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주기철목사 수난 기념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의성역 앞의 넓은 광장에서 내가 갈 곳을 찾아 눈을 돌려 보니 뜻밖에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내가 알기로는 주기철목사는 1897년 경남 진해(지금의 창원) 웅천 출신이고 그 곳에 기념교회가 있다고 알고 있으며, 지난 번 남파랑길을 걸을 때 남파랑길 6코스에서 기념괸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긴 때가 있었다..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순교한 주기철 목사의 수난의 흔적이 남아 있는 당시 경찰서로 사용되던 한옥과 목조 건축물이 주기철 목사의 수난의 흔적을 간직한 기념관으로 복원돼 지난 2025519일 개관했다.

 

 주기철목사 순교 81주년을 기념해 옛 의성경찰서에 세워진 기념관은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주기철 목사 수난 유적지다. 기념관은 1938년 주기철 목사가 이른바 의성농우회 사건으로 체포돼 고문당했던 옛 의성경찰서 건물 일부를 원형 보존하고, 3층 규모의 현대식 전시관을 신축했다.

 전시관에는 주기철 목사의 설교 원고와 친필 병풍 복제본, 고문 기록, 기독교 관련 예술작품 등이 전시되어 순교 신앙의 가치를 현재와 미래에 전하고 있다.

 

기념관 조성사업은 2016년 사업회 발족 이후 10여 년간 추진돼 국비와 군비 등 총 38억여 원의 예산이 투입됐고, 2017년 한국기독교 역사사적지 제4호로 지정됐다.

 

 한국교회사의 대표적 순교자인 주기철 목사는 평양 산정현교회를 담임하던 시절 일제에 의해 의성농우회 사건에 엮이어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평양에서 체포되어 의성경찰서로 압송되어 1938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구금되어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여러 번 투옥되었다가 1944년 4월 21일에 광복을 보지 못하고 평야경찰서에서 순교하였다.

 현재 남한에 남아 있는 주기철 목사의 유일한 수난 관련 역사유적인 이 장소를 기념하기 위한 노력이 경중노회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016년 주기철목사의성경찰서수난기념추진위원회(현 사업회)가 발족하며, 본격적으로 수난기념관 건립사업이 추진되었다. 특히 2017년 제102회 총회에서 옛 의성경찰서를 사적지로 지정하고, 이후 의성군과 전국 교회 및 후원자들을 통해 약 39억 원의 예산확보가 이루어지고, 2023년 착공한 건물 공사와 내부 전시작업이 2025년에 마무리되며 수난기념관이 세상에 선보이게 됐다.

 

 시간이 제법 늦어서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기념관을 찾아갔다. 기념관에는 아무도 없어서 외부를 조금 둘러보다가 안으로 들어가서 잠시 구경을 하고 있으니 관리를 하고 계시는 듯한 분(목사님)이 퇴근을 하려고 나오시다가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를 물으셨다. 부산에서 왔다고 답을 하고 진해에 목사님의 기념관이 있는데 여기에도 있어 궁금해서 욌다고 하니 그 분이 퇴근을 멈추고 나를 데리고 여러 곳을 구경시켜 주면서 이 기념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지금도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 입구

 

일제강점기 의성경찰서 건물(한옥)

 

생명의 관

 

일식건물 외경

 

일식건물 내부와 천정

 

 일식건물 내부를 구경하는 도중에 만난 목사님의 고마우신 배려로 시간이 늦었음에도 나를 데리고 내부에 대해 설명도 해 주시고 신축건물 1,2,3,4 층과 옥상까지 안내해 주시면서 이 기념관에 대해서 설립 배경과 건물들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주시고, 주기철목사님의 정신과 삶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신축건물 전시실

 

신축건물 옥상 올라가는 계단

 

 신축건물도 단순하게 지은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며 지어진 것이다. 3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하늘나라 수난계단'이고 그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옥상은 '하늘정원'이라 칭하며 지붕기도실이 있고 더 넓은 하늘을 바라보고 마음을 정화시킬 수도 있는 공간이었다.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방문한 기념관에서 뜻밖에 친절하신 목사님을 만나 여러 가지의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기념관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