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서해랑길 86코스(평택항 - 수도사 - 남양방조제 - 이화리버스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86코스는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앞을 출발하여 신당근린공원과  아산국가산업단지 경기포승지구를 지나 수도사를 거쳐서 남양호의 남양방조제를 지나서 이화리버스정류장까지 가는 13.8km의 짧은 거리다.

 

86코스 안내판

 

평택항마린센터 건물

 

 평택항 86코스 시작점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려온다. 그런데 이 주위에 숙박할 곳이 없어 두루누비 안내를 펼쳐 평택시내로 걸어가기로 하고 길을 재촉했다. 평택산업단지 길을 걸어가니 다행스럽게 모텔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생각하니 길을 떠나기 전에 이 모텔을 검색해 본 기억이 있었고 이곳에서 숙박을 한다고 생각을 한 곳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숙소를 전하고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배불리 먹고 편안하게 쉬다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에 길을 떠나 공단 길을 따라 걷다가 자그마한 언덕으로 올라가 언덕을 내려오니 신당근린공원이 나타난다.

 

산업공단 길의 모습

 

 신당근린공원의 입구에는 안내도와 공원 내에서 지켜야할 사항들에 관한 표지판이 있다.

신당근린공원은 포승읍을 대표할만한 넓은 규모의 공원으로 광장, 관리사무소, 야구장, 놀이터, 미니축구장, 테니스장, 홍보관, 배수지, 파고라 광장, 주차장이 있다. 광장의 오른편에는 미니축구장이 있고,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의 놀이터에는 그네, 미끄럼틀, 시소가 있어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공원이다.

 

공원의 모습

 

 공원을 지나 평택시내를 걸어가니 초등학교가 여러 개 보이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교통안내를 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특이한 점이 거의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평택에 외국인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많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내국인보다도 외국인이 더 많았다. 우리나라도 다문화 국가가 되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길

 

 시내를 벗어나 작은 산으로 올라가니 원효길이라는 표시가 있다. 그리고 그 산을 넘어가니 수도사가 나온다. 우리에게는 흔히 알려진 사찰은 아니지만 불교의 역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찰이다.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 봉화산에 있는 수도사(修道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경기도 전통사찰 제28호로 852(신라 문성왕 14) 염거(廉巨)가 창건하였다. 그러나 이곳이 661(문무왕 1) 원효(元曉)가 해골 물을 마시고 득도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염거가 창건하기 전에도 작은 암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효가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중 이 근처 바위굴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원효는 밤에 목이 말라 주변을 더듬어 보니 바가지에 물이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시원하게 마셨다. 그러나 다음날 일어나 물을 마시던 바가지가 해골인 것을 보고는 구토를 하고 말았다. 이에 원효는 모든 것이 마음에 있음을 깨닫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였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창건 이후 사세가 크게 번창하였으나 도적이 들끓어 노략질이 심하고 승려까지 납치하는 일이 발생하여 절이 비게 되었으며,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1592(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곧 복원하였고, 1911년 불에 타 폐사로 남아 있던 것을 1960년 영석(永錫)이 중창하였다. 1965년부터 정암(靜庵)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유물로는 염거의 부도로 추정되는 사리탑이 전하며, 절 주위에는 탑재와 석물이 흩어져 있다. 1998년 경내에 불탑을 세웠다.

 

원효길

 

수도사의 여러 모습

 

이정표

 

남양호를 가로지르는 남양대교

 

 수도사에서 내려와 길을 따라 걸으면 남양대교가 나오고 그 밑으로 난 길을 따라 남양호 주변을 걷는다.

 화성시 장안면과 평택시 포승읍 사이에 있는 인공호수인 남양호(南陽湖)는 농업용수 확보와 발안천 하구에서 발생하는 염해를 해결하기 위하여 계획되어, 발안천 하구가 있는 남양만속 작은 만인 분양만에 남양방조제가 건설되면서 1974년에 조성된 하구 담수호이다. 남양호로는 발안천과 세천 등이 유입한다. 남양호 주변일대는 우리나라에서 조석간만의 차가 가장 큰 편에 속하고, 해안선의 출입이 복잡하여 간석지가 넓게 발달하고 있다. 남양호 인근에는 화성 장안첨단제1·2일반산업단지’, ‘평택 어연한산일반산업단지’, ‘평택 오성일반산업단지’, ‘평택 포승제2일반산업단지’, ‘평택 한중테크밸리일반산업단지’, ‘평택 현곡일반산업단지등의 산업 단지들이 조성되었고, 인근에는 전자 부품 및 자동차 부품 생산 업체 등이 입지하고 있다.

 

남양호 표석

 

평택시와 화서시의 경계 표시

 

 바다를 가로 막아 남양호를 만든 남양방조제 위를 걸어간다. 남양방조제(南陽防潮堤)는 초기 매립 면허를 받은 개인 사업자가 1964년부터 시공하였지만, 조수 간만의 차가 극심하여 지반의 토사가 유출되어 더 이상 시공할 수 없어 1970년 정부에서 인수하여 국가 주도로 건설하게 되었다. 1971323일 착공되어 19731220일 끝막이 공사를 마치고 1974522일 준공되었다.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토목공사는 197611월에 끝났다. 남양방조제의 길이는 2,060m에 이르며, 너비 12m의 도로가 있으며 각각 50톤을 배수할 수 있는 34.9m 크기의 갑문이 12개 설치되어 있다.

 남양방조제는 평택시와 화성시의 해안을 잇는 교통로로도 이용되고, 남양방조제 축조와 함께 조성된 남양호는 화성시의 관광지로서 농업 용수 공급은 물론, 연중 낚시꾼이 즐겨 찾는 곳으로 특히 겨울철 얼음 낚시로 유명하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탁 트인 방조제 위를 걸으면 가슴이 활짝 열린다. 사위가 아파트로 막힌 도시에서 살다가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이 길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가 없는 즐거움이다.

 

방조제에서 보는 안팍의 풍경

 

 이 방조제를 지나서 조금 가면 이화리버스정류장이 나오고 86코스는 끝이 난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조금 쉬다가 다음 코스로 발을 옮긴다.

서해랑길 85코스(노양마을회관정류장 - 평택호예술공원 - 평택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85코스는 노양마을회관정류장에서 출발하여 평택국제대학교, 평택호예술공원을 거쳐 평택항에 이르는 22.3km의 제법 긴 길이다.

 

85코스 안내판

 

아산과 편택을 구분짓는 둔포천 표시

 

위험구간 표시문

 

 저번에 85코스 시작점에서 여정을 멈추었기에 집에서 출발하여 평택지제역까지 기차를 타고 와서 버스로 시작점에 도착하여 걷기를 시작하였다. 출발하여 조금 길을 걸으니 평택호를 가로지르는 평택국제대교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평택대교 위에서 보는 평택호(아산호)의 풍경도 눈을 맑게 한다.

 

평택국제대교

 

 평택국제대교를 건너 평택호 주변으로 내려가 호수 주변 길을 따라 걸으니 호수에는 겨울 철새들도 보이고 한가롭고 여유로운 정경만 펼쳐진다. 편안한 마음으로 계속 걸어가면 신왕리에서 마안산으로 올라간다.

 

평택호의 여러 풍경

 

여러 둘레길 표시

 

정감이 가는 집

 

 

 

 신대2리 마을회관 옆에서 마안산으로 올라간다. 마안산은 평택호에 인접한 정상이 해발 126m인 낮은 산으로 등산로는 3.4km정도로 왕복 1시간 정도 걷는 코스이다. 걷는 길이 가파르지 않아 쉽게 산을 오르내릴 수 있어 이 산을 지나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산길에는 여러 시화와 미술품 등 예술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운동기구도 곳곳에 있으며, 옆으로는 넓게 펼쳐진 평택호를 살짝살짝 볼 수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평택호의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마안산 정상부에 올라가니 아주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온 여인들의 무리가 보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산길에 어린 유이를 안고 업고 다니는 모습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마안산의 여러 예술작품

 

멀리 보이는 평택호

 

마안산 정상

 

 

 

 마안산을 내려와 시골 마을길을 걸어가니 대안4리 마을회관이 나오고 조금 지나니 뜻밖에 연자방아를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는 조그마한 초가지붕의 정자가 보인다.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새삼스럽게 반가운 마음에 잠시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번 길에 이것을 본 것만으로도 길을 걸은 가치가 있다. 

 

 연자방아(硏子-)는 연자매라고도 하며, 맷돌처럼 둥글게 다듬은 판판한 아랫돌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윗돌을 옆으로 세우고 나무 테를 씌운 다음, 한쪽 끝을 소나 말에 걸어서 끌게 하여 전체를 돌림으로써 곡식을 찧는 방아다. 육중한 윗돌에 눌려 안팎으로 밀려나는 곡식을 계속 욱여주며 돌리면 제풀에 잘 찧어지며, 특히 보리방아에서 능률이 높다. 한 사람이 마소의 고삐를 잡고 앞에서 몰고, 다른 사람이 그 뒤를 따르며 넉가래로 곡식을 뒤집어주는데, 이 사람을 께끼꾼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래 윗돌인 매는 해마다 쪼아 주어야 일이 쉬워지는데 이 일을 하는 사람을 매조이꾼이라고 부른다. 연자방아로는 벼, 보리, 수수, 조 따위를 찧으며 밀을 가루로 만들기도 한다.

 

연자방아와 복원비

 

 이곳에서 계속 길을 가니 도대천이 나오는데 이곳이 공사 중이라 길 표시도 없고 길을 가기가 쉽지 않았다. 다헹히 공사 중인 사람들이 옆으로 지나가게 하여 무사히 길 을 계속 갈 수가 있었다.

 

도대천 공사 중 표시

 

 

 

 도대천을 지나 농촌 길을 걸어가니 평택호예술공원이 나타난다. 평택호예술공원은 평택호에 접한 예술공원으로 평택호수를 배경 삼아 사진 찍기에 좋은 곳으로 꼽힌다. 한국 소리터와 국악을 현대화하여 대중화시키고 세계화로 이끈 지영희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영희 국악관, 해금 벤치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주변의 호수가 넓어 바다처럼 느껴져 천천히 걸으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넓은 평택예술공원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니 여러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고, 여러 시설물들이 보인다. 그 시설물 중에 특이하게 '한국소리터'라는 건물이 보인다.

 한국소리터는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지원특별사업에 의해 평택 호반을 한눈에 조망할 평택호 관광단지에 평택농악과 지역 전통예술을 보존·전승하기 위해 설립된 문화예술시설이다. 한국소리터는 크게 평택 출신의 국악거장 지영희 선생을 기념하는 569석이 갖춰진 실내 공연장인 지영희홀과 야외공연장 인 평택농악마을’, 관리 및 숙소동인 어울림동두드림동을 갖추고 20111111일 개관했으며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행복한 한국소리터를 만들기 위한 비전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다.

2012년부터 평택농악과 평택민요 상설공연을 비롯해 매년 100여 회의 상설 및 초청공연을 개최해 23만 명이 전통문화와 일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도자기와 마임 등의 다양한 문화예술도 향유할 수 있는 공연 연구체험 시설이다.

 

한국소리터

 

평택호 예술공원의 여러 모습

 

 

 

 평택호 예술공원을 지나 바닷가를 따라 걷다가 마을로 들어가니 한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는 벼를 정미하는 정미소가 보인다. 이런 풍경도 길을 걸으면서 보는 정겨운 광경이다.

 

정미소

 

 조금 더 길을 가니 평택산업단지가 나오고 길을 따라 조금 가니 평택항이 나타나고 국제여객터미널이 보인다.

 평택항은 아산만을 사이로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에서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까지 아우르는 대규모 무역항으로 크게 동부두와 서부두, 송악부두, 그리고 고대부두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외에 여객부두와 모래부두, 돌핀부두가 있다. 평택항이 최단기간 내에 세계적 규모의 항만으로 성장한 이면에는 2000년대 들어 급성장 한 중국의 수혜를 직·간접적으로 받았다는 점이다. 평택항은 중국 남부 경제특구들, 대만, 홍콩으로 가는 선박들이 집결하는 곳으로 인천항의 화물 물동량을 상당부분 평택항에 넘겨주는 결과가 되었다.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은 포승읍 만호리에 있으며, 산둥방면으로 가는 화객선이 대부분이다. 산둥방면 외에는 장쑤성 롄윈강행 선편이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여 화객선의 여객영업을 일시 중지하고 화물만 운송하고 있다.

 

평택산업단지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앞에서 85코스는 끝이 났다. 그런데 이 주변은 너무 황량하여 숙박을 할 곳이 없다. 그래서 제법 늦은 시간이지만 지도를 보고 숙박할 곳을 찾아 다음 코스로 발을 옮긴다.

서해랑길 84코스(인주공단교차로 - 공세리성당입구 - 쌀조개섬입구 - 노양마을회관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84코스는 인주공단교차로에서 출발하여 유명한 공세리성당 입구를 지나서 노양마을회관정류장까지 가는 18km의 길이다.

 

84코스 안내판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약 한 시간 정도 길을 걸어가니 공세리성당 입구에 도착한다. 코스의 길은 성당으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여기에서 공세리성당을 가지 않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당으로 발을 옮겼다. 

 

공세리성당 이정표

 

 공세리성당이 위치한 이곳은 내포지방의 입구로서 내포지역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의 중요한 중심지로 공세리뿐만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해미성지나 갈뫼못성지 등등 곳곳에 한국천주교회 초기의 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성당입구

 

성당 설명과 안내도

 

 공세리성당(貢稅里聖堂)18956월양촌성당(陽村本堂, 구합덕성당의 전신)에서 분리 창설되었으며, 공세리란 명칭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貢稅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충청도 내포(內浦) 지역에 위치한 공세리 일대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기에 이미 내포의 사도라고 불리던 이존창(李存昌)에 의해 복음이 전래되었다. 이 후 박해기를 거치면서도 신앙을 보존하던 이 지역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뒤에는 양촌본당의 관할 아래 있다가 18956월드비즈(Devise, 成一論) 신부가 공세리로 부임하면서 본당이 설립되었다. 대전교구에서는 가장 먼저 세워져 역사적 가치가 높아 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1922년에 완공된 건물은, 한국의 오래된 성당들이 다 그러하듯이 벽돌로 된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성당이 고풍스럽고 주변 조경도 잘 다듬어져 멋진 사진을 찍기에 좋다. 성당 마당에는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보호수로 지정된 거목이 많아 나무만 찍어도 멋지다. 하지만  그 나무가 건물을 가리어 성당 건물이 잘 나오는 사진을 찍기에는 다소 불편하여 건물 촬영 시는 여러 곳에서 각도를 맞추어야 하기에 한 번에 안 잡힐 수 있다.

 

 공세리성당은 1801년부터 1873년 신유, 병인박해 때 이 지역에서 순교한 32명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는 순교성지기에 더욱 경건하고 의미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병인박해 당시의 유물과 유품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성지 박물관은 대전교구 최초의 감실을 비롯 1,500여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성당 주위에는 십자가의 길14처와 별채로 꾸며진 성체조배실, 장구한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삼백년 이상된 보호수들과 ´예수마음 피정의 집´이 있다.

 

 아산만을 잇는 공세리 언덕 위에 세워진 공세리성당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 덕분에 ´태극기 휘날리며´,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미남이시네요´, ´아내가 돌아왔다´, ´청담동 앨리스´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 명소로 가톨릭을 믿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한 성당들 중에 하나이다. 2005년도에는 한국관광공사 주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 이곳은 이명래 고약의 발산지로 에밀 드뷔즈 신부가 이곳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주는데 그 비법을 이명래에게 전수하여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고 한다.

 

보호수 거목

 

성모 마리아상

 

성당 본관

 

14처 십자가의 길

 

보호수

 

멀리서 보는 성당 전경

 

삼십이순교자현양비

 

 본당 주변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기도초를 밝히고 기도를 한 뒤에 본당 안으로 들어가서 잠시 묵상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이제는 내가 지나는 곳에 성당이 보이면 기도를 드리는 일이 일상이 된 것 같다.

 

본당 내부의 모습

 

 

성당을 나와 다시 길을 걸으니 백석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오고 서해선 철로가 보인다. 이 서해선이 개통되어 이제 이곳으로 오는 교통이 좀 편리해지기를 빌면서 끝없 길게 이어지는 아산호 주변을 걷는다.

 

서해선

 

 

 

 안성천(安城川) 하구에 있는 아산호/평택호(牙山湖/平澤湖)는 저수량 12,300t으로 충남 아산시 인주면(仁州面) 공세리(貢稅里)와 경기 평택시 현덕면(玄德面) 권관리(權管里) 사이에 아산만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생겨난 인공호수다. 제방 위에는 너비 12m의 새로운 도로가 개설됨으로써 평택시와 아산시를 쉽게 왕래할 수 있게 되었고, 연평균 필요 용수 1800t을 공급하고 남는 물은 남양호(南陽湖:汾陽灣 안쪽에 조성한 인공담수호)에 송수한다. 또한, 1977년에 국민관광단지로 지정되면서 아산만일대의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었고, 특히 담수어의 낚시터로 이름나면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과 낚시꾼들이 찾아들고 있다. 내가 걷는 날에도 방조제 주변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야영을 하면서 즐기는 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그 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호수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본래 호수는 19745월 준공을 기념하는 '아산호기념탑'을 세우면서 아산호라 불리었는데 1990년대 한국농어촌공사 평택지사가 호수관리를 담당하면서 평택호로 불리게 되었고, 19945월에는 교통부가 아산호에서 평택호로 명칭변경 고시(1994-25)를 했다. 이후 아산호와 평택호가 혼용되고 있으며, 명칭에 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아산호의 여러 풍경

 

 아산호 주변을 걷는 도중에 나와 같이 길을 걷는 사람을 만났다.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가는 모습이 친근함이 들어 이야기를 하니 강원도 영월에 사는 82세 된 노인이었다. 나도 70이 넘었지만 그 연세에 길을 걷는다는 일이 너무 존경스러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같이 길을 걸었다. 이야기를 하니 그 분도 나와 같이 '해파랑길, 남파랑길'을 모두 걷고 지금 '서해랑길'을 걷는 중이라 하면서 어느 정도 걷고 집에 갔다가 다시 그 구간부터 걷는다고 하였다. 이점도 나와 같은 걷기 방법이라 친근감이 많이 들었다.

 

아산호 주변의 여러 풍경

 

 아산호 주변을 걸어 구룡교를 건너서 평택시로 들어가 노양리마을회관에서 이 코스는 끝이 났다. 나는 이번 여정을 여기서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 일상의 생활을 하다가 다시 길을 걸을 예정이지만 길에서 만난 그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음 코스의 길을 떠난다고 하였다. 잠시 쉬다가 길을 조심하라고 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평택지제역으로 가서 집으로 향한다.

 

서해랑길 83코스(복운리나눔숲 - 맷돌포선착장 - 삽교천방조제 - 인주공단교차로)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83코스는 복운리나눔숲에서 시작하여 바닷가 길을 걸으면 음섬포구가 나오고, 다시 길을 걸어 맷돌포선착장을 지나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삽교천방조제가 나온다, 방조제를 지나서 인주공단 길을 걸어 인주공단교차로에서 끝이 나는 15.2km의 길이다.

 

83코스 안내판

 

곳곳에 있는 서해랑길 유의사항 안내판

 

 

 

 바닷가 길을 따라 가니 음섬포구가 나타난다. 음섬포구는 삽교천에서 현대제철소 방향으로 난 북부산업로를 따라가면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다. 1979년 삽교천 방조제의 완공으로 조수가 약해지고 담수의 회류가 안 되어서 바닷고기들의 먹이가 적어지자 어류들이 자취를 감추었으며, 그 후 주민들은 백합 양식장에 전념했으나 삽교천 방조제에서 밀어닥친 폐수로 망치게 되자 더 할 수 없어서 현재는 맷돌포구와 같이 한적한 포구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당진시는 음성포구에서 맷돌포구를 거쳐 삽교호 관광지까지 바닷가에 난 길을 따라 약 7에 이르는 바다사랑길을 조성하였으며, 특히 삽교호 관광지에서 맷돌포구까지는 약 2.5의 해안탐방로가 데크로 조성하였다. 또한 음섬포구에 바닷가와 서해 대교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길이 42.5m의 전망 데크와 파고라, 벤치, 공중화장실 등 편의 시설을 설치해 관광객들이 해안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쉼터를 조성했다.

 

음섬해양전망대 표시

 

낚시꾼이 잡은 물고기

 

바닷가의 여러 모습

 

 길을 가면 만나는 석화산 아래 해안 포구인 맷돌포는 예전에는 매포라고 불렸다. 준치, 황강달이[황색이], 숭어 새끼[동어]가 많이 잡히는 포구로 유명했으며, 바다 앞에는 매산리에 소속된 유명한 행담도가 떠있어, 행담도 주민들이 육지로 나왔다가 배를 타고 왕래하였다. 맷돌포선착장은 고깃배가 정박하는 아담한 포구로, 물이 들어오면 뱃머리가 오른쪽으로 돌고 물이 빠지면 뱃머리가 왼쪽으로 도는 것이 마치 맷돌 같다 하여 맷돌포라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이곳은 낚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 선착장 한편에 간이 의자를 펴고 앉아 맷돌포 앞바다를 감상하며 낚시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길을 가다가 점심때가 되어 식당에 들어가니 또 어려움에 처했다. 음식을 1인분은 팔지 않고 2인분 이상만 파는 것이다. 다행히 종업원 아가씨가 주방과 이야기를 하여 1인분을 주문받아 주었기에 맛있게 포식을 하고 나오며 인사를 하니 그 아가씨는 베트남에서 왔다고 하였다. 그 집에 유명한 장어탕이 있다고 해 놓았는데 먹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삽교천방조제 가까이에 놀이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놀이공원을 지나니 삽교천방조제가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에서 방조제를 올라가는 서해랑길 표시가 조금 잘못되어 있어 방향을 바로 잡아 길게 펼쳐지는 방조제 길을 걷는다.

 

삽교호 함상공원 일대

 

공원에서 보는 삽교천방조제

 

 삽교천방조제(揷橋川防潮堤)는 길이 3,360m, 최대너비 168m197612월에 착공하여 19783월 최종 물막이 작업에 성공하여 197910월에 완공된 대역사였다. 이 방조제는 당진, 아산, 예산, 홍성의 4개 군 지역을 전천후농토로 개발하기 위하여 삽교천지구대단위농업종합개발사업의 중추적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본래 이 지역은 넓은 평야와 간석지가 있으면서도 풍부한 농업용수를 확보하지 못하여 해마다 한해와 수해를 겪어왔고, 하구에서 역류하는 바닷물로 염해까지 입어 왔다. 그래서 자연재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삽교천방조제가 축조되어 삽교천 하구일대에 저수량 8,400t의 삽교호가 조성되어 4개군 지역의 농업용수가 해결되었고, 12개문의 배수갑문이 부설되어 홍수조절의 기능도 가지게 되었다.

 이 밖에 방조제 도로의 이용으로 서울당진간의 육로거리가 40나 단축되고, 새로운 담수호 조성으로 서해안 관광명소로 등장되는 간접효과도 얻게 되었다.

 

삽교천방조제에서 보는 양쪽 풍경

 

 삽교천방조제 중간 부분에서 아산시로 들어선다. 길고 긴 방조제를 한참이나 걸어 가 내려가니 바로 인주공단이 나타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단보다는 조금 작으나 여러 공장이 들어서 있다.

 

 인주일반산업단지는 아산시 중심에서 북서쪽 18떨어진 인주면 걸매리 일대에 조성된 산업단지이며, 단지 내에 인주 외국인 투자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수도권의 산업 시설 및 공장 증설의 확대로 산업단지 조성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수도권 공장을 이전 수용하기 위해 아산시가 조성한 산업단지이다.

 

 공단길을 조금 걸어가 공단교차로에서 83코스는 끝이 난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숙소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미리 길을 떠나기 전에 여러 경로로 찾은 하나밖에 없는 모텔로 가니 빈방이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은 한다어쩔 줄을 모르고 잠시 기다리니 빈방이 하나 있다고 하여 다행히 숙소를 구하고 밖으로 나와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해 휴식을 하였다.

서해랑길 82코스(유곡2교차로 - 심훈기념관 - 복운리나눔숲)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82코스는 유곡2교차로에서 출발하여 잠시 바다를 벗어나 내륙으로 들어간다. 높지 않은 산과 마을을 지나면 우리에게 '상록수'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심훈기념관을 만나고 그곳을 지나 복운리나눔숲에서 끝이 나는 14.3km의 비교적 짧은 길이다.

 

82코스 안내판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니 음식점이 제법 많이 보였다. 그 중에서 한 집을 택하여 들어간 집이 양평순대국집이다. 해안을 중심으로 걸으니 해산물은 자주 접하기에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그립기 때문이었다. 왜 내가 특별히 이 집을 언급하는가 하면 주인장이 아주 친절하고 음식도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밑의 메뉴 표에 보이는 순대국정식을 시키면 막걸리를 한잔 준다고 해서 시키니 한잔이 아니라 반 주전자나 주어 수육을 안주로 나그네의 회포를 풀 수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부추절이를 주었는데 아주 맛이 있었다. 주인에게 맛이 아주 좋다고 하니 모두들 그렇게 말한다고 하였다. 음식도 아주 맛있고 인심도 풍부하여 길을 가는 나그네들에게는 너무나 안성맞춤의 집이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 중에 이곳에 머물 경우에는 이집을 방문하며 한 끼를 해결하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양평뼈해장국집 모습

 

 아침에 출발하니 동쪽 하늘에 해가 떠오르고 있다. 어디에서든지 해가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무언가 긍정적인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니고 모두에게 느껴지는 감정일 것이다.

길을 따라가 가을 들판을 보니 수확을 한 곳도 있고 아직 벼가 그대로 있는 곳도 눈에 보인다.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인 벼를 보면 무언가 풍요로운 마음이 든다.

 

가을 들판

 

길가의 장승

 

 82코스 출발점에서 약 10km 가까이 가니 갑자기 길이 없다. 따라가기가 지시하는 대로 가니 공사 중이고 길은 없다. 잠시 멈추어 길을 찾으니 공사 중인 인부가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 그런데 그 길은 따라가기와는 다른 길이고 서해랑길 표시도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 길로 제법 가서 도로로 올라가니 서해랑길 표시가 보였다. 그래서 두루누비에 전화를 해서 이런 실상을 알려 주었다. '코리아 둘레길'에 지킴이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런 것은 빨리 시정을 해서 올바른 길을 안내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잘못된 곳이 보이면 꼭 두루누비에 전화를 해서 알려주는데 얼마나 고쳤는지는 내가 확인을 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러나 고쳤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공사중인 길

 

 

 

 길을 계속 가면 '필경사'가 나온다. 필경가는 일제 강점기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인이었던 심훈의 대표적 농촌 계몽 소설인 <상록수>를 집필한 곳이 현재의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97에 있는 필경사이다. 당진시는 <상록수>를 집필한 곳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심훈의 항일 및 계몽 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필경사 일원에 기념관을 건립하고 '심훈기념관'이라 명명했다.

 이곳에는 당진시 문화 관광 해설사가 상시 배치되어 심훈의 저항 정신과 계몽 정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을 하고 있으니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꼭 둘러보기를 바란다. 우리는 보통 소설가로만 알고 있으나 그의 시 '그날이 오면'은 일제 감정기의 대표적인 저항시로 알려져 있다.

 주변에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한 필경사와 상록수의 주인공인 박동혁의 모델인 심재영의 고택, 여주인공 채영신이 박동혁을 찾아왔던 한진포구 등이 있다.

 

필경사의 여러 모습

 

심훈기념관

 

 심훈기념관을 지나 길을 가니 길 위에 깨를 말리고 있다. 내가 이 길을 걸으면서 또 하나 체득한 것이 깨 내음이 너무 고소하다는 것이다. 아직 깨를 털기도 전에 나는 깨의 신선한 내음은 직접 코로 그 향기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향기다.

 

길 위에 말리려고 늘어놓은 깨

 

 길지 않은 길을 한가로이 걸으니 어느 사이에 82코스는 끝이 났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잠시 쉬다가 다음 코스로 발을 옮긴다.

 

서해랑길 81코스(장고2리정류장 - 석문달맞이 공원 - 유곡2교차로)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81코스는 장고2리정류장을 출발하여 플라망고CC를 지나 조그마한 석문공원을 지나서 파인스톤CC를 거쳐 유곡2교차로에 이르는 21.2km의 길이다.

 

81코스 안내판

 

장고항 표석

 

 장고항에서 조금 가니 특이한 모습의 배와 뱃사람의 모형이 보인다. '실치잡이' 배 모형이다. 그리고 아래에 장고항과 실치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다.

 

 장고항(長古港)은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에 있는 어항으로 석문방조제와 왜목마을 중간에 있다. 포구 경관이 마치 장구와 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장고항이라 부르는 비교적 규모가 큰 포구로 동양 최대 규모라는 석문방조제 끄트머리에 인접해 있는 실치의 주산지이다. 3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가 실치의 계절로 일년 중 이때만 맛 볼 수 있는 실치회와 실치무침을 먹기 위해 많은 미식가들이 찾아온다. 실치는 몸통이 희고 실처럼 가는 어종으로 흔히 반찬으로 먹어보았을 뱅어포가 바로 실치로 만든 것이다. 실치는 회로 유명하지만 실치의 특성상 성질이 급해 잡아 얼마 가지 않아 죽어 먼 곳까지 운반하기 곤란해 산지에서나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다.   실치는 6월 말까지 잡히지만 5월 중순이 넘으면 뼈가 굵어져 제 맛을 잃기 때문에 회로 먹을 수 있는 기간이 5월 중순 이전이다. 횟감으로 쓰이지 못하는 실치는 김처럼 발에 잘 말려서 뱅어포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

 장고항은 오래 전부터 실치로 뱅어포를 만들어와 전국에서 뱅어포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뱅어포보다 '실치회'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당진시 장고항에서는 실치회의 제 맛을 볼 수 있는 4~5월에 매년 행사를 주최한다. 실치축제현상을 찾으면 몸통이 실처럼 가는 실치에 오이, , 들깻잎, 당근 등 각종 야채와 양념을 한 초고추장을 함께 버무린 실치회와 물회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실치에 시금치와 아욱을 넣고 끓인 시원하고 깔끔한 실치 국도 별미로 즐길 수 있다고 하니 미식가들은 한 번쯤 방문해 즐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실치잡이 배 모형

 

석문달맞이공원

 

석문산업공단

 

 

 별다른 특징이 없이 길을 걸으며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을 보면서 한가롭게 걸어가면 바다가 보이기도 하고 길가에 이름도 모르는 들꽃들이 피어 있는 모습도 본다. 항상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것은 공허함보다는 한가함과 여유로움이다. 하루 종일을 걸어도 길을 걷는 사람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것이 한국의 코리아 둘레길이다. 잠시만 시간을 내어 이 길을 걸어보면 이 길이 얼마나 좋은 길인가를 알 수 있는데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재미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길을 나는 걷고 있으면 아무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과  모든 것에서 벗어난 여유로움을 느낀다.

 

 81코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숙소를 찾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처음에는 당진버스터미널까지 나가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들어오려고 했으나 수소문을 해 보니 근처에 모텔이 한 곳이 있었다. 그래서 그 모텔에서 숙박을 하고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한다.

 

서해랑길 80코스(아라메길관광안내소 - 도비도항 - 왜목마을 -장고2리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80코스는 삼길포항의 아라메길관광안내소에서 출발하여 대호만을 가로지르는 대호만로를 걸어가면 도비도항에 도착한다. 여기서 끝이 보이지 길게 뻗은 대호방조제를 걸어가서 도로를 따라가면 왜목마을해수욕장이 나오고 다시 약간의 농촌마을을 지나 해안을 따라 걸으면 장고2리 정류장에서 끝이 나는 17.2km의 길이다.

 

80코스 안내판

 

삼길포항 우럭 조형물

 

 저녁 이른 시간에 도착한 삼길포항은 제법 관광객들이 많이 보이고 주변의 음식점에도 북적거리고 있었다. 삼길포항은 당진시와 서산시를 연결하는 대호방조제의 끝자락에 위치한 정겨운 포구로, 전성기 때에는 50여 척의 뱅어 잡이 정치망 어선이 앞바다에서 초봄부터 가을까지 파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1984년 대호방조제가 조성되면서 기능이 많이 쇠하여졌으나, 삼길포항(三吉浦港)은 서산에서 가장 큰 포구로 우럭과 노래미가 많이 잡혀 매년 우럭축제가 열린다. 또 삼길포의 특징으로 포구에 매어있는 배 위에서 어부가 직접 파는 독특한 어시장이 형성되어 자연산 횟감과 해산물을 값싸게 살 수 있고, 선주들이 직접 회를 떠서 도시락에 담아 판매한다. 해안에 있는 횟집에는 생선을 가져오면 양념값만을 받고 매운탕을 끓여준다는 문구가 모두 붙어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여기서는 이 관습을 따르는 것이 좋다.

 그런데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의 음식점에서는 1인분은 먹을 수 없는 음식 메뉴가 너무 많다. 그 지방의 특색 있는 메뉴는 꼭 2인분 이상을 주문해야 한다. 그러니 일반적인 메뉴만 시켜서 저녁을 먹고 오늘을 쉬기로 하였다.

  

저녁의 삼길포항 모습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길을 떠나니 바다 위에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서해에서는 바다에서 해가 떠오르는 풍경을 보는 것은 흔하지 않는 일인데 여기서 해가 떠오르는 풍경을 본다.

 

해가 떠오르는 풍경

 

삼길포항을 떠나면 길게 이어지는 대호방조제가 항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다. 방조제 위를 걸어가면 항 포구에는 낙씨를 하는 배들이 많이 보이고 잔잔한 바다는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대호방조제는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 삼길포에서 당진군 석문면 도비도까지 3,253m 길이의 1호 방조제와 석문면 도비도에서 석문면 교로리까지 4,554m 길이의 2호 방조제를 합해 제방 길이 7,807m, 제방 높이 30.5m의 석괴·토사 혼성형 방조제이다. 이 방조제는 간척지를 개발하여 농경지를 늘리고 식량 증산을 이루려는 정부의 대호지구농업종합 개발계획으로 19841116일에 완공되었다.

석문면 난지도리 533번지에 위치한 도비도 농어촌 휴양 단지는 본래 섬이었던 도비도가 대호 방조제가 완성되면서 육지로 변함에 따라 약 8000규모의 광활한 대호 환경 농업 시범 지구와 갯벌을 이용한 자연 생태 공원으로 조성되고 있다.

 

방조제 위에서 보는 삼길포항

 

방조제 안의 간석지 풍경

 

멀리 보이는 당진화력발전소

 

 대호방조제의 편안한 길을 걸어 조금 지나면 당진화력발전소가 멀리 보인다. 화력발전소 덕분에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곳을 지나서 도로를 다라가 해안으로 가니 왜목마을이라는 곳이 나타나고 해수욕장이 나온다. 지금은 때가 지나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은 없으나 캠핑을 하는 사람들은 제법 많이 보인다.

 

 당진시 태안반도 최북단에 위치하는 왜목마을해수욕장은 지형적으로 서해 바다를 양분하면서 가늘고 길게 뻗어나간 부분의 해안이 동쪽을 향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 그리고 월출까지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모래사장과 갯바위 덕분에 해수욕과 함께 갯바위 낚시도 즐길 수 있고, 갯벌 체험도 가능하다.

왜목마을 해수욕장은 매년 11해돋이 축제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또하나의 축제는 매년 음력 77일에 견우직녀가 만나는 칠석 축제.

 

왜목해수욕장의 여러 모습

 

 

 왜목해수욕장을 지나 언덕을 넘어 바다가로 나가 조금 걸어가면 장고항이 나오고 평택해양경찰서 당진출장소 앞에서 이 코스는 끝이 난다. 방조제 길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길이라 편안하게 걸어 왔다.

 

 잠시 쉬다가 다음 코스의 길을 갈 준비를 한다.

 

서해랑길 79코스(대산버스터미널 - 삼길산 - 아라메길관광안내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79코스는 대산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하여 화곡1리 마을회관을 지나 삼길산을 넘어가면 나오는 삼길포항의 아라메길관광안내소에서 끝이 나는 12.2km의 비교적 짧은 길이다.

 

79코스 안내판

 78코스 걷기를 끝내고 79코스 안내판 주변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쉬고 도시의 길을 따라 79코스를 시작한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도시의 도로를 따라가다가 대산5리 마을회관에서부터 농촌 길로 들어간다.

 

대산5리 표석

 

79코스 이정표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

 

 가을 수확이 끝난 들판을 편안하게 걸어 낮은 언덕을 올라가니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김적 및 김홍욱 묘역'이라는 문화재가 나타난다. 내가 제법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웬만한 것은 아는데 전혀 모르는 묘역이었다. 이런 것도 길을 걸으면서 다시 얻는 큰 소득이다.

 

 서산 김적 및 김홍욱 묘역(瑞山 金積 金弘郁 墓域)은 서산시 서산시 대로화곡길 50-13에 위치하는 무덤으로 20101230일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410호로 지정되었다.

 1564년 서산에서 출생한 김적은 1609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광해군의 폭정에 염증을 느껴 사직하고 낙향하여 살면서 재산을 풀어 굶주린 사람을 도왔으며, 아들 김홍욱은 충청도와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김적의 묘는 완만한 경사지에 석축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묘를 설치했으며 금관조복의 문인석과 망주석, 동자석을 세우고 묘표석에는 가첨석을 용과 구름을 조각해서 올렸다. 김홍욱묘는 자연석축을 쌓아 묘역을 만들고, 위에서부터 날개가 달린 봉분 앞에 상석, 그 아래로 문인석 1쌍과 망주석 1쌍이 있다.

 묘역 입구에 1772년 신도비가 세워졌으며 비명은 우암 송시열의 글이라고 전한다.

 

김적 및 김홍욱 묘역의 여러 모습

 

장승

 

 다시 길을 걸어 야트막한 삼길산을 한가하게 넘어가면서 보는 삼길포항은 그림과 같이 나타난다. 서산시 대산면 화곡리의 삼길산(三吉山)은 조선조에는 산 앞에 평신진(平薪鎭)이 위치하여 있었다. <서산군지>(1926)에는 삼길산을 오르면 당진, 면천의 여러 산들은 바둑판에 붙은 바둑돌 같고 삼길(三吉)의 바다 빛은 한 폭의 흰 명주가 매달린 듯하다. 풍경이 매우 뛰어나서 봄바람 불고 가을 달이 밝을 때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라는 기록들의 사료를 통해 보면 산 이름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엿볼 수 있으나 그 유래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 또한, 삼길산과 삼길포 중 어느 것이 먼저 붙은 지명인지도 분명치 않다. 

 

그림과 같은 삼길포항

 

 

 

 삼길산을 내려오니 서산 아라메길 관광안내소가 나오고 여기서 79코스는 끝이 난다. 비교적 짧은 길을 편안하게 경치를 즐기며 편안하게 걸어 일찍 도착한 삼길포항은 비교적 번잡한 항구다. 여기서 오늘의 여정을 끝내고 쉬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