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삼랑진 만어사 - 신화와 전설이 함께하는 자그마하고 아담한 절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불현듯 만어사를 가고 싶었다. 만어사를 가 본지가 언제인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작정을 하고 만어사로 향했는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여 제대로 풍경을 보지 못하고 아쉬움만 가득 가지고 돌아왔다. 그래서 다음에 또 날을 잡아 작정하고 만어사에 갔다. 여름 끝자락의 상쾌한 하늘과 맑은 공기는 마음을 씻어주고 맑게 하였다.

 

 밀양 시내를 흘러내린 밀양강이 낙동강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낙동강 포구 삼랑진의 만어산(670m)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인 만어사에 가면, 크고 작은 돌이 쏟아져 내린 듯 또는 쏟아 부은 듯한 너덜지대가 크고 장관을 이루고 있다. 폭이 약 100m 길이가 약 500m 정도로 규모도 엄청나지만 물고기가 입질하는 모양의 너덜지대를 이루는 돌 하나하나의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골짜기를 가득 메운 입질하는 물고기 모양의 크고 작은 검은 돌들은 두드리면 신비하게도 쇠 종소리가 나는 돌들도 있다. 이 때문에 만어석이라 불리는 이 돌들은 두드리면 맑은 종소리가 나 종석이라고도 불린다. 이 돌들에는 신비한 전설이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옛날 옛적 동해 용왕의 아들이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깨닫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이란 곳의 신승(神僧)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줄 것을 부탁했다. 신승은 용왕의 아들에게 가다가 멈추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말해 주었다.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나자 수많은 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그가 멈춘 곳이 만어사이다. 만어사에 이르자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돌로 변했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고기들 또한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

 

 그런가 하면 삼국유사(이병도 역주) ‘탑상(塔像)’어산불영’(魚山佛影)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고기에 말하기를 만어사는 옛날의 자성산 또는 아라기산인데 그 옆에 아라국(가야)이 있었다. 예적에 하늘에서 알이 바닷가에 내려와 사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니 곧 수로완이다. 이 때에 경내에 옥지가 있어 못속에 독룡이 살고 있었다. 만어산에 다섯 나찰녀(羅刹女)가 있어 그 독룡과 서로 왕래 교통하였다. 그러므로 번개와 비를 때때로 내려 4년 동안 오곡이 되지 않았다. 왕이 주술로 이를 금하려 하엿으나 능히 금치 못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부처에 청하여 설법한 후에야 나찰녀가 오계(五戒)3)를 받아 그 뒤에는 재해가 없어졌다. 그러므로 동해어룡이 마침내 화하여 동중에 가득찬 돌이 되어 각기 종성의 소리가 난다고 하였다. 또한 생각컨대 대정(大定) 12년 경자(庚子) 즉 명종 11년에 처음으로 만어사를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화로는 옛날 중국의 진시황은 아방궁을 짓고 천하의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두 거두어들여 녹인 다음, 이것으로 사람의 모양을 크게 만들어 아방궁 근처에 띄엄띄엄 세워놓았다. 쇠붙이를 모두 거두어들인 것은 사람들이 쇠로 무기를 만들어 자신의 나라를 침범치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진시황은 그렇게 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이번에는 천하의 돌을 전부 날라다가 만리장성을 쌓기로 했다. 당시 풍월가를 잘 읽고 귀신을 어르는 재주가 있는 마고할미가 있었다. 마고할미도 만리장성을 쌓는 데 돌을 갖다 보태야 할 사정이었는데, 이 할미는 돌을 고기로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마고할미가 우리나라 부산울산양산 등지의 돌을 있는 대로 거두어들여 모두 고기로 만든 뒤 중국까지 수 천리를 가다가, 만어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만리장성을 모두 쌓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더 이상 돌이 필요 없게 된 마고할미는 고기로 변한 돌을 모두 그 자리에 놓아두었다. 지금 만어산의 돌들이 모두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있는 것은, 중국을 향해 가다가 그대로 멈추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먼저 보는 사진들은 안개가 자욱한 날에 찍은 사진들이다.

 

 

 

지금부터가 다시 날이 좋은 맑고 깨끗하게게 하늘이 빛나는 날의 사진들이다.

 

만어산 암괴류 설명판

 

넓게 펼쳐져 있는 암괴류

 

만어사 대웅전 올라가는 길

 

자그마하고 아담한 대융전

 

삼층석탑

 

 가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절이지만 믿을 수 없고, 지금의 만어사에는 고려 때의 삼층석탑이 대웅전 앞에 서 있다. 탑의 조성연대는 삼국유사어산불영의 기록을 참고하여 고려 명종 11(1181)으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 3.7m 정도의 만어사 삼층석탑은 단층기단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지대석과 기단부가 안정적이고 몸돌과 지붕돌의 체감률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석탑 역시 너덜지대의 만어석 또는 종석으로 만들어졌는지 두드리면 맑은 종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석탑이 서 있는 자리나 모습이 마치 너덜지대의 만어석을 굽어보는 듯하여 이색적인 너덜지대의 터를 다스리기 위해 세운 비보탑이 아니냐?고 추정하는 이도 있다. 만어사 삼층석탑은 보물 제466호로 지정돼 있다.

 

무엇인가를 뜻하는 음각

 

마애불

 

양쪽에서 보는 만어사 전경

 

미륵전 가는 길에 피어 있는 꽃무릇

 

 미륵전 가는 길에 문득 보이는 꽃이 있어 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꼿무릇이다. 벌써 꽃무릇이 피어나? 하고 생각하니 어느 새 꽃무릇이 피는 9월이었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 지냈는가?하고 생각하니 불현득 선운사 꽃무릇이 또 보고 싶다.

 

 

미륵전 앞에서 보는 암괴류

 

미륵전 안의 미륵바위

 

 수 많은 바위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지금 미륵전을 지어 보호하고 있는 미륵바위또는 미륵불상이라고 불리는 높이 5m 크기의 자연석이다. 전설 속 동해 용왕의 아들이 변한 돌이며, 삼국유사 어산불영불영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연석 표면에 붉은색이 감도는 부분이 마치 가사(袈裟)와 같아 더욱 신비롭게 여겨진다. 이 미륵바위에는 해마다 0.3씩 큰다는 신비스런 이야기도 있고, 조선시대의 국가적 재난이나, 근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에는 돌의 오른쪽 면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고 한다.

 

 

 만어사는 바다를 이룬 너덜지대의 장관과 더불어 멀리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낙동강의 전망이 매우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만어사 너덜지대의 만어석을 두드리며 전설을 확인하는 재미와 아울러 만어석의 울림만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울려오는 소리에 귀기울여보는 사색의 공간으로 삼아봄이 좋을 듯하다. 돌을 두드렸을 때 그 맑은 정도가 사람 됨됨이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