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중국 운남 여행 19 - 운남 민족촌 2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저번에 이어서 운남의 소수 민족촌을 소개한다.

 

 * 납호족 마을

 

 납호족은 동남아시아와 중국에 사는 소수민족 중의 하나로, 중국에서 공인한 56개의 소수민족으로 운남성에 약 45만 명이 살고 있고, 미얀마, 태국, 라오스, 베트남에도 소수가 살고 있으며, 베트남 정부 공인 54개의 소수민족 중 하나이다. 한국인과 비슷한 혈통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한족, 타이족과 교류한 산악 민족으로 고대에는 수렵생활을 하였으나 점차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주민들은 대나무 층집을 지어 아래층에 가축우리를 설치하고 위층에서 거주한다. 혼인 제도는 일부일처제이고 원시종교를 믿는다

 예전에는 화전을 중심으로 생활해 왔지만, 지금은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납호족의 언어는 티베트미얀마어족에 속하는 라후어를 사용하고 1957년에는 라후문자를 창제하였다. 라후어의 기본구문은 SOV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문법이나 발음이 쉽기 때문에, 산악민족 사이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기낙족 마을

 

 기낙족(基諾族, 지눠족)은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56개 민족의 하나로 1979.6에 확인된 윈난성(云南省) 지역의 민족이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인구는 약 2만 명 정도이다. 주로 윈난성 시솽반나(西雙版納 타이족 자치주를 중심으로 모여 살고 있다. 언어는 티베트미얀마어족에 속하는 지눠어를 사용하며 문자는 없고 한문을 쓴다.

 주민들은 대개 농작물을 경작하여 생활하는데 대나무로 지은 다락집에서 주거한다. 전통 의상으로 여자들은 목깃 없이 화려한 수를 놓은 윗옷과 빨간 띠를 두른 검정 치마를 입고, 흰 천으로 만든 삼각형 모자를 쓰기도 한다. 남자들은 윗옷으로 목깃이 없는 흰 베옷과 두루마기를 입고 남색이나 흰색의 긴 바지를 입는다.

 혼인제도는 일부다처제이고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여기며 자연과 조상을 숭배하는 원시종교를 믿는 민족이다.

 

 

 *몽고족 마을

 

 인류학적으로 우리와 같은 인종인 몽고족(蒙古族 - Mongghol)은 몽골고원 및 그 주변에 사는 알타이어계의 몽골어군(語群) 민족으로 만주와 중국 북부 등의 지역에 걸쳐 거주하던 유목민족으로 몽고는 넓은 의미로는 황색 인종에 대한 범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원래 고원 북동부의 초원과 삼림이 상접한 지대에 살면서 반목 반렵(半牧半獵)생활을 하였으나, 9세기 중엽 이래 점차 남하하여 전형적인 기마유목민(騎馬遊牧民)이 되어 부족국가를 세웠다. 11-12세기의 몽고고원에는 나이만(Naymann), 케레이트(Kereyid), 메르키드(Merkid), 타타르(Tatar), 옹구트(Ongghud) 등의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몽고족(Mongghol)도 이러한 여러 부족 중의 하나였다. 몽고부족 보르지기드(Borjigid) 씨족 출신의 테무친[鐵木眞]1206년 분열된 몽고고원의 통일을 이룩하고 몽고족과 튀르크계의 모든 유목민족을 지배하게 되었다. 테무친 자신은 칸[]에 추대되어 칭기즈칸[成吉思汗]이라 칭하고 대몽고국(大蒙古國)을 세웠다. 칭기즈칸은 대양(大洋)의 군주혹은 황제 중의 황제등으로 해석된다

 

 

 *바이족 마을

 

 바이족(Bai, 白族)은 윈난성[雲南省]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으로 한민족(漢民族)으로부터 민차[民家]라고 불려 왔으나 중국이 되면서 바이족(白族)으로 개칭되었다. 바이족은 하얀 색을 숭앙하며, 스스로 하얀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바아훠',‘바이지’, ‘바이니라고 부르는 소수민족이다. 바이족의 여인은 전통적으로 흰 옷에 검은 색 옷깃으로 장식을 해서 입는다. 인구는 2000년 통계에 따르면 대략 185.8만이다. 주로 다리(大理) 일대를 중심으로 운남성 일대에 살고 있으며 1956년 다리바이족(大理白族) 자치주가 설립되었다. 언어계통은 바이족(白族) 언어인 바이어(白语, 백어)를 사용한다. 문자는 당나라 때부터 한자를 기본으로 하는 백족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들의 조상은 예로부터 얼하이(洱海) 주변에 거주하며 세력을 쌓아, 당나라 때 남조국(南詔國), 송나라 때 대리국(大理國)의 주요 부족이었던 백만(白蠻)이라고 여겨진다. 대리국에 살던 관계롤 집을 대리석으로 지으며 배추김치를 먹는다고 한다. 일찍부터 벼를 경작하였고, 한문화(漢文化)의 영향도 깊으며, 당나라 때 전하여진 불교 신앙 외에 조상숭배, 마을의 시조에 대한 제사 등이 행하여진다.

 

 

 

 *장족 마을

 

 좡족(장족, 壮族 Zhuàngzú)은 중국 최대의 소수 민족으로 광시 좡족 자치구에 주로 살고 있다. 인구는 1800만 명으로 한족 다음으로 많다. 중국 남부나 베트남 북부에 주거 하는 태국계의 민족으로 언어는 티베트어, 장어(壯语), 태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한자를 기반으로 한 표의문자인 방괴장자를 사용했으나 1955년 라틴어 모음을 기초로 하여 좡족어 문자를 만들었다.

좡족의 원래 이름은 獞族(퉁족, 동족)이었다. 그런데 글자 """야생 개과"를 뜻하는 글자이기도 해서 인종적인 오명으로 간주되었다. 이 때문에 1948년에 부수를 큰 개를 뜻하는 ""에서 사람을 뜻하는 ""으로 바꾸어 僮族(동족)이 되었다. 하지만 동()의 의미가 좋지 않아 1965년에 동()과 발음이 같은 장()으로 개칭되었다.

  좡족(壮族, 장족)은 예로부터 가무를 좋아하였고 공예품으로 오색의 실로 아름답게 자수를 입힌 장금(壮錦)이 유명하며 전통복식은 남녀 모두 흑색을 사용하고 있다. 좡족은 전통적으로 손님맞이를 좋아해 낯선 사람이라도 후하게 대접하는 풍습이 있고 같은 민족 간에 단합이 잘 되어 산채를 짓고 집단으로 거주하기도 하며, 농업에는 근면하지만 상업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납시족 마을

 

  운남성(雲南省) 북서부에 있는 나시족 자치현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소수민족으로 2000년 통계에 의한 인구는 약 30.8만이다. 재미있는 것은 힘든 일은 모두 여자들이 하고 남자들은 아기를 보거나 책이나 보면서 소일하며 인생을 마친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계사회는 아니라고 라고 말 하지만 모계사회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풍습은 과거 몽골의 지배 당시 징기스칸의 아들 쿠빌라이칸에 의해 남자의 전투력을 아끼기 위해서 내려진 조처가 계속 이어져왔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들은 나시(흑인이라는 뜻)라고 자칭하지만, 한민족은 그들을 모소(麽些)라고 하였다가 최근에야 나시족으로 개칭하였다. 원래 티베트북동부에 살던 유목민으로 생각되는데, 먼 옛날에 현재의 장소에 정착하고 명나라이후 세력을 떨치게 되었다.

 농업이 생업이지만, 산지에서는 양 등의 목축도 중요시하고 있다. 나시족(纳西族, 납서족)은 동파교(东巴教)라는 종교를 믿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다신교로 무술사(巫術師)인 톰바가 의식을 집행하며, 경전으로 동파경(东巴经)이 있다. 또한 일부는 장전불교(藏传佛教)를 신봉하고 있다. 독특한 상형문자와 많은 경전이 있다. 나시족(纳西族, 납서족)의 언어는 티베트버마제어족(語族)에 속하는 고유의 언어인 나시어(纳西语)와 동파문(东巴文) 및 가파문(哥巴文)2종의 문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동파문은 세계에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유일한 상형문자이다.

 

 * 나시족의 동파교

 

나시족의 동파교(東巴敎)는 나시족이 신봉하는 원시종교이며, 운남성과 사천성 등지의 나시족 지역에서 믿고 있다. 동파교는 그림과 상형부호로 구성된 동파문자로 작성한 경전인 동파경(東巴經)이 있다. 동파문은 11세기 중엽부터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주로 경전을 쓰는 데 사용되었다. 중국 내에는 약 1,100여 종의 각종 동파경문이 현존하는데, 동파교와 원시종교 그리고 인류의 초기 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모쒀족 마을

 

 운남성 동북쪽에 해발 고도가 2700m에 이르는 루구호 일대에 모쒀족이 살고 있다. 모쒀족(摩梭族)또는 모쒀인(摩梭人) 혹은 때때로 모수오족은 중국의 미식별 소수민족의 하나로 중국에서는 나시족의 일파로 분류한다. 가족의 가장은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가 맡고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은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철저한 모계사회로 결혼제도가 없고 농사도 여성이 짓는다. 집안의 호주와 가장은 물론 할머니 또는 어머니이다. 그래서 모수오족 안에서는 할아버지, 아버지, 남편 등의 단어는 물론 개념조차도 없다고 한다. 대신 남성은 가축 도살과 어획에 종사한다.

 

*모쒀족의 혼인제도(아사혼)

 

 모쒀족의 여자가 아샤혼을 치를 수 있는 나이는 13살이다. 하지만 대부분 10대 후반부터 관계를 시작한다. 여자는 13살이 되면 니찬지라고 불리는 자기만의 방을 부여받아 그곳에서 매일 밤 남자를 기다린다. 모쒀족은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따로 두지 않았다. 철저하게 사랑이 지속되는 동안만의 남녀관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청춘 남녀가 마을의 축제나 잔치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으면 여자(아샤)는 밤에 남자(아주)가 자신의 처소로 올 수 있도록 대문이나 창문을 살짝 열어놓는다. 남자는 해가 저물기를 기다려 여자 집에 들어간다. 긴 밤을 보낸 남자는 동이 틀 무렵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 집안을 위해 일한다. 이렇게 두 남녀가 각자 자기 어머니의 집에서 살면서 밤에만 만나는 일종의 혼인을 쩌우훈(走婚) 또는 아샤혼이라고 부른다.

한번 아샤혼을 맺었다고 해서 의무감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만일 여자의 마음이 변하면 밤에 문 열어두는 것을 그만두어 남자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남자의 맘이 변하면 여자의 집에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상대를 찾는다. 하지만 한 사람과의 아샤혼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중년에 접어들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의 집에 들어간다.

 

 *이족 마을

 

 ()나라 때에는 뤄뤄(羅羅), (), ()나라 때에는 만쟈(蠻家), 이쟈(夷家) 등으로 불렸다. 중국에서의 공식명칭은 이족(彛族)이다. 2000년 제5차 전국인구조사 통계에서는 인구는 약 6백만 명으로 중국정부가 공인하는 56개의 민족 중에서 8번째로 많다이족의 상당수는 복잡한 노예제도를 가지고 있어, 흑이(귀족)와 백이(평민)로 나눌 수 있다. 1956년 공산화가 완료되기까지는 흑이(黑彛)로 불리는 노예주 집단이 지배하는 노예제사회를 지속해 왔다. 흑이는 이족의 7%에 불과하지만 순수 이족으로 간주되었고 몸집이 크고 기마목축민적인 세계관을 지니고 있으며, 피모라고 하는 무속(巫俗) 신앙을 믿고 노예주와 그 일족으로 이루어진 부계(父系) 씨족집단으로서 이족사회에서의 귀족 무사층(武士層)을 형성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백이(白彛)로 불리는 노예층은 흑이에 정복된 타이족과 먀오족 등의 농경민을 주축으로 하고 있는데 그 언어와 문화는 이족화하였고, 신체도 일반적으로 작다. 같은 이족이라도 종래에는 흑이와 백이 사이에는 통혼이 허용되지 않았다. 백이는 노예로 다루어졌지만, 고위의 노예는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는 것이 허용되며 자신의 노예를 소유할 수 있고, 가끔 자유를 살 수도 있었다.

 현재는 그런 제도가 모두 사라졌고, 대부분이 보리·메밀 등을 재배하는 농업과 말·양 등을 기르는 목축에 종사하며 볶은 보리나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익혀 먹는 등 식습관도 티베트인과 비슷하고, 언어도 티베트 버마어군에 속하며, 티베트처럼 주어+목적어+술어형의 어순을 가진 이어를 사용한다. 본시 독특한 상형문자(象形文字)를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로마 자모로 된 새로운 글자를 사용하고 있다. 정령신앙을 신봉하여 비마우(Bimaw)라는 사제가 선도한다. 도교나 불교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운남민족촌은 그대로 관광객을 끌어 모우는 관광지는 되지만 사람을 구경거리로 한다는것이 좀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자기들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보호하며 독특한 문화를 보호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살고 있는 고장을 특화하여 그들이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다.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관광자원으로 모아 놓은 것은 어쩐지.......

 실제로 모수오족이 살고 있는 류구호 근방이나 얼하이로 주변의 백족, 나시족마을 등등이 아직 우리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민족촌보다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직접가서 보는 것이 더 좋은 관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