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한국의 유산 탐방 2(왕가의 길 1 - 종묘)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울의 중심인 종로 3가 지하철역에서 종묘는 가까이 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가니 종묘공원이 보이고 멀리에 종묘가 보인다.

 

 종묘 앞 공원에는 이동녕 주석 집터 표석이 서 있다. 이동녕(李東寧)의 호는 석오(石吾), 암산(巖山)이며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소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한국국민당 이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며 독립운동가다.

 

이동녕 주석 집터 표석

 

멀리 보이는 종묘

 

 종묘 앞으로 가는 도중의 공원에 월남 이상재의 동상이 서 있다.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1896년 서재필 등과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회장과 조선교육협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항일 독립 운동에 헌신했다. 몇 차례나 이어진 투옥도 마다 않고 일제에 맞서 민족교육운동을 폈으며, 1927년에는 신간회(新幹會) 회장에 취임하여 민족 지도자로 활동했다. 이 해 선생이 돌아가시자 사상 처음 열린 사회장에는 10만 추모객이 운집했다고 한다.

 

월남 이상재 선생 동상

 

 종묘공원을 지나서 종묘앞으로 가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해설사와 동행하여야만 입장이 되고 그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무료하게 기다리니 창덕궁을 돌아보기로 하고 먼저 창덕궁을 갔다 왓다.

 

창덕궁으로 가는 길의 종묘 외곽 담의 모습

 

종묘앞의 공원

 

 시간이 되어 해설사와 함께 한무리의 사람들이 종묘로 들어 섰다. 그런데 해설사가 인도하는 위치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게 통제를 한다. 조금은 융통성을 가져도 좋을 것인데, 종묘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무슨 벼슬을 한 듯이 고압적인 태도로 관람객을 억박지르고 있다. 참 꼴볼견이다.

 

 종묘 정문은 외대문(外大門) 또는 외삼문(外三門)이라고도 한다. 외대문은 정면 3칸의 구조로, 궁궐 정문과는 달리 구조 형태가 아주 소박하고 단순하다. 정문 밖에는 하마비(下馬碑)와 서울특별시 유형유산으로 지정된 어정(御井, 우물)이 있다.

 

종묘의 정문

 

 유교국가에서 도읍에 갖춰야 할 국가시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궁궐, 종묘, 사직이 있다. 그 중에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사직은 땅과 곡식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종묘(宗廟)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57(훈정동)에 위치한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조선 왕실의 사당이다. 그러므로 종묘(宗廟)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이다. 1963118일에 사적 제125호로 지정되었고 199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아울러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과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인 종묘제례가 2001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었다.

 

 종묘는 유형의 형태와 전통 의례를 모두 보존하고 있어 높은 수준의 진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종묘의 건물 배치와 건축양식은 원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종묘제례의 음악과 무용도 전승되어 정기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조선 건국 후 1395년에 궁궐을 기준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세운다.’는 예에 따라 현재의 자리에 종묘를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현재의 정전만 있어서 대묘, 태묘, 종묘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세종대에 5묘제에 따라 4대가 지난 왕의 신주를 두고 여러 차례 논의한 끝에 정전 옆에 새로운 별묘(別廟)를 지어 그 이름을 영녕전이라 하였다. 연산군 대에 세실(世室, 대대로 정전에 신주를 모심)’조천(祧遷, 영녕전으로 신주를 옮김)’의 예로 신주를 모시게 되었다. 그러다가 모시는 신주가 늘어나면서 신실이 몇 차례 증축이 되어 현재의 정전 19, 영녕전 16칸의 규모가 되었다.

 그 밖에 종묘 경내에는 망묘루(望廟樓, 종묘서(宗廟署)의 관원들이 제례에 관한 업무를 보던 곳), 향대청(香大廳,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곳), 재궁(齋宮, 왕과 세자가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던 곳), 전사청(典祀廳, 제사의 음식을 마련하는 곳) 등의 건물이 있다.

 

종묘 정문(외대문)을 들어가면 중앙에 돌로 바닥이 깔린 통로가 보인다. 중앙이 조금 높게 올라와 있고 좌우에도 돌로 만든 게 가닥의 길이다. 이 길은 가운데는 신로라고 하여 사람이 다니지 못했던 길이요. 오른쪽은 어로라고 하여 와의 길이고, 왼쪽은 세자이 길이라고 하여 일반인은 걷지 못했던 길이다.

 

신로(신의 길)

 

종묘의 여러 모습

 

신로, 어로, 세자로 설명

 

종묘 본전 외곽의 여러 모습

 

 종묘 본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해설사의 종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펴 보니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제례를 하는 사진도 보인다. 오래 전에 선친이 이 제례에 참석하여 제례를 드린 기억이 있고 그 사징을 본 기억이 새롭게 났다.

 

종묘 정전과 넓은 월대 전경

 

정전 설명판

 

정전의 모습

 

종묘제례악 설명

 

정전의 여러 설명

 

 종묘를 돌아 보니 우리 선조들은 조상에 대한 공경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그 당대의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게 만든다. 이제는 옛날과 같은 시대가 아니다. 조상에 재한 공경은 가지고 있지만 그 때의 제례를 따르지는 않는다.이것이 시대의 변화고 인식의 바뀜이다.

 

 종묘를 보고나서 서울의 국가 유산으로 경복궁이 남았다.

그러나 오늘은 다른 일이 생겨 경복궁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