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마음대로 가는 발칸 여행 - 헝가리 세게드, 세르비아 수보티차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은 이동이 주된 목적인 날이다. 아침부터 서둘러 이동 준비를 하였다. 아침 밥을 먹고 부다페스트의 뉴카티역으로 가서 세게드행 기차를 타야 한다. 기차는 뉴카티를 10시 50분경 출발하여약 4시간이 걸려서 세게드역에 도착했다. 세게드는 헝가리에서는 제법 큰 도시다. 숙소를 찾아가면서 길가를 살펴 보니 상당히 큰 건물들도 보이고 제법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짐을 부리고 이 주변의 여러 도시를 갔다 올 생각이어서 먼저 버스 터미널과 기차역에서 교통편을 확인하였다.

 

 다음 날 세르비아의 수보티차를 관광하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통과하는 절차를 거치고 수보티차에 도착하여 관광하였다. 수보티차는 조그마한 마을이기에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고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었다.

 

 수보티차(Subotica)는 세르비아 북부의 보이보디나주에 있는 도시로 인구는 약 십오만 정도이다. 헝가리 국경에 가까우며 다뉴브 강 연변 평야에 있으며, 베오그라드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의 중간역이다. 오래전부터의 도시였으나 13세기 타타르의 침입 때 파괴된 것으로 보이며, 1391년 저바드커라는 이름의 헝가리 왕국의 정착지로 처음 역사에 등장했다. 이후 헝가리의 세력 아래에 있었고, 1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패배로 주민의 대부분이 헝가리 인이지만, 유고슬라비아에 속하게 되었다. 세르비아 북부의 농업·공업 중심지이며, 교통의 요지로 주변 농산물을 집산한다. 베오그라드대학의 분교(법학부)가 있다.

 

 

아름다운 조형물이 있는 광장

 

 

 

아마 시청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헝가리의 영향으로 카톨릭의 모습이 보인다.

 

 

기념비

 

 

 

 

 

외부 장식이 아름다운 성당

 

 

 

 

외양이 아름다운 건물 - 무엇인지는 기억이....

 

 

도서관이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숫자

 

 

 

 수보티차를 다녀오니 시간이 제법 남아 세게드 일대를 구경하였다. 세게드에서는 사흘이나 머물기 때문에 시간이 나는대로 주변을 이곳 저곳 다녔다. 

 세게드(Szeged)는 인구 약 이십만 명 정도의 헝가리 남쪽에 있는 도시로 세르비아 국경에서 5km, 루마니아 국경에서 20km 지점에 위치한다. 도나우 강 지류인 티사강 연안에 자리한 하항으로, 지명은 '왕의 흰 성'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10~15세기에 아르파드 왕조의 군사적인 거점이었다. 1879년 홍수에 의해 시의 일부가 파괴되었으나 근대적인 도시로 재건되었다. 식품(살라미소시지), 섬유, 피혁, 시멘트, 목재가공 등 공업과 축산이 활발하다. 문화·학술 중심지로서, 대학, 박물관 등 문화시설이 많다.

 

 

Saint Demetrius Tower

 

 

 

 The Votive 예배당

 

 

 

 

Dom Square - 헝가리의 위대한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그들의 조상을 걸어 놓은 건물

 

 

세게드의 표지

 

 

세게드 광장의 야경

 

 세게드 숙소로 가는 도중에 구경도 하고 궁금증을 풀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어제 길가를 구경하면서 보니 'Korea Chicken House'라는 간판이 있었다. 이 시골에 무슨 한국 치킨집이 하고 보니 문을 닫아 놓았다. 그래서 오늘은 그 집을 가 보기로 했다. 치킨집에 가니 문을 열어 놓아 들어가니 진짜로 한국인 남자가 운영을 하고 있다. 주인도 깜짝 놀라며 말하기를 이곳에 한국인 관광객은 일년에 몇 사람이 오지도 않는 곳인데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주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보니 아내는 헝가리인이었다. 그런데 주위에 한국의 20살 정도의 남자 두 명이 밥을 먹고 있었다. 호기심에 이야기를 해 보니 유학생이란다. 이곳 세게드의 의대가 유명하여 유학을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 유학생이 백 명도 넘게 있다고 한다. 정말 놀라웠다. 여기에 무슨 유학생이.... 그런데 그 학생들이 말하기를 일본과 중국의 유학생은 한국 학생보다 더 많다고 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의 교육의 폐해라고 생각되는 현상이다. 한국에서 의대를 가지 못해서 부모들이 이곳으로 유학읗 보낸 것이다. 한 십년전에는 필리핀을 갔으나 필리핀이 치안이 불안해서 이곳으로 유턴한 것이다. 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서울의 한 유학원에서 몽땅 보낸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앞날이 걱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의대를 졸업해도 한국에서는 개업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주인과 이야기를 해 보니 이곳의 물가도 싸고 해서 학생들의 부모가 여행 겸 학생들의 숙식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이곳에 같이 머무는 경우도 많다고 하였다. 씁슬한 현실이다.

 

 이곳에서 저녁으로 비빔밥을 한 그릇 먹고 숙소로 돌아오니 무언가 마음이 무겁다. 여행을 하면서 이런 일도 볼 수가 있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