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아들과 함께하는 러시아여행(15) - 모스크바 가는 기차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15.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 가는 기차 여행

 

 이르쿠츠크를 출발하여 모스크바까지 약 80여 시간을 기차를 타는 여행이 시작된다.

새벽 01:02분에 모스크바행 기차가 도착하는데 울란우데에서 온 기차가 여기에서 객차를 더 연결하여 긴 열차가 되었다. 우리는 끝에서 두 번째 바곤(차량)에 좌석이 배정되어 탑승하니 객차는 조금 신형이나 불편한 것은 마찬 가지이다. 기차에서 모포와 시트커버를 구입하여 침구를 정리하고 아들놈이 2층에 좌석을 정하였는데 불편하다고 아우성을 치며 제 어미를 많이 원망한다. 표를 예매할 때 두 좌석 모두 아래층을 원하였는데 제 엄마가 2층을 권하여 1층과 2층으로 나누어 표를 구입하였는데, 막상 여행을 하면서 겪어보니 1층이 2층보다 아주 편하다. 러시아 기차여행을 하려고 준비하시는 분들은 반드시 객차는 앞 바곤(차량)을 좌석은 1층으로 표를 구입하는 것이 편리하다. 물론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2층은 오르내리기도 불편하고 1층보다 상하 공간이 매우 좁아 체구가 큰 사람은 대단히 불편하다.

 

 기차는 동시베리아와 같이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을 달린다. 평원과 자작나무의 숲, 그리고 평원을 흐르는 강들이 기차 창문을 스쳐가고, 승객들은 조용히 책을 읽거나 그저 막막하게 차창에 펼쳐지는 풍경을 무심하게 보다가 끼니때가 되면 자기 스스로 알아서 식사를 하고 잠이 오면 자고 하는 일이 기차를 타는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일상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좁은 국토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일상이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너무나 먼 기차여행이다.

 

 

 

 

 

 

비가 내려 어두운 시베리아

 

 

 

 

 

비가 그친 시베리아 별판

 

 

 

 

이름을 모르는 중간 기착역

 

 

 

시베리아 저 멀리서 떠오르는 태양

 

 시베리아의 광활한 평원에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는 평원을 기차는 하염없이 달리고, 긴 거리를 달리다 보면 어느 새 비가 그친 평원에는 다시 한 여름의 태양이 빛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 기차는 여러 가지의 구조로 되어 있다. 하바롭스크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기차는 창문을 여는 곳이 있어 바깥 공기를 쐬며 사진을 찍기가 상당히 좋았는데 이번 열차는 창문을 여는 곳이 한 곳도 없어 차창으로 사진을 찍거나 열차가 정차한 역에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것이 상당히 불만이다.

 

 책을 읽다가 무료하면 멍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잠이 오면 자다가 끼니때가 되면 식사를 하고 정말 아무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는 여행이다. 끝없이 달리는 기차여행이 지겨울 것 같으나 무심하게 차창을 지나가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저 똑 같은 풍경인 것 같으나 조금은 다른 경치가 차창을 지나간다. 중간 중간에 서는 기차역에서 그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기도 하고 제법 오래 정차하는 역에서는 주변 마을의 러시아인들이 빵과 여러 가지 음식물, 그리고 기념품을 팔기 위해 역에 들어와서 여행자들에게 자그마한 재미를 준다. 나도 빵과 주스(빵 100루블, 주스 150루블)를 사서 먹어 보았는데  맛이 있다. 떠날 때 장자(莊子)를 읽기 위해 가지고 갔는데 장자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무심하게 시간만 보내는 여정이다.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해는 아직 하늘에 떠 있다. 그래도 시간이 되었기에 잠자리에 든다.

 새벽 02:55분에 저번에 만나 고려인 3세 아주머니의 아들이 사는 노보시리비스크에 도착한다. 1시간이나 머무는 큰 도시이기에 잠에서 깨어 바깥에 나가 잠시 맑은 공기를 쐬며 맨손체조를 하고 역 주변의 사진도 찍고 한다.

 

 

 

 

 

노보시리비스크 역 

 

 

열차승무원의 근엄한 모습 : 열차가 정차하면 꼭 승객들을 확인한다.

 

 

 

중간에 잠시 휴식을 하는 승객들

 

 

중간 정차역에서 객차내의 온갖 오물을 청소하는 차량

 

 

 

역에서 파는 음식물과 기념품, 간이 슈퍼

 

 

열차 기념물 : 어느 역인지 기억이.......

 

 

 

 

중간 정차역에서 러시아 사람들에게 구입한 빵

 

 

 

 

 

 

 

역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역과 그 주변

 

 

 

시베리아 평원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얻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보통의 러시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 앞좌석 1층에는 50대로 보이는 러시아 노동자가 있고, 2층에는 20대로 보이는 청년이 자리를 먼저 잡고 있었으나 그들은 영어를 조금도 하지 못하고, 우리는 러시아어를 못하니 그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와 같이 멍하게 바라볼 뿐이다. 언어의 소통이 이렇게 중요한 가를 다시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옆 좌석에는 유대인으로 보이는 부부가 즐거이 여행을 하고 있다. 그들은 유대교 성경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이 여행을 즐기고 있다. 뒤편에서 여행하는 일곱 여덟쯤 되어 보이는 러시아 꼬마 녀석들이 윗옷을 벗고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며 이 부부에게 말을 건네도 짜증을 내지 않고 답을 해 준다. 그러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엄청난 양의 식사를 부부가 먹고 잠자리에 들 시간에 특이하게 거구의 여자가 이층으로 올라간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면 기차를 탈 때는 음식을 풍부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기차 안에서 먹는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

 

 기차가 여러 중간 역에서 정차를 하면서 계속 모스크바를 향해 달려 01:30분에 예카테린부르크에 도착하니 한밤중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려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여기서부터는 우랄산맥을 지나 유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도 기차에서 내려서 바깥 풍경을 보려하나 한 밤중이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차에 올라와 다시 잠을 청하고 다시 깨니 해가 벌써 하늘 위에 떠 있다. 차창을 통해 바깥을 보니 동시베리아와 달리 숲과 산이 많이 보인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열차는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모스크바를 가는 두 노선이 있다. 옛날의 노선과 좀 더 남쪽에 새로 만들어져 Kazan(카잔)을 통과하는 노선이 있다. 우리는 미처 몰랐기에 같은 노선인줄만 알고 예약을 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 기차는 카잔을 통과하는 노선이다. 그러나 어느 노선이든지 모스크바를 가는 것은 같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기차여행을 한다.

 

 

 

기차 안에 있는 각 역 도착 시간표

 

 

 

 

 

 

 

 

 

 

기차에서 보는 시베리아의 다양한 풍경

 

 

예카테린부르그 역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

 

 

 

시베리아 숲

 

 08:30분경 아침을 먹고 바깥을 보니 모스크바까지 1,400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너무 긴 거리를 가는 기차이기에 곳곳에 모스크바까지 남은 거리를 표시해 놓은 표지판이 보인다. 이 넓은 시베리아 벌판에 또 비가 오고 하늘에는 새카만 먹장구름이 끼여 온 사위가 어둑어둑하다. 저 멀리에는 끊임없이 펼쳐지는 시베리아의 숲 타이가가 보인다. 달리는 차안에서 사진을 찍으려 하니 제대로 찍히지 않아 그저 눈으로만 보고 마음으로만 느끼기로 한다. 이 광활한 대지를 눈으로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한국의 모든 일상사를 잊어버리고 여행을 즐기려 하였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 인터넷이 되는 역에서는 스마트폰으로 한국의 뉴스를 검색해 본다. 여행을 하는 목적이 일상의 소소함을 벗어나서 자유로움을 즐기는 것인데 한갓 보통 사람인 우리가 일상의 구속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금방 읽은 장자에 자연의 이치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고 하는데.......

기차는 계속 서쪽으로 달리고 있고 하늘은 어느 새 맑게 개여 해가 빛난다.

 

 이름을 모르는 어느 역에서 우리 좌석 앞에 있던 사람들이 내리며 인사를 한다. 3일간 같은 좌석에서 함께 왔다고 말은 통하지 않지만 작별인사를 하고 내린다. 사람의 사는 정은 우리나 이들이나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좌석에 10대로 보이는 젊은 러시아 남녀가 왔다. 젊은이들이라 약간의 영어가 통하여 이야기를 걸어보니 남매라고 한며 모스크바까지 간다고 한다.

 

 19:30분인데 태양이 중천에서 아직 빛을 발하고 기차 안의 러시아인들은 시간을 맞추어 잘도 먹고 자고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기차 안의 러시아인들을 살펴보니 긴 시간의 여행에서 시간을 보내는 준비를 하고 기차를 타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름대로 각자의 방법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숫자나 글자 맞추기 퍼즐 게임을 즐기고 있다. 그 중 숫자 맞추기 퍼즐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니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두뇌를 활용하는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참으로 현명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멀리 보이는 인가들

 

 

 

 

 

 

 

큰 간을 중심으로 도시가 보인다.

 

 

 

열차 차창으로 보는 강

 

 

열차 내에 있는 화장실 변기

 

 

세면대

 

 

온수를 공급하는 식수대

 

 이제 모스크바까지 약 10시간이 남았다. 참으로 긴 여정이다. 약 80시간을 기차를 타는 여행은 내 인생에 있어 다시는 없을 일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래도 계속 변하는 풍경과, 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즐기다 보니 그다지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옆 좌석의 유대인 부부가 내리고 나서 러시아인 엄마가 꼬마를 데리고 탔는데 한 세 살 정도 보이는 꼬마가 라면을 먹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여행에 꼭 필요한 생수

 

 

 

 

간이역에서 음식을 파는 러시아 사람들

 

 

 

 

 

우랄 산맥을 넘어 유럽쪽의 평야

 

 잠이 온다. 어느 새 환경에 익숙해져서 열차 안에서 잘도 잔다. 인간은 너무 빨리 환경에 적응하는 것 같다.

 

 내일 새벽이면 모스크바에 도착한다.