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해파랑길 47 코스(삼포해변 - 가진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해파랑길 47 코스는 삼포해변에서 출발하여 봉수대해수욕장을 지나서 송지호가 바다에 접해 있는 해변에서 송지호를 돌아, 영화 '동주'의 촬영지인 왕곡마을을 지나 공현진해변을 거쳐 가진항에 도착하는 비교적 짧은 9.7km의 거리다.

 

47 코스 인증대

 

 삼포해변에 도착하여 바다를 보니 해돋이가 시작되려고 하늘이 붉게 물들이고 있다. 아침 7시 30분경에 해돋이가 시작된다는 시간표를 보니 곧 해가 뜰 것 같아 이곳에서 해돋이를 보려고 마음을 먹고 사진을 찍으며 기다렸다. 동해안을 걸어오면서 많은 곳에서 해돋이를 보았는데 곳곳의 해돋이는 그때마다 장관이다.

 

삼포해변에서의 해돋이

 

 고성군 죽왕면 삼포2리에 있는 삼포해변(三浦海邊)1977년 삼포해수욕장으로 개장하였으며 해변을 붉게 수놓는 해당화와 울창한 소나무 숲의 빼어난 경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의 모래는 우는 모래라는 뜻의 명사(鳴沙)로 불리며, 해변 맞은편에 흑도, 백도, 호미섬이 있어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다.

 

 

 삼포해변에서 해돋이를 보고 길을 재촉해 가니 봉수대의 모양을 본뜬 건물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화장실이다. 화장실을 이렇게 아름답게 지어 놓았다니 감탄을 한다. 외국을 돌아다니며 항상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의 화장실은 정말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외국인들도 우리나라 화장실의 시설을 보고는 감탄사를 끊임없이 한다.

 

 이곳이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에 있는 봉수대해변(烽燧臺海邊)으로 삼포해변과 송지호해변 사이에 있다. 고성산불로 피해를 본 지역주민들을 위해 통제구역이었던 곳을 해수욕장으로 개장하였기 때문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해변이다. 백사장 길이는 800m 정도로 아담한 편이지만 모래가 곱고 깨끗하며 야영장과 주차장 등은 아주 넓어 오토캠핑장으로도 사용된다.

 

봉수대해변의 건물

 

 봉수대해변을 지나면 곧 송지호해변이 나온다.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리에서 송암리에 걸쳐 있는 송지호해변(松池湖海邊)은 백사장 길이가 4km나 되는 해변으로 다른 곳에 비해 백사장이 길고 송림이 우거져 있다. 백사장 앞에 죽도라는 바위섬이 있어 '죽도해변(죽도해수욕장)'이라고도 한다. 해변 뒤에는 설악산이 있으며, 도로는 송지호(松池湖)와 연결되어 있다.

 

송지호해변의 풍경

 

 이곳에서 나무테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송지호가 나온다. 해수욕장 북쪽 500m 거리에 위치한 송지호는 넓이 약 20만 평, 둘레는 약 5km로 그렇게 큰 편은 아니지만 동해안의 대표적인 천연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자작나무와 울창한 갈대숲이 어우러진 모습에 사람들이 넋을 잃고 본다고 하는 그 어느 석호보다 아름다운 곳으로, 호수는 거울처럼 잔잔하고 자작나무 숲에서 날아온 새소리는 귀를 간지럽게 한다.

 

 송지호에는 전해오는 전설은 다음과 같다. 조선 초기에(일설에는 1,500년전) 송지호는 비옥한 땅이었는데 여기에 심성이 고약한 정거재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맹인 부녀가 정부자 집에 동냥을 하러 왔다가 몰매를 맞고 쫓겨났다. 마침 길을 지나던 고승이 이들의 기막힌 사연을 듣고 정부자 집을 찾았다가 시주 걸망에 쇠똥만 가득 받아 나와야 했다. 이에 화가 난 고승이 문간에 있던 쇠절구를 던졌는데, 그러자 이곳에서 거센 물줄기가 솟아올랐고 삽시간에 집과 논밭이 물에 잠겨 생겨난 호수가 지금의 송지호다 광활한 송지호를 마주 보니, 부처님의 자비를 수도하는 노승의 분노가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노승의 분노가 이 지역에는 전화위복이 된 것일까. 드넓은 호수는 수생자원을 풍부하게 빚어냈고, 이로써 철새들의 낙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송지호 전경

 

끊어진 철도의 표시

 

송지호 안내판

 

 

 송지호관망타워는 UFO가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타워의 정상에서는 360도 모든 방향으로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동쪽으로는 파란 블루 빛깔의 동해안이, 서쪽으로는 품에 담길 듯 송지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송지호 건너편에 있는 영화 <동주>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는 왕곡마을도 눈에 들어온다.

 

 

 송지호 둘레에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천천히 걸을 수 있다. 그 길의 나무들은 하늘을 가릴 만큼 빼곡히 서서 숲 속 터널을 지나가는 듯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재의 이 일대 숲이 1996년 벌어진 고성산불로 인하여 많이 소실되고 남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소실되기 이전의 울창함은 실로 어마어마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철새 백조의 도래지임을 설명

 

날이 추워서 보이는 길가의 서리

 

 송지호를 돌아 가면 옛날의 모습이 두렷이 보이는 마을이 나타난다. 바로 왕곡마을이다. 왕곡마을은 해안에서 내륙으로 약 1.5km 지점에 있으며 석호인 송지호와 해발 200m 내외의 봉우리 형태인 야산 다섯 개에 둘러 쌓여 외부와 차단된 '' 형태의 분지를 이룬다. 마을 북쪽에 위치한 오음산에서 남서방향으로 마을을 관통하며 흐르는 왕곡천 좌우에 종심이 깊은 촌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송지호에서 왕곡마을을 바라보면 유선형의 배가 바다와 송지호를 거쳐 마을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 형상을 보인다. 이러한 물에 떠 있는 배의 형상의 길지는 구멍을 뚫으면 배가 가라앉기 때문에 우물을 파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에는 우물이 없었다고 전하는데 우물이 없었던 시기에는 샘물을 이용하였고, 근대에 와서는 우물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왕곡마을의 형성은 고려말 두문동 72현 중의 한 분인 양근 함씨 함부열이 간성에 낙향 은거한데서 연유하며 그의 손자 함영근이 이곳 왕곡마을에 정착한 이후 함씨 후손들이 대대로 이곳에서 생활해 왔다. 특히,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 군락이 원형을 유지하고 잘 보존되어 왔기에 전통민속마을로서의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01월 국가민속문화재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왕곡마을의 여러 모습

 

 

 왕곡마을로 들어가니 길 위에 학이 한 마리 서 있다가 소나무 위로 날아 올라가서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며 앉아 있다. 너무 상서러운 느낌이 들어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마을의 여러 집을 주마간산식으로 보며 지나가니 영화 '동주'의 촬영지가 눈에 보인다. 영화 '동주'는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열사가 나고 자란 북간도의 용정에서 시작한다. 흑백 화면 속의 그곳은 북간도의 용정과 똑 닮았다는 강원도 고성의 왕곡마을로 그 시대로 돌아간 듯 자연스럽고 정감 있다

 영화 '동주'의 촬영지였던 큰상나말집이 눈에 들어온다. 너른 마당에서 윤동주가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요즘 보기 드문 슬레이트로 마감된 왕곡 정미소는 영화 속 모습 그대로다. 동주가 앉아 시집을 읽던 장면, 잡지를 만들던 장면이 떠오른다.

 

 

왕곡정미소

 

왕곡마을의 여러 풍경

 

왕곡저잣거리 모습

 

 왕곡마을을 벗어나 다시 해안으로 나가면 공현진해변이 나온다. 공현진해변은 소박한 어촌풍경과 파도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마을로 들어서는 도로변에는 그물을 손질하는 동네 주민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작은 어촌이며 얕은 바닷물로 가족단위 해수욕장으로 좋은 곳이다.

 

공현진해변의 나무 인어상

 

공현진해변과 항구

 

 아침 일찍 삼포해변에서 출발하여 송지호와 왕곡마을 구경하고 길을 따라 걸었어도 아직 점심 때도 되지 않았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는지 모르면서 또 길을 재촉한다. 이 길을 걷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인생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가지 가야하는지 목적지도 없이 흐르는 시간에 맡기고 길을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