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9 - 동쪽(골굴사, 기림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한동안 기승을 부려 경주 순례를 멈추었다가 날씨가 풀려 다시 경주로 향했다. 이번 길에는 동쪽을 돌아 보기로 작정하고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골굴사를 가는 버스를 기다리니 배차 간격이 길어 제법 기다려야 했다.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 약 한 시간이 걸려 골굴사입구에 도착했다. 경주의 동쪽은 아직은 답사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골굴사 가는 길 표시
버스에서 내려 제법 먼 길을 걸어가면 골굴사 입구가 나온다. 예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변한 것을 보고 세월의 무상함도 느끼고 '나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골굴사 입구 표시
골굴사 입구에서 산문을 향해 가는 길에는 골굴사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선무도의 형상이 늘어서 있다.
골굴사 산문의 선무도 형상
골굴사는 함월산에 위치한 선무도(禪武道)의 총본산으로 한국의 소림사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사찰이다. 약 1,500여 년 전 인도에서 온 광유 선인 일행이 함월산에 정착하면서 골굴사와 기림사를 창건하였는데, 골굴사는 광유스님 일행이 인도를 본떠 석굴사원 형태로 조성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석굴사원이다.
조선 중기 겸재 정선의 <골굴 석굴도>로 볼 때 골굴사는 여러 석굴들 앞에 목조 전실을 만들고 여기에 기와를 얹은 형태였다. 조선 중후기에 화재로 소실된 상태로 방치되었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70여 년 전 경주에 사는 박씨 일가가 상주하면서 다시 사찰로 만들었고, 1989년에 한 개인에게 매매되어 넘어간 상태였던 것을 당시 기림사 주지였던 설적운 스님이 매입해서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본사 불국사의 말사로 등록되었다.
근래에 이르러 골굴사에는 불가의 전통 수행법인 선무도 수련원이 개설되어 내국인은 물론 수많은 외국인들이 전통의 불교무예를 배우는 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범종루
산문을 통과하여 임도길을 따라가는 길 중간에 포대화상과 개 동상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골굴사의 마스코트인 ‘동아보살’ 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소개되었던 골굴사의 마스코트다. 동아보살이 처음 TV에 등장했던 건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새벽 4시만 되면 일어나 법당에서 방석을 차지하고 앉아 새벽예불을 드리는 개로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지금은 생이 다해 이 땅에 없지만 골굴사 주지 설적운이 동아보살상 옆에 쓴 글을 보면 뭉클해온다.
‘동아보살’
강아지 때부터 새벽예불을 대중들과 함께했으며
모든 행이 예사롭지 않았으며 여느 개 답지 않게
살생을 하지 않았다. 만년에 치매와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였으나 죽는 날 아침까지 새벽예불에 참석했다.
매년 음력 2월 15일을 동아의 기제사일로 정했다.
모든 불자들은 그를 동아보살이라 불렀다.
'동아보살' 상
여러 전각들
길을 따라 올라가면 거의 맨 위에 마애불이 보인다. 멀리서 보는 마애불은 암벽위에 우둑 서 있다.
함월산 기슭의 골굴암에는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응회암에 12개의 석굴이 나있으며, 암벽 제일 높은 곳에는 돋을새김으로 새긴 마애불상이 있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골굴사 마애여래좌상은 응회암 재질의 암벽에 조성된 불상으로 골굴사의 주불이라 할 수 있다. 동해를 바라보게 조성된 이 불상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상호에 화려한 연꽃과 불꽃이 조화를 이룬 광배가 바라보는 사람들 마음까지 편안하게 한다. 굴과 굴로 통하는 길은 바위에 파놓은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정상에 새겨진 마애불로 오르려면 자연 동굴을 지나게 되어 있다. 절벽 꼭대기에 새겨진 높이 4m, 폭 2.2m 정도의 보물로 지정된 마애불상은 모래기가 많이 섞인 화강암에 새긴 터라 보존상태가 썩 좋지 않고 오랜 풍화 작용에 의해 훼손이 심해 유리 지붕을 씌어 놓았다. 마애여래좌상은 문무대왕의 수중릉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골굴사에 석굴사원이 조성되고 지금은 불교 고유의 무술인 선무도가 전승되는 도량으로 자리 잡는 데에 있어 같은 축선 상에 놓인 감은사와 대왕릉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된다. 이 중심으로 주변에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나한굴, 신중단, 칠성단, 산신당 등의 굴법당과 더불어 남근바위, 여궁 등의 민간 전례신앙의 흔적까지 있어 한국적인 석굴사원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마애불 설명판
마애불로 올라가는 계단
멀리 보이는 마애불
마애불 올라가는 도중의 모습
마애불
마애불에서 보는 동쪽
골굴암 전경
마애불을 내려와 조금 올라가면 휴식을 할 수 있게 만들어진 공간이 있고 여기에 오륜탐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 잠시 앉아 쉬다가 골굴암을 내려 왔다.
오륜탑
골굴사는 일반적으로 선무도(禪武道)로 알려져 있는 불교 무술 금강영관의 본원이 있는 절이기도 하다. 매일 오후 3시에 대적광전(돌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표지판이 보이는 '큰법당')에서 무술 시범을 하는데 흔히 아는 소림사의 공연과 비슷한 느낌이다.
매일 공연이 벌어지는 대적광전
골굴사를 돌아보고 내려와서 약 3km 떨어진 기림사로 간다. 기림사는 내가 유별하게 좋아하는 사찰이라 여러 번 왔기에 새로울 것이 없지만 항상 정감이 가는 절이다. 사람들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나는 네 계절 중에서 기림사의 여름이 제일 좋다. 봄의 기림사도 단풍이 든 가을의 기림사도 고즈녁한 겨울의 기림사도 좋지만 수국이 만발하는 무렵의 기림사는 온갖 꽃들이 피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당긴다. 그래서 기림사의 사진은 예전에 찍어 놓은여름과 가을의 사진을 원용하였다.
기림사 입구의 돌다리
기림사는 27대 선덕여왕 때인 643년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당시 이름은 ‘임정사’였는데 원효대사가 와서 ‘기림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31대 본산의 하나로 불국사를 비롯해 60여 개의 말사를 거느린 거대한 사찰이었다.
지금은 불국사의 말사가 되었지만, 비로자나 삼신불이 봉안된 대적광전(보물제 833호)과 약사전, 오백나한을 모신 응진전, 임진왜란 당시 승군들의 지휘본부로 사용된 진남루 등 귀한 유산을 품고 있다.
대적광전은 기림사의 본전이다. 보물 415호인 대적광전은 조선 초기 불상의 전형을 갖추고 있는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대적광전과 진남루 사이 서쪽에 오백나한전이 있고, 그 바로 앞에 높이 3m쯤 되는 아담한 3층 석탑이 있다. 배흘림 양식으로 세워진 탑은 처마 끝은 살짝 들리어 가뿐한 느낌을 주고, 위로 갈수록 줄어들면서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대적광전을 마주보고 좌측계단에 오르면 삼천불전이 있다. 삼천 개의 하얀 불상이 본존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데 한 눈에 들어오기 힘들만큼 웅장하다.(경주문화관광에서 가져 옴)
기림사 입구의안내판
기림사 일주문
기림사 오종수 이야기 설명
매월당 영당
기림사 표시
진남루
대웅전 앞의 소나무와 삼층석탑
대적광전의 전경과 현판
대적광전의 처마와 문 창살의 기하학적 무늬
삼천불전
삼천불전 주변의 여러 모습
유물관 앞의 돌절구
1920년대의 기림사 전경
기림사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으나번잡한 산사는 아니디. 그러니 세사의 번잡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으면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수 많은 볼거리 가운데 나의 마음에 다가온 것은 돌절구였다. 돌절구에 새겨져 있는 세월의 흔적이 보이기도 하고 비바람의 풍상에 절은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도 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뛰어 넘은 돌절구 자체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기림사를 돌아보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먼길이었으나 천천히 걸어가면서 나를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졌다. 버스정류장에서 제법 기다려 경주 시내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하루가 지났다. 경주 동쪽은 아직 거리도 멀고 교통이 그렇게 편하지 않음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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