 앉아서 한끼를 해결하면 좋을 것이다. 가격은 비싸지 않으며 음식은 그 지방의 음식이라 조금 색다르다.
화순 마방 박물관
화순을 거닐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간 긴 세월과 풍부한 문화를 느낄 수 있다. 화순사람들은 농사와 장사, 유교를 완전무결하게 하나로 접목시키는 지식과 문화를 자자손손 이어오고 있다. 화순은 살아 있는 도시이다. 선조들이 물려준 나무집에서 조용히 살아오던 화순 사람들은 오늘날 몰려드는 외지의 관광객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예전부터 개방된 자세로 살아온 화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지난 시대에는 동남아로부터 그들의 문화를 배웠고 오늘날은 관광객들을 통하여 그들의 선진적인 문화와 이념을 본받으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관광객을 통하여 더 좋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본다.
바로 화순문화의 포용성과 다원성으로 인해 화순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운남의 여러 고성 중에서 가장 좋은 느낌을 받은 곳이다. 리장이나 다리, 그리고 수허고성 등 등 많은 고성을 다녔으나 대부분이 사실 너무 상업적으로 번찬하고 관광객 위주로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이 화순은 아직 옛스런 정취가 많이 남아 고요하게 마을을 돌아 보는 것이 즐거웠다. 특히 마을을 안고 있는 넓은 호수는 사람의 마음을 더 포근하게 해 주었다.
여행의 일정이 조금 차질이 있어 화순의 곳곳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많이 아쉬웠다. 다음에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화순을 다시 찾아와서 구석구석을 제대로 볼 기회가 있기를 기대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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