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 고대 고린토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영원한 형벌 시시포스의 신화가 전하는 곳

 

고대코린토스는 신 코린토스 시내에서 제법 떨어져 있다. 코린토스는 기원전 5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기원전 8세기에는 25만 정도의 인구가 머문 거대 상업 도시로 발전했으며 그리스인, 로마인, 유대인, 동양인 등 여러 인종이 어울리는 국제도시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 도시는 사도 바오로의 서간 코린트 전서에서 보듯 타락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 도시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택시를 불러 타고 고대 유적지에 앞서 코린토스 옛성으로 갔다. 여담으로 이야기하면 그리스 택시비는 우리보다 싸다.

 

 먼저 아크로코린토스로 갔다. 고대 코린토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들 중 하나인 아크로코린토스는 아크로폴리스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고도가 높은 이 지역에 요새를 지어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았고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을 세웠다. 입구는 산의 서쪽에 있고 문은 3개가 있는데 각각 투르크식, 프랑크식,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 성 안에 있는 아프로디테의 성역에는 1000명이나 되는 히에로두로이[신역 직속의 창부(娼婦)]가 있었다고 한다.

 

 하필 날씨가 좋지 않아 비안개가 심하게 끼였다, 잠깐 안개가 걷히기도 했으나 너무 안개가 자욱하여 성위에서는 코린토스 일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자욱한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옛 성길을 거닐면 과거의 영광을 생각도 해 보았으나그래도 관람을 하기에는 좋지 않았다. 아들 녀석도 일기만 좋으면 경치가 환상적일 것이라고 한탄을 한다. 하지만 일기마저 우리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아쉽지만 그런대로 구경을 한다.

 

 

 

 

위용을 자랑하는 외부 성문 입구

 

 아크로코린토스의 외성은 겉 모양은 매우 아름답게 보이나 이 성은 피로 반죽하고 살로 구웠다고 하는 처절한 역사가 숨어 있다.

 

 

 

 

입구를 통과하여 성을 올라가는 길 - 안개가 너무 끼여...... 

 

 

 

 

비안개가 자욱한 아크로코린토스성벽

 

아크로코린토스의 성주였던 평소 성정이 차갑고 잔인했던 레온 스구로스는 프랑크족이 침입하자 항복하지 않고 자신의 애마와 성벽에서 뛰어 내렸다 한다.

 

 

남서쪽 타워 설명도

 

 

 

자욱한 안개속에 보이는 성벽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아크로코린토스성문

 

 

코린토스 옛성과 고고학 유적지 표지

 

아크로코린토스의 입구 -  레온 스구로스가 뛰어내리자 비로소 이 성문이 열렸다고 한다. 지금의 이 문은 베네치아시대에 재건한 것이다.

 

 

아크로코린토스 설명도

 

 

 

안개속으로  얼핏 얼핏 보이는 성

 

 아크로코린토스의 성채가 있는 곳은 원래 아포르디테의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여러 가지의 측면이 있겠지만 아포르디테는 문제가 많은 여신이었다. 현대에서는 사랑의 여신, 미의 여신이라 불리지만 옛날에는 저속한 세속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한다. 그래서 이 곳은 여사제이자 창녀, 또는 신도이자 창부인 히에로두로이(신역 직속의 창녀) 1000여명이 머물렀던 타락의 도시로 유명했던 코린토스의 일면이다.

 

 코란토 전,후서를 쓴 사도 바울의 눈에는 온갖 음행이 자행되는 도시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평은 다음과 같은 말로 대치한다.

 

"이 도시가 사람으로 붐비고 부유해진 것은 그 여인들 덕분이었다."

 (스트라보, 코린토스의 성스러운 매춘부들에 대하여)

 

 

 

아프로디테의 여사제들이 춤과 노래로 사내들을 유혹하여 웃음을 팔던 곳.

지금은 폐허뿐이다.

 

 

 

 

안개속으로 보는 성벽

 

 

성 내부 설명도

 

 

무슨 창고였던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세번째 방어벽

 

 

 

 

두번째 방어벽

 

안개가 너무 끼여서 지척을 분간하기도 어려워 아크로코린토스는 아쉽지만 내려 가기로한다. 몇 명의 젊은이들이 구경을 하면서 성위로 계속 올라가면서 위에 무엇이 있는지를 묻는다. 우리도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고 아들이 답하니 그들은 올라가 보겠다고 간다. 젊음이 좋은 것이다.

 

 아쉽지만 아크로코린토스를 뒤로 하고 고대코린토스 유적지로 내려 갔다.

 

 

고대코린토스 유적지

 

 코린토스는 옛날부터 아테네, 스파르타와 함께 그리스 3대 도시국가로 꼽힐만큼 번창했던 도시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남아있는 유적만으로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은 대부분이 유리우스 카이사 시절인 BC 44년에 재건한 도시의 흔적이다. 오랜 명성에 비해 유적의 규모는 작지만 남아 있는 유적을 통해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는 것도 재미있다.

 

 유적 중 가장 눈을 끄는 것은 아폴론 신전이다. 돌을 잘라서 쌓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돌을 이용해 기둥을 세웠다고 하는데 그 돌의 크기가 상상 이상이다. 그 시절에 어떻게 이런 석조물을 만들었는지 유적지를 돌아 볼 때마다 가지는 의문이다. 이 아폴론신전은 올림피아의 헤라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유적의 바깥쪽에는 오데온과 극장의 자취만 남아 옛 영화를 보여준다.

 

 코린토스의 고대유적지는 저지대의 구코린토스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아크로코린토스를 배경으로 코린토만을 마당으로 삼은 곳이다. 유적은 아폴론신전을 제외하고는 제대로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아폴론신전만이 웅장한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스를 돌아다니며 느낀 것은 거의 대부분의 유적지를 폐허 상태로 그냥 두고 있다는 것이다. 곳곳에 너무 많은 유적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유적을 보존할 경제적인 뒷받침이 안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유적을 관광자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유적을 좀 더 잘 보존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아니 어쩌면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잘 보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설프게 복원한다고 하면서 옛날의 원형을 무시하고 현대적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폐허 그대로가 우리 눈을 더 자극하며 상상을 더할지도 모름다.

 

 

고대코린토스 안내도

 

 

 

 

 

 

 

 

아폴론신전의 여러 모습

 

 코린토스의 유일한 그리스 유적인 이 신전은 세울 때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여 지었다고 한다. 이 신전은 이 도시의 황금기였던 BC 6세기경에 처음 지어졌다가 BC 1세기경에 로마인들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한다. 38개의 기둥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7개의 기둥만 남아 있다.

 

 

 

 

글라우케샘

 

 글라우케는 코린토스 왕국의 왕 크레온의 딸로 크레우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이아손과 메데이아와 글라우케 사이에서 전설은 만들어졌다. 이 이야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메데이아가 자기를 버린 이아손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기로 결심하고 크레온 왕과 글라우케 공주 그리고 남편 이아손을 죽일 계획으로 글라우케에게 결혼 축하선물로 독이 묻은 웨딩드레스를 보낸다. 아무 것도 모르는 글라우케는 신랑의 전처인 메데이아가 보낸 웨딩드레스를 입는 순간, 글라우케는 옷에 묻은 독이 몸에 퍼지면서 온 몸에 불이 붙는다. 결국 글라우케는 불길에 싸여 고통 속에서 샘이 되게 해 달라고 청하고 이를 불쌍히 여긴 신들이 푸른 샘으로 만들었다 한다. 또 코린토스 지역에 내려오는 다른 전설에 의하면, 글라우케는 연기를 견디다 못해 우물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이후로 그 우물은 글라우케 샘이라고 불린다. 글라우케는 그리스 말로 푸른 물빛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신화나 전설은 한 사람만 거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그저 그런 신화가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피레네샘

 

 피레네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잘못 날아온 원반에 그 아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죠. 자식을 잃은 피레네는 밤낮 눈물로 세월을 보냈어요. 눈물이 몸을 녹여 마르지 않는 샘으로 변하게 되었는데 그곳을 `피레네 샘`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도 한다. 

 

 그런데 또 다른 기록에는 피레네샘이 아크로코린토스에 있다고도 하는데 같은 샘인지 다른 샘인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두 샘은 슬픈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코린토스 유적 전경도

 

 

 

 

 

로마시대의 시장

 

 

 

 

코린토스 유적에서 보는 아크로코린토스

 

 저 높고 가파른 산이 시시포스의 신화가 서려 있는 산이다. 아직도 시시포스는 바위를 산정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 이 신화의 산을 보면서 우리 인생 자체가 모두 부조리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문에 잠긴다.

 

 간단히 이 신화를 말하면, 시시포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코린토스의 왕으로 교활하고 못된 지혜가 많기로 유명했다. 시시포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 저승에 가게 되자 저승의 신 하데스를 속이고 장수를 누렸다. 하지만 시시포스의 속임수와 약은 행실은 나중에 저승에서 커다란 벌로 돌아왔다. 저승에서 시시포스가 받은 벌은 무거운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힘겹게 정상까지 밀어 올리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내렸기 때문에 시시포스는 영원히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알베르트 카뮈는 수필집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이와 같은 시시포스의 노역을 인간이 처한 실존적 부조리를 상징하는 상황으로 묘사하였다.

 

 

 

 

 

 

사도 바울이 전도했다는 유적 - 십자가가 선명하게 보인다.

 

 산꼭대기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제관(무녀)의 여자들이 천 명 이상 있었다. 그들 중에는 산 밑의 사내들과 불륜을 밥먹듯이 저지르고 그것도 애비와 아들을 같이 끼고 노는 무녀도 있었다고 한다. 에페소에서 그런 소식을 접한 사도 바오로가 코린트 사람을 향해 쓴 편지가 코린트 전서다. 신약 성서에 많은 글을 남겼으며 성 베드로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초기 기독교 전도자였던 사도 바울은 서기 51년 처음으로 코린토스를 방문했다. 그는 6년 후 도시를 다시 찾았고, 두 편의 서간을 썼다. 바로 고린도전서고린도후서, 이는 신약 성서에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성지 순례로 찾는 곳이 코린토스다.

 

 그리하여 바오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사도행전 18:11)  

 

 

코린토스고고학박물관

 

 코린토스유적 한쪽에는 코린토스박물관이 있다. 이 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는 코린토스고고학박물관은 아담한 시골 도서관처럼 보이지만 규모와 내용면에서 상당한 수준이다. 건축가 스튜어트 톰슨(W. Stuart Thompson)이 1932년 완공한 것으로 전시실과 대형 뜰로 구성돼 있다. 외부 주랑과 뜰에는 대리석 조각상들이 줄지어 있고, 코린토스에서 발굴된 조각, 도자기, 선사시대의 유물들은 두 개의 주 전시관에 진열되어 있다.  대표적인 소장품으로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의 아들로 추정하는 <젊은이의 대리석 초상>, <디오니소스의 머리가 장식된 모자이크>, <비잔틴 꽃병> 등이 있다.

 

 

 

옥외 뜰의 조각상

 

 비바람에 훼손되는 것을 염려할만도 한데 그리스에는 이렇게 외부전시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아마 이 정도는 너무 많아서일까? 그런데 이 박물관의 대리석 조각은 대개 로마시대의 복제품이라 아쉽다. 그리고 왜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보는 조각상들은 거의 대부분이 머리가 잘려 있을까?

 

 

로마 지배의 흔적을 알 수 있는 조각상

 

 

아마 아포르디테라고 짐작된다.

 

 

 

 

여러 전시물

 

 

디오니소스를 위한 모자이크

 

 술의 신이며 제우스의 아들 디오니소스를 위한 모자이크다. 원근법에 따른 입체적 느낌이 드는데 네 장의 꽃잎을 펼쳐놓은 듯 섬세하게 만들었다. 바닥에 깔렸던 것을 벽에 걸어 놓은 것이란다. 중앙의 인물도는 디오니소스의 얼굴이라 한다.

 

 

 

 

코린토스 도기들

 

 

여러 조상들

 

 

 

코린토스 유적이 있는 마을 풍경

 

 코린토스 유적을 구경하고 나오니 또 비가 오기 시작한다. 유적지 주변은 이 유적지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상당히 큰 마을로 각종 기념품가게와 카페 레스토랑이 있다. 내가 간 때는 계절적으로 비수기라 번잡하지 않고 가게들도 대부분이 문을 닫고 있었다. 조그마한 마을이지만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리스의 고대 문명 유적지 마을은 대개 아름답다.  옛부터 도시가 만들어졌으니 그 자연의 아름다움은 말 할 것도 없을 것이지만 지금도 마을의 꾸밈 자체가 예쁘다.

 

 비가 오는 가운데 길을 물어 버스를 타고 신코린토스로 돌아 왔다.

 

 이제 그리스 본토의 여행은 아쉽지만 여기서 끝을 내고 크레타로 가기로 하고 잠시 휴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