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서해랑길 49코스(부안신재생에너지테미파크 - 구암리지석묘군 - 신월경로당 - 매창공원 -부안군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49코스는 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를 출발하여 오랜만에 바다를 벗어나 육지 내륙 길을 걸어 간다. 농촌의 길을 여유롭게 걸어가면 뜻밖의 구암리지석묘가 나오고, 계속 길을 가면 부안읍으로 들어간다. 읍길을 따라가면 매창공원이 나오고 공원을 지나 부안군청 앞에서 끝이 나는 19.2km의 길이다.

 

49코스 안내판

 

인적이 없는 마을

 

 이 날은 안개가 엄청 자욱하게 끼여서 새로운 세상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몇 년째 길을 걷고 있는데 이런 안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안개 자욱한 들판을 지나고 언덕길을 지나니 구암리라는 동네가 나온다.

 

안개 낀 들판

 

 구암리에 들어가니 지석묘공원이 나온다.

 

 지석묘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무덤으로서 고인돌이라고도 하며, 책상처럼 세운 북방식과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인 남방식이 있다. 한반도에는 전 세계에 있는 지석묘의 40%가 넘는 40,000여 기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 중 20,000여 기가 호남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호남지역의 지석묘는 바둑판식(남방식) 지석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구암리에는 고인돌이 총 13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10기만 남아있다. 대체로 자연암석을 떼어내 덮개돌로 사용한 바둑판식 지석묘로, 뚜껑돌이 큰 것은 길이가 6.35m, 너비 4.5m, 높이 70-100에 받침돌 8개를 돌아가며 세웠다. 보통 4개의 받침돌을 이용하는데 반해 8개의 받침돌을 돌려 다른 지역 고인돌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구암리지석묘군(龜岩支石墓群)1956년에 처음 조사되었고, 19631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처음에는 민가의 울타리 안에 있던 것으로 처음 조사할 때는 모두 13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현재 10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덮개돌의 모양이 타원형에 가깝고 가운데로 갈수록 두꺼워져서 거북이처럼 보인다. 거북이를 닮은 지석묘는 마을 사람들의 삶과 오랜 기간 함께 해왔으며 이로 인해 마을 이름도 구암리(龜巖里), 거북바위마을이라고 불리고 있다.

 

공원 입구의 팽나무

 

거북 모양의 지석묘

 

지석묘공원의 여러 모습

 

 지석묘를 구경하고 나오며 마을을 보니 아주 평화로운 마을이다. 구암리 지석묘군은 원래 가정집의 울타리 안에 있었다고 한다. 오래된 마을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돌담길과 시골집들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석묘와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지석묘 주변이 공원이 형성되면서 지석묘는 구암리 사람들과는 약간은 거리기 있는 느낌을 준다. 문화유산을 보호한다는 미명이겠지만 사람들과 문화유산이 함께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솔직하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지석묘를 보러오겠는가를 생각하니 마을 주민들이 이 지석묘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광경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가을 들판

 

거두어 놓은 콩

 

새모양의허수아비

 

 멀리 부안경찰서가 보인다. 이제부터 부안읍으로 들어선 것이다. 길을 따라 가니 길 이름이 매창로이다. 그리고 가로수가 내가 봄이 되면 꼭 아름답게 핀 꽃을 보러 가는 이팝나무다. 아! 봄에 이 거리를 걸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계속 길을 가면서 이 길이름에 대해 궁금해 하였다.

 

매창로 표지

 

이팝나무 가로수 길

 

부안생활문화센터 건물

 

 도로를 따라 제법 가니 부안이라는 표지가 보이고 공원이 나타난다. 이름이 매창공원이다. 조선시대의 기생이면서 문인이었던 매창을 생각하며 이곳이 매창의 고향인가하고 생각하다가 주변의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 물으니 이곳이 매창의 고향이고 옆에 매창의 묘가 있다가 가르쳐 주었다. 매창의 시를 엄청 이야기했으면서 매창의 고향인지를 몰랐다니 나도 참 모자라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조금 가니 매창을 기려서 만든 매창공원이 나온다.

 매창공원(梅窓公園)은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있는 부안 출신의 여류 시인이자 명기였던 이매창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이곳은 원래 공동묘지가 있었던 곳이었는데 도시가 확장되면서 묘를 이전하게 되었으나 매창을 사랑하는 지역민들의 반대로 이매창의 묘와 부안 출신 명창 이중선의 묘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1983824일 이매창 묘가 전라북도 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 전라북도 부안군이 매창의 묘가 있는 곳에 시문학 공원을 조성하였다. 2011년 매창 공원을 확장하는 기본 계획을 수립했고, 2013년 공원 조성 계획 수립을 완료하여 공사에 들어가 2019년 매창 사랑의 테마 공원, 매창 테마관과 부속 광장 등의 완공과 함께 공원 영역이 확대되며 부안의 중요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공원을 문화공간으로 만든 아주 좋은 예로 생각된다.

 

매창공원 표지석

 

이중선의 묘

 

 공원을 들어가니 입구에서 먼저 반기는 것이 이중선의 묘이다. 우리에게 이화중선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중선은 그렇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중선은 부안의 뛰어난 명창이었다.

 

 이중선(李中仙)은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 때 활약했던 판소리 여류명창으로 본관은 경주다. 당시에 추월만정, 사랑가로 가장 명성이 높았던 이화중선(李花中仙)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자기만의 독특하고 애절한 한이 서린 흥타령과 육자배기 가락을 구성지게 잘하여 한이 어린 민족의 소리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언니의 명성에 가려 크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하였으나 뛰어난 공력을 가진 명창이었다고 전해진다. 1932년 갓 30세를 넘긴 나이에 폐병으로 사망하였다.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매창공원에 묘소가 있으며, 19884월 국악인협회와 국악동호인들에 의해 새롭게 정비된 묘역에 돌비석이 세워졌다.

 

매창에 대한 허균의 글

 

매창의 시를 새긴 비

 

 이 돌비를 보고 조금 옆에 있는 매창의 묘를 찾아갔다.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은 조선 선조(宣祖) 때의 여류 시인으로 이름은 계생(癸生, 桂生) 또는 향금(香今)이라 했으며, 자는 천향(天香)이고 호는 매창(梅窓)이다. 전라북도 부안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 매창이 기생으로 살아간 것으로 보아 매창의 어머니는 부안현에 소속된 관비(官婢)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한테 글을 배워 시()에 뛰어났으며, 가무에도 소질이 있었고 특히 거문고를 잘 탔다고 한다.  황진이(黃眞伊)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의 명기(名妓)였고,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난 유희경(劉希慶), 허균(許筠), 이귀(李貴) 등과 교우가 깊었다. 1610년에 38세의 나이로 죽어서 매창뜸에 거문고와 함께 묻혔으며, 죽은 지 45년 만인 1655년 묘비를 세웠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사랑했던 촌은 유희경(村隱 劉希慶)이 서울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자 읊은 시조로 고등학교 때 대부분이 배웠던 작품이 있다.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져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1668에 개암사(開巖寺)에서 매창의 시 58편을 모아 매창집(梅窓集)을 펴내었다. 매창집은 현재 세권이 남아있는데 서울의 간송미술관에 두 권, 미국의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한 권이 보존되어 있으며, 1956년에 역시 부안이 고향인 시인 신석정이 최초로 대역한 매창집이 있다.

 매창의 묘제는 매년 음년 45일에 부풍율회 회원들에 의하여 지내지고 있다.

 

매창의 묘

 

 

 매창에 대한 여러 가지 소회를 생각하며 길을 돌아 공원 밖으로 나가니 바로 옆에 가을의 전령 국화전이 열리고 있다. 넓은 공원 부지에 형형색색의 모양으로 꾸며진 국화를 올 가을에 처음 접하는 것이다. 내가 꽃을 키우지는 못해도 보는 것을 좋아하여 곳곳에 꽃구경을 가는데 올해 가을에는 처음 보는 국화의 무리다.

 아름답게 피어 있는 국화를 보고 즐기며 공원을 돌아 나갔다.

 

국화가 피어 있는 모습

 

 국화전시를 하고 있는 곳을 돌아나가니 주변에 습지공원도 있고, 여러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 중 특이하게 황토길 운동장을 만들어 이곳 주민들이 그 황토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참 참신한 공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창의 시를 새긴 문

 

습지공원의 여러 모습

 

황토길 운동장

 

 이곳을 지나 부안읍내를 걸어가다가 보니 옆에 추어탕 집이 보인다. 무언가 포스가 느껴져 조금 늦었지만 점심을 먹으려고 들어가니 제법 알려진 집 같았다. 추어탕을 한 그릇 시켜서 맛있게 먹고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추어탕도 맛있었고 특히 이 집의 반찬 중에서 어리굴젓은 나에게는 아주 입맛에 맞는 맛있는 반찬이었다. 부안을 가는 사람에게 권할만한 집이다.

 

추어탕집

 

 추어탕집에서 조금 가니 서림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이제 이 서림공원을 통과하면 부안군청에 도착하는 것이다.

 서림공원은 부안 읍내 북쪽 성황산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부안군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산책코스이다.

이 서림공원과 임정유애비는 2016년에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국가산림문화자산이란 산림 생태, 경관, 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유형 또는 무형의 자산을 산림청이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서림공원의 서림이란 관아의 서쪽에 있는 숲이란 뜻으로 임정유애비는 숲과 정자를 가꾸었던 현감 조연명과 이필의의 공직을 치하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다.

 

울창한 서림공원 숲

 

서림공원 정자에서 보는 부안읍내

 

 

저 멀리 보이는 부안향교

 

 1414(태종 14)에 창건된 상소산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부안 향교는 조선시대 유림의 구심점으로 부안 지역의 교육과 교화의 중심이 되었던 곳으로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9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현재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만화루, 양사재, 동재, 서재 등과 입구에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고 대성전에는 5(五聖), 송조4(宋朝四賢), 우리나라 18(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연리목

 

서림공원의 매창시비

 

서림공원 안내도

 

 이 서림공원을 돌아나와 조금 내려가니 부안군청이 보이고 여기서 이 코스는 끝이 난다.

 

 이 코스에서는 해안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여러 흔적을 보는 길이라 더 의미있게 느껴졌다.

 

 이 부안군청에서 조금 길을 내려가 숙소를 정하고 오늘의 여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