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비운의 왕 단종의 능 - 장릉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다. 이후 단종복위운동을 하던 성삼문 등이 죽음을 당하자 서인으로 강등되고 결국 죽음을 당하였다.
[출처] 단종 | 두산백과

 비운의 왕 단종.

 

 조선의 역사에 비운의 왕이 여러 명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왕으로 자신의 뜻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다가 어린 나이에 죽음을 당한 단종만큼 비운의 왕은 없다.

 단종은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다.

 이후 단종복위운동을 하던 성삼문 등이 죽음을 당하자 서인으로 강등되고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결국 죽음을 당하였다.

 

 영월 청령포에 있는 그의 유배지 현판에 있는 어제시를 인용하여 단종의 애닯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자.

 

 

어제시(御製詩)

 

千秋無限寃 寂寧荒山裡 ( 천추무한원 적령황산리 )

萬古一孤魂 蒼松繞舊園 ( 만고일고혼 창송요구원 )

嶺樹三天老 溪流得石喧 ( 영수삼천노 계류득석훤 )

山深多虎豹 不夕掩柴門 ( 산심다호표 부석엄시문 )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적막한 영월땅 황량한 산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푸른 솔은 옛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 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쳐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단종의 장릉 표지

 

 

 

조선왕릉 : 세계문화 유산 표지

 

 

 

장릉 경내의 모습

 

 

장릉 경내에 있는 비석으로 박충원이 단종의 묘를 찾아낸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장릉 올라 가는 길

 

 

 

 

장릉의 모습 : 왕의 무덤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무덤이다.

그러나 정결하고 단아한 모습은 비운의 왕을 기리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어 보인다.

 

 

 

 

장판옥 : 이 건물은 정조때 건립한 것으로 단종과 관련된 268인 충신들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라 한다.

 

 

배식단사(配食壇祠)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제사를 올리는 제단

 

 

 

신도

 

 

경내의 우물 : 영천

 

 

단종의 능을 뒤에 둔 제각

 

    

 

보호수 : 느릅나무

 

 

장릉 경내 전경

 

 

 

 

 

 

 

단종이 죽음을 당한 뒤 단종의 시신을 수습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영월 호장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지금의 무덤에 묻었다. 그의 공을 뒤에 치하하여 그의 충절을 기린 사당을 단종의 능 주변에 만들어 기린다.

 

 

 

 단종과 관련한 시는 여러 편이 있으나 가장 나의 심금을 울리는 시는 왕방연의 시조이다. 이를 인용하여 그의 마음의 편린이라도 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 준 아픔을 조금이라도 씻어 버릴 것이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이 장릉을 보고 나면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를 꼭 가 보시라. 아름다운 풍광이 그의 한스린 마음을 대신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