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해미순교자성지 - 여숫골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천주교의 순교자 성지

 

 우리나라에는 천주교가 많은 박해를 받고나서 자리를 잡았다. 여러 번의 박해를 통해 많은 신자들이 순교를 하였고, 그 중에서 가장 큰 박해는 병인년(1866년) 박해라고 생각된다.

 

 그 병인박해에서 가장 큰 순교는 충청도 해미일대에서 일어난 박해이다.

 

 1866년(조선 고종 3) 병인박해() 이후 1882년(고종 19) 사이에 진행된 천주교 박해 때 충청도 각 고을에서 붙잡혀온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생매장당한 곳이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을 해미읍성 서문 밖의 돌다리에서 자리개질 등으로 처형하였는데, 숫자가 너무 많자 해미천에 큰 구덩이를 파고 모두 생매장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죽음을 앞둔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를 하였는데, 마을 주민들이 이 소리를 '여수머리'로 잘못 알아들어 이곳을 '여숫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신자들을 묶어 물속 둠벙에 빠뜨려 생매장을 시켰던 진둠벙과 해미천 옆에 생매장당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높이 16m의 '해미순교탑', 무명순교자의 묘, 유해발굴지에 조성된 노천성당, 서문 밖 순교지에 있던 자리개돌 원석이 보존되어 있다. 해미순교성지 인근에는 내포 지방에서 해미로 넘어가는 순교자 압송로였던 한티 고개가 있다. 고갯길에 있는 십자가의 길은 정상에 1처가 시작되어 해미 방면으로 14처가 설치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해미순교성지(여숫골)에서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든 아니든 한번 쯤은 우리 역사의 아픔을 느끼고 종교적인 믿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도 내어 줄줄 아는 그들의 정신에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엄숙한 마음으로 이 성지의 모습을 보시기를 바란다.

 

 

해미순교자성지 성당

 

 

 

교황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메시지 조형물

 

 

해미순교자성지 표지석

 

 

 

성지 안내도

 

 

순교자성지 성단의 전면

 

 

 

 

박해 때 순교한 분들의 유해발굴터 표지석 

 

 

순교자 기념관

 

 

순교자들을 기리는 경건한 기도처(순교 자리개돌)

 

 

자리개돌의 설명

 

 

자리개돌

 

 

첫 순교자 마르티노의 말씀

 

 

여숫골 표지석

 

 

성지 경내에 핀 아름다운 꽃

 

 

해미성지를 기리는 시비

 

 

진둠벙 표지석

 

 

해미순교탑

 

 

무명 순교자들의 묘

 

 

진둠벙 표지

 

 

십자가의 길 표지

 

 

 

 

 

 

 

 

 

 

 

 

 

 

 

십자가의 길 14처 - 내용은 해미 순교자들의 특성을 살려 약간 바귀어 있다.

 

 

해미순교자 성지 전경

 

 

 해미순교자성지는 종교적인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성지도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역사의 한 단면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냥 지나쳐 버릴 곳은 아니라 생각한다.

 

 나와 같은 종교가 아니라도 그들이 자신의 믿음을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그 신념과 믿음은 무엇이었을까를 오늘날 돌이켜 생각해 보는 것도 우리 인생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무언가 교육이 될 역사적 장소를 통하여 배움과 믿음을 함께 하기를 바라며 이 성지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