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 크레타 이라클리온 주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코린토스를 떠나 크레타로 간다.

 

 크레타에는 공항이 있어 비행기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여행을 하기 때문에 배를 타기로 해서 아들이 미리 배편을 예약해 놓았다. 기특하게 아들은 이런 면에서 나를 감탄하게 한다. 그러면서 크레타를 떠날 때는 비행기를 타자고 한다. 나는 아들 의견대로 따를 뿐이다.

 

 코린토스에서 기차를 타고 아테네로 갔다. 코린토스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아주 쾌적하게 갖추어진 역에서 정시에 출발하여 우리를 아테네역에 내려 준다. 아테네에서 코린토스는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한 듯하다. 아테네역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이용하여 피레우스항구로 가니 항구가 장난이 아니게 크다. 특히 여객선이 많아 자기가 가는 섬의 여객선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항구를 계속 걸어가니 곳곳에 배표를 파는 창구가 있다. 우리가 가진 표를 보여주니 타는 곳을 가르쳐 준다. 뒤애 알았지만 이곳을 운행하는 셔틀 버스가 있었다.

 

 크레타로 가는 배를 찾아 탑승을 하고 내부를 구경하니 여객선이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다. 크기가 장난이 아니게 크다. 배는 8층인가로 되어 있는데 크루즈와 같이 배안에는 온갖 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다. 객실 탑승권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 곳에서나 잠을 잔다. 그래서 좋은 장소를 선점하기 위해서 경쟁이다. 우리는 객실을 신청했기에 그런 걱정없이 한가롭게 객실에 가니 웬만한 호텔과 같다. 크레타의 이라클리온항구까지는 약 10시간 걸리기 때문에 밤에 출발하여 새벽에 도착한다. 우리 부산에서 배로 제주도 가는 여정을 생각하면 비슷하다. 단 여객선을 우리가 쨉이 안된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도 이런 여객선을 가질 수 없는지.....

 

 아마 지중해라는 큰 바다를 가지고 많은 섬들이 관광자원으로 있기 때문에 이런 큰 여객선이 운행되리라 생각한다. 배에는 그리스인들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크레타로 가는 여객선의 외부와 내부

 

 항구를 찾아 배를 타느라 저녁도 먹지 않아서 배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가니 처음에는 손님이 없이 한가했는데 조금 있으니 제법 많은 손님들이 들어 온다. 식사 도중에는 바이올린 협주를 해 주고 있는 제법 고급스런 곳이다. 나오면서 밖을 보니 일종의 대중음식점 같이 보이는 저가의 식당도 보였다. 저녁을 먹고 배위에서 항구의 야경을 조금 구경하고 있으니 배가 출항을 한다.

 바깥에서 잠시 거닐다가 선실로 돌아와 잠을 청한다.

 

 조금 소란스런운 느낌이 들어 잠을 깼다. 보니 벌써 도착할 때가 다 되어간다. 아마 조금 피곤했는지 나는 잠이 깊이 들어 잘잤는데 아들은 잠을 잘 못잤다고 한다. 배가 조금 출렁거렸던 모양이다. 나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는데 아들은 민감하게 느꼈다고 한다.

 하선을 준비하고 배를 내리니 비가 오고 있다.

 

 드디어 크레타의 대표적인 항구 이라클리온(혹은 헤라클리온)에 도착했다.

 

 크레타(Κρήτη, Crete)는 에게해 남단에 있는 그리스에서는 가장 큰 섬으로 신들의 아버지인 제우스의 고향이자 유럽 문명의 발상지다. 면적 약 8300km²로 에게 문명의 중심지로서 청동기시대에 번영하였다. 오늘날도 크레타는 그리스에서 문화적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지만 고대사에서 크레타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크레타 섬에 최초로 사람이 산 것은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고대 크노소스는 신석기(나중에는 미노아 문명) 유적지의 한 곳이다. 크레타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미노아 문명의 중심이었다. 초기 크레타의 역사는 미노스 왕, 테세우스,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같은 전설이 서려 있으며, 호메로스 같은 시인들의 입으로 전해졌다. 크레타는 미노아 시대부터 근대까지 다양한 유적이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다.

 

 기후는 주로 지중해성 기후 지역에 속하여서 무척 온화하다. 공기는 상당히 습하고,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겨울에도 꽤 따뜻하다.

 

 크레타는 고대부터 지중해의 교통의 중심지였기에 많은 전쟁을 겪어왔으며, 2차세계대전까지 전화에 휩쓸렸다. 현재 크레타 섬은 그리스에서 휴가지로 인기가 높다.

 현재의 수도는 북안의 이라클리온 (Iraklion, Herakleion, 옛이름은 칸디아 Candia)으로 이 시에는 이라클리온고고학박물관이 있어서 크레타 유적의 진수를 보여 준다.

 

 항구에서 호텔을 찾아가는데 곳곳에 유적이 눈길을 끈다. 나중에 구경하기로 하고 호텔을 찾아가 아침을 먹고 이라클리온 관광에 나선다.

 

 

 

 

비내리는 항구의 모습

 

 

 

 

베네치안 로지아

 

먼저 항구에서 가까운 곳에 베네치안 로지아가 있다. 크레타에서 가장 아름다운 베네치아 양식의 건축물로 1626년에서 1628년에 걸쳐 베네치아 총독 프란시스코 모로시니가 지었다. 옛날에는 이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특이하게 유적을 밑받침으로 하여 현대식 건물이 위에 들어서 있다.

 

 

이라클리온 시내 안내도

 

항구에서 바로 옆을 보면 성같은 곳이 해안에 보인다. 표시판을 보니 베네치아 성인 쿨레스요새다. 바다를 접하면서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2층으로 쌓은 성이다. 규모는 상당히 크고 외부에서 보는 성의 조형미가 아름답다. 성을 올라가 바라보는 바다는 망망대해였다. 내가 간 날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성벽을 때리는 파도가 힘차게 부딪혔다. 바로 바다를 접하고 지은 요새로 천연의 위치에 인공을 더하여 항구를 보호하고 있었다.

쿨레스요새부터 부두까지는 이라클리온의 놓치지 말아야 할 산책길이다.

 

 

 

요새 전경

 

 

요새성벽

 

 

 

 

요새 내부에 있는 조그마한 박물관의 소장품

 

 

 

 

 

 

 

 

 

 

 

쿨레스요새 2층의 모습

 

 

 

쿨레스 요새에서 보는 바다

 

 

 

 

 

 

성 티토스 교회

 

  이 교회는 이라클리온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성경에는 티토로 적혀 있는 티토스는 기적의 성인으로 크레타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바울(st. Paul)이 선교 여행을 하면서 생활수준이 낮았던 크레타 섬을 드르게 되어 기독교의 교회를 건설하고 또 조직하고 티토스를 크레타에 남겨 크레타섬을 기독교 사회로 만들도록 하였다. 신약성경 속 티토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 '그대를 크레타에 남겨 둔 까닭은,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고을마다 원로들을 임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티토에게 보낸 서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편찬 1:5) 라고 씌여져 있다. 바울은 크레타인들을 거짓말쟁이, 고약한 짐승, 게으른 먹보라고 하면서 티토에게 그들을 가르치라고 했다. 그가 잘못을 바로잡아서 일까? 티토스의 성인 찬양송은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하느님의 모습이 온전히 보존한 행적으로, 사라질 육신보다 영원한 영성에 대해 가르쳤도다. 거룩한 티토스여, 천사들과 함께 기뻐하나이다.' 이다. 그래서 기적성인인가보다

 

 8월 25일 거리에 있는 교회로 주변에는 카페와 바 및 레스토랑이 즐비하게 둘러 싸고 있다.  

 

 

 

 

이라클리온 시청사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니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건물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무슨 박물관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시청사였다. 옛날의 건물을 그대로 현재 시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내부는 개조하였지만......

 이 건물은 1628년 Francesco Morosini에 의해 건립되었고, 베네치안 건물중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여진다. 지었을 당시에는 일종의 클럽의 기능으로 상류층 귀족들이 모여 토론과 담소를 즐기던 장소였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62년에 복원된것으로 원형을 아주 잘 살렸다고 한다.

 

 

이라클리온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8월 25일 거리

 

 이 거리를 따라 계속 걸어간다. 이 아름다운 거리의 이름은 특이하게 8월 25일 거리다. 무엇인가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붙인 것이리라.

 

 크레타가 터키의 지배하에 있을 때 1889년에 터키 관리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터키 당국은 살해사건을 빌미로 크레타 사람들을 학살했는데, 크레타 사람들이 터키인에게 학살당한 그날의 비극을 잊지 않고자 명명한 것이 825일 거리다. 그리스인 학살의 아픈 역사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붙여졌다.

 

 

 

베니젤로스광장의 사자분수

 

이라클리온의 랜드마크인 이 광장의 정식명칭은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광장이다. 사자분수는 베네치아인들이 남긴 유물로 도시 전체의 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시설이었다. 아래의 안내판을 보면 1629년에 지금의 시청사를 건립한 모노시니가 만들었다 한다.

 

 

모로시니 분수 (사자분수임)

 

 

 

성마르크스교회

 

성당으로 묘지로 터키 지배하에서는 이슬람사원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갤러리로 사용

 

 

 

비오는 이라클리온 시내 풍경

 

 

시 소속의 악대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아침을 좀 부실하게 먹어 시장기가 들었다. 점심을 먹자하니 아들이 자기가 찾아본 곳이 있다고 가자 한다.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들은 여행에서 먹는 것을 중시하는 타입이다. 항상 그 지역의 전통 음식을 먹어야 하고 제법 이름있는 레스토랑을 조사해서 나를 데리고 간다. 나는 아들을 따라 가서 맛있게 먹고 계산만 하면 된다. 나이가 든 아버지를 데리고 다니는 아들에게 할 수 있는 나의 최소한의 행동이다. 식당을 가니 아직 시간이 안되었다고 자리에 앉아만 있으라고 하면서 주문을 받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아주 철저하게 시간을 지킨다. 문을 여는 시간이 되자 메뉴판을 가지고 와서 주문을 받는다.

 

 

 

 

 

레스토랑 입구와 내부 - 아주 깨끗하고 아담하다.

 

 

 

 

 

식당의 용기에도 그들의 상호가 새겨져 있다.

 

 

 

음식은 대체로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

 

점심을 맛있게고 잠시 휴식을 한 후에 드디어 이라클리온고고학박물관으로 향한다. 우리가 여행하는 각 지역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곳이 바로 그 지역의 박물관이다. 각 지역의 박물관에는 그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라클리온고고학박물관

 

크레타에서 가장 큰 고고학박물관으로 신석기시대부터 많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크노소스와 크레타 각 지에서 발굴된 유물을 볼 수있다.  

 

 우리가 크레타를 가면 먼저 크노소스를 떠올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크노소스에서 만족하지 못한다. 그 많은 유물이 어디에 있는가? 크노소스에서 부족했던 2%를 채워줄 곳이 바로 이라클리온고고학박물관이다. 크노소스 궁전에서 발굴된 유물이 전시돼 있는 곳이다. 이곳에선 크노소스 궁전을 장식했던 프레스코화들의 원본도 만날 수 있을뿐만 아니라 파이스토스 원반을 비롯한 뱀여신상, 황금뿔을 가진 황소 머리상 등 등  눈 여겨 보아야할 유물이 많이 있다. 다양한 그릇과 잔, 무기, 금으로 된 각종 장신구, 화려한 색깔의 벽화 등을 보는 것만으로 크레타 섬이 왜 유럽 문명의 발상지인지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뿔 모양의 술잔, 물고기와 문어 등이 그려진 도자기 등등은 섬세하고 화려한 크레타 문명의 진수를 보여준다.

 

 

박물관 전경과 현판

 

 

파이스토스 원반 - 아직 해석이 불가능

 

 파이스토스 원반(Phaistos Disc)은 크레타의 파이스토스에 있는 미노아문명의 궁전에서 발굴된 구운 점토원반으로, 그 제작 연대는 BC 제2천년기 청동기시대로 추측한다. 크기는 직경 약 15 cm인데 그 원반의 양면이 모두 나선형으로 찍힌 기호들로 뒤덮여 있다. 이 기호들의 목적과 의미, 심지어 무엇을 위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위치조차 불확실하여, 현존하는고고학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황금 뿔을 가진 검은 황소 머리상

 

 

 

금 장신구

 

 

특별히 'The Ring of Minos'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 금 장신구

 

 

 

 

 

각종 도기들

 

 

크노소스궁전 모형도

 

 

무엇인지 기억이.....

 

 

뱀여신상

 

 

 

무기들

 

 

 

프레스코

 

이 박물관에서 미노아 문명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유물들을 구경하고 또 이라클리온 시내를 정처없이 거닐며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무덤을 찾아 간다. 가는 길에 마주치는 성벽이 있다. 바로 베네치아인이 크레타를 지배한 뒤에 남긴 여러 건축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건축물인 베네치아성벽이다. 지금도 그 성벽 아래로 차들이 다닐 수 있는 큰 도로가 만들어져 있는 거대한 성벽이다. 이 섬에 이렇게 큰 성벽을 건립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만큼 이 섬이 중요한 곳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베네치아 성벽

 

 

 

 

무덤 표지판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무덤

 

 이 성벽을 돌아 올라가면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희랍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무덤이 나온다. 그는 그리스의 시인이며 소설가며 극작가로 역사상 위인을 주제로 한 비극을 많이 썼는데, 그리스 난민의 고통을 묘사한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대표작으로 '희랍인 조르바' '오디세이아'등이 있다.

그의 묘는 명성에 비해서는 소박하다. 평범한 돌과 나무 십자가 아래에 묘가 있다. 그의 소박한 묘비에는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적혀 있다. 장편 소설 ‘희랍인 조르바’로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남긴 이 명언이야말로, 크레타의 모든 것을 관통하고 있다고 하는 의견이 많다. 유럽 최초의 고등 문명인 미노아 문명이 탄생한 곳이자, 제우스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섬. 자유를 외친 카잔자키스와 독창적인 화풍으로 르네상스를 이은 천재화가 엘 그레코의 고향으로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크레타 섬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단, 하루만이라도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면,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제대로 숨 쉬고 싶다면 니코스 카잔자키스가 자유를 말한 크레타에서 살아봄직하다

 

 

 아내 엘리니 카잔자키스의  무덤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묘에서 보는 시내 풍경

 

 아들과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묘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희랍인 조르바를 비롯해서 여러 문학 작품을 이야기하며 카잔자키스에 대해서도 아는대로 이야기 한다. 이 크레타가 카잔자키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의문도 가지면서......

 

 휴식을 잠시한 후 다시 묘를 내려와 찾아간 곳은 성 미나스성당이다. 성 미나스 성당(Cathedral of Saint Minas)은 크레타는 물론 그리스 전체에서도 알아주는 그리스 정교회 교회로 1862년에 건립하기 시작해서 무려 30년이 걸려서 1895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미나스 대성당은 장엄하게 보이는 외부 뿐 아니라 내부는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으며 찬란한 샹들리에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돔 천장은 크레타의 오랜 전통을 가진 이콘(icon)이라 불리는 성화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라클리온의 수호성자인 성 미나스를 기리는 교회로 아름다운 돔 양식의 십자가상 구조가 특징이다. 약 8천명이 한자리에 모여 기도를 할 수 있는 규모를 자랑한다.

 

 

 

 

성 미나스 성당의 외부

 

 

성당입구

 

 

 

성당 내부의 아름다운 모습

 

 

 

 

이라클리온 해변 산책로

 

 

 미나스성당을 뒤로 하고 해변으로 내려 오니 해변 산책로이다. 아침에는 바람이 불고 비가 와서 파도가 제법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조용해졌다. 이 산책로를 걸으면서 아들과 여러 이야기를 한다. 아들은 온갖 방면에 관심이 많다. 물론 젊기 때문이겠지만 다양한 방변에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역사에 대해서는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며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라고 이것 저것을 물으면서 아버지의 생각을 묻는데 내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얼버무려 버리는 경우에도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해서 내색을 하지 않고 항상 이야기를 걸어 온다. 이 점이 무엇보다 고맙다. 나이 차이가 많다고 내 의견을 무시하거나 자기 의견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이라클리온 시내는 좁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다녀도 하루만 하면 제대로 된 구경을 할 수 있다.

 

 호텔에 들어가 잠시 쉬다가 밤의 이라클리온을 구경하러 나간다. 

 

 

 

불을 밝힌 시청사

 

 

 

저녁은 오랜만에 피자와 햄버그로 했다.

 

 

식당 주변의 모습

 

오늘 하루도 이라클리온 시내를 정처없이 걸으면서 구경을 했다.

 

 내 여행의 방법은 걷는 것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제대로 무엇인가를 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걸으면 우리 눈에는 많은 것이 보인다. 특히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늘 하루도 끝내며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